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그런 말조차 없던 시절'


쉼터 30주년 기념 다음 스토리펀딩 연재

 


유진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쉼터 30주년을 맞아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쉼터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다음 스토리펀딩을 진행하였습니다. 80년대 여성의전화 초창기 소식지인 베틀 1’의 쉼터 내담자 수기부터 쉼터 30주년 기념으로 발간된 가정폭력생존자 8인의 수기집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출판기념회 후기, 한국 최초의 쉼터를 만들었던 이문자 전 여성주의상담실천연구소 소장과 한우섭 전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공동대표의 인터뷰, 나와 주변인의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매뉴얼 등 한국여성의전화의 쉼터와 가정폭력근절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3개월간 총 12회에 걸쳐 연재하였습니다.



 

그때는 워낙 긴박한 상황에서 집을 나온 터여서 시설이 좋고 나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냥 쉴 곳이 있다는 자체가 고마웠어요.” 873월 국내에서 최초로 문을 연 여성들의 쉼터’. 그 첫해에 그곳을 거쳐 간 A씨가 처음 만나 들려준 말이다. 적은 예산으로 시작된 쉼터는 충분치 못한 시설로 운영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담자들에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음을 A 씨의 한마디가 확신시켜 주었다.


 - 스토리펀딩 1, ‘최초의 여성 쉼터 거쳐 간 A 씨 이야기

 

그녀는 다시 뻔한 파멸로 돌아가지 않도록, 더 장기적인 교육과 구체적인 취업 경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있는 경우엔 더 길게 머무를 수 있는 쉼터도 필요하고, 퇴소한 뒤에도 쉼터와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함을 느꼈다고 했다.


 - 스토리펀딩 4, ‘이곳은 우리의 최후의 피신처이다

 

가정폭력 피해 아내들은 잘못한 사람은 남편인데 왜 내가 집을 나와서 숨어 지내야 하느냐며 억울함을 표현하곤 한다. 자신의 집에서 당당하게 지내는 가해자와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피해자. 과연 가정을 떠나야 하는 이는 누구일까.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그 안에서 진정한 치유와 자립의 공간으로서의 쉼터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 스토리펀딩 7, ‘폭력을 당하고도 갈 곳이 없었다고요?’





 이번 스토리펀딩은 가정폭력피해 여성들이 폭력의 후유증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알림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 가정폭력은 범죄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여성폭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 자체였던 쉼터의 사회적 의미도 함께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한우섭: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여성의전화가 했던 여성운동은 지식인 출신의 관념적, 이념 중심적인 것을 탈피하여 실질적인,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다는데 의미가 있었어요. 폭력 피해 당사자에게는 당장 집을 나와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고요. 맨몸으로 도망치듯 나와 돈이 없어 여관도 갈 수 없는 피해자들에게 이 실질적인 도움이라는 말은 단어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제도적 장치도 존재하지만, 그때는 국가에 요구하기 전에 여성들 스스로 해내야 했고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문자: 쉼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가정폭력은 범죄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에요. 아내폭력이 몇백 년간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이를 범죄행위라고 정의한 일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단순한 진실을 알려내기 위해 쉼터를 만들고 여성폭력에서 생존한 여성들의 증언을 모아 냈어요. 특히 가정폭력으로 죽음의 문턱 앞에 선 아내가 남편을 사망하게 한 사건들을 알려내고자 많이 노력했어요. 여성의전화는 이런 사건을 정당방위 사건으로 명명하고 크게 이슈화했지만 안타깝게도 정당방위로 인정받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이런 노력이 가정폭력방지법이 필요하다는 근거가 되었지요.


 - 스토리펀딩 8, ‘여성의 힘으로 만든 여성들의 공간, 쉼터




 

 스토리펀딩의 독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그에 대한 편견들이 이러한 가정폭력을 더욱 부추길 수 있음을 알려내고자 했습니다. 12편의 다양한 이야기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사실 단 하나, ‘폭력의 근절을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폭력에 민감한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사회에서 평등한 관계를 맺는 법을 교육한다면, 인간은 폭력을 휘두르지 않게 되지 않을까요. 관계를 맺을 때 상대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또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적절한 교육이 행해져야 합니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권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폭력에 예민한 사회가 필요합니다.


 - 스토리펀딩 11, ‘나는 가정폭력피해 성인 자녀입니다




 

 가정폭력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가정폭력 경험을 절대 사소하게 넘기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와 폭력의 굴레를 끊고 더는 피해자가 아닌 평범한 한 사람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달려온 한국여성의전화 쉼터의 30. 그 진심이 스토리펀딩의 12편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가정폭력은 범죄입니다.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은 한 사람이 참고, 인내하고, 희생한다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나와 주변의 가정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의심하지 말고 당신의 생각을 믿으세요. 가정폭력 피해자 및 가족 구성원들을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자립을 돕는 다양한 사회적 지원들이 있습니다. 그 중 쉼터는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온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폭력 관계에서 벗어나 폭력 피해 후유증을 치유하고 자립을 준비할 기반을 마련하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피해 여성들이 쉼터와 함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당당하고 멋진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스토리펀딩 10, ‘이웃이 가족에게 폭력을 당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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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베틀여성모임 창작극


