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입니다. 여성혐오에 반대합니다.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입니다. 여성혐오에 반대합니다.
오래된 이야기다. 대학시절, 누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어제 어떤 개그맨이 토크쇼에서 나와서 그러더라. 웃긴 여자는 못생긴 여자보다 나쁘대.” 그날, 각기 다른 사람에게 세 번은 그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소 “네가 개그 욕심을 포기해야 연애를 할 수 있다”고 말하던 이들이었다. 여자는 웃기면 인기가 없어. 여자가 웃긴 건 여자이기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프로 개그우먼도 아니고 그저 농담을 잘 할 뿐이었던 나는 언제나 그 말이 이상했지만, 뭐가 이상한 건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나는 왜 웃기면 안되는가? ‘여자’는 왜 웃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웃어주는 사람의 위치에 있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왜 비교의 기준점이 ‘못생긴 여성’인가? 못생긴 여성은 나쁜가? 그 질문은 오래 나를 따라다녔다.
또 하나의 오래된 이야기다. 대학 졸업반, 나는 한 언론사의 인턴이었다. 다섯명으로 구성된 한 팀에 여학생이 네 명, 남학생이 한 명이었다. 그는 인턴으로 선발되고 나서 일에 집중하겠다며 휴학을 했고, 여학생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에 선배들과 밥을 먹고, 취재를 도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여학생들과 남학생 사이에는 같은 인턴임에도 묘한 위계가 생겼다. 그는 팀 프로젝트보다는 언론사 선배들을 대하는 일이 더 먼저였고, 때로는 선배들과 술을 마시느라 출근하지 못하니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문자를 보냈다. 물론 이건 분명 너무나 개인적인 그의 문제였다. 하지만 나를 정말 절망케한 것은 술자리에서 그의 사수였던 선배의 말이었다. “쟤 못하지, 알아. 하지만 만약에 너네랑 쟤랑 있는데 한 명을 뽑아야 한다면 무조건 쟤를 뽑지. 취재 잘한다고 일 잘하는 거 아니야.” 오직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남성들의 질서를 이해한다는 이유로 그를 뽑을 것이라니. 언론사에서 20년 넘는 세월을 일한 기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난 화가 났지만 금방 무섭고 서러워졌다. 내가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그 말은,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시작. “안녕하세요, [여자]입니다.”
옹달샘의 멤버인 장동민이 JTBC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 모델이자 방송인인 한혜진이 자신과 맞지 않는 이유로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를 들었을 때, 그 말은 당연히 농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의 방식은 말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이 말 속에는 문제가 됐던 욕설 팟캐스트만큼, 아니 어쩌면 오히려 더 명백한 여성혐오가 담겨있다. 여성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싫다는 말의 숨은 의미는 결국 여성이 침묵하기를 바란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녀관계에 있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건 남자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여자는 "설치는" 여자가 된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속담이 대단한 격언인냥 인용되는 사회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여성을 설친다며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심지어 여성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놀라움을 표한다. 이번 옹달샘 사건에 분노하며 불매운동을 진행하는 모습에 ‘여자들이 엑셀로 불매운동 리스트를 정리하다니 무섭다’로 시작해 ‘여자들이 저런 걸 할 수 있을리 없다. 배후가 있다’는 말로 이어지는 반응을 보며, 우리야말로 무서웠다. 첫인사라도 해야하나 싶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자입니다. 남자분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생각을 하죠.
그때 한 트위터리안 @MacJohnathan이 장동민의 <마녀사냥> 발언을 영어로 바꿔 일종의 페미니즘 구호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이며, 이 문구는 해쉬태그 #GoWildSpeakLoudThinkHard가 되어 퍼져나갔다. 우리는 이 구호가 올해 1월부터 트위터를 중심으로 시작된 목소리들을 대변하기에 가장 걸맞다고 생각했다. 이 간결한 여섯단어가 우리를 끌어당겼다. 여자들이 설칠 수 있고, 떠들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 시작이 에코백이 된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구호를 크게 넣을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이 에코백과 티셔츠 둘이었기 때문이다. 티셔츠는 디자인을 예쁘게 하는 일이 쉽지 않고 사이즈 등의 문제로 판매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첫 프로젝트는 에코백으로 정했다. 설치고 기획하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우리 두 사람은 생업에서는 발휘되지 않는 놀라운 추진력으로 즐겁게 일을 진행했다. 한 사람에게는 트위터와 사업자등록증이 있었고, 또 한 사람에게는 페이스북과 포토샵이 있었다. 다시 돌이켜봐도 완벽한 궁합이라고 할 밖에.
