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이 어떻게 여성을 도울 수 있을까?
- 한국법률구조공단 견학 후기
한국여성의전화 7기 기자단 이린

 

무더웠던 지난 2일, 한국여성의전화 전문 상담원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국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에서 견학이 진행되었다. 견학은 한국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들의 강의로 구성되었다. 강의는 주로 법률구조에 대한 실무적 내용과 사례를 다뤘다. 이번 교육의 취지는 폭력 피해 여성들을 실무적으로 돕기 위한 절차를 알아보는 데 있었다.

 


 


 

오후 3시에 시작된 강의는 한국법률구조공단 소속 한유진 변호사가 진행하였다. 20명 남짓한 교육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강의를 들었다. 2시간 분량의 강의로, 긴 시간이었음에도 교육생들은 모두 진지하면서도 열의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강의 시작 전 한 변호사가 “한창 단 게 필요하실 시간이다”라며 교육생들에게 과자를 나눠 줘 교육생들 사이에 웃음이 퍼졌다. 밝아진 분위기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는 한국법률구조공단이 하는 일, 가정폭력 및 성폭력에 대한 법률 구조 안내, 대표적 지원 사례 소개, 사례 연구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국법률구조공단은 시민을 대상으로 법률 상담, 소송 구조, 법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거나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법률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공단의 목표이다. 법률 상담의 경우 방문뿐만 아니라 웹 사이트(http://www.klac.or.kr/main.jsp)를 통해서도 이루어져,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한국법률구조공단 웹 사이트에서는 각종 법률 절차를 위한 서식을 내려받을 수 있어, 이러한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 구조의 경우, 형사 사건에 대해서는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고소 대리를 해주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충격이 큰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 과정을 직접 밟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 구조가 더 자세하게 다루어졌다.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원의 경우 피해자를 한국법률구조공단과 연결해주고, 필요하면 동석하거나 구조 요청을 대리 접수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원인의 연락처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구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구조 대상자와 연락이 잘 안 되면, 구조 대상으로 선정되었음에도 통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구조 대상자의 자격은 건강보험료 기준 중위소득 125% 이내의 국민 또는 국내 거주 외국인이라고 한다. 한 변호사는 남편이 고소득자인데 가정폭력을 행사하며 경제권도 독점하고 있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소득 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가구 소득이 고소득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본인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경우에는 구조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조 절차는 전부 무료로 진행되며, 소송 비용은 당장 내지 않고 납부를 유예할 수 있으니, 소송 구조에 드는 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구조 요청을 위해서는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상담사실확인원, 2주 이상 상해 진단서, 고소장 사본 및 접수 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구비 서류를 잘 알지 못해 한국법률구조공단에 문의가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윽고 이어진 사례 연구에서, 한 변호사는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가며 민사 및 형사 소송에서 있을 수 있는 법적 절차에 관해 쉽게 설명하였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생각하는 소송과 달리, 훨씬 더 복잡한 세부 절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같은 경우에 저는 ‘사전 처분’보다는 ‘보호 명령’을 자주 청구하는 편입니다. ‘사전 처분’은 어길 시에 과태료 처분을 받지만, ‘보호 명령’은 위반하면 처벌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한 변호사는 이혼 소송의 예를 들며 ‘사전 처분’과 ‘보호 명령’의 차이에 관해 설명했다. 또,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경우 검찰이 장애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성폭력은 그 범죄가 발생했던 일시가 특정되어야 법을 적용할 수 있는데, 장애 여성은 일시를 특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변호사에게 가능한 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래야 변호사도 그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증거를 남기는 것이 소송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대화, 통화 내용 등, 가해자가 사과하거나 폭행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은 중요한 증거로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성폭력 사실이 거의 확실해 보였으나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경우나,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 등, 다양한 사례가 다뤄지면서 많은 교육생이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 변호사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온 사례를 많이 말씀드리게 되었지만, 이러한 사례를 통해 상담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한 글이 떠올랐다. ‘성폭력을 당했을 시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불쾌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샤워하거나 옷을 버리지 말고, 얼른 상담소 등에 연락하고 옷도 잘 보존해 두어야 한다는 등, 실질적인 대처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실용적 조언이 실제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강의 역시도, 앞으로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게 될 상담원들에게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상담원 교육생은 아니지만, 나와 주변 사람이 폭력 피해를 입은 긴급한 상황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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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실태조사를 통해 본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

