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보도를 집계·분석한 ‘분노의 게이지’에 의하면,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남성에 의해 총 1,051명의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뻔 했다. 그 중 살해당한 여성은 657명이다. 이는 물론 최소치이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에 의한 피해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657명.
그리고 2016년 5월 17일, 또 한 명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이제 ‘여성’들이 그 “살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고통스러운 고백으로 시작된 이 목소리는 인터넷망에서 망으로, 거리에서 거리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 2016년 한국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혐오와 멸시에 뜻 깊은 발걸음을 새겨가는 중임에 틀림없다.
5월 17일 이후, 현재까지 진행 중인,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여성들의 목소리를 『베틀Ⅲ』 7호에서 함께 기록한다.
살인과 젠더 불평등: 그 죽음의 가장 깊은 본질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대답해야 할 물음
23세의 젊은 여성이 영문도 모른 채, 이유도 없이 생을 빼앗겼다. 누군가 남겨 놓은 추모 문구에 “죽어가면서 왜냐고 물었을 것 같다”고 적어놓은 그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누구에게나 삶은 예측할 수 없다.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믿고 바라지만 삶을 추스를 새도 없이 죽음은 한 순간에 찾아올 수 있고, 그런 죽음을 사고라고 한다.
사고라고 얘기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정신병자가 언젠가 휘둘렀을 그 칼부림에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에 그 자리에 우연히 있었던 여성이 사고를 당한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대답해 주어야 할까? ‘사고였대요’ ‘하필 그 자리에 운 나쁘게 있었던 거뿐이래요’ 이것으로 충분한가를 질문한다. 우리가 답변해야 할 차례다.
범인 스스로 밝힌 ‘여자들이 무시해서 죽였다’는 범행동기와, 다른 누가 아닌 여성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선별하여 살해한 바로 그 행동은 이것이 우연에 기인한 불가피한 사고가 아니라 의도되고 계획된 사건이며 여성혐오가 바로 이 사건의 발단일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그렇게도 애써 부인하고 싶어 하는 그 여성혐오, 여성혐오가 무엇이라 생각하기에 여성혐오라는 진단에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는 것일까?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에 기인한 살인사건이라는 여성들의 주장에 ‘남자들이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성혐오냐’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를 좋아한다, 나도 그러하다’는 답변이 이구동성으로 돌아왔다. 여성혐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여성혐오라는 진단을 혐오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를 수밖에 없다. 대체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여성혐오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를 띤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남성들’의 생각처럼 여성혐오란 여성을 싫어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역겨워하는 것이다. 남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여성을 좋아한다는 고백은 사실일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성과 데이트하고 싶어 하고, 삶을 나누고 싶어 하고, 실제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렇게 여성을 좋아하고 있는데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는 입장은 이러한 자신들의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여성혐오란 보다 넓은 범주의 개념이다.
인터넷을 열면 불과 몇 초 만에 성인사이트에 접속이 된다. 야설과 야동이란 이름으로 온갖 강간과 근친 간의 성관계가 묘사되고 재현된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양의 음란물이 있지만 중심 모티브는 단 한가지로 집약된다 – 여자는 강간을 좋아한다, 싫다고 소리 지르지만 사실은 즐긴다. 원하고 있었다. 성매매는 유흥의 사소한 일부분일 뿐이고 강간방지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장치라는 얘기가 상식처럼 떠돈다. 스마트폰 액정을 실수로 깨뜨려 엄마한테 혼날까봐 가출을 했던, 그래서 잠잘 곳이 필요했던 7살 지능의 13살 지적장애 여자아이를 6명의 성인이 강간하였지만 성매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떡볶이를 얻어먹었고, 그것이 화대라는 이유였다. 아무도 없는 애인의 집에 찾아갔다 홀로 귀가한 애인의 딸인 20살 여대생을 10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 하였지만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고, 부당하다는 검찰의 항소를 법원이 기각한다. 술을 먹고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으며 초범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화장실에서 몰카를 찍었던 대학생은 사진이 흔들렸다는 이유로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역시 몰카범인 공무원, 그리고 결혼을 앞둔 남성은 각각 공무원이어서,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선고유예 처분을 받는다. 137차례나 몰카를 촬영 한 남성 의사는 의사신분이 참작되어 신상공개에서 제외되었다.
