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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코로나19 대책에서 배제된 여성들

by kwhotline 2020. 8. 25.











코로나19 대책에서 배제된 여성들

 

8월 중순 이후 코로나19의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다.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고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각계의 주장이 제기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3단계 거리두기 격상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주말 동안 안전한집에 머물러달라며 국민 개개인의 방역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기도 했다.

 

안전한 집? 가정폭력피해자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집

 

그러나 집은 정말로 안전한가? 한국여성의전화는 집에 머무르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집 중심의 생활을 강조하는 코로나19 대책의 근본적 한계를 꾸준히 지적해왔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경우 집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면 가해자와의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피해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또한 피해가 있을 때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신고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집을 벗어나 여성폭력 상담소의 지원을 필요로 하거나 쉼터에 입소해야 하는 피해자들도 제대로 된 재난 대책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상반기 2단계 거리두기 때와 마찬가지로 지난 818일 여성폭력피해자 이용시설인 상담소에서는 전화상담만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쉼터는 운영하도록 했으나 기존 입소자 위주로 운영하고, 접촉자가 입소자인 경우 별도의 격리 공간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사안에 따라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끔 상담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기기를 지원하거나 쉼터 입소자들도 감염병의 위험으로부터 최대한 안전하게 일상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쉼터는 다인이 함께 생활하는 시설로 접촉자 혹은 확진자가 있을 시 감염에 가장 취약한 공간이지만, 피해 여성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고 있지 않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오랜 기간 주장해왔던 쉼터의 11실 보장은 지금과 같은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절실한 조치이지만 실현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해외에서는 이미 UN WOMEN을 비롯해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권고안과 대응책들을 내놓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 모르게 약국에서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암호를 지정하거나 격리 기간 동안 피해 여성들에게 호텔을 제공해 감염병과 폭력 모두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재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긴급재난지원금의 한계

 

2차 재난지원금의 논의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당시 정부는 가구인 수로 지급 대상 가구를 구분해 세대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또한 쉼터에 거주하고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수급과 비수급으로 구분하고 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에게만 저소득층 한시 생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는 범죄 피해자로서 동일한 지위를 가진 쉼터 입소자들을 선별적으로 지원해온 고질적인 정책 기조의 결과였다. 세대주 중심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할 때도 세대주가 아닌 가정폭력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했지만 증빙 서류 제출과 지급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신변 노출의 위험이 있었고, 실제로 신변이 노출된 피해자도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배제하고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은 재난지원금 지급 정책에 문제 제기해왔다. 한국의 세대주가 거의 남성(80%)이고 가정폭력 가해자의 72.3%가 남성 배우자 혹은 친부이며 경제적 폭력이 33%에 달하는 상황에서 세대주를 중심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경제권과 사회권을 앗아가고, 정상가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정책이었다. 또한 쉼터 입소자들을 일괄적으로 수급과 비수급으로 구분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선별적 지급으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의 신청 과정도 쉼터에 입소하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조치였다.

 

성인지적 재난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사람들의 생활 양태를 바꾸고 있다. 전 세계적 재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현재 상황에서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집이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긴급 신고가 가능한 방법과 별도의 거주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접촉자 혹은 확진자가 있을 시 적절한 대처가 이루어지도록 쉼터 11실 마련 등 생활 조건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조치 또한 필요하다.

정부는 현재 재정건전성 등을 이유로 2차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급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책정할 기준에서 배제되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국민들을 고려한다면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대부분이 남성인 가장에게만 지급되는 세대주 중심의 지급 정책을 폐기하고 전 국민에게 개인별 지급해야 하며, 여성폭력피해자들 또한 신변 노출 위험 등 없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들을 겸허히 받아들여 여성폭력 피해자를 포함해 전 국민의 안전과 안녕이 보장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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