'나는 기적을 보았다'



수리 (공연 참여 활동가)





 예술매체를 통해 가정폭력을 알려내고 생존자들의 역량강화를 위해 기획된 베틀여성모임 공연은 출연자를 섭외할 때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있는 퇴소자들과 함께 하는 무대를 준비하려다 보니 토요일에만 연습이 가능했습니다. 더 어려웠던 점은 노출에 대한 위험부담을 안고 무대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논의와 고민 끝에 얼굴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가정폭력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생존자인 우리의 용기를 보여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 담아낼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각자가 가해자로부터 당했던 폭력을 이야기하며 울고 소리치고 분노하는 장이 펼쳐졌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생각하며 색색깔의 천으로 온 몸을 휘감아 바닥을 뒹굴기도 하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진 가해자의 칼 같은 언어와 행동들이 고통과 함께 각자의 입을 통해 재연되었습니다. 울고, 울고, 또 울고... 이 모든 것이 글과 대본으로 담아졌습니다. 


 드디어 6월 22일, 응원과 상상의 밤에서 베틀여성모임 창작극 ‘나는 기적을 보았다’가 무대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겪었던 적나라한 진실들이 격렬한 음악, 처절한 몸짓, 사나운 가해자 내레이션으로 폭포수처럼 무대에 펼쳐졌습니다. 잊어버리고자 애썼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통의 언어들이 가슴을 후비고, 온 몸이 기억하는 폭행의 흔적들이 우리들의 몸에서 품어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면하기도 끔찍했던 공포와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 우리는 승리를 외쳤습니다.  


-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 이곳은 안전해요. 

- 이제 나도 사람답게 살아요. 

- 내 잘못이 아니었어요. 

-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나는 다시 태어났어요.

- 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내가 바로 기적이예요. 



공연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날의 감동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 진아: 공연 보다가 감정이입 되어서 엄청 울었습니다. 


∎ 행복 : 오래뜰에 있으면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쉼터 30주년 공연에도 참여하게 되어 저에게는 더욱 뜻깊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은희: 너무 멋있고 자랑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무대에 있는 기분이 너무 황홀했고 용기와 힘을 얻는 감격스런 순간이었습니다.  


∎ 박** :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모두의 정성과 노력이 가득 찬 무대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지연 : 저에게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오래뜰이 존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노력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라 : 공연을 하면서 지금의 나를 다시 살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작이 여성의전화였지요. 나의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또 다시 힘차게 출발합니다. 


∎ 칼리 : 엄마가 무대에 서는 것을 난생 처음 보았습니다. 너무 감동이 되어 저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연극하신 분들의 열정과 힘이 느껴졌습니다.

  

∎ 소희 :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연습할 때만큼은 걱정근심 없이 몰두할 수 있었고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치유가 된 것 같습니다.  


∎ 사랑 :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내 평생에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기회,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고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언제나 억눌리고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자기표현을 하면서 큰 치유와 자신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 순간을 즐기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습니다. 


∎ 지혜 : 매우 감동적이고 뭉클했습니다. 일부만 참석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좋았고 정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구름 :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엄마와 나의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연극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것에 기뻤고 이런 연극이 더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연극에 참여하며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밝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고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된 것 같습니다. 


∎ 나무 : 생각지도 못했던 큰 감동을 선물 받았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들의 얘기로 채워진 것이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대사 연습을 하면서 잊었던 감정들이 올라와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치유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마치고 자신감과 내가 이런 걸 다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단비 : 멋지고 아름다운 행사에 동참해서 가슴 뛰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날의 감동을 경험하고 싶다”고 요청하여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힘과 생명력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힘찬 응원으로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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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한국 최초의 쉼터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30주년

'보호'에서 '자립'으로 


'응원과 상상의 밤'






한국 최초의 ‘쉼터’, 한국여성의전화 오래뜰이 2017년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987년, 폭력을 피해 간신히 몸만 도망쳐 온 생존자들을 위해 사무실 일부를 개조하여 시작했던 피난처, 이름조차 없다가 쉼 자리를 제공한다는 뜻의 ‘쉼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루 평균 8명 이상, 연간 3,000명 이상, 그리고 30년 동안 91,000명 이상의 가정폭력 생존자들과 함께했습니다.





오래뜰은 30주년을 기념하여 6월 22일 저녁, 을지로의 패럼홀에서 ‘응원과 상상의 밤’을 진행했습니다. 쉼터 30주년을 축하하고 응원하기 위해 200명이 넘는 분들이 패럼홀을 가득 메웠습니다.   


