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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여성만화, 개별화된 성폭력 사건 너머를 말하다

by kwhotline 2018. 12. 24.

여성만화[각주:1], 개별화된 성폭력 사건 너머를 말하다



(만화평론가·한국여성의전화 회원)



만화에서 성폭력은 오래전부터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서사의 소재로써 활용되어 왔다. 익히 알려진 만화 <드래곤볼>에서 무천도사는 여성인 부르마에게 가슴을 만지게 해달라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데, 이는 이 만화의 전반적인 맥락에서 고유한 개그코드로 소비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순정만화에서는 성폭력이 로맨스를 전개하는 극적인 요소로 연출되기도 한다. 1990년대 순정만화의 대작이라 불린 <불의 검>에서 여성 주인공 아라는 일군의 남성들에게 강간 위협을 받는데, 이때 남성 주인공 산마로아라를 극적으로 구해낸다. 이 사건을 통해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곧 첫날밤을 치른다. 로맨스를 이루기 위한 계기로서 성폭력이 활용되고 있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반드시 강간 위협이 필요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성폭력과 데이트폭력, 성추행, 성희롱 등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형태의 폭력들이 만화 속에서 로맨스로 이어지는 서사는 2000년대에도 이어져 왔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천계영의 작품 <하이힐을 신은 소녀>가 있다. <하이힐을 신은 소녀>에는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 난 여성 주인공 고경희와 남성 주인공 양욱일이 등장한다. 욱일은 작품 초반에서 경희를 마구 구타하고,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려 하거나 머리카락을 커터 칼로 잘라버리는 등 경희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심각한 데이트폭력이지만, 이러한 폭력 속에서 욱일은 무자비한 데이트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힘세고 강한 모습 속에 선하고 약한 모습을 숨기고 있는 남성으로서 그려진다. 작품이 전개되면서 욱일과 경희는 사랑에 빠지고, 데이트폭력이 난무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른이 이해할 수 없는 10대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로 홍보되었다.

 

그러나 최근 웹툰에서 성폭력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종래의 출판만화에서 보이던 방식과 상당히 다르다. 2017년 우리만화 대상을 수상한 웹툰 <, 지갑 놓고 나왔다>(이하 <아지갑>)의 경우에는 피해자 여성의 입장에서 성폭력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인식되고 그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깊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아지갑> 이전에 다루어야 할 만화가 있다. 2008년 네이버에서 연재된 웹툰 <콘스탄쯔 이야기>. <콘스탄쯔 이야기>는 포털 웹툰에서는 처음으로 성폭력 문제를 그린 작품으로, 작품이 가진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러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웹툰 <콘스탄쯔 이야기>는 작중 화자 민정과 학창시절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지민’, 그리고 이 둘을 매개하는 경찰 콘스탄쯔를 등장시켜 지민의 이야기를 민정이 만화로 그려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웹툰 안에서 지민은 민정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윤활제 정도로 쓰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 () 충격적인 대비 효과를 위해서만 성폭력을 쓰는 거라면 그러지 마 () 내 고통은 소재거리가 아니야. 장치가 아니야. 등장인물한테 복수극 시키고 싶을 때 강간당했다고만 만들어 놓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라고”(86) 지민의 이러한 대사들은 앞서 짚었던 90년대 순정만화에서의 성폭력<콘스탄쯔 이야기>가 단절을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콘스탄쯔 이야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서의 윤리와 책임에 대해서도 수차례 언급한다. 김민정은 내가 아무것도 감당할 것 없이 모든 것을 그저 얻기만 한 결과가”(100) 나오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있고, “의식 있는 작가로 보이고 싶어서 괜히 나를 소재로 써먹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둬”(86)라는 지민의 대사를 통해서도 김민정은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비단 소재 차원이 아니라 더 깊은 문제의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내비친다. 그 외에도 <콘스탄쯔 이야기>는 작품을 통해 유의미한 시도들을 해내고 있다. 지민을 수동적인 피해자 여성으로 재현하기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내고, 다양한 미술 기법을 활용해 풍성한 연출을 선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쯔 이야기>가 가지는 한계는, 성폭력 문제를 가부장제 구조와 끊임없이 선 그으려는 작중 화자들의 태도에 있다. <콘스탄쯔 이야기>는 작중 화자들을 통해 작품의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집요하게 다루면서도 성별 권력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콘스탄쯔 이야기>는 별다른 역할도 없는 민정의 남자친구를 계속해서 등장시키고, 마찬가지로 스토리 전개에서 큰 의미가 없는 지민의 첫사랑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이들(민정의 남자친구, 지민의 첫사랑)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남자”(63)라고 지칭한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 남성들은 이해와 타협이 불가능한 악인이며, 일반 사람들과 따로 분류하는 범죄자로서 등장한다. 콘스탄쯔의 말에 따를 때, 성폭력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그니까, 보통은 안한다고. () 근데 지탄 받아야 할 놈들은, 그걸 진짜 폭력 써 가며 실행으로 옮기는 놈들이라는 거지”, 100)

 

흥미로운 건 <콘스탄쯔 이야기>가 취하고 있는 이러한 태도가, 2000년대 당시 성폭력 범죄 처벌의 제도적 전략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추지현(2014)에 따랐을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성폭력 엄벌주의는 성폭력이라는 행위에 대한 분석과 처벌 대신 성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의 존재자체에 대한 분석과 처벌로 이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콘스탄쯔 이야기>가 성폭력 가해자를 이해하는 수준도 당대의 성폭력 엄벌주의와 같은 맥락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폭력 가해자를 괴물로서 표현하는 것은 성폭력이 어떤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지보다, 어떤 에 의해서, 어떤 기회를 통해서 발생하는지에만 관심을 갖게하는 효과[각주:2]를 낳는다. 이러한 연출은 성폭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어떤 관계와 권력 속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외면하게 한다.

