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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국회에도 여성주의가 필요하다

by kwhotline 2019. 4. 16.


성폭력·가정폭력 전문상담원교육 국회견학 프로그램

국회에도 여성주의가 필요하다


오늘(한국여성의전화 9기 기자단)


지난 4일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 수강생들이 국회 견학을 다녀왔다. 국회 견학 프로그램은 상담원으로서 여성 인권 관련 법안에 대해 알아보고 국회 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견학은 정춘숙 국회의원과의 간담회와 국회 나들이로 구성되었다.

간담회를 통해 수강생들은 현직 국회의원에게 여러 가지 여성 정책에 대해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1 : 간담회 진행 모습)

여성폭력방지법 도입이 늦어지고 반쪽짜리가 된 이유는

간담회는 먼저 정춘숙 의원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정 의원은 법과 정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있는 것이며, 우리 삶 속의 모든 것이 법과 정치가 될 수 있다며 운을 띄웠다. 그리고 한 국회의원이 저출생 대책 방안으로 출산 여성의 유방 미용수술에 대한 면세 혜택을 내놓은 사례를 언급하면서, 법과 정책을 마련할 때는 누구의 시각으로 무엇을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어서 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 작년 12월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하 여폭법) 사례로 들어 왜 제정 법안이 만들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왜 자꾸만 법들이 당초의 취지와 다르게 바뀌어버리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폭법은 작년 2월 발의되어 12월에 제정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정 의원은 미투 운동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데 왜 빨리 법을 만들지 않느냐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의원의 말에 따르면 제정법은 원래 만들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10개월은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일례로 가정폭력방지법은 제정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제정법이 느리게 만들어지는 것은 법안을 만드는 과정도 길지만 공청회, 법제처, 소관상임위원회, 대책토론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등 법안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년 말 여폭법 제정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여폭법은 일부 남성들에게도, 여성계에도 환영받지 못했다. 원안에서 여성 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정의했던 부분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며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몇몇 의원들은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정의에 대해 동성 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접근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심된다며 이 정의에 크게 반대하였다. 국회는 숙의 민주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극렬하게 반대할 경우 그 법은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된다. 정 의원은 법안이 원래 의도한 바와 조금 달라지더라도 법안 자체가 통과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지금의 여폭법이 만들어졌다. 정 의원 스스로도 여폭법이 원안과 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국회 시스템상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국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적, 그래서 여성 대표성 문제가 절실하다

정 의원의 발제가 끝난 후 수강생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수강생들이 인터넷 질문 플랫폼에 질문을 올리면 정춘숙 국회의원이 이에 답변하였다. 수강생들은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플랫폼에는 순식간에 50여개의 질문이 올라왔다. 1인 가정 미혼여성 주거정책, 약물을 통한 임신중절, 스쿨미투 관련법 등 다양한 여성 정책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개중에는 낳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저출산'이라는 용어보다, 태어남에 초점을 맞추는 '저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질문은 주로 법안의 현재 진행 상황에 관해 묻는 것들이 많았다.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 초소형 몰래 카메라 구매 제재법 등 여러 법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대부분 개정안이 이미 발의되어 소관상임위나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법률들이 전부 계류 중에 있다는 답을 듣자 법사위에 계류되면 방법이 없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정 의원은 여폭법이 빠르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작년의 열렬한 미투 운동 덕분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법안이 빠르게 제정되려면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박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치에서는 단체의 힘이 매우 중요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여성 청년그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여성인권 관련 법과 정책이 더 활발하고 빠르게 도입되려면 국회 내의 여성 대표성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여성 국회의원이 전체의 17%밖에 되지 않는 국회는 아직도 매우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국회에 여성주의적 관점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모두의 힘찬 박수와 함께 간담회는 마무리되었다.

 

성차별이 먼지처럼 존재하는 국회

정춘숙 국회의원과의 간담회가 끝나고 난 뒤에 수강생들은 조를 이루어 국회를 돌아다니며 미션을 수행했다. 미션은 두 가지로, ‘최초의 여성국회의원에 대해 알아오기국회 내 성차별적인 요소를 찾아오기였다.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은 제헌과 2대 국회를 지낸 임영신 의원으로, 헌정기념관 1층에 전시실에 소개되어있다. 전시실에는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외에도 최초의 시각장애인의원, 최초의 귀화인의원, 최초의 탈북민의원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었다.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수강생들은 다양한 국회 내의 성차별적인 요소를 찾아왔다.

헌정기념관 1층 전시실에 걸려있는 역대 국회의장 초상화 속 인물들이 전부 남성인 것, 산책로에 의미 불명의 나체 여성 동상이 놓여 있는 것, 헌법 제36조에서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 등이 차별적인 요소로 지적됐다. 성별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여성의 신체를 눈요깃거리로 소비하며, 임신·출산·양육을 여성에게만 책임지우는 모성이라는 적합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저곳 크게 놓여있는 국회 마스코트 캐릭터 사랑이희망이역시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치마를 입고 얌전하게 다리를 모으고 있는 사랑이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활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희망이는 파란색으로 성별이분법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2 : 수강생들이 헌정기념관 1층에서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에 대한 정보를 읽어보고 있다)


(사진3 : 수강생들이 국회에서 발견한 성차별적인 요소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아직 벚꽃이 만개하지 않은 여의도였지만 수강생들은 직접 국회를 방문하여 현직 국회의원에게 여성 정책과 관련한 국회 현장의 상황을 듣는 알찬 시간을 보냈다. 결국 세상이 바뀌려면 삶 속의 법과 정책들이 바뀌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하며, 우리 사회가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은 법과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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