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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②] 이 유니폼, 언제부터였나요

by kwhotline 2017. 11. 9.


[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② ]

이 유니폼, 언제부터였나요


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슬림라인 블라우스', '매끈 어깨라인', '슬림라인 스커트'. 많은 교복 회사들이 여학생 교복을 광고할 때 쓰는 문구들이다. 딱 떨어지는 어깨라인과 슬림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교복을 입고 온종일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군복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활동성이 중요한 직업임에도 공식행사의 여군은 언제나 좁은 치마를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다. 왜 여성에게는 그 직업의 특성에 상관없이 격식을 차린 복장으로 치마와 하이힐이 주어질까? 우리는 활동성과 기능보다 미를 강조하는 유니폼이 여성에게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유니폼은 없는 것일까?



“브이텍이야!”

 

 95년생인 나는 2008년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뉴하트>를 인생 최초의 메디컬드라마로 기억한다. 전년도의 <하얀거탑>이 아니라 <뉴하트>인 까닭은 8할이 여성 수련의 ‘남혜석’(김민정) 캐릭터에 있었다. 여성 외과의사가 매회 다급하게 의학 전문용어들을 외치는 것은 그때까지 안방극장에서 생경한 풍경이었다. 극중 가장 긴장되는 상황은 단연 ‘브이텍’(심정지) 이었다. 누구든 저 대사를 외치면 레지던트 1년차 여의사 남혜석이 어디서든 젖 먹던 힘을 다해 병실로 뛰쳐왔다. 전기충격을 최고 강도로 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환자의 흉부를 메스로 개복해 침상에 올라탄 혜석이 손으로 직접 심장을 마사지하는 장면도 있었다.


 뜬금없지만 그가 그때 치마를 입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확히는 ‘치마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면’ 말이다. <뉴하트>가 불과 4반세기 전의 드라마였다면 혜석은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종합병원 여의사들에게 ‘바지 입음’이 허용된 것은 세브란스에서 92년 말에서야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여의사들에게는 품위 유지를 위해 의사가운 아래로 언제나 치마를 입어야 하는 엄격한 복장규정이 존재했다. 응급실에서 탈골 환자의 관절을 제자리에 맞추기 위한 지렛대 동작으로 다리를 치켜들어 뻗어야 함을 들어, 의대 여학생들이 바지의 필요성을 피력했던 것이었다. 종횡무진 병원을 누비는 ‘진짜’ 여의사가 2008년에야 브라운관에 짠하고 나타난 것이 미디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지 입은 여성의 근대사


 당시 바지에 대한 제한은 기실 여의사들의 고민만은 아니었다. 80~90년대 전문직 여성 전반이 겪고 있던 문제이며, 아직도 몇몇 직업 유니폼에 남아 있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의 품위 유지를 위해 바지를 금한다니? 요즘의 시선에서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멀지 않은 역사에서 여성 스스로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바지를 온 몸으로 거부한 적이 있었다. 물론 1940년대이긴 하지만 말이다. 


 1940년대는 우리나라 여성 의복사에서 충격적인 시기다. 중-일 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 방공 훈련이 일상화되자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과 겸하여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몸뻬 바지를 보급한 것이다. 구한말 개화기부터 발목을 보일 정도로 슬금슬금 짧아진 한복 치마가 1920년대에는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고 조선일보에서 비평을 쓴 일도 있었다(1927년 조선일보 만평). 그런데 바지라니! 당시 보급된 몸뻬는 물론 지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남성들의 서양식 정장 바지와도 확연히 다른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때까지 여성의 바지란 한복 치마 안에 입는 속곳으로만 존재했다. 여학교의 체육 시간에도 바지를 상상하지 못하던 때에 이러한 정책은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몸뻬는 조선에서 보급률이 영 시원치 못했다. 매일신보를 통해 적극적인 몸뻬 권장 분위기를 만들어도 이용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제는 결국 당시의 유행을 이끌던 여학생 집단에 눈을 돌리게 된다. 조선어 교육도, 한복 교복 착용도 억압받던 시기였지만 그때까지도 바지런한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조선어 수업을 파르라니 진행했던 이화, 숙명, 배화 등 경성 명문 사학들에까지 대대적인 교복 방침을 내린 것이다. 난데없는 몸뻬 교복령에 여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지만 40년대의 살벌한 조선 사회에서 대다수 여학교들은 곧 몸뻬 교복을 도입하게 되었다. 촉망받던 신여성 집단이 몸뻬에 운동화를 착용하자 사회적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숙명, 배화 등 소수 여학교에서는 끝까지 몸뻬 착용을 거부했다. 이들은 여학생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치마를 외쳤다. 일본색이 짙고 남성용 바지와 유별한 형태를 가진 몸뻬를 강제로 입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숙명은 남성 정장과 흡사한 서양식 바지 교복을 지정했고 배화는 서양식 세일러복 블라우스에 주름치마 교복을 도입해 해방 때까지 바지 착용을 거부하였다. 전통적인 치마 복장이 유교 문화의 가부장제로 고착된 산물이라 할지라도, 이는 엄연히 착장의 자유라는 존엄한 권리를 지켜낸 결과일 것이다. 여자의 바지 입음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통념에 반일 감정까지 가세했으니, 90년대 세브란스 여의사들에게까지 그 잔존이 이어진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


치마든 바지든, 여성의 품위는 여성이 지킨다


 어쨌거나 지금은 2017년이다. TV를 켜면 늠름한 ‘여성 태양의 후예’가 나오고(태양의 후예), 청색 바지 수술복을 입은 여성 의사도 나온다(낭만닥터 김사부). 달라붙는 블라우스에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여성도,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도 직업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치마든 바지든 여성의 유니폼 형태를 강제하는 문화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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