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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성폭력 수사,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by kwhotline 2018. 4. 23.

성폭력 수사,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서울지방경찰청 박미혜 경감의 <성폭력수사에 대한 경찰수사 절차의 이해> 강의-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8기 길시유



한국여성의전화는 2017년 11월 “#경찰이라니_가해자인 줄”이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시작했다. SNS 상에서는 20만 건이 넘는 폭로가 이어졌다. 수많은 폭로의 핵심은 ‘경찰에 의한 2차 피해’였다. 가정폭력부터 시작하여 성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의 젠더 기반 폭력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를 신고한 후 겪은 경찰의 올바르지 못한 대응에 대한 증언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왔다. 신고에 대한 잘못된 대응은 물론이고 수사 과정에서 겪었던 2차 가해 역시 화두에 올랐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경우, 명확하고 가시적인 증거가 없는 한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때문에 수사의 초점이 자연스레 피해자의 진술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2차 가해와 수사의 경계선 다툼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다툼에는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까?




지난 3월 30일 10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 중인 ‘2018 성폭력 전문상담원교육’ 프로그램으로 <성폭력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절차의 이해> 강의가 열렸다. 강의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박미혜 경감의 진행으로, 수사의 의의와 성폭력 범죄의 정의 및 유형 그리고 초동조치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유명 사건부터 박미혜 경감이 직접 수사하였던 사건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다 직접적인 이해를 도왔다.




수사 과정에서의 2차 가해, 무엇이 원인인가


박미혜 경감은 강의 중에서도 특히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사관들의 2차 가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폭력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후에 채집된 가해자의 DNA 또는 범죄 상황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의 가시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는 한 피해자의 진술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때문에 범죄를 특정하고 수사해야 하는 수사관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만이 사건을 수사할 단 하나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상황 판단이 되어야만 사건을 수사할 수 있고 나아가 그다음 단계로도 진행시킬 수 있다. 피해자가 겪은 상황, 가해자와의 관계, 주변 정황 등은 범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요소를 찾기 위하여 수사관은 피해자에게 더욱 자세하고 노골적인 질문을 넘어 2차적인 가해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그 상황에서 충분히 허리를 비틀어 성기의 삽입을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 와 같은 질문들이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되는 것이다. 질문의 의도가 저항 여부를 묻는 것임은 차치하고, 이 과정에서 수사관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충분한 지지와 공감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가 된다.


한편, 수사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사회적 측면의 원인으로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꼽을 수 있다. 성범죄는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그 원인과 책임을 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옷차림, 상황 대처 등을 원인 삼아 성범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지나치게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하여 사건을 조명하거나 피해자에게서 범죄의 원인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빈번한 2차 가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인식이 수사 과정에서의 2차 가해를 야기한다.




해결책은 수사관의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박 경감은 수사에 앞서 수사관이 피해자에게 믿음을 주고 지지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피력했다. 성폭력 수사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피해자와의 공감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사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질문들을 하기 전에 먼저 수사관 자신이 피해자를 지지하고 있으며 최대한 도움을 줄 것임을 전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 경감은 이때 ‘질문의 방식’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를테면 피해자에게 피해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이 수사는 당신에게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피의자가 당신의 피해 사실을 부정하려고 할 것이므로 당신의 자세한 진술이 필요합니다.’와 같은 방법으로 기존의 질문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특히 아동 또는 청소년의 친족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게 지지자가 없는 것이 치명적인 지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사관이 지지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사관의 지지와 공감이 기반 된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는 비로소 2차 가해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며 수사 진행 역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 우리 사회 공통의 과제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비단 수사 절차에서만 필요한 과정이 아니다. 박 경감은 이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수사관은 물론 성폭력 상담원에게도 필요한 자세임을 강의 대상자들에게 강조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2차 가해를 멈추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해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당신을 믿고 지지하며 돕겠다는 자세가 기반 되었을 때 비로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사회적 조치 및 온전한 권리회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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