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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청구 기각에 대한 입장문

by kwhotline 2021. 2. 18.

 

■ 재심 청구 취지

- 1964년 5월 6일, 피해자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가해자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에 상해를 입히게 되었음. 
- 당시 검찰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혔기 때문에 ‘피의자’로 보고 피해자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첫날부터 아무런 고지 없이 피해자를 구속하여 수사. 
- 피해자는 억울하게 구치소에 수감된 채 6개월 여간 수사 및 재판을 받게 됨.
- 정당방위에서 상당한 이유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잘못하여 유죄가 선고되었고, 중상해죄로 부산지방법원에서 1965. 1. 12. 징역 10월 및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음.
- 2020. 5. 6. 청구인은 56년 전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부당했던 수사 과정과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기 위해 재심을 청구함.


■ 재심 기각 결정문 요지

-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 재심대상판결이 일생 말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였다고 판시하였으나, 이는 언어기능을 전부 상실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의미로 기재한 것으로 보임. 

- 청구인은 사선 변호인을 선임하여 변호인의 조력 하에 재판을 받았던바, 공판 과정에서도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를 주장하였을 뿐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협박, 자백강요 등을 주장한 바도 없었고, 재심대상판결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에 대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다툰 바도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청구인 측이 주장하는 검사의 불법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보면, 공소에 관여한 검사가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 

- 재심대상판결의 공판절차에서 이루어진 검증의 방법, 감정의 내용, 법관의 언행 등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아 상당히 부적절하고 청구인의 인격을 침해할 우려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움. 

- 그러나 재심대상 사건 공판절차의 경과, 그리고 성차별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자연스레 여겨졌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며, 성범죄의 보호법익을 ‘여성의 정조’나 ‘성적 순결’에 두는 사회문화적 관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1960년대에 공판절차가 진행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재심대상판결을 담당한 법관의 소송 진행 내용은 그 당시의 사회적·문화적·법률적 환경에서 범죄의 성부와 청구인 측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음.
 
-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여성에 대한 동등한 대우와 차별금지 인식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오늘날로, 반세기 전에 이뤄진 재심대상 사건을 끌어와 지금의 잣대로 당시의 소송 진행이 직무상의 범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움. 


■ 한국여성의전화 입장문

 오늘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청구 사건의 법원 결정이 발표되었다. 작년 5월 재심 개시를 청구한 후 9개월 만의 일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작년 5월 재심청구 이후 기자회견, 피해자 심문 지원, 의견서 및 탄원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하여 재심 개시를 강력히 촉구하였다. 또한, 국민 청원 및 서명운동에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늘 부산지방법원 제5형사부는 본 사건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변명과 함께 재심청구를 기각하였다. 본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여성의전화는 재판부의 기각 결정에 대해 분노하며,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이는 재심 개시를 위해 서명에 참여한 2만여 명의 시민들의 분노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이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공소에 관여한 검사가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에 부족하므로, 당시 사건의 공판 절차와 법관의 언행 등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상당히 부적절하고 피해자의 인격을 침해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잣대로 당시 소송이 직무상 범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하였다. 

 한편, 재판부는 결정문 말미에 “청구인에게 이러한 결정을 하는 우리 재판부 법관들의 마음이 가볍지 않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러한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청구인의 요청에 따라,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판결로써 선언하는 것이지, 결정문의 사족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부는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며 ‘사회문화적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여 사건을 뒤집을 수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피해자를 ‘열아홉 소녀’로 호명한 2021년의 재판부는 피해자를 ‘순박한 농촌의 처녀’로 지칭한 1965년의 재판부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1965년과 2021년 모두, 재판부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변치 않은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명백히 실패했다. 

 피해자는 1965년 사건 당시부터 정당방위를 주장하였으며, 56년이 지난 후에도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재심을 청구하였다.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법관들의 공허한 선언에서 우리는 재판부의 무능을 목격할 뿐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의 정신을 기억하라. 한국여성의전화와 피해자, 피해자 변호인단은 즉시항고를 통해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지속적 대응해나갈 것이다.


■ 변호인단 입장문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력 재심사건 변호인단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이상희, 김수정, 김영주, 김예지, 박시진, 양성우, 전다운) 입장 전문 

1.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그 당시 시대상황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전제 하에 청구인의 구체적인 재심청구 사유를 살피지 않고 판결하였음. 

2. 과거 법원은 가해자가 불구의 몸이 되었다는 전제 하에, 재심청구인에게 중상해죄를 적용하면서, 할머니의 행위가 지나치다고 보아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임. 그러나 재심청구 소송 준비 중에, 가해자가 군에 입대하여 운전병특기를 취득하고 베트남전에 파병된 사실이 확인됨, 그 당시 시행된 구 병역법에 의하더라도 ‘아자’는 병역 면제 대상이었음. 만약 가해자가 ‘말의 현저한 곤란을 당한 불구’였다면 군에 입대하거나 베트남 파병은 불가능한 일이었음. 이에 청구인은 ‘무죄나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를 재심청구 사유로 주장함. 

중상해의 요건은 ‘신체의 상해로 인하여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는 정도’여야 함.  그런데 법원은 가해자가 군대에 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재심대상판결에서 말하는 ‘일생 말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게 하였다’는 의미를,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의미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였음. ‘유창하게 말을 못한다’는 것과 ‘발음의 현저한 곤란을 당하는 불구’는 전혀 다른 의미임. ‘유창한 발음’을 중상해 여부의 판단 기준으로 본 사례는 없음. 오히려 법원은 ‘혀의 기능을 온전치 못하게 하는 행위’를 중상해로 보고 있음. 

법원은 가해자가 사건 발생 전에 신체검사를 받아 갑종 판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음.  그러나 가해자가 언제 갑종 판정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도 없거니와, 설사 가해자가 사건 발생 전에 신체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입대 당시에 발음에 현저한 곤란이 있는 불구였다면 재검을 하거나 입대 후 귀가조치를 했어야 했음. 법원이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신체검사에 불합격되어 돌아왔다'고 하는데, 법원의 사실조회결과에 따르면 가해자는 입대를 하여 베트남전 파병까지 되고 만기전역한 것으로 확인됨. 따라서 입대 당시에도 갑종이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함.
이와 같이 무죄로 인정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있는데, 법원은 그 당시 증거들을 기초로 만연히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음. 

3 재심대상판결이 피해자의 순결성에 대한 감정 및 혼인강요를 하는 등 소송지휘권을 남용한 점에 대해서는, 법원이 그 당시 사회적 상황(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하는 호주제, 상속에서의 지분 차등 등 여성에 대한 차별)에 기반한 성차별적 인식과 가치관 등을 핑계로 대면서 재판지휘권에 문제가 없다고 보아 재심사유를 인정하지 않음. 
그러나 이 사건이 발생한 1965년에 시행된 헌법 전문은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고, 제8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이를 위하여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9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였으며 제31조에서 ‘모든 국민은 혼인의 순결과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였음. 사법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폐습에 저항하고 헌법적 가치를 실현할 의무가 있음. 
청구인은 1965년 사건 발생 당시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였고 법원에서 무죄를 주장하였던 것임. 
법원이 재심개시결정을 하고 이 사건을 다시 판단하여야 하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건이 발생한 1965년에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무시하고 피해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임. 

4 청구인은 부산지방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즉시항고를 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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