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를 받기 위해 가정폭력 가해자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난 1월 17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 전문 의용소방대 발대식에서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현장에 함께 있던 소방서장은 이를 ‘개인 일’로 치부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였고, 근처에 있던 소방대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 역시 가해자를 두둔하며 피해자가 확보한 모든 사진과 동영상을 지웠고, 심지어 피해자를 쌍방폭행 혐의로 조사하기까지 했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분리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공권력은 가정폭력을 여전히 사소한 일로 치부하며, 피해자가 왜 가해자를 찾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전혀 살펴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쌍방폭력’의 ‘가해자’로 몰아가기까지 하였다. 이 사건에서 보듯 공권력은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게 된 것은 양육비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피해자는 법원 명령에 따라 매월 6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받아야 했지만, 가해자는 지난 5년 동안 70만 원을 지급한 것이 전부였다.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는 ‘강제성’이 없기에 가정폭력 가해자를 대면해야 하는 위험에도 피해자는 ‘개인적’으로 가해자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자녀의 생존권과 직결된 양육비를 지급하는 것은 친부의 의무임에도 가정폭력 피해자가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의 ‘양육비 이행 모니터링 내역’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양육비 소송을 통해 양육비이행의무가 확정된 비양육자 31.7%만이 양육비를 지급했으며, 양육비 실 이행률은 30.4%(2018년 8월 기준)에 불과하다. 양육비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조치가 있지만, 가장 강한 제재조치인 감치명령의 경우 유효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여 채무자들은 재산 은닉, 위장전입, 잠적 등의 방법으로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고 있다.
이에 국가는 양육비 이행확보를 위해 양육비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 청구와 이행확보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두고 있지만, 이 역시 ‘강제성’이 담보되지 않아 그 집행력에 한계가 있다.
이 같은 현 제도의 문제는 결국 양육비에 대한 해결을 피해자의 몫으로 돌린다. 이러한 현실을 이용하여 가해자는 양육비 이행을 조건으로 피해자를 통제하기도 하며, 피해자는 양육비를 포기하거나, 양육비를 받기 위해 다시 가해자를 만나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위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 2월 3일, 가해자를 아동학대, 공동상해 등으로 고소하였다. 국가는 이 같은 사건이 왜 발생하였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정폭력 문제와 양육비 이행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가정폭력 문제 해결과 양육비 이행은 국가가 해결해야 할 책무이다. 국가는 아동의 생존권인 양육비 이행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 제도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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