각계각층에서 보내주신 축하 영상과 1987년 쉼터 개소부터 30년의 역사를 담은 오프닝 영상이 상영되면서 ‘응원과 상상의 밤’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초기에 쉼터를 헌신적으로 돌봐주셨던 6기 상담회원인 은희주 님과 전 대표였던 이문자 님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은희주 님은 쉼터가 우연히 집 옆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쉼터와 맺게 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가족이 3대에 걸쳐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쉼터 개소 당시에는 잠금장치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 쉼터가 30년이 된 지금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너무 감개무량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문자 선생님은 쉼터가 제도화되기 이전 1988년부터 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쉼터’라는 이름을 여성의전화가 처음 사용하게 되었고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에 앞장섰던 경험을 전해 주셨습니다. 두 분의 짧은 얘기 속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묵묵히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온 쉼터 30년의 역사와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오래뜰에서 머물다 퇴소하셔서 자립하신 해나님의 당당하고 멋진 축사가 있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따뜻한 희망과 세상과 싸워나갈 수 있는 의지를 불러일으켜 주었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고향이 있다는 든든함이 가슴 한구석을 차지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모든 여성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라는 축사는 그 무엇보다 값지고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축사에 이어 고미경 상임대표의 30주년 비전 제시 발표가 있었습니다. 생존자를 온전히 자립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활동들을 소개하고 ‘보호’에서 ‘자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응원과 상상의 밤’의 하이라이트는 베틀여성모임의 ‘나는 기적을 보았다’ 공연이었습니다. 베틀여성모임은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현 입소자 및 퇴소자들의 자조 모임입니다. 공연은 가정폭력 피해 및 치유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하여 담아낸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참가자들은 가정폭력의 고통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생존자들에게 뜨거운 지지와 격려, 환호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공연의 감동에 이어 지난 쉼터 30년이 있기까지 쉼터 가까이서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했던 분들과 앞으로 새로운 쉼터 30년을 위해 앞장서서 애써주실 분들의 릴레이 응원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축하의 말과 더불어 각자의 위치에서 쉼터와 함께하겠다는 응원과 약속의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준비한 ‘버터플라이’ 합창 공연이 있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정성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합창이 끝날 즈음 객석에 있던 참가자들도 무대로 나와 다 같이 신나는 춤과 대합창으로 ‘응원과 상상의 밤’을 뜨겁게 마무리했습니다.    


쉼터 30주년 기념 ‘응원과 상상의 밤’에 귀한 마음, 귀한 걸음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새로운 쉼터 30년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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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인내하지 않을 자유


아내폭력 생존자 수기집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서평




예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누군가를 만나는 동안 인내하는 데에 익숙했던 때가 있었다. 인내의 이유는 다양했다. 학생이었던 나와 다르게 상대는 회사에 다녔으니까 피곤했을 거라거나, 내가 지나치게 유난스러운 거라든지, 아니면 남자들은 원래 애 같으니까 어르고 달래야 한다는 등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 이유들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사실 같은 방향이었다. 나만 참으면 우리 관계가 무사할 거라는 것. 그래서 2시간도 넘게 말을 안 하고 휴대폰만 보고 있어도, 싸움 중간에 혼자 가버려도 원망하지 못하고 말을 꺼낸 나를 자책했다. 상대가 결국은 자기 마음대로만 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로부터 한참이 걸렸다.


 우리 사회는 유독 여성에게 인내하는 것을 가르치는 듯하다. 이른바 포용의 미덕이다. 사회에는 여성이 남성을 ‘이해해’주어야만 하는 담론이 차고 넘친다. ‘남자는 개 아니면 애’이기 때문에,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또는 원래 단순하기 때문에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흔한 핑계들로 여성들이 인내하며 살게 만든다.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인내로 수렴한다. 그 결과가 어떻나. 인내하지 못한 여성은 갈등을 일으킨 주범이 된다. ‘인내의 덫’이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속에는 피해 여성들이 아내 폭력으로부터 탈출하기까지, 이 ‘인내의 덫’에 끊임없이 방해받는 모습이 여과 없이 그려져 있다. 인내하는 이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족이든 경찰이든, 주변 사람들은 그녀보다 그녀가 더 이상 참지 못해서 깨질 가정을 더 걱정한다. 폭력이 시작된 순간 이미 가정은 부서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는다. 결국, 그녀들은 아내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인내를 강요해 온 사회 구조의 피해자이기도 한 것이다.




내 아이들을 나처럼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나만 참으면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 (중략) 나를 세뇌시켜야 했다. ‘나는 괜찮아.’ – 107p


남편은 동서가 보는 앞에서도 내 뺨을 때렸다. 동서는 남편에게 때리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나에게는 “조금만 더 잘하라”고, “여자가 조금 더 신경 쓰면 괜찮을 거다”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108p 


시어머니는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며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자기 아들의 폭력성을 시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26p





 그리고 ‘인내의 덫’은 사실 아내 폭력에 대한 사회의 방관이다. 이 책의 서술에는 그 방관의 민낯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쉼터에 오기 전, 크고 작은 구조 요청을 할 때마다 그녀들이 듣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에 너무나 게으르며 무관심하다. 이는 책의 제목이 왜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라고 지어졌는지를, 혹은 지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탈출 이후에도, 사회가 폭력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생존자들에게 ‘왜 참고 살았냐’는 또 다른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는 점은 애석한 일이다.





