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과 제모 ② ]
제모의 뿌리를 찾아서
이현경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제모가 마치 선택인양 비추어진다. 그러나 우리에게 제모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온갖 불편함과 비용지출을 감당하며 털을 밀어 피부를 매끈매끈하게 가꿔야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이렇게 제모를 ‘해야만 하게’ 되었을까? 다른 시대의 다른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 털을 대해야 했을까? 역사를 짚어보며 그 뿌리와 원인을 알아보자.
제모, 그 오래된 역사 : 가부장제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까지, 제모는 인류와 함께했다. 제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 문화는 털이 있는 것을 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겨서, 이방인과 노예를 제외한 모든 남녀는 온몸을 말끔히 제모 해야 했다. 가장 오래된 제모는 종교적 이유로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이 이후의 제모는 유행의 일종으로 취급되었다. 로마 시대의 상류층 여성들은 콧구멍 속 털도 제거해야 했고 때론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과 얼굴의 잔털을 족집게로 뽑아야 했다. 그들은 조개껍데기 같은 비교적 안전한 제모 도구부터 등잔불, 석황 등 신체에 위험한 도구까지 위험을 감수하며 사용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선 시대별 유행의 변화에 따라 여성에게 제모가 요구되는 부위는 항상 달라졌다. 반면 유교권 국가에서는 제모를 금기시하여 털이 많은 여자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모를 해야 하건 털을 길러야 하건, 이러한 선택이 여성의 자유의지와는 상관 없이 시대와 유행의 요구에 따라 좌우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행이라고 서술하였지만, 그 유행은 사실 남성 선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여성들에겐 남성 선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남성에게 선택되고 결혼하는 것에 생존이 걸려 있을 정도로 간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시킨다면 제모의 양상을 단순히 유행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가부장제에서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서 존재하던 여성들이 선택해야 했던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털이 자본주의를 만났을 때
이처럼 현대 이전의 제모가 가부장제의 남성 선호에 봉사했다면 현대의 제모는 상업화에 의해 가속화되 었다. ‘아름다움의 발명’의 저자 테레사 리오단에 따르면, 19세기 말부터 세계 1차 대전 이전까지 여성의 체모는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며 피부를 더 많이 드러내는 여성복의 유행하기 시작했고 제모한 여성 영화배우들이 대중문화 전반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감지한 질레트는 ‘마이레이디’라는 여성전용 면도기를 발명했다. 여성전용 면도기라고 해보았자 이전의 면도기보다 조금 폭이 좁은 형태였지만 조금 더 비싼 값이 매겨졌다. 질레트는 이 면도기 광고에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카피를 삽입한다. 이에 질세라 12개가 넘는 미용 기업들은 ‘여성의 털’ 사업에 뛰어든다. 이렇게 미용 산업은 ‘여성의 털은 부끄럽고 흉측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 의 저자 에머오툴은 그녀의 책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성을 어떻게 구매하게 했는지 설명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 여성성은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것이라고, 남성과의 차이를 과장하는 방향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성별화 될 수 없다고, 여성성이라는 임의적 개념에 맞춰 스스로를 부호화하지 않으면 여성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택의 주체는 우리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체모를 기르기 시작한 뒤에야 내게는 조금도 선택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내 털의 소유권을 찾는 그 날
털의 깊은 역사를 따라가며 나는 내 털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벗어난 날을 상상을 해봤다. 오랜만에 반팔을 입고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때, 겨울 동안 자라난 내 털에 당황하지 않아도 되고 그 하루를 망칠까 봐 급하게 원치 않는 긴 팔을 살 필요도 없다. 여학생들이 체육시간에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날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내 털은 절대 내 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해 끊임없이 고민에 빠질 것이다. “다리털은 괜찮을까? 팔털은? 겨드랑이 털은? 눈썹은?”
사진 출처:
1. http://www.todayifoundout.com/index.php/2013/04/the-history-of-shaving
2. https://www.bustle.com/articles/196747-the-sneaky-manipulative-history-of-why-women-started-sh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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