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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여성주의로 바라보는 가정폭력의 민낯

by kwhotline 2017. 3. 30.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문제? 

여성주의로 바라보는 가정폭력의 민낯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윤선혜


3월 24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여성폭력문제의 사회구조적 맥락과 이해’를 주제로 한국여성의전화 49기 여성상담전문교육(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 3회차 강의를 진행했다.


가정폭력 교육 이틀째였던 24일,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는 아직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이내 고미경 대표의 익살스러운 사투리에 함께 웃고, 강력범죄 피해자의 90.2%가 여성이라는 통계에는 함께 탄식하면서 분위기는 한층 풀어졌다. 뒤쪽에 앉은 수강생들은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엠마 왓슨의 ‘HeForShe’ UN 연설 영상을 시청한 뒤에는 옆 사람과 활발하게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고미경 대표가 ‘벌집 토론’이라 설명했듯이 교육장 안이 벌처럼 윙윙거리는 말소리로 가득 찼다.




가정폭력은 왜 사회적 문제인가?

강의가 시작되고 고미경 대표는 “왜 이 문제는 사회적 문제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강의 주제에도 드러나 있는 ‘사회구조적’이라는 말은 한국여성의전화 캠페인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로 대변된다. 가정폭력은 사회 전체가 만든 문제이며, 그래서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강의는 부부싸움, 집안일이라는 말로 가정폭력을 쉬쉬해왔던 사회적 통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가정폭력은 대부분 가해자가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별화된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폭력은 곧 여성폭력이자 젠더폭력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발생하거나 혹은 가해자의 정신질환, 지나친 음주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며 폭력 상황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고미경 대표는 가정폭력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로 폄하된다고 설명한다. 어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려면 실태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므로 정확한 통계 조사나 현상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또다시 문제 정의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폭력은 힘과 권력의 문제이며 차별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발생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불평등한 젠더 관계 속에서 남성은 폭력을 수단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통제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는 한, 피해자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가정폭력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성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에서는 한쪽의 일방적인 억압과 통제가 발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주의관점

고미경 대표는 반복해서 상담원의 여성주의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담원 교육이면 상담하는 법만 알려주지 왜 이런 얘기를 하나 싶으시겠다”며 웃었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정폭력 생존자와 마주해야 하는 상담원에게 올바른 관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상담원이 어떤 시각으로 상담자를 바라보고 상담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그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중에서도 여성주의 관점일까?


가정폭력 전문 상담원의 경우 여성주의 관점을 깨닫지 못하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범하기 쉽다. 반복되는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여전히 남편을 두둔하는 이유 등 대부분 피해자가 보이는 태도는 피해 경험이 없거나 가부장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함은 곧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건 집안일이 아니라 가정폭력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이르러야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하던 ‘여성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것에 관해 여러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면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된다. 지금껏 가정폭력은 ‘집안일’ 또는 폭력 가해자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각 가정의 교육,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통계에서 응답자의 50% 이상이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통계는 가정폭력이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를 사회적 문제로 끊임없이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더불어 고미경 대표는 ‘먼지 차별’ 영상을 소개하면서 상담원에게 여성인권뿐만이 아닌 모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먼지차별이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별, 나이, 인종, 성정체성, 장애 등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담은 표현을 뜻한다. 한 수강생은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나이, 학력에 따른 위계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일상적인 먼지차별에 관한 추가적인 논의를 이끌었다.


강의는 ‘말하기의 힘’을 다시금 강조하며 마무리됐다. 고미경 대표는 “말하기를 통해서 본질을 얘기하고 질서를 흔들 때 세상이 바뀌고 정책이 바뀐다”며 말하는 힘을 모아 연대하면 변화는 반드시 이어진다고 논했다. 이때 여성주의 시각은 나 자신과 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은 5월 26일까지 총 100시간 동안 실시될 예정이다.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과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모두 이수한 수강생은 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전문상담원으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자원 활동할 수 있다. 교육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한국 여성의전화 홈페이지(www.hotlin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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