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며 범죄를 모의하는 남성들의 단톡방 내 성폭력 사건. 이번엔 경찰이다. 5월 11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직 남성 경찰관들이 메신저 단체대화방 등을 통해 동료 여경들을 성적 대상화하며 강간을 선동하는 대화를 주고받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단체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눈 경찰관 A씨는 이후 실제로 동료 여성 경찰관과 술을 마시고 피해자가 만취하자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여성을 동료가 아니라 ‘성적대상’으로 취급하고 모욕하는 그들의 대화는 충격적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전혀 새롭지 않은 광경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점은 성적 모욕 및 비하, 성범죄 모의, 성폭력 실행의 주체가 경찰, 그중에서도 성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여성청소년과와 경찰 비위를 감찰하는 청문감사관실에 소속된 경찰이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현실에서 경찰은 ‘음담패설’, ‘농담’이라는 변명으로 정당화되는 폭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으며, 이것은 실제 범죄로 이어졌다.
그간 대학, 연예인, 기자, 의사 등 사회의 다양한 집단에서 단톡방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고, 경찰은 성범죄와 성폭력을 조장하는 문화 확산 방지를 위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관련자를 엄벌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강간을 저지른 가해자를 조사하는 중에 문제의 단체 대화방 내용을 인지했으면서도, 경찰은 강간 범죄자 1명을 구속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가 2차 가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며 경찰청에 진정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단톡방 내 성폭력이 수면으로 떠올랐을 때마다 사건은 특정 대화방이 폐쇄되고 가해자들은 공동체 내에서 미미한 징계를 받는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단톡방 내 성폭력이 ‘개인의 일탈’로 간주되는 분위기와 현행법상 성범죄로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는 법적 대응 자체가 어려웠고, 고소한다 해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벌금형 정도의 가벼운 처분을 받을 뿐이었다. 이번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은 사건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성희롱은 (단체 대화방에서) 언급됐던 여성 경찰관들이 성희롱 피해라고 주장해야 성희롱으로 진행할 수 있다’라며 해당 단톡방 내 성폭력을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건 해결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2018년 부산의 한 경찰서는 단톡방 내 성폭력이 형사처벌 될 수 있으며 엄연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범죄 현장, 공범이 되시겠습니까?’라는 문구의 홍보물을 인근 대학에 설치하였다. 같은 질문에 경찰은 당당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경찰은 공범인가. 여성을 놀잇감으로 여기고 거리낌 없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찰관, 이에 대해 무책임하고 안일한 경찰 조직의 대응을 목격하며, 여성들은 무엇을 믿고 경찰에게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고 정의로운 수사를 요청할 수 있겠는가.
2017년, SNS를 달군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해시태그를 통해 경찰에 폭력 피해를 신고했다가 2차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후진 인식과 무책임,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는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 대응 강화, 인식과 태도의 전면 쇄신 요구로 이어졌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국민의 경찰’이라는 조직의 위상에 걸맞게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 성평등 사회를 위해 맡은바 본분을 다하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을 요구한다.
1.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라.
2. 성폭력 및 성희롱 사건에 대한 내부 징계기준 마련하고, 성폭력 및 성희롱 문제와 관련된 자는 즉각 업무에서 배제하라.
3. 성차별과 강간 문화를 조장하는 성폭력 사건 제대로 수사하라.
4. 경찰의 성평등 인식 개선을 위해 경찰대 및 현직 경찰관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필수·의무교육으로 실시하라
5. 경찰 조직 내 성차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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