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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지역에 소동을 일으키다! <소동: 소란스런 동네모임> 정치편 후기

by kwhotline 2022. 5. 2.

 

 

 

대선도 답답했는데, 지선까지 다가온다고? 🤯

2022년의 가장 큰 이슈였던 대통령 선거를 지나며 많은 분들이 분노를 느끼셨을 텐데요. 한편으로는 더 소란스럽게 목소리 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는 꺼내기 어려운 정치 이야기를 회원들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소동: 소란스런 동네모임> 정치편을 기획했습니다. 이번 정치편은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은평구, 마포구에서 진행되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회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 

 


1회차, 은평구 모임

 

4월 19일 저녁, <소동: 소란스런 동네모임> 정치편 첫 모임이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렸습니다. 예전에는 회원들이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 자주 방문해 주셨는데요. 코로나-19 이후로 회원들의 발길이 끊겼던 한국여성의전화에 다시 회원들이 찾아주시니, 사무실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 함께 비건 식사를 하며 서로 인사도 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간식과 함께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논의들이 있었는지, 한국여성의전화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공유하고 대통령선거에 대한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회원분들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있기에,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다'는 말이 납득되지 않는다', '혐오와 차별의 공약으로 당선되었다는 게 답답하다' 등 대통령선거가 진행되면서 답답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한편으로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단순히 절망에서 그치지 않고,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의 지방선거를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등 의미를 찾기도 했습니다.


2부에서는 지방선거에 대한 개요와 서울시 및 은평구의 성평등 정책 현황, 예비후보 현황을 알아보았습니다. 은평구의 성평등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 서비스 제공'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실질적 성평등 정책이 부재하고, '안전' 위주의 정책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한 회원분은 서울시 정책으로 진행되는 '여성안심키트' 등을 이용해 봤을 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역에 필요한 성평등 정책에 대해서는 여성 일자리, 여성 복지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특히 2030 여성들에 대한 일자리 정책이 미비한 점을 개선하고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일자리 제공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같이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3부에서는 앞으로 진행될 여성주의 정치교육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회원분들은 교육이 진행되는 취지에 공감하며 개인이 할 수 있는 정치 활동에 대한 교육,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었어요. 또한 여성 정치인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고, 교육 이후에도 정치인을 만나서 성평등한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모임의 조직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역 모임이라 어색한 분위기로 모임을 시작했지만, 이내 편안한 분위기로 서로 공감하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요. 두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던 모임이었습니다. 은평구 모임에 참여한 '고둥'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남겨주었어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소동' 초대를 받았을 때 길게 고민하지 않고 선뜻 참석하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뒤늦은 걱정이 들더군요. 그 어느 때보다도 고통스러운 대선이 끝나고, 여성으로서 또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여성들과 갈등하고, 실망하고 마음이 상하는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습니다. 적어도 공공연하게 혐오를 내세우는 자들에게는 분노와 좌절을 느낄지언정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그들의 혐오가 단호한 만큼 저의 방향 또한 명료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만나게 될 여성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당사자로서의 차별, 어려움을 겪고 또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갈등을 겪어왔을 것입니다. 제가 원한 건 분명 이러한 공통점과 유사성이었죠.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그 이상의 '다름과 차이'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지선을 앞두고 새삼 정치가 참 복잡한 것임을 절감하던 참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반대하다가도, 대안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여당에 반대한다고 같은 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죠. 민주주의의 논의와 경청은 결국 갈등 뒤의 미명으로 남았습니다. 민주당, 정의당, 이재명 후보, 심상정 후보... 결국 지인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실망과 상처가 뒤따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본래 알던 지인들과도 이럴진대, 그저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여성'이란 분류만으로 화기애애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만 나누고 오겠다는 건 사실 욕심에 불과했습니다. 모임이 다가올수록 걱정은 점점 두려움으로까지 변해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소동에 다녀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모임의 말미에서도 이야기했듯, 여성들의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우리 모두의 것이었고, 서로 간의 필연적인 차이는 미처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여성의 경험으로 깊은 인상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눠준 참가자분들과, 이를 이끌어주신 활동가분들 덕분에 가능했던 거겠지요.
물론 더 많이 이야기했다면, 더 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처음 우려했던 것과 같이 뚜렷한 정치적 견해 차이가 두드러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눈 그 짧은 시간 동안 느꼈던 유대감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그 유대감이 제가 겪지 못한 일들과 미처 하지 못한 생각들, 낯선 아픔들은 서로 반목할 이유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여성의 아픔과 삶의 궤적임을 마음에 새기고 서로를 받아들이려, 듣고 경청하려 노력할 충분한 기반이 되어주리라고 믿습니다.
모임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하고 좌절감이 들지만, 그래도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희망을 느꼈습니다. 함께 견디고 살아가는 여성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분들께 경의와 감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 고둥 -

 


2회차, 마포구 모임

4월 20일에는 마포구에서 소동 모임이 열렸습니다. 합정역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마포구 모임에서도 은평구 모임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지난 대통령선거를 되돌아보며 '여성가족부가 폐지됐을 때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성평등의 관점 없이 진행되는 것이 우려된다', '현재 몸담고 있는 아동 관련 복지 분야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존재해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어왔으나,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는 매우 문제적이다'. '혐오를 내세운 선거는 매우 문제다.', '앞으로 성평등 관점의 교육과 인력 조직도 필요하다' 등 다양한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2부에서는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서울시 및 마포구의 성평등 정책 현황, 예비후보 현황을 알아보았습니다. 지역 내 여성 정책 실현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지금처럼 안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여성정책은 실효성이 없고, 여성폭력을 치안의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정책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에 모두가 공감하였습니다. 특히 마포구 내 여성 정책 집행률이 50%도 채 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건축물 설립 등 현재 진행하는 사업보다 더 생산적으로 예산을 집행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나누었어요.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시설을 더 확충하고 알릴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며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가 기획하고 있는 여성주의 정치 교육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와 페미니즘 정치의 결합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교육, 가정폭력, 노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육, 공정이 평등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교육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씀 주었습니다. 특히 외국 사례를 통해 각 나라의 방향성을 알아보고 새로운 접근법을 발견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기대 말씀을 주었어요.