특정 기간 동안 일정 수량만 판매하는 프로젝트로 진행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 추진력이 발휘되지 않는 생업을 우리 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정확히 100장을 팔고 싶었다. 에코백도 100장, 그 다음 프로젝트가 티셔츠가 된다면 그것도 100장. 보통 제작을 하는 경우 최소수량이고, 또 그 정도는 팔아야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턱도 없다는 사실이 에코백 1차 100장을 판매한 뒤 밝혀졌다. 지금은 수량을 정해놓지 않은 상태로 생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그리고 우리가 즐겁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끝나지 않을 웃픈 우리의 정치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결정한 뒤, 그 다음 문제는 기부처였다. 우리는 일단 페미니즘 이슈 안의 수많은 갈래 중, 여성폭력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성폭력은 여성 또한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만연한 여성혐오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이는 결국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난다. 단순히 욕설과 음담패설이 듣기 싫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여자들이 맞아, 죽는다. 만연한 여성혐오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설치지 않고 닥치고 있기를 수시로 요구받으며, 모성과 처녀성을 강요당하고,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모욕받고 폭력에 노출된다.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다. 그 점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면서 구체적으로 관련 부문에 후원할 수 있는 후원처를 찾고자 했다. 그래서 한국여성의전화에 후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는 앞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페미니즘 이슈가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채우면서, 자연히 다른 사회문제들과도 만났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고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에 페미니즘의 밥그릇 싸움을 갖다대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왜 안되는가? 동일노동을 하는 남자들에 비해 63%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여성이 동일임금에 대한 외침과 해고노동자들의 외침이 왜 함께 울려퍼져서는 안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최전선이며, 우리의 정치인데.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다 갑자기 사라진 어떤 트위터 계정에서,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에 대하여 ‘개그맨 하나 하차시키자고 에코백을 만들다니 그럴 정성을 다른 데 쏟으라’는 뉘앙스의 멘션을 한 적이 있다. 그럴리가. 우선 장동민이 그 발언이 공개된 이후 더 이상 ‘개그맨 하나’가 아니게 된 것은 차치하고, 일단 우리는 그를 하차시키거나 혹은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에코백을 만든 것이 아님을 확실히 밝히고 싶다. 적어도 이 구호가 나오게 되고 우리의 목소리를 이 구호에 실어 세상에 설칠 수 있게 도와준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싶을 정도다. 도대체 왜 이런 것까지 친절하게 가방에 적고 티셔츠에 적어서 알려줘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거기서부터라도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 어쩔 수 없는 ‘웃픔’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15년에도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설치면서 알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남성이 여성을 ‘설친다’는 이유로 때려서는 안되며, ‘야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강간을 해도 안되고,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죽여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주고 말해야 한다는 점에서 슬프다.
빈 칸 너머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
앞으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어갈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저 지금까지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즐겁게 해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기를 바란다는 것 뿐. 각자도생의 시대를 여성이라는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에코백을 메고 또 티셔츠를 입으며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사회가 우리에게 당연하다 하는 것들에 대해 반문하며, 서럽고 무서운 상황에 처한 게 혼자만이 아님을 아는 것. 에코백과 티셔츠, 아직 알 수 없지만 다음으로 이어질 프로젝트의 결과물들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척 했지만, 욕심은 이렇게나 금방 커진다.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설치는 [에코백]을 준비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괄호 속 빈 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빈 칸은 에코백, 티셔츠 처럼 우리가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 내용을 적을 공간이었다. 에코백, 티셔츠, 파우치, 팔찌, 노트... ‘G[ ]O’라는 로고의 괄호는 그래서 비워져 있었다. 하지만 설치는 [에코백]을 구매한 사람들은 그 로고의 괄호 속 빈 칸을 나름의 방식으로 채웠다. 누구는 세월호 노란 리본 뱃지를 달았고, 누구는 커다란 꽃 코사지를 달았다. 그걸 통해서 그 빈 공간이 단순히 프로젝트의 내용이 아니라, 좀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 우리의 상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지금 우리는, 당신의 빈 칸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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