 고소장을 접수한 나에게 담당 경찰은 범인을 협박하듯 말했다. 

“이혼할 때 유리하게 하려고 고소하는 것 다 아는데 끝까지 갈 것 아니면 지금 접수 취소해요. 경찰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일로 피곤하게 하느냐구요.” – 71p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112 단축번호를 눌렀다 꺼버렸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조금 후에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얼른 받아보니 안내원이 112에 신고하셨느냐며 장난전화 아니냐고 물었다. 너무 황당했다. 남편이받았다면 나는 신고한 것에 대한 분풀이로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쉼터에 와서 나와 같은 상황으로 한 여자가 남편에게 살해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83p


 가정폭력이 뭔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어디서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누구 하나 말해주는 이 없었다. 모든 고통을 혼자서 감당해내야 했다. – 144p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살아남았다. 수기가 끝날 때마다 덧붙여진 ‘탈출 그 이후’ 인터뷰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이다. 이제 그 어떠한 사회의 덫도 그녀들을 방해할 수 없게 된 이유다. 그들은 아마 다른 누군가를 위해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자유’를 얻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도 ‘인내하지 않을 자유’를 얻으라는 용기를 건넨다. 한쪽만이 인내해서 유지되는 관계는 그 자체로 무사(無事)한 관계가 아니다. 그녀들은 앞으로도 그 어떤 것보다 ‘나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고, 또 다른 여성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아내 폭력 피해자들의 수기집이 아니다. 자유를 얻은 스스로에 대한 응원이자 인내하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계몽이며, 동시에 인내하도록 만들고 있는 사회에 대한 경고다. 




“책 한 권이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 권을 후원해주시면, 전국 67개 쉼터에 입소하고 계신 670여 명의 가정폭력 생존자에게 전달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생존자를 응원해주세요. *신청하기 : https://goo.gl/8foz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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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집 안 보다 집 밖이 더 안전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가정폭력 피해 성인자녀 집담회' 후기



유진_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어떤 이에게나 폭력은 끔찍한 경험입니다. 그 폭력을 잘 이겨냈든, 그렇지 못했든 그 경험은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 흔적의 짙고 엷음은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지만,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당하는 폭력은 그 자국의 패임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31일, 가정폭력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 집담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모인 이들은 그동안 ‘가정폭력 피해자’로 으레 거론되던 ‘아내’, ‘어린이’는 아니었습니다. 가정폭력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된 자녀들이 모여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가정폭력과 그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어머니를 지켜보아야 했던 또 다른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직접적인 폭력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그 동안 ‘어느 곳에서도 말해지 못했던 내 가족의 이야기’를 마침내 하나, 하나 펼쳐놓는 자리였습니다. 어쩐지 고통 경연대회처럼 되어버린 상황에 웃기도 하고, 가해자의 기가 막힌 합리화에 다 함께 분노도 하고, 결국 나와 닮은 서로의 가정폭력의 경험에 함께 울었던 이 날의 이야기를 더 많은 이와 나누고자 합니다.





‘왜 지금까지 가정폭력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참가자들과 가장 먼저 이야기 나눈 주제는 ‘가정폭력 피해를 말하기가 왜 어려웠는가?’였습니다. 이에 대해 가정폭력과 그 피해자에 대한 편견, 폭력의 가해자가 곧 자신을 키워준 부모이기에 분노와 함께 동정심도 드는 양가감정, 그를 더욱 부추기는 가해자의 변명들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한 참가자는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체벌의 경험과 그 당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던 아버지의 말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가 여덟 살 때 나에게 ‘엎드려뻗쳐’를 세 시간 동안 시키면서 ‘너를 강하게 키우려고 그러는 거다, 세상엔 더한 사람도 많다,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다, 나중에 고마워할 거다’라고 했다. 술 취해서 내 목을 조른 적도 있는데 술에서 깨고 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


 다른 참가자들도 너 정도면 행복한 거다, 네가 부모 없이 뭘 할 수 있느냐, 부모도 힘들다, 네가 잘못해서 맞는 것이니 너 스스로 맞을 횟수를 정해라와 같이 가해자와 그 주변인들한테서 들었던 폭력의 변명과 합리화의 말들을 증언했습니다. 이러한 합리화와 편견들이 피해자에게 자신이 폭력 피해를 당하고 있고 이것이 신고할 수 있는 범죄임을 인식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적 폭력이라는 점에 좌중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가정폭력피해 경험을 주변에 털어놓아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반응이 가정폭력피해에 대해 말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과 함께, 성인이 된 가정폭력피해 자녀는 가정폭력 피해자로 잘 상정되지 않는 사회의 편견이 가정폭력피해 성인 자녀의 입을 더 닫히게 만든다는 문제점도 제기되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정폭력의 피해자라 말하지 못한 건 주변 사람에게 털어놨는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쯤 가출해보는 게 어떻겠냐’, ‘한 번도 반항해 본 적 없지’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이라 하면 흔히 아내폭력이나 아동학대만 생각한다. 아동‧청소년 때 학대를 당했지만, 성인인 나에게 아동학대는 이제 안 어울리고, 기혼여성도 아니기에 아내폭력도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편견이 가정폭력을 더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지적되었습니다.