다른 회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본인의 생각을 나누며 미래를 고민해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역 모임이라는 점이 서로를 더 가깝게 여기게 하기도 했는데요. 마포구 모임에 참여하신 짠포도 님은 아래와 같이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선진국 여성의 소동] 

 

유난히 바쁜 오후였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도중에 걸려온 모르는 전화, ‘아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네네 거리다 보니 결론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겠단 의사를 전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참석 의사를 마냥 수동적으로 결정했는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이미 몇 차례 온 문자로 대강 주제나 모임의 취지를 알고 있었고 참석할 용기가 안 나던 차에 끈질기게 온 전화에 은근히 묻어서 참석하게 되었다는 게 더 정확하달까. 뭐 여하튼 가는 도중에도 이거 괜히 이런 모임 참석했다가 나중에 테러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근본 없는 불안을 떠올리면서도,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핫하디 핫한 합정동(물론 우리가 만난 곳은 재개발 지역이었지만)을 걸어가며 인생 최초로 시민단체 모임에 참석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 7시 반, 그렇게 도착한 어느 카페에는 평일 퇴근을 마친 갖가지 입장과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같은 주제에 공감하며 모인 사람들이기에 어색함은 대화를 하며 곧 사라졌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누군가 말할 때마다 고개를 연신 흔들어댔다. 선거일에 밤을 새운 기억, 당선 소식에 분노와 환멸을 느꼈던 감정들, 그 뒤에 오던 허무함과 앞으로의 막막한 현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억지로 소화시켜야 했던 날들. 우리는 닮아 있었다.

당선 이후에도 계속된 혐오와 지방선거를 위해 많은 결정을 선거 이후로 미뤄놓은 윤석열 당선인과 그 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무엇이 그를 대통령 직에 올려놓았는지 부동산, 인구비례, 정치인의 특성 등 많은 관점들이 쏟아졌다. 또 갈라치기 정치가 조금이라도 먹혔다는 것에 다시금 분노했고 차별 속 현장에 가까이 있는 분들의 생생한 사례 담을 들으며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현상과 더불어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동네 모임이었으므로 앞으로 있을 선거에 대해서 특히 우리 구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동안 마포구는 여성정책을 2개 정도 냈는데 하나는 따놓은 예산을 다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성과를 보였고, 나머지 하나는 회의만 하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올 6월에 기한을 끝맺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성정책 대부분이 무시무시한 괴한들로부터 여성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나(CCTV 설치, 안심 홈 3종 세트, 여성안심귀갓길 지정 등) 출산 지원 같은 종류라는 것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당선인과 함께할 앞으로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나는 마지막에 마포구에 어떤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란 물음에서 조금 헤맸다. ‘정치인들은 다 구라쟁이야 쯧쯧’ 하는 비소를 날리기 전에 ‘너는 그래서 뭘 원하는데?’란 물음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동안 '이런 게 불편하고 잘못된 거같아'라는 생각에 그쳤다면 이번 모임을 통해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찾지 않으면 그런 소리들은 그저 아우성밖에 되지 않는구나, 의미 없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센터 건립이나 실생활에 와닿지 않는 정책들이 이렇게 생겨나는 건가 싶었다.

두 시간 반의 짧은 모임이 큰 변화를 주진 않았지만 조금의 균열을 낸 것은 확실하다. 앞으로 남은 지방선거에선 눈을 더 크게 뜨고 여성정책을 찾아볼 거고 누가 됐든 당선 이후에 어떻게 우리 구를 바꾸고 있는지 진척률을 확인할 거다. 무엇보다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분노하고 반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이렇게 뭐라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시뻘건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데에 힘을 보탤 것이다.

 한 번의 모임만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퇴근 후 시민 모임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어 나가려는 진취적이고도 멋진 '선진국 여성의 뽕'에 취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봄바람, 합정동, 멋진 카페,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 맛있는 음식. 그러나 그런 기분은 꽤나 중요하다. 결국 남는 것은 이미지고 사람은 그런 것들에 기댈 때가 있으니까. 분노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뭐라도 했단 기분에 사로잡혀 이제 나는 조금 더 당당하게 욕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근본 없는 불안감을 떨쳐 내고 한 발짝 스텝을 옮겼다. 지난 수요일은 그런 모임이었다.


- 짠포도 -

 


소란스런 동네모임, 소동! 모임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에 소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위 후기 이외에도 여러 참여자 분들께서 '첫 오프라임 모임이라서 큰 기대를 하고 나갔는데, 기대에 걸맞게 관심있는 주제를 준비해주셔서 모임에 오신 분들과 토론할수있어서 좋았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같은 지역구에 페미니스트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일상적으로 회원분들과 만나 놀고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 등의 소감을 남겨주었습니다. '소동' 모임은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주제로 열릴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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