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가정폭력가해자, 피해자 분리 조치에 피해자 동의가 필요했었나?
지난 8월 11일, ‘피해자의 동의’가 없어도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가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에서 “가정폭력처벌법의 입법목적과 응급조치의 취지, 가정폭력범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면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치에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시하였다. 이미 우리 법률은 가정폭력범죄 신고를 받은 경찰이 즉시 현장에 나가서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 어디에도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말은 가정폭력범죄 가해자를 분리하지도, 수사하지도, 처벌하지도 못하는 주요 사유로 자주 언급되어왔다.
실제로 가정폭력 피해자는 신고부터 재판결과를 받는 사법처리 전 과정에 걸쳐 ‘가해자를 처벌할 의사가 있는지’ 집요하게 질문 받는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가정폭력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언뜻 들으면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가정폭력 피해자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정폭력의 해결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이 ‘가정의 평화와 안정’으로 규정되어 있는 조건에서 가족이자,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인 가정폭력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는 오히려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는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실제로 한국여성의전화 상담 사례 중에는 수사기관 담당자에게 ‘그래도 아빠인데’, ‘처벌하게 되면 이혼해야 한다’, ‘아빠가 감옥에 가는 건데 아이들은 괜찮냐’는 말을 듣고 죄책감에 처벌의사를 철회한 사례가 있었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이유, 자녀 양육 문제, 가정을 파괴한 장본인이라는 사회적 비난 등 복합적인 이유로 신고하더라도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고소하더라도 중도에 취하하고 억지로 합의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가 말하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불가피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의 의사를 핑계로 가정폭력범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결과, 한국의 가정폭력 기소율은 10.1%에 불과하다(검찰청, 2020). 또한 법원에서 유기징역을 받은 가해자는 14명뿐이다(집행유예 제외, 사법연감 2020). 한국에서 가정폭력은 사실상 형사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에 기대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가정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제대로 된 처벌 없이 교육·상담을 조건으로 가해자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사이, 피해자는 더 큰 폭력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피해자 인권 보장과 가정폭력범죄 처벌의 책무는 국가에게 있다. 유엔 여성폭력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게 가정폭력이 중재와 조정으로 해결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공식사법 절차로 해결되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일반권고 35호, 2017). 국가는 더 이상 가정폭력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지 말라.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동의를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말라. 가정 보호·유지 관점의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을 개정하여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 의사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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