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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3.8 세계 여성의 날, 여성에게는 여전히 '빵과 장미'가 필요하다

by kwhotline 2016. 5. 4.

3.8 세계 여성의 날,

여성에게는 여전히 '빵과 장미'가 필요하다


정은선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190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가 된 이날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빵, 그리고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이 절규 어린 투쟁에서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여성들은 빵과 장미를 제대로 누리고 있을까. 여성의 날을 사흘 앞둔 5일 토요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 32회 한국여성대회는 한국사회에 이 질문을 다시금 던지는 자리였다.

 

 '희망을 연결하라 -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날 대회에서는 성평등 걸림돌과 성평등 디딤돌을 각각 선정해 발표했다. 성평등 걸림돌에는 성평등을 후퇴시킨 박근혜 정부의 3대 정책(성교육 표준안, 노동 정책, 양성평등 정책), 양성평등기금을 폐지한 홍준표 경남도지사, 조선대 의전원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입장을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하는 데 그친 광주지법, 여성노조 지부장을 집단적으로 괴롭힌 인천성모병원, KTX 여승무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 2인 등이 선정됐다. 사회자 김미화의 "오늘 단합된 힘으로 단전부터 끌어올리는 야유의 목소리를 보내주시길 바란다"는 말에 따라,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성평등 걸림돌'들을 향해 거침없는 야유의 함성을 보냈다.

 

 이어 성평등 디딤돌에는 시설 내 장애인 인권 보장을 촉구하고 법인 설립 허가를 이끌어낸 '자림성폭력대책위원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네트워크', SNS 상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거둬내고 여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운동', 원천사업장의 구조조정과 용역회사의 해고를 막아낸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분회', 업소의 불법 성매매 영업 행위를 세상에 알린 '여수 유흥업소 여성 사망 사건 제보자 9명' 등이 선정됐다. 무대에 오른 시상자들이 소감을 마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박기춘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분회장은 “인디언 속담에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조합원과 여성노조 다 함께, 잘 가야겠습니다. 디딤돌, 참 좋은 단어입니다. 저는 여성 노조와 함께 디딤돌 잘 밟으며 내 일터에서 내 자리 잘 지키며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진솔한 소감을 남겨 환호를 자아냈다.


 올해의 여성운동 특별상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여성 노동권 실현을 위해 투쟁해온 KTX 열차 승무지부에게 돌아갔다. 지난 1일은 이들의 파업이 시작된 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김승아 지부장은 "대법원에서 KTX 승무원이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현실을 보니까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다시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와보니 이렇게 용기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씩 좌절도 있고 지치기도 하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앞으로 더 힘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감사드린다"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참석자들은 격려와 연대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기념식이 끝난 후,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 속에 참가자들은 종로를 거쳐 평화의 소녀상으로 이어지는 행진에 나섰다. 행렬은 걸음을 옮기며 성평등 가치 실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반대, 성평등한 국회 등의 구호를 외쳤다. 궂은 비를 헤쳐나가는 참가자들이 바로 수많은 ‘성평등 걸림돌’들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디딤돌’이었다. “희망을 연결하라”는 한국여성대회의 구호는 그래서 이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도 모호하게 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한편 여성의 날 당일인 8일에는 지난 5일의 폭우가 무색할 만큼 맑은 날씨가 펼쳐진 가운데,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한국여성의전화는 광화문 일대에서 여성들에게 보라색 장미를 나눠주며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험난한 투쟁을 해나가고 있을 그녀들을 응원했다.

 

 광화문을 오가는 제각기 다양한 나이, 국적의 여성들은 모두 한 송이 장미를 받아 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 권리라는 의미의 '장미'는 아직까지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KTX 승무지부의 10년이 넘게 이어진 투쟁을 외면하고 ‘성평등 걸림돌’이 된 대법원의 예가 증명하듯, 심지어 생존권으로서의 ‘빵’조차 온전히 가지지 못한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1908년 3월 8일부터 현재의 여성의 날까지 약 100년이 흐른 가운데, "빵과 장미를 달라"는 여성들의 외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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