 “4년 전에 엄마와 함께 (가정폭력) 상담을 받다가 도중에 중단했다. 어머니가 대졸자이시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왜 그런 일도 알아서 하지 못 하냐, 배운 사람이 왜 그러고 있느냐’는 지적을 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엄마가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까 봐, 엄마의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까 봐 더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은 엄마가 힘들 테니 네가 잘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도 함께 폭력의 피해자인데…”



우리 집 안방에 사는 ‘가해자’


 또 다른 참가자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제대로 구속되지 않는 현 사법 시스템의 허점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자 어머니가 나에게 ‘신고하라’해서 신고했더니 아버지가 신발을 들고 도망간 적이 있다. 그러자 경찰이 출동했다가 그냥 다시 돌아갔고 아버지는 잠시 후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중학생 때는 아버지에게 맞아 내 코뼈가 부러져 신고했더니 형사사건이 되었다. (아버지가 구속되지는 않아서) 두 달 가출했다가 다시 들어와서 함께 살았다. 얼마 후에 법원에 가족들이 다 함께 출석했는데 이미 함께 살고 있으니 합의로 봐야 한다며 소가 취하되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다. 오히려 법원에 가는 날 나에게 네가 신고해서 그런 거라며 화를 내고 TV를 던졌다.”


 이 외에도 가해자가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집 앞까지 찾아와 신고했으나 다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이 그냥 돌아갔던 일, 가해자에게 입은 폭력피해를 설명해도 화해를 권고받았던 일 등 가정폭력 가해자를 신고해도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피해자로서 보호받지 못했던 경험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한편 가정폭력 피해를 막고 피해자가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해자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독립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한 참가자는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게 청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가 폭력가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벗어나려면 경제력을 길러야 하는데 현 한국사회는 높은 집세와 청년 실업률 등으로 청년이 독립하기가 너무 어렵다.”라고 말하며 가정폭력피해 성인 자녀들이 폭력의 아픔을 치유하기 전에 생존부터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또 성별 간 임금 격차 역시 여성 가정폭력피해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가해자로부터 독립 및 폭력 후유증 치료를 할 기반을 마련하기 어려운 원인이라는 점도 이야기되었습니다.



폭력을 사소하지 않게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이날 자신의 가정폭력 경험에 대해 발표했던 개미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스스로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도 엄청나게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한다. 나의 부모를, 나의 형제자매를 가해자로 명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피해자로 명명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게 힘이 든다. 제발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사소하게 취급하지 말아 달라.”며 모든 사회구성원이 가정폭력을 사소하지 않은 일, 범죄로 여기는 인식개선이 무엇보다 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집담회 참가의 마지막 소감을 전했습니다.




* 이 글은 다음 스토리펀딩 <쉼터, 그런 말조차 없던 시절>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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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 활동 일지






가정폭력 가해자 ‘은팔찌’ 채우기 기원 팔찌 텀블벅 프로젝트


 가정폭력 가해자 10명 중 8명은 남성이며, 가정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은 여성인 현실. 가정폭력이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행위임을 분명히 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모든 가정폭력 가해자가 안방이 아닌 경찰서에서 제대로 수사 받기를 바라는 기원하는 ‘은팔찌’와, 가정폭력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그 내용을 담은 안내지를 주요 리워드로 준비하였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여성폭력 근절에 대한 뜻을 함께해 주시는 218명의 후원자분들의 참여로 텀블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 참여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 참여했습니다. 5월 13일(토)과 14일(일) 양일간 진행된 이 페스티벌은 팝업스토어 형태의 페미니즘 상품 판매 및 라운드 토크, 음악 공연 등이 준비된 페미니스트들의 축제였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팝업스토어에 참여해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을 알렸습니다. 부스에서는 수갑이나 경찰 모자를 착용하고, 가해자를 체포하는 포즈로 인증샷을 찍어 볼 수 있는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데이트폭력 문제의 현실을 알리고자 전국공정연애실력고사 문제지 풀어보기, F언니의 상담실 책자 배포, 데이트UP데이트 어플리케이션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5월 13일 하루 동안 주최 측 추산 1,000여 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던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전국 지부와 함께!


