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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by kwhotline 2017. 10. 30.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수수 (초등성평등연구회)



 나의 아동 시절, 나는 남자이고 싶었다. 어릴 때 사진 속 박박 깎은 머리, 장난기 가득한 얼굴, 탐험 놀이라며 해안가 돌밭과 들판을 마구 헤집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내아이였다. 맏이인 데다 꽤 똑똑했던 나에게 기대가 컸던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넌 아들이나 다름없어. 넌 우리 집 맏아들이나 마찬가지다.’ 아들처럼 키워진 딸. 하지만 나는 아들이 될 수 없었고, 어렸던 난 남자가 되길 원했다. 성 정체성의 문제는 아니다. 아동기부터 꽤 오랜 기간 고민해온 나의 성 정체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니까. 그런데도 여자인 내가 남자가 되고 싶어라 했던 이유는? 답은 간단했다. 그때 각종 매체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고, 아버지를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서 듣던 칭찬은 모두 남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령기의 아이들을 둔 집에는 으레 위인전집이 있었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학년 때의 나는 국내외 위인전집에 푹 빠져있었고, 읽었던 위인전에 대해 3일에 한 번꼴로 독후감을 썼었다. 위기 속에서 용기를 발휘하고, 공동체를 지키고, 멋진 이론이나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위인은 대부분 남자였다. 나는 책 속 인물들처럼 멋진 위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자가 되어야 했고, 여자인 나는 남자가 될 수 없었으니 남자처럼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일러문> 등 여아용 애니메이션에도 심취해있었지만, <썬가드> 등 남아용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을 사랑했다.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보다 괴롭히는 쪽이었다. 남자아이들이 ‘아휴, 네가 남자냐?’며 나에게 기가 죽었을 때, 어른들이 ‘여자아이 같지 않게 씩씩하네.’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창피하면서도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이건 뭔가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굳이 남자가 되지 않더라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성 선망이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남자가 되기를 그만둔 나에게 ‘여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말하는 ‘여자’는 젊고 아름다워야만 한다. 일요일 아침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나게 했던 <디즈니 만화 동산>의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가냘픈 몸매에 희고 깨끗한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 그렇지 않은 캐릭터들은 악역이거나 희화화된 캐릭터다. 또 당시 방영되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인 일본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은 각종 성적 대상화와 괴롭힘, 성희롱을 당하고도 가해자를 향해 화내거나 때려주기는커녕 하하 웃고 마는 인물이었다. 뉴스 진행자,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 드라마 속 주인공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TV 속  사람들은 성별이 여자라면 모두 젊고 아름다웠다.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개그-를 빙자한 비웃음-의 소재가 되거나, 바가지 긁는 아내, 고약한 시어머니 등 악랄하게 그려지거나,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는 보조적인 역할, 보호받는 역할이 고작이었다.


 나는 늘 젊고 아름다울 자신이 없었다. 왕자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내가 왕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름답지 않고, 순종적이지 않은 여자는 죄다 악당이거나 웃음거리라니! 이런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여자라는 카테고리 안에 나를 넣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데 여자도 될 수가 없었다. 잠깐, 나는 여자인데 왜 여자이길 싫어해야 했던 걸까? 나는 이미 여자이고 여자이기에 앞서 사람인데, ‘사람’이 되면 됐지 ‘여자’가 되어야 하는 건 왜 그런 거지?? 여전히 교실에는 이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자아이들이 있다. 아직도 사회가 말하는 ‘여자’는 젊고 아름다워야만 한다. 여성 롤모델은 부족하거나, 왜곡된 여성관을 전달하며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아이들은 멋진 사람(=남자)이지 못해 고통 받고, 밥맛 캐릭터들과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자신의 성별을 인정하더라도 예쁘고 아름답지 못한 신체를 부위별로 검열하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불필요한 고통에 빠지고,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프다. 교사인 내가 경험했던 과정이기에 더 마음 아프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마음껏 꿈꾸고 원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르면 꿈꿀 수 없고, 모르면 바랄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알고, 꿈꾸고, 바란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멋진 것’을 원하게 되어있다. 그동안 이 ‘멋진 것’이, ‘멋진 경험’이 얼마나 한 쪽 성에 쏠려있었나. ‘멋짐’을 한쪽 성이 독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스타워즈 7>의 주인공 레이. 비행기 조종도, 포스의 사용도, 적군과의 싸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그를 보며 나는 감동했다. 너무나도 멋있었으니까. <고스트버스터즈>를 보면서는 여자여도, 완벽한 모습이 아니어도 영웅이 되어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히든 피겨스>에서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을 생각했다. 남자들은 늘 이런 감동과 쾌감을 느꼈단 말이지. 물론 남성 영웅 캐릭터, 위인들에게서도 감동을 했었지만 같은 성별에게서 느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어른인 나도 이만한 영향을 받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느낄까.


 성별과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멋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멋질 수 있다고 꿈꾸게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디즈니 만화 동산>의 디즈니는 이제 엘사, 모아나 등 새로운 공주를 보여주고 있다. 젊고 아름답지 않은, 착하고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도 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지위를 얻는 여성 인물들이 많아졌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내가 어렸을 때 보다는 성별과 관계없이 감동받을 수 있는 롤모델과 이야기가 늘어났다.


 초등성평등연구회를 통해 이런 롤모델들을 어떻게 수업에 녹여낼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성별에 상관없고 왜곡되지 않은 롤모델 찾기에 흥미를 느끼도록 할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을 가린 직업 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성별일지 맞춰보도록 하고, 자신이 자주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성비와 인물별 역할을 분석해보게 했다. 잊혀진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찾고,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탐구했다. 아주 느린 변화지만 자신들이 경험하는 세계의 불평등함을 깨닫고 이를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나와 우리가 겪은 고민과 고통이 옛일이 될 때까지 앞으로 더 많은 롤모델들을 찾아 제시하고, 아이들이 경험할 멋짐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이리라.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개개인이 가진 멋짐을 사랑하게 하는 교사,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도록 하는 길라잡이, 또 하나의 롤모델로 나 역시 멋진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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