 

이에 반해 웹툰 <아지갑>은 특정한 성폭력 사건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서서,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끊임없이 지목한다. 웹툰 <아지갑>은 미혼모인 노선희의 딸 노루가 죽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노루의 엄마 노선희는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 아홉 살에 두 명의 사촌에게 성폭행당했다. 당시 사촌오빠의 엄마였던, 선희의 큰엄마가 이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했다. 그때 문틈으로 선희와 마주친 큰엄마의 시선이 선희에게 트라우마로 각인된다.

 

성폭행 사건 이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선희의 부모는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한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선희의 아버지는 어쨌거나 가족이므로 덮고 넘어가자고 주장했고, 어머니 경자는 이에 강하게 반발한다. 선희는 성폭행 사건뿐만 아니라, 뒤이어 이어진 이혼,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의 변화 등 사회적인 요소로 사람의 얼굴을 로 보게 되는 이상 현상이 생기게 된다. 새는 표정의 변화를 유추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신을 안쓰럽게 보거나 곤란하게 바라보는 표정들을 차단하려는 선희의 방어기제로서 작동한다. 중요한 건 이 이상 증상이 등장하는 시점이다. 노선희가 사람들을 새의 모습으로 보게 된 건, 성폭행 직후가 아니라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다. 그런 데다 노선희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사촌 오빠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큰엄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아지갑>이 지적하고 있는 성폭행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누가 어디서 어떻게 폭력을 자행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 성폭행 사건을 용인했고(큰엄마) 후속처리를 어떻게 막고 있는지(선희의 아버지)를 함께 살피는 것이다.

 

<아지갑>과 유사한 시도는 웹툰 <그래도 되는가>에서도 다루어졌다. 여기에서도 친족 성폭력이 등장한다. <그래도 되는가>는 주인공 최은성의 가족과 은성의 큰집 가족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표면적인 갈등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 상속 문제를 두고 촉발되지만, 사실 은성의 부모가 유산을 순순히 포기하면서 이 문제 자체는 비교적 쉽게 종결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은성의 할머니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방식이 매우 폭력적으로 등장한다. 은성의 할머니는 은성을 부를 때 늘 야 이 기집애야라고 호명한다. 또한 할머니는 둘째 아들인 은성의 아버지에게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다양한 술책을 펼치며 오로지 큰아들과 큰손자만을 살뜰하게 챙긴다.

 

두 집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던 중, 은성은 동생 희성이 최장성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희성은 장성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데, 할머니를 비롯한 큰집 가족들이 늘 장성을 부추겨 세우기 때문이다. 가족 모임에서 언제나 장성을 칭찬하고 감싸는 데에 반해 손녀들은 모두 비하하거나 무리한 가사노동을 시키는 등 남자와 여자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분위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되는가>는 가부장제가 성폭력 범죄를 키우는 데에 있어 어떻게 일조하고 있는지, 가부장제의 가장 바깥에서부터 안쪽까지 섬세하게 그려낸 만화다. <아지갑><그래도 되는가>는 가부장제가 성폭력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었고, 어떤 관계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지를 조명한다. 이 같은 가부장제의 규율들은 상호 연결된 힘들의 체계로서, 이 체계는 억압받는 집단이 취할 수 있는 선택 및 행동들을 체계적으로 봉쇄하고 마비시킨다.[각주:3]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희성이 즉각 장성을 고발하지 못했던 것(<그래도 되는가>), 선희를 성폭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인 사촌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지 않았던 것(<아지갑>)도 바로 이러한 맥락 하에 있다. 이 지점은 <콘스탄쯔 이야기>에서는 생략된 부분이다. <콘스탄쯔 이야기>에서 성폭행 사건은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지민이 하필 그 거리를 지나갔고, 그 거리에 가해자가 있었던 것으로만 사건이 해석된다. 지민이 겪은 친족 성폭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해자는 그저 저기까지가 한계인 인성을 갖고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웹툰들은 사실 종래의 출판만화 시장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출판만화 가운데에서는 사실 성폭력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과 성적 경험에 대해 다룬 작품들이 거의 없었다고 평가된다.[각주:4]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볼 때 <아지갑>을 비롯한 최근의 성폭력 서사들은 비단 여성폭력의 문제에서만 조망되는 것을 넘어서, 여성의 몸과 성적 경험이 발화되는 시도 가운데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1. 본 글은 <코믹스 페미니즘:웹툰시대 여성만화 연구>의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해당 연구에서는 ‘여성만화’를 (씨네 페미니즘 이론가 테레사 드 로레티스의 말을 빌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해 공유된, 사회 · 미학적 기획’이라 할 작품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추지현, “"성폭력을 엄벌하다": 2000년대 성폭력 정책 담론의 구조와 효과”, 「한국여성학」 제30권 3호, 한국여성학회, 2014, 70쪽. [본문으로]
  3. 이종인, “성폭력 이론들에 관한 비판적 고찰: 종족성 및 성 인지적 시각의 모색을 위하여”, 「비교문화연구」, 제12집 1호,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06, 157쪽. [본문으로]
  4. 여성만화 프로젝트, http://www.dugoboza.net/wc/archives/000023.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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