올해도 여성의전화 전국 지부가 5월 한 달 동안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각 지역에 맞는 각양각색 캠페인 풍경을 사진으로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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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 


‘성평등 국가’ 스웨덴의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제도 탐방기

  


유미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지난 4월,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피해여성 자립 지원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해외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제도와 정책을 살펴보고자 총 9일간(4/22-4/30)의 스웨덴 여정에 올랐다. 기관방문 첫날의 스웨덴 여성 및 여성청소년쉼터 전국협회(이하 ROKS, 1984년 설립된 스웨덴에서 가장 큰 여성 쉼터 조직)에서부터 마지막 날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 관한 스웨덴 국가지식센터(The Swedish National Centre for Knowledge on Men's Violence Against Women, 이하 NCK)까지, ‘성평등’ 국가 스웨덴이 보여준 면모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바로 ‘문제에 대한 분명한 관점과 목표로 분야별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로 나아간다’는 것.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 분명히 명명하다

 

 ‘성평등 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 이 나라에는 지난 30년 동안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Men's violence against women)’이라는 명명 아래 싸워왔던 역사가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 스웨덴은 성별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신적·성적·경제적 폭력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으로 명확히 명명한다. 남성에 의한 폭력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며, 여성폭력은 성차별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본질을 ‘흐리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대하는 관점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와 관련, ROKS의 위베카는 어떤 용어를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제1원칙이라는 사실을 스웨덴은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과연 무엇을 침해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스웨덴은 법률상 규정을 통해 개념화하고 있다. 1998년 스웨덴 형법상에 제정된 ‘여성의 존엄성 침해(Gross violation of a woman's integrity)’에 관한 법률 또한 스웨덴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근절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로 보인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의 존엄성을 반복적으로 침해하고 자존감에 극심한 손상을 입히는 범죄행위(Gross violation of integrity)를 규정한 형법 조문에서 별도로 규정돼 있는 ‘여성의 존엄성 침해(Gross violation of a woman's integrity)’ 법률은 ROKS의 위베카에 따르면 스웨덴의 유일한 페미니스트 법률이기도 하다. 이 규정을 통해 여성에게 가하는 복합적인 형태의 폭력을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포괄하여 가해자를 기소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문제에 대해 각 기관이 공통 관점을 가지고 기관별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은 놀라운 점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스웨덴 탐방팀이 방문한 5개 기관 모두- 스웨덴 여성 및 여성청소년쉼터 전국협회(ROKS), 범죄피해자 보상지원청, 스웨덴 여성 로비, 스웨덴 경찰청,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 관한 스웨덴 국가지식센터(The Swedish National Centre for Knowledge on Men's Violence Against Women, 이하 NCK)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성차별적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각자의 영역별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며 전문성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일례로 경찰청 방문 시에는 경찰들이 여성폭력 수사와 피해자 지원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언어적·정서적 폭력을 증명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관련 연구결과와 지식을 확산하기 위한 기관인 NCK의 경우, 1) 전문가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폭력 관련 각 전문가들이 분야별 관점을 공유하고, 논의와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폭력에 대한 태도가 변화될 수 있도록 목표하는 점, 2) 보건과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서 여성들에게 폭력 경험을 질문하여 폭력 피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발견했다면 뒤따라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알고 실행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방법론을 제안하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했다. 또한 개별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필요로 하는 부분에 따라 정보를 용이하게 얻고 지원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관점에서 각 기관별 인터넷 사이트에 내용을 알기 쉽게 구성하여 게시하고 배치해 놓은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결론적으로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는 것. 일차적으로는 사회보장제도에 기반을 둔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과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명명으로 문제를 보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 경찰·사회복지·보건·지원기관 등 각 분야 간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역할을 분명히 수행하며 전문성을 발전시켜나가는 스웨덴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스톡홀름 지역의 기관들만 방문하여 살펴본 것이기에 실제 여성폭력 실태와 관련 기관의 집행내용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출발선에 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지난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이었던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에 속도를 내는 흐름 속에서, 이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여성폭력 근절에 대한 국가 책무를 규정하고 피해자 지원의 원칙 등을 분명하게 세워가야 한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인권운동단체들과 함께 국가에 외쳤던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요구는 이제야 정부 정책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의 폭력피해율이 매우 높은 폭력에 대해 범죄행위로서 분명히 처벌하고 피해자 보호·지원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여 관련법들이 제정됐지만, 여성폭력에 대한 기본 관점과 지향조차 갖추지 못한 정책 내용과 집행으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해왔다. 이제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양태들로 포괄하여 다시 정확히 명명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정의와 본질, 여성폭력이 무엇을 침해하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가까운 관계에서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함에도 더욱 사소화되는 여성폭력의 특성을 반영하고, 여성폭력 근절이라는 분명한 목표 아래 이에 관여하는 각 분야 협력체계의 역할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겉만 그렇게 보이는 형태가 아닌 진정 페미니스트 법제도와 정책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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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후