-한국여성의전화 2016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분석


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한국여성의전화는 2001년부터 데이트 상대로 인한 폭력, 즉 ‘데이트폭력’에 주목하여 피해 상담, 인권지원활동, 대중강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데이트 공작단’ 모임 운영, 데이트폭력예방 애플리케이션 ‘데이트UP데이트’ 개발, 소책자 및 잡지 발간 등 성평등한 데이트 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이번 9월, 본회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실태를 파악하여 데이트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온라인을 통해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설문조사는 데이트 관계 경험이 있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었다. 다음은 설문에 참여한 총 1,082명 중 성별을 여성이라고 응답한 1,017개를 바탕으로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요약·정리하였다.


 

데이트상대 성별

합계

성별

여성

남성

그 외

여성

8% (81)

91.9% (935)

0.1% (1)

100% (1017)

남성

87.7% (50)

12.3% (7)

0

100% (57)

그 외

12.5% (1)

62.5% (5)

25% (2)

100% (8)


본 실태조사의 분석에 포함된 성인 여성 1,017명 중 61.6%가 최근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여 상당히 많은 여성이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11.5%에 이르렀다.  


통제

언어적/정서적/경제적

신체적

성적

62.6%

45.9%

18.5%

48.8%

637

467

188

496


<유형별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



1. 폭력으로 시작하고 형성되는 관계 


데이트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상당수의 언론은 ‘이별범죄’에 집중한다. 이는 피해자의 이별 요구, ‘일방적인’ 이별 통보, 연락 두절 등으로 범행 동기를 구성하고 ‘안전이별’이라는 말을 인용해 이별을 ‘잘’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 유발론을 확산시킨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은 이별 때문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며 친밀한 데이트 관계 안에서 지속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본 실태조사에서도 사귄 후 6개월 미만에 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폭력이 발생한 비율이 평균 59.9%로, 데이트폭력을 피해를 입은 응답자의 과반수가 관계 초기에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적폭력은 사귀기 전부터 사귄 후 3개월 미만에 발생한 비율이 52.1%로 다른 유형의 폭력에 비해 발생 시기가 빠른 특징을 보였다. 성에 대한 이중규범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 경험은 여성을 데이트 관계 형성 및 유지에 종속시키는 힘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적 행위의 상당 부분이 관계 초기에, 원치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실은 적지 않은 데이트 관계가 성폭력에서 시작하게 됨을 드러낸다.



2. 통제, 폭력의 근원이자 목표 


데이트 관계에서 통제를 경험한 비율은 62.6%로, 이는 상대방의 인간관계나 생활, 옷차림 등 일상 전반에 대한 통제가 일종의 데이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폭력의 목표가 상대에 대한 통제권 획득임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데이트 관계는 이미 구성되는 시점부터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 및 구조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과하지 않다.


본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모든 형태의 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대답한 응답자의 90.1%가 데이트 상대에 의한 통제를 경험했다.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폭력 피해 여성의 79.2%, 신체적 폭력 피해 여성의 87.8%, 성적폭력 피해 여성의 77%가 통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해 통제와 폭력의 높은 상호연관성을 알 수 있다.


통제

언어적/정서적/경제적

신체적

성적

62.6%

45.9%

18.5%

48.8%

637

467

188

496



폭력 여부를 물리적 폭력 위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통제에 대한 문제는 비가시화 되기 쉽다. 특히 친밀성은 통제의 심각성을 등한시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이다. 데이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통제는 ‘애정과 관심’, ‘걱정’ 등으로 정당화된다. 통제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38.9%), “아무렇지 않았다”(35.8%),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32.1%)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고, 반응 역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47.6%), “상대의 기분에 맞추어 주었다”(42.3%)는 응답이 주요하게 나타난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데이트 관계에서 통제는 사랑하고 사귀는 사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규율로 규범화되며, 이 규율을 어겼을 때 비난과 처벌로 순응을 끌어내 통제를 더 강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더군다나 여성에 대한 통제는 이분법적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여성성’의 수행이라는 사회문화적 압력과 연결되면서 더욱 비가시화 된다. 


