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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남자, 요리 학원에 가다

by kwhotline 2017. 11. 24.


남자, 요리 학원에 가다



인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안녕하세요. 한국 여성의 전화 회원으로,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인태입니다. 예전에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도와드리며 근황 이야기를 하다 제가 요리를 배우면서 겪은 에피소드들과 성차별에 대해 활동가분들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쭉 들으시더니 사소한 말이라도 그냥 건네는 법이 없으신 활동가분께서 그 내용으로 글을 쓰면 재밌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언젠가는 쓰게 될 것이라고 직감했고 결국 원고를 부탁받아서 글을 쓰게 되는 그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제 꿈과 흥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성 역할에 대한 제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저녁상이 차려져 있는, 되지도 않는 판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밥은 맛있으면 좋으니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요즘엔 여자 남자 상관하지 않고 어렸을 때부터 주로 공부를 하고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더 높을 정도인데 여성에게만 요리 잘하기를 기대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맛있는 밥이 목적이라면 휴학을 해도 취업 시장에서 덜 불리한 남성인 제가 요리를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았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에 등록하고 가서 봤더니 열네 명 정도의 수강생 중 저와 아저씨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주머니들이셨습니다.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이었는데 자격증 종목과 취득 후 전망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때 곁가지로 나온 조언들이 여자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외에 중식, 일식, 양식, 복어 등은 필요가 없는데 어차피 레스토랑에서 여자를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고 한식만 취득해서 아무 식당에 가는 게 낫다, 남편들이 뼈 빠지게 밖에서 돈 벌어오는데 아내들은 집에서 놀지만 말고 자격증을 취득해서 식당에서라도 일해라, 요즘은 남자들이 힘들고 불쌍하다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강사분이 여성분이셨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고 또 아주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여성주의를 설파하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행동에 옮기진 못했습니다. 직장생활도 하셨고 연세도 있으신 강사님은 이해가 가도 아주머니들의 동의는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 동의가 일종의 체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1. 예쁜 매작과랍니다^^ 만드는 게 아주 귀찮으니 

될 수 있는 대로 사 드시길 권장합니다~



 위에서 체념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들은 슬픈 이야기는 같은 조였던 아주머니와 쉬는 시간에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이 원래 프로그래머이셨다고 들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재취업을 위해 원래 직업과는 상관없는 요리를 배우신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대학 시절에 과에서 여자들이 취업이 힘드니 다 학점이 엄청 높았고, 프로그래머로 취업도 되었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시는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남편이 승진도 빠르고 돈도 더 버니까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고 계신다는 말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고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데 어쩌겠나’ 하는 체념이 느껴졌습니다. 출산 후 경력단절이라는 전형적인 코스와 그로 인한 결과를 보고 들으니 분하고 안쓰러웠습니다.


 이렇게 요리를 배우며 휴학을 한 상태여서 요리를 시작으로 집안일을 하나둘씩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 점심 도시락, 저녁 반찬을 만들고 식사 후엔 바로 설거지하고 며칠에 한 번씩 청소도 했습니다.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한 것은 아니지만 흔히들 말하는 주부의 삶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요리는 좋아하니까 할 만하지만, 설거지나 청소는 하다 보면 수도 없이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해도 별 티가 안 나고 안 하면 티가 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겉으로 보기에 깨끗한 집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지, 아무리 가족을 위한다고 해도 매일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등 집안일의 위대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림2.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요? 

남자는 혼자서도 접시를 깹니다! 코렐이라 아주 산산조각이 났어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여성의 전화 활동가분들과 나눴더니 시간차를 두고 두 분이나 “장가 잘 가시겠네요.”라는 말을 하셔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런 말을 살면서 거의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시집 잘 가려고 하는 일들이 아닌데 그런 말을 듣는 여성분들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장가 잘 가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시피 소개도 부탁을 받았는데 고작 몇 개월 요리한 거로 뽐내는 것 같기도 하고, 한식 자격증 종목들이 예쁘긴 한데 맛은 별로인 게 많아서 고민하다가 중식 수업에서 배운, 시험장 레시피 대로만 해도 맛있었던 요리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칩니다.



새우케찹볶음


재료: 새우살 200g 달걀 1개 당근 양파 완두콩 생강 대파 녹말가루(감자전분) 진간장 토마토케찹 청주 소금 백설탕 식용유 (1인분 기준이며 양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재료는 기호에 맞게 조절하시면 됩니다.)


 1. 새우는 해동하여 씻은 후 등 쪽에 칼집을 넣습니다. 새우를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소금과 청주로 밑간을 합니다. (내장이 제거되지 않은 새우라면 내장도 제거합니다)


 2. 대파, 생강을 얇게 편으로 썹니다.


 3. 당근과 양파는 가로세로 1cm, 두께 0.3cm로 썹니다.


 4. 새우에 녹말가루 5~6큰술과 달걀흰자를 넣고 섞어 튀김옷을 만듭니다. 튀김옷이 흐르지 않고 되직하게 되도록 흰자의 양을 조절합니다.


 5. 달궈진 기름에 튀김옷을 충분히 묻힌 새우를 동그랗게 말아서 튀깁니다. 2번 튀길 것이기 때문에 색이 연하게 나게 합니다. 적정한 온도는 중약불로 충분히 달궈진 상태인데 나무젓가락을 넣었을 때 기포가 달라붙거나 반죽을 넣었을 때 잠시 후 올라오는 것보다 조금 낮은 정도입니다.


 6. 한번 튀긴 새우들을 잠시 식힌 후 다시 한번 튀깁니다. 2번째 튀길 때 수분이 빠져나가서 더 바삭한 튀김이 됩니다.


 7. 물과 녹말을 한 큰술씩 섞어서 물 녹말을 만들어놓습니다.


 8.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충분히 두르고 생강과 대파를 볶아 어느 정도 향이 올라오면 간장과 청주를 한 작은술씩 넣습니다.


 9. 당근과 양파를 넣고 조금 볶다가 케첩 두 큰술을 넣고 약불에 볶아 신맛을 날려줍니다.


 10. 설탕 반 큰술과 물 100ml를 넣어 바글바글 끓입니다.


 11. 만들어둔 물 녹말을 저어서 앙금을 풀어준 뒤 물 녹말 한 큰술을 넣고 바로 저어줍니다. 넣자마자 젓지 않으면 소스가 뭉칩니다.


12. 마지막으로 새우와 완두콩을 넣고 버무립니다.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 모임은 1995년부터 이어져 온 남성 회원들의 학습 모임으로 여성 인권 이슈와 관련하여 독서 및 토론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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