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안산 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살인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지난해 11월 10일, 12년 동안 남편으로부터 상습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해 온 피해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일명 ‘안산 암매장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본 사건이 발생한지 두 달 만에 또 다시 같은 지역에서 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살인사건(일명 ‘안산 인질극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살인이 발생하기 전 관할경찰서인 안산상록서에 도움을 요청했었고, 분명 경찰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의 잘못된 초동대응이 부른 참극이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본 ‘안산 암매장 살인사건’> 2014.10.16. 남편에 의한 폭행으로 골절 등의 상해 발생.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함. 가해남편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지 않고, 임의동행으로 경찰조사를 받은 후 귀가조치 됨. 2014.10.17. 피해여성 고소장 접수 (이전 폭행 및 상해에 대한 내용이 포함됨) ---------- 사건을 배당받은 경찰의 수사진행 미진. 오히려 가해자와 평소 친분이 있던 경찰이 가해자와 사적으로 접촉함. 2014.11.8. 또 다시 폭행이 발생함. 신고를 받고 2차례에 걸쳐 경찰이 현장에 출동함. 가해남편은 체포되지 않고, 피해자에게 한동안 친구 집에 머물도록 조치하는 것에 그침. 2014.11.10. 피해여성이 가해남편의 폭력에 의해 살해당함. |
피해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기 전까지 경찰에게는 피해여성을 보호하고 폭력을 제지할 수 있는 수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고소 이후 사건을 배당받은 경찰도, 어느 누구 하나 가정폭력 사건 처리에 있어 경찰의 직무를 다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만 되었다면, 가해자 격리 및 접근금지·보호시설 인도 등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졌다면, 고소 후 신속하고 엄중하게 수사만 이루어졌다면,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3일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전국 41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경찰과 책임자를 직무유기 및 업무상과실치사로 공동 고발하였다. 이후 경기지방경찰청에서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관련 책임자 5명에게 내부 징계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소속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은 지 불과 10일 만에, ‘안산 암매장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두 달 만에, 또 다시 같은 경찰서의 안일한 대응으로 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여성의 전 남편과 자녀들이 가해자에 의해 감금되어 살해당하기 4일 전, 피해여성은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허벅지를 찔리고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민원상담관의 대처는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고소절차를 안내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인한 가정폭력 살인사건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안산에서 발생한 두 번의 가정폭력 가해자에 의한 살인사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지난 2012년 수원에서 112로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건에 대해 “가정폭력인 줄 알았다”며 늑장 출동하여 결국 피해자를 살해당하게 한 사건을 기억한다. 가정폭력을 대하는 경찰의 인식과 태도는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한 1.3%의 피해자(2013 여성가족부 가정폭력실태조사)마저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복의 위험에 노출되고 사지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어떤 피해자가 경찰을 신뢰하고 신고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가정폭력 대응방법으로 ‘112에 신고하라’고 홍보하는 것은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가정폭력은 사회적 범죄로서 개인이 해결할 수도, 개인에게만 맡겨져서도 안 되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이 가장 가까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권력인 경찰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며, 가정폭력 관련법과 정책에서 경찰에게 적극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안산 암매장 살인사건’에 관련된 경찰 책임자를 공동고발한 지 석 달이 넘게 지났으나,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경찰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쇄신을 하고자 한다면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 정부는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강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관련 정책들을 수없이 발표하고 있지만, 가정폭력피해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법과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비단 경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정폭력을 ‘집안일’, ‘남의 가정사’로 인식하며 경미하게 취급하고, 피해를 알고도 침묵하거나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 가정폭력 범죄를 개인적 성행의 문제로 간주하여 처벌이 아닌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것 등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법과 제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집행자들의 의식과 의지의 부족, 그리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현재 신고를 받은 사법경찰관이 즉시 현장에서 가정폭력가해자를 체포하도록 하는 ‘체포우선주의’, 상담을 조건으로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심판을 유예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남인순의원 대표발의)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견인할 수 있도록 법 개정활동에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안산에서 발생한 두 번의 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살인사건. 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죽어간 그들이 ‘희생자’로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여성폭력에 저항한 인권과 정의의 ‘생존자’가 될 수 있도록, 작별한 이들이 남긴 이야기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지 철저히 반성하고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모두가 움직여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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