응답자의 61.5%는 사귄 후 3개월 이내에 통제를 처음 경험하였다. 폭력과 통제의 긴밀한 연관성은 잘 보이지 않는 일상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폭력을 인식하고 드러나게 한다. 통제를 폭력으로 의미화·가시화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 초기에 데이트 폭력을 인지하고 중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관계 중단의 어려움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한 과반수가 관계 초기에 폭력이 발생했음에도 전체 응답자의 68.5%가 6개월 이상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폭력 발생 이후에도 관계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계를 유지한 이유에 대해 “(폭력의 정도가)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주요함을 볼 때, 상대에 대한 감정과 폭력 이후 용서를 구하는 가해자의 태도 등이 관계중단의 의지와 행동을 무력화시킴을 알 수 있다. 폭력 피해 직후 상대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는 응답이 공통적으로 높게 나타나지만, 분노는 희석되며 “사랑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이는 단지 피해자의 폭력에 대한 허용 정도나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너를 많이 사랑해서 그래”, “다 너를 위해서야!”, “사랑한다면서 이것도 못 해줘?”,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등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이 폭력과 함께 행사하는 언설처럼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은 ‘사랑’을 명목으로 은폐되고, 이해받고, 정당화된다. 또한 ‘사랑’이란 감정과 행위, 관계를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봉합된 ‘폭력’은 ‘되도록’ 당사자 간에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방치된다. 



4. 혼자서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 


폭력 피해에 따른 반응 및 조치에 대한 응답에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등 개인적으로 대응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별다를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과 상의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경우(31.5%)도 대부분 상대가 동료나 선후배에 국한되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상위 3개 이유는 “심한 폭력이 아니고”, “창피하고”,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었으며, 도움을 요청한 상대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책임 전가, 폭력에 대한 과소평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도움 요청을 차단하거나 시도를 좌절시키는 등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일으키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 등 공적 지원체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현저히 낮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폭력 피해 이후 조치에서 전문상담기관에 알린 경우는 2.0~3.2%,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1.2~8.5%에 그쳤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오랜 기간 폭력이 지속되고 심화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고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한 후 상담을 요청한다. 경찰신고는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행위가 발생했을 때 가능하고, 있다 해도 대부분 증거가 없어 피해자들은 차라리 심각하게 맞아서 폭행으로 고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신체적 폭력조차 신고율이 14%에 그쳐 데이트폭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암수율이 높은 범죄임을 알 수 있다. 


  




데이트폭력 피해 현실을 통해 본 과제


  응답자들은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으로 ‘접근금지 등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 ‘가해자처벌 등 법적 조치’, ‘피해자 치유·회복을 지원’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실태조사 결과와 응답자들의 정책제안을 토대로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과 데이트 문화의 변화가 요구된다. 



데이트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나 대응은 데이트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쉽게 좌절되곤 한다. 우리 사회는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쯤으로 사소하게 취급하며,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사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알기 때문에 피해당사자는 폭력을 인지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대응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친구가 데이트폭력을 겪고 있을 때 자신은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은 “친구의 말에 경청한다.”였다.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은 “헤어지라”였다.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해당사자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관계중단에 대한 피해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별 주문은 오히려 자책감을 가중해 피해자를 고립시킬 수 있다. 폭력이나 폭력적인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선택을 넘어서는 문제다. 데이트폭력은 ‘폭력’의 문제이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범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데이트폭력 피해를 드러내고 대응하면 중단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실현이 가능한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재는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피해를 악화하는 주요 원인이다. 데이트폭력은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연애각본, 집착과 통제를 ‘정상적’으로 만드는 데이트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랑’, ‘몸/성’, ‘연애/관계’에 대한 성찰과 점검을 통해 차별과 폭력으로 형성·유지되는 관계에 균열을 내고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에 대한 상상할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성평등·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및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2. 사법처리 시 데이트폭력 피해경험의 특성과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을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사법처리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데이트 관계’였다는 것은 피해자에게는 전혀 고려되지 않거나 피해를 희석하는 근거가, 가해자에게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근거가 된다. 피해자는 ‘왜 도망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가해자와 왜 다시 연락하거나 만났는지.’ 등 ‘완벽한 타인’에 의한 폭력 상황의 맥락에서 피해를 의심받는다.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와 친밀한, 사랑하는 관계를 강조하며 폭력 사실을 부인하거나 피해자의 방어적 행동, 폭력을 막기 위한 압력행사나 피해회복을 위한 정당한 요구의 본질을 왜곡해 피해자를 쌍방폭행,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고소한다. 양형 판단 시에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등 가해자가 주장하는 범행동기가 감경사유로 반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적 신뢰관계에 있는 자에 의한 폭력이기에 폭력과 피해가 중해도 가중요소로 고려되지 않는다.