백수연


‘아이들, 학생들, 미래 세대’, 그리고 ‘자라나는, 기특한, 내일의, 앞으로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부르고 꾸미는 말들에는 생각이 스며들어있다. 그 생각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바로 그 말들이 부르고 꾸미는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청소년이었으면서도 청소년들이 어떻게 불리길 원하는지, 어떻게 대해지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아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으로 일한 시간이 길어서라는 핑계로, 나는 내가 겪었고 그래서 또 내가 굳히게 된 ‘청소년’의 관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공부하면서, 청소년 역시 이 사회의 또다른 소수자임을, 그들의 인권 역시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 청소년 관련 이슈를 맞닥뜨릴 때마다 매번 ‘지금 내가 ‘청소년 혐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것이 ‘청소년 혐오’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를 정확히 구분하지는 못해서 답답했다. 더구나 이제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캠프에서 만나게 될 10대 여성들과는 ‘선생과 제자’가 아닌, 함께 공부하고 연대하는 동반자가 되어야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 차례 진행된 회의에서 나 뿐 아니라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다른 활동가분들도 청소년 인권 공부가 필요하다고 종종 건의했다. 그래서, 드디어, 6월 교육은 ‘청소년 인권’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의에는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의 혜원님이 강사로 초청되었다. 청소년기를 이미 지난 여성인권활동가를 대상으로 진행된 교육이다 보니, 보다 이해가 쉽도록 혜원님은 여성 인권과 청소년 인권이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우선 짚어주셨다. 언제 어떻게 페미니즘을 접했고, 또 왜 여성 인권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는지 서로 경험담을 나누면서, 비슷한 맥락으로 혜원님이 접하게 된 청소년 인권 운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청소년 인권 운동이 왜 필요한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나 말의 어떤 점들이 청소년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인지 여러 사례를 통해 배웠다. 특히 ‘보호주의’에서 말하는 보호는 ‘공부를 잘하는, 얌전한, 착한’ 등의 자격이 조건으로 상정되는 반면 진짜 '보호'는 자격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차이점을 배운 것과, ‘완벽한 성숙함’은 없다는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 스스로가 맹목적으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고, 보호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나의 ‘청소년 혐오’를 보호주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청소년 인권 존중과 청소년 보호의 교집합과 여집합을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나를 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기준을 갖게 해 준 교육이었다.




  실제로 청소년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각색한 고민들에 대해 각자 의견을 논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교육을 마치고, 이어진 시간에는 5월의 활동과제였던 사진이나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자신’을 주제로 하는 활동과제를 수행하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사진이나 영상에 우리 각각의 진솔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서 끊임없이 웃기도, 전문적인 수준의 세련된 결과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면서,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 공유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캠프가 목전이라 회의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열성적인 토의로 푸는 것 같기도 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가 된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길에서도 우리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곧 서로 살을 부대낄 2주가 다가오기에 우리는, 나는 모두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남은 6월과 다가올 7월에는 얼마만큼 더 배우고 또 더 이해하게 될지. 날을 손꼽아 지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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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에 용기를 더해서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6기 이윤희




어느새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의 1주기가 되었다. 사실 어느 새라는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삶과 주변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단어조차도 익숙하지 않았던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주변과 분노를 나눴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강남역 번화가에서 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그리고 남은 여성들은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지 1년이다.





젠더폭력에 대한 이해 없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해결될 수 없다

1주기를 기하여 한국여성의전화와 50여 개의 여성․인권․시민단체는 5월 17일 정오에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더 많은 말하기와 행동으로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현수막을 들었으며 순서대로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총 9명의 발언자들은 젠더 불평등이 해소되어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여성단체 뿐만이 아니라 민주사회와 시민사회를 위한 단체들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시민사회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미순 상임대표는 정부가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으로 한계 짓고, 대책으로 공중 화장실 앞의 폐쇄회로나 화장실 안에 비상벨을 설치하는 정책을 내놓은 태도는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에 대한 고민 없는 결과라고 규탄하였다. 그리고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미례 대표는 지속가능한 사회는 젠더 폭력이 종식된 사회임을 강조하며, 그러한 사회로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기자회견의 참가자들은 일 년 전 전국에 붙었던 포스트잇을 형상화한 현수막을 들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1시간 정도 이어진 후에는 신촌과 홍대로 이동하여 다시 한번 더 포스트잇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시민들과 함께 진행하였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1년 전에 분노와 두려움을 포스트잇을 통해 쏟아냈던 것처럼, 1년 후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변하질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저녁 7시에는 서울 추모 문화제에 참여하여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이제는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행진을 이어나갔다. 


