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채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헌법재판소가 66년 만에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여성의 임신 중단권을 외쳐 온 시민단체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11일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안국역 5번 출구 노인복지회관 부근 거리에서 이를 환영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약 오천여 명의 시민들은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팻말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거나 “낙태죄는 폐지됐고, 우리는 승리했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등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위험이나 낙인, 처벌까지 감당해야 했던 조건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현실을 드러내고 싸워 온 수많은 여성과,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라고 함께 외쳐 온 모든 이들이 이루어낸 역사 속 승리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의 임신 중단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연대를 당부했습니다.
이어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에서는 여성의 임신 중단권리와 관련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낙태죄를 주제로 더 이상 찬반 토론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집회참가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집회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을 들으며 여성의 임신 중단권에 대한 논의 마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가부장제 시선에서 짜인 프레임 속에서 교육받고 토론해야 했던 우리의 지난날들을 더 이상 미래 세대들에게 물려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깊은 벅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성의 임신 중단권은 인간으로서 개인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비록 아직 낙태 경험이 없고, 앞으로 낙태를 할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되었을 때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내가 아닌 국가에 있다는 것, 출산하지 않더라도 잠재적으로 국가의 출산 도구로 인식된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해 헌법재판소가 내놓을 결정 중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슈, ‘낙태죄’ 조항이 헌법불합치로 결정되면서 우리는 이제서야 완전한 임신중단권을 쟁취해내기 위한 첫걸음을 디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함에 매번 정치적·철학적 사유를 불어넣어야 하는 여성들의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14일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당연한 ‘삶업혁명’이 가까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자그만 희망을 가져봅니다. 오늘도 인간이라고 몸부림치는 우리가 바로 그 소중한 생명이라고 외치는 여성들의 거대한 함성이 이번에는 꼭 사회에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은 새로운 기술혁신의 시대를 맞이하였고, 사회·경제 전반에서 개인의 삶도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삶업혁명’은 새로운 변화의 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빌려온 말입니다. 여성인권 발전의 첫 출발선이 낙태죄 불합치결정으로 시작되길염원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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