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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내 친구는 남자를 좋아해

by kwhotline 2012. 2. 28.
내 친구는 남자를 좋아해

“너 남자친구 이야기 좀 해봐”
붉어진 얼굴이 더욱 상기된다. S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를 처음만난 건 따듯한 봄날, 학교에서였다고 했다. 유난히 조용했던 S와 달리 그의 남자친구는 학교에서 유명할 정도로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의 소유자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잘생겼다. 어떻게 만났냐는 나의 재촉에 S는 조용히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응..예비군 훈련 갔을 때….”


동성애는 이성애의 데이트메이트?

동성애자 친구가 있는 게 유행이었을 만큼, 섹스앤더시티는 한국에 큰 열풍을 가져왔다. 데이트는 함께 즐기면서 친구이상의 감정을 갖진 않는, 일종의 데이트 메이트 같은 관계는 모든 여자들에겐 로망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였을까, S가 내게 커밍아웃했을 때 나는 일련의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마구 편해졌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나는 변한 내 행동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커밍아웃 이후에도 우리 둘은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났고, 밥도 먹고, 가끔 술도 마시는 관계. 속이야기도 털어놓으면서 지낸 이 관계는 단지 그가 친구였기 때문에 편함을 유지했던 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영영 좋아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선’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남자인 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편했던 것이다. 결국은 S자체가 아닌 동성애자인 S를 만나서 편했던 것. 참 이기적이기도 하지. ‘동성애’를 바라보는 이성애의 잘못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

<사진출처: 영화 친구사이 홈페이지>

내가 S를 처음만난 건 고등학교때였다. 평소 친해지고 싶었지만 친분이 없던 터라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다가 친해져서 자주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내가 한참 여성학에 빠져있을 때 그가 먼저 커밍아웃을 했다. 그때 한 첫 번째 질문이 아직도 떠오른다.

“남자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들어?”
지금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S는 자주 받는다는 듯 흔쾌히 자신의 감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내 곧 여자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 집에서는 반대안하냐 등 동성애자들이 자주 듣는 질문 베스트10이 채 뽑히기도 전에 나의 질문들은 사그라졌다. 그가 표현하는 감정들이 내가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감정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S의 말이 싱겁기까지 했다. 신기했던 S가 평범해지는 순간이었다.
동성들 중에서도 관심이 가는 이가 있는 반면, 전혀 관심도 아무런 애정도 없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이성들 중에서도 소위 키스해 보고 싶은 남자가 있는 반면, 정말 관심이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왠지 그와 같은 성을 가지면 상대가 나를 좋아할까봐 불안해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상대를 살살 피하게 되고, 동성애자의 호의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며 자리를 피한다. “동성애자도 보는 눈이 있어요.”라고 말하던 교수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행복할수 있는 존재, 동성애자

“자살도 많이하고 그런대”
S와의 에피소드를 들은 내 친구가 슬쩍 말을 건냈다. 사회의 냉대와 외면을 참지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동성애자를 그린 흔하디 흔한 새드엔딩. 그 이야기를 듣고 몇 분은 S가 걱정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불현 듯 물음표하나가 그려졌다. “S는, 아니 동성애자들은 불쌍한 사람들일까?”


         <사진출처: 드라마 인생은아름다워 sbs 홈페이지>


예전에 동성애 커플이 등장했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수많은 드라마 중, 이 드라마가 비난을 많이 받았던 이유는 ‘동성애자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많은 매체에서 ‘동성애’를 불쌍하고 가엾은 소수자로 그려낸다. 특히 집단에서 철저히 외면받으며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까지 마다않는 불행한 이미지가 강했다.
내가 생각하는 동성애자도 그와 비슷했었다. 외면받고 웅크린채 슬퍼하는 비운의 삶,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불쌍한 모습. 하지만 S를 만나며 달라졌다. 누구보다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S는 결코 불쌍하거나 소외된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에 기뻐하고 이별에 슬퍼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왜 동성애자를 불쌍하게 생각할까? 어쩌면 이성애라는 권력으로 동성애를 불쌍하고 안타까운, 그래서 감히 행복해서는 안 될 사람들로 한정지어 놓은 것은 아닐까? ‘소수자’라는 이름의 울타리에 가둔 동성애자들을 바라보며 ‘저들의 삶이 불쌍하니 인정해주자’는 오만한 자선을 베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성애를 선택하지 않은 그들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 것이라 스스로를 자위하며 말이다.


우리 이야기좀 합시다

유쾌한 S와의 일화는 결코 S라는 인물이 가진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있고, 이들 역시 S처럼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S를 만나면서 느꼈던 이성애주의라는 권력의 문제, 동성애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제와 가장 기본적인 동성애자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동성애가 특별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었다. 개인의 섹슈얼리티가 때론 권력이 되기도하고 사회의 소수자로 낙인받기도한 비정상적인 울타리를 깨부시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이라는 것도 다분히 이성애중심적인 폭력이다. 나의 취향이 남다름을 이성애주의자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일방적인 방식의 관계는, 아직도 많은 동성애자들을 ‘타인’으로 구분짓거나, 동성애자라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잣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글을 써내려가며 지난날의 실수와 오만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이제 몇년쯤 되는것같다. S를 만나 행복했다. S와함께 할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S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1기 기자단 '고갱이'_ 황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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