1년 전의 나와 1년 후의 나, 우리

이날 기자회견을 취재기자로서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켜보는 것보다도 참가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현수막을 들어 참가자들 사이에 섰다. 생각해보니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 올라가서 거리를 바라본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고 차들은 쌩하니 지나갔다. 행인들은 호기심 있게 바라보거나 무심하게 지나쳤다. 큰 카메라들과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그러한 장면을 바라보니, 1년이라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강남역에서 지금 여기 광화문까지 오게 된 사건들이 떠올랐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으로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은 것은 강남역 현장에 가서 들었던 말들이다. 우연히 그때쯤에 강남에서 술자리를 가질 일이 있었고, 다 함께 강남역 10번 출구로 가보자는 말이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부터 출구 벽에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이 보였다. 벌써 마음이 울렁거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글을 읽으니 울렁거렸던 마음은 착잡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변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더 참혹한 마음이 들게 한 것은 주위 사람들 다 들으란 듯이 떠들고 있던 한 남성이었다. 그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흘겨보듯 서 있으면서 계속해서 옆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게서는 간간이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 ‘과한 일이야’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또 어떤 커플은 팔짱을 끼고 와서는 웃으면서 괜한 일이라는 듯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런 일들은 많았다. 친구가 헬스 트레이너에게 ‘회원님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남자에게 잘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는 서로 ‘저는 예쁘니까 이제 일찍 다녀야겠어요.’ 라며 농담을 나눴다. 누군가는 정말 어이없다는 투로 ‘사람 하나 죽은 건데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한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했지만, 주변의 반응에 혼란스러운 나는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리고 강남역에, 그 화장실에 가지 않아서 살해당하지 않은 여성들이 모였다. 어두운 밤 길이나 외진 곳이 아니어도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두려워했다. 그리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두려움과 분노를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에도 추모를 위해 모인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모욕했으며, 어떤 이는 인형 탈을 쓰고 나와서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며 여성들의 고통을 무시했다. 지금도 그때도 나는 타인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드는 태도가 제일 비열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처럼 여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해서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가장 비열한 태도다.





용기가 되어준 모두, 이제는 스스로 용기를 내어

잠재적 아군이라는 말이 요즘에 종종 쓰인다. 페미니스트들이 친절하고 자상한 말투로 말하지 않고 거칠게 말해서 페미니즘의 편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아군’을 잃었다는 식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말을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나는 정말로 그들의 아군이었다. ‘된장녀’나 ‘김치녀’가 아니라 ‘개념녀’가 되고자 노력했다. 항상 자기검열을 했고 그것이 왜 불편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그만뒀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하며 무의미한지를 안다. 그것을 알게 해준 것은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 모두다. 모두의 덕분에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들을 모두 깨부술 수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얘기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나의 친절은 그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니다. 내 친절은 나와 여성들, 존재 자체가 지워지려는 시도를 당하고 있는 성 소수자와 단지 성별을 이유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1년 동안 용기를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시작은 슬픔과 두려움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용기다. 이제 나는 더 많은 용기를 내고 싶다. 여기까지 이끌어 준 여성들과 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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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후기

박규현


  서울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니다, 서울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더 자주 생각한다. 아니다, 서울에서 여자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더욱 자주 생각한다. 아니다, 서울에서 여자로 죽지 않는 법에 대해 더더욱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문자 이외의 것을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지난 달 강의는 인터뷰였고, 이번 달 강의는 여성주의 미디어 제작과 활용이었다. 처음 미디어에 대해 배운다고 했을 때 겁부터 났다. 어렵겠구나, 싶었다. 내가 본 여성주의 미디어들을 세어봤다. 영화 <우리들>, <위로공단>, <소녀와 여자>……. 처음부터 끝까지 안심한 채 감상할 수 있던 작품들이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토막들이었다.


  강유가람 감독님의 강의는 주로 다큐멘터리 영화와 관련해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긴장이 풀렸다. ‘내 이야기, 내 입장, 내 시선, 내 해석이 담긴 하나의 기록물을 제작한다니, 그건 어쩌면 다른 여성주의 작품들보다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세상에 쉬운 건 없고 분명 어렵겠지만, 내가 보던 세상을 남들도 똑같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흥미가 생겼다. 특히 강유가람 감독님이 짧게 보여주신 여러 다큐멘터리 영상들이 모두 좋은 이야기들이어서, 섣부를 수도 있지만 용기가 났다.




  이전부터 독립영화관들을 자주 돌아다니며 독립영화를 관람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보여주시는 영상들을 보니 내가 놓쳤던 좋은 이야기가 참 많다고 느꼈다. 똑같이 한국에서 살고, 동시에 서울에서 먹고 자도 깜박하고 지나가버리는 것들이 있었다.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고, 이미 영화의 한 장면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순간들을 눈으로 봤을 때 내 시선을 담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작은 결심이 생겼다. 글로 기록해두는 것과는 다른 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강유가람 감독님의 강의가 곧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여성주의 미디어에 대해 설명해주는 감독과 우리들. 강의실 맨 뒤쪽에서 우리를 찍었다면, 그 공간은 단단해보일지도 모르겠다. 감독님은 “‘나’의 입장이 명확해야 ‘나’의 사적인 일을 담을 수 있다” 말씀해주셨으니까, 우리들의 확실한 입장들이 한데 모여 있다면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사적인 순간들은 얼마나 또렷하게 전달될 것인가? 




  회의에서는 지난달처럼 10대 캠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지난 4월 진행된 아카데미 중간평가 설문지 내용을 토대로 서로의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활동과제로 제출했던 서로의 과제(나 자신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인물 인터뷰하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인터뷰 과제의 감상을 말하면서, 인터뷰는 분명 끝난 것인데도 여전히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울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 상황이 편안했다. 서로에게 질문자와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서 한 편의 이야기에 출연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각자가 겪고 있는 상황과 관계들을 들어주고, 나아가 이해해주는 일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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