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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영화 <귀향>, 우리가 보고 기억해야 할 영화

by kwhotline 2016. 5. 4.

영화 <귀향>, 우리가 보고 기억해야 할 영화


다향


* 본 감상문에는 영화 <귀향>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귀향>은 조정래 감독이 2002년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의 대상으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했던 피해생존자 강일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영화이다.






영화 초반, 1943년 거창에 살던 14살 소녀 정민(강하나 분)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간다. 마찬가지로 여러 지역에서 끌려온 다른 또래 여자아이들이 끌려간 곳은 소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이다. 비명 소리와 교차되어 나타나는 위안소 장면은,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그 속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진짜 이름’은 순간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공포와 슬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조차 가물가물해지는 공포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일본군 중 직급이 높을수록 강도 높은 학대를 가하는 것은 폭력과 학대가 권력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직급이 높지 않은 일반 병사라 할지라도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안부’ 소녀들에게 마음껏 학대와 착취를 일삼는 것 역시 그러하다. 전쟁이 만든 ‘괴물’, 어쩌면 그 이전부터도 ‘괴물’이었을지 모를 군인들의 잔학함에 고통 받는 그 ‘지옥’ 속에서도 소녀들은 서로를 다독이고 도와주며 버텨 나간다. 인간성이 사라진 그 현장에서 가장 빛나는 인간성과 자매애를 느끼게 하는 아이러니가 더 아프게 와 닿는다.


영화를 보던 중, 내 앞쪽에 있던, 친구 사이로 추정되는 두 명의 관객이 벌떡 일어나 상영관을 나가버렸다. 그들이 왜 나갔는지, 이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영화의 만듦새가 허술해서 재미가 없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짐작컨대 그들이 나간 시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마주하고 있던, 그리고 앞으로 마주해야 할 장면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끔찍하고 참혹한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싶은 유혹을 자주 받는다. 당장의 내 일이 아니니까, 나와 상관없으니까, 라며 눈을 돌리고, 때로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누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상영관에서 나가버려야 할 만큼 참혹한 그 장면들은, 영옥 역을 맡은 배우 손숙의 이야기처럼 “만약 내가 태어난 시대가 조금만 달랐다면 바로 내가 겪었을 수도 있는” 폭력의 장면이다. 또한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당하고 있는 폭력의 한 조각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속 대사가 자꾸 맴돌았다.


“난세란 게 뭐야? 난세란 약자의 지옥이야. 난세엔 여러 종류의 약자가 존재하지. 그 중 언제나 빠지지 않는 약자는 아이와 여자야. 그래, 난 아이인 동시에 여자였던 소녀였지.”(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15회 중, 연희의 대사)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을 반대하던 쪽에서도 ‘전쟁에서 여성과 아이가 피해를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한다. ‘당연한 일’인데 왜 문화적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느냐는 그들의 논리는 가해자의 위치에서 전쟁성폭력의 피해자들을 계속 피해자의 위치에 두고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읽힌다.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더욱 피해자들이 겪은 일들이 하나하나 기록되고 알려져야 한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왜 그토록 오래 걸리고 어려웠는지, 전쟁 속에서 여성이, 한 인간이 겪은 폭력 피해 이전에 국가의 피해로 먼저 읽혀 오용되었는지를 한 장면을 통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좀 더 초점을 맞췄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TV에서 ‘정신대’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는다는 뉴스를 보고 읍(혹은 면)사무소를 찾은 영옥(손숙 분)은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아 신고를 망설인다. 그 때 들려오는 공무원들의 이야기. 정신대 신고의 실적 기안을 해야 하는데 우리 관내에는 아무도 없나 보다는 동료의 말에 다른 직원이 말한다.


“에이, 있어도 좀 그렇잖아, 솔직히. 난 실적 없을 줄 알았어.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과걸 밝혀, 안 그래?”


이 이야기를 들은 영옥의 반응, 그리고 대사는 처절하고 슬프면서도 통쾌하고, 무엇보다 아프다. 성폭력 피해를 ‘미치지 않고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자 ‘수치’라고 환원하는 가부장적 태도는 이처럼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침묵을 강요해 온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다. 더구나 그것이 국가의 침탈이나 전쟁과 관련지어졌을 때는 너무나 손쉽게 국가 대 국가, 집단 대 집단의 구조가 되어 피해자 개인은 사라지고 만다. 


이 영화에서 은경(최리 분)이 가진 ‘신기’의 발현이 꼭 성폭력 피해 이후였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인 영옥과 은경이 만나게 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도록 하고, ‘굿’을 통해 영혼들을 위로하도록 한다는 다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으나, 성폭력 피해로 인해 신기를 가지게 되었다거나, 성폭력 피해가 반드시 정신적으로든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든 문제를 가져온다는 식으로 오역될 가능성 역시 가지고 있는 위험한 시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귀향>은 여러 아쉬움이 남더라도 우리가 보고 기억해야 할 영화이다.


조정래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영화는 실제 일어났던 일의 10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며 ‘위안부’ 피해에 대한 “문화적 증거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힌다. 바로 그 “문화적 증거”로써 영화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단순히 일본군이라는 미시적 초점의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넘어 가부장제와 전쟁이라는 거시적 측면의 가해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가 끝나고 약 10분 간 계속되는 엔딩 크레딧에는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과 함께, 심리치유를 위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린 그림이 흘러나온다. 그림 하나하나에 과거의 기록이, 아픔이 들어 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영화를 볼 때 꼭 엔딩 크레딧을 마지막까지 보고 나오신다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냥 분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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