대체 위와 같은 일이 이번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따지고 묻고 싶을 것이다. 왜 관련도 없는 엉뚱한 얘기들을 끌고 와서 또 다시 남혐을 조장하고 있냐는 얘기도 들려올 것이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라는 얘기도 한다. 성차별이 있는 것은 알겠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항변도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는 말만큼이나 많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와 같이 말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만 집중해서 정신병자를 격리하거나 도시안전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이다. 서울시가 공용화장실 전수조사에 착수한 것처럼 말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사회가 가진 여성혐오에 관한 큰 오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여성혐오는 결코 여성을 역겨워하고 싫어하고 증오하는 어떤 특정 남성들에 의한 일시적이고도 순간적인 특정 태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여성혐오는 “그 길고도 부당한 여성차별의 어두운 역사”를 등 뒤에 드리우고 있다. 개인적 관계에서 아끼고 좋아하는 여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여성 집단을 무시하고 우습게 알며, 만만히 여기는 태도, 여성에겐 어쩔 수 없이 여성의 역할이 있다고 여기는 인식, 여성이란 집단은 남성보다는 덜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고는 여성혐오의 배경이자 여성혐오를 습득하는 과정이다. 우리 모두는 건강하고 독립적인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또 그래야 하지만 한 사회 내에서 나고 성장하는 이상, 그 사회의 가치를 습득하고 그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앞서의 예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철저히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안위를 걱정하고 보호하는데 몰두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누가 더 자격이 있는지, 누가 더 가치 있는지, 누가 더 누려야 하는지에 대한 견고한 믿음과 실천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에게 불평등한 자격과 권한에 관한 사고와 인식을 재생산해 왔음을 아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은 인간인가
여성혐오는 여성을 비인간화 하는 것이다. 여성을 사물로 대하는 것, 함부로 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침묵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앞서 여성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여성의 입장과 느낌을 삭제해 버리는 것, 이것이 여성혐오 문화이다. 가해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 가해자가 직장과 학교,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서 겪을 망신과 수치심을 염려해 주는 것, 가해자의 앞날이 망쳐질까 우려하며 불안과 장애를 제거해 주는 것, 이 과정에서 여성의 피해는 고려되지 않고, 여성이 느꼈을 수치심과 분노와 불안은 염려의 대상이 아니며, 여성의 미래와 앞날은 하등 중요한 관심 사안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은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에게 불공정한 이익을 안겨주었으며, 다수의 남성들은 이에 대해서는 침묵해왔다.
남성들의 주장이 옳다. 그들 말대로 모든 남성이 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일 수 있다. 실제 소수의 남성들만이 폭력을 사용하고 여성을 살해한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응징을 반대하고, 자신에게 닥칠 일이 아니기에 피해자를 유기하고 방관하며, 피해에 취약한 이들의 호소를 냉소하는 그 일들은 직접 폭력이 발생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폭력 가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공모라 칭할 수 있는 위중한 폭력의 형태이다.
지금의 우리와 같은 평범하고 소중한 삶을 당연히 누렸어야 할, 어딘가에서 어쩌면 우리와도 우연찮게 마주치게 되었을지 모를 23세의 그 삶이 송두리째 일순간 사라지게 된 데에는 문제의 정신병자와 공용화장실, 그리고 하필 그 곳에 가게 된 그녀만이 존재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세 주체가 진공상태 속에 섬처럼 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온 사회에 그 책임을 묻는다
한 명의 여성이 강간당하는 데에는 정신이상자인 미치광이 남성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남성권력과 지배를 미화하고 숭상하는 “강간문화(rape culture)”가 있기 때문이라는 여성주의의 통찰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어느 평범한 젊은 여성이 갑자기 모든 여성을 대표해서 ‘남자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삶을 놓치게 된 데에는 여자에 대한 자격과 권리가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친 사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울분과 격분을 여성에게 해소해도 되며 그랬을 때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는 이 사회에 문제가 있다.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으로 남성성을 증명하도록 가르친 이 사회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의 진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가해자의 말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들이 사건 이후에 오히려 적나라하게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목사의 꿈’을 날려버린 청년에 대한 허탈함, 화장실녀, 강남 노래방녀 라는 조롱 섞인 호명, 여성혐오라는 여성들의 명명을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여성들의 결집을 신경질적이고, 또 감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시선은 왜 이 사회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폭력의 종국적 목적은 통제이고 통제는 공포를 통해 쉽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사회는 그 목표를 향해 내달려 온 것처럼 보인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남성 개인의 질병, 격분, 분노, 심리적 장애, 공황이라는 불가항력으로 설명하는 동안 여성들은 활동의 영역을 축소해 왔고 자신을 검열했으며 선택의 폭을 좁혀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개인 여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계급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집단적 상해라는 주장, 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모든 여성은 폭력의 피해자라는 주장은 이에 근거한다.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여성혐오를 정의해 왔는지도 모른다. 여성에게 가장 부합하고 잘 어울리는 역할이 따로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여성은 여성답지 못한 여성이며 처벌과 비난의 대상이라는 인식, 여성으로부터 존경과 복종을 되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 남성이라면 적어도 여성보다는 더 많은 자격과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 바로 이런 것이 여성혐오를 뒷받침 해주는 사고 체계이다. 이렇다 할 때, 이 사회의 그 누가 여성혐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여성의 죽음에 여성들이 집결하였다. 여성들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감정적이어서가 아니다.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면, 여성들이 그에 저항하기 힘들어 진다. 자신만이 그 일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저항하기 보다는 포기하고 자신을 책망하고 불운을 탓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속한 그룹의 또 다른 구성원이 나와 비슷한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것이 차별인지, 개인의 불운인지, 아니면 내 실수 인지에 대한 모호성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내가 겪은 두려움과 불안, 피해 경험의 유사성, 그렇기에 저 이유 없는 죽음이 내게도 언제나 현실일 수 있다는 공포와 분노의 혼재를 통해 여성들은 폭력이 왜 차별의 문제인지를, 젠더권력이 왜 여성혐오의 배경인지를 충분히 인지하였다. 이제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무수한 죽음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의 명운을 지켜주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여성들과 협력하기 바란다.
여성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불평등이 감소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사라지지도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를 증언하고 폭로하며, 애통하게 삶이 꺾여버린, 그러나 나와 하등 다를 바 없었던 그 여성들을 위해 이제 여성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 여성들과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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