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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찢었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by kwhotline 2020. 8. 4.


731,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광판 광고가 걸렸다. 이 광고는 517,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을 맞이하여 기획된 것으로, 시민들의 후원 및 참여를 통해 완성된 광고였다. 광고 이미지에는 위 문구와 함께 성소수자 및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517명의 사진이 담겼다.

 

그러나 기존에 831일까지로 예정되어있던 해당 광고는 고작 게시일로부터 2일이 지난 82일 오전, 누군가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사실 해당 광고는 준비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었다. ‘대중사회에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성소수자의 존엄을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는 취지로 기획된 해당 광고는 기존에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 있는 5월 한 달간 게시될 일정으로 추진 된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에서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게시 불가 판정을 내렸고, 이에 대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은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하였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서울교통공사 측은 거부 이유, 심의위원은 알려줄 수 없으며 심지어는 재심의 후 게시하더라도 민원이 발생하면 즉시 철거되며 환불도 되지 않는다는 통보까지 해왔다고 무지개행동 측은 지난달 6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이에 대해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차별과 혐오에 있어 중립을 지키는 것은 결코 중립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라며 서울교통공사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했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항의를 통해 마침내 기존 광고 예정 기간에서 두 달이 지난 731일에야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이토록 힘겨운 과정을 거쳐 겨우 게재된 광고는 고작 이틀 뒤 갈기갈기 찢겼으며, 이는 곧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광고가 훼손된 후 무지개행동과 일부 시민들이 빈 광고판에 응원 문구가 적힌 메모지를 부착하여 만들어낸 '성소수자'라는 글자마저 다시 한번 훼손되는 사건을 통해 이러한 현실은 더더욱 선명해졌다.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측에서도 밝혔듯 이는 명백한 성소수자 증오에 기인한 폭력이자 범죄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광고판의 모습이 수많은 소수자에게 나의 존재를 드러냈을 경우 언제라도 위해를 당할 수 있다라는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현재 해당 지하철 광고를 훼손한 20대 남성 A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며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찢었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의 행동은 단순한 재물손괴를 넘어 성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표출한 것이며, 차별이 폭력적 행위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차별을 묵과하는 것은 곧 폭력을 재생산해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광고는 재게시되었으며, 공동행동 측은 재게시된 광고가 31일까지 온전히 게시될 수 있도록 점검하는 시민감시단이 되어 달라며 시민들에게 광고 게시 상황을 확인하고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 글을 올리거나, 만일 광고 훼손을 발견하게 되면 바로 연락을 달라는 글을 올린 상태이다. 국가가 법으로 보호해야 할 시민들의 인권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감시하며 지켜나가야 하는 이 상황이 바로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하루빨리 제정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비록 혐오자들에 의해 광고판은 찢겼지만, 그들은 결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한 발짝 나아갈 세상의 흐름까지 찢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연대할 것이다.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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