 피해 여성들은 정책과 실제 집행의 간극에서, 친밀한 관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피해자의 구조요청으로 경찰이 출동해도 가해자가 데이트 관계임을 밝히면 “둘이서 잘 해결하라”는 식으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는 오히려 가해자로부터의 보복 위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데이트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밀폐된 공간에 있는 상황에서 발생할 때가 많으므로 경찰신고는 피해자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경찰은 출동했을 때 현장 상황뿐만 아니라 이전의 폭력피해 등을 고려해 잠재적 위험성을 자세히 파악하여 개입해야 하며,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하고 피해자 신변안전조치 등을 통해 피해자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3.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은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에 의한 젠더폭력이며, 언어적·정서적·신체적·성적·경제적 폭력 등을 동반하여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삶을 파괴시키는 사회적 범죄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은 성폭력·가정폭력 등을 중심으로 한 현행 여성폭력 피해자 상담과 의료적, 법적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복합적인 폭력 중에 ‘성적 폭력’에 한해서만, 이도 성폭력으로 고소했거나 입증 가능한 경우에만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권과 안전 보장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전문성 확보를 위한 노력과 정부 차원에서 데이트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가능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4. 스토킹범죄를 분명히 처벌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위협과 폭력으로부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 현행법상 경범죄처벌법으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으나 범칙금 8만 원이라는 미약한 수준의 제지에 그쳐 재발 방지에 실효성이 없다. 덧붙여 스토킹을 ‘경범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토킹은 여전히 “구애 행위”나 “마음 정리의 과정” 정도로 미화되며, 개인들 간에 해결해야 할 사적인, 감정적 영역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은 스토킹을 폭력이자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을 확대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1999년부터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온 스토킹 처벌법 제정,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생활형성을 침해’하는 반인권 범죄행위인 스토킹 범죄에 대해 ‘형사 처벌 원칙’을 분명히 하고, 성별화된 폭력이자 친밀한 관계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스토킹범죄의 특성을 반영하고 피해자의 신변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한 내용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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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2012년 가정폭력 정당방위 사건으로 4년형을 받으신 정숙현씨(가명)가 가석방되어 2016년 4월 11일, 사무실에 방문해 주셨습니다. 


'정당방위 사건'이란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가 국가와 사회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가해자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가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말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를 '정당방위'로 규정, 꾸준히 피해자를 지원해오고 있습니다. 가정폭력의 극단에서 발생하는 이 같은 안타까운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가정폭력을 예방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정숙현씨에게 응원을 보내며, 김홍미리 회원의 글을 함께 싣습니다. 




정숙현씨(가명)가 가석방되었다. 정당방위 판결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그리고 4년을 거의 다 채우고 나오긴 했지만 정숙현씨의 무죄석방을 위해 애쓴 한국여성의전화 회원과 활동가들에게 이번 가석방의 의미는 작지 않다.


2012년 여성의전화 지역운동팀에 있으면서 '가정폭력없는 움직이는 마을만들기'가 한창이던 그해 여름, 출근해서 본 뉴스에 우리 동네에서 가정폭력 정당방위 사건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서울oo경찰서는 17일 수년간 폭력을 휘둘러온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정모씨를 붙잡아 조사중.. 정씨는 지난 5년 사이 3번 가정폭력으로 남편을 경찰에 신고했으나 그때마다 처벌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져..."


그랬을 거다. 가해자가 남편일 때 그를 제발 감옥에 쳐넣어달라고 말하지 못했을거다. 홀로 곤경을 겪고있을 이 분을 빨리 찾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여성의전화와 같은 단체를 몰라 홀로 '살인죄'로 재판을 받을 경우, 아내들은 정당방위는 물론이고 가정폭력 사실 조차 인정받기 어렵다. 감히 남편을 죽였다는 괘씸죄. 잔뜩 벼른 괘씸함의 정서가 가정폭력 피해 아내들의 생존권 따위를 고려할 리 없다.


관련 기사를 뒤져서 자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관내에 있는 초등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분께 부탁드려 오늘 연락없이 결석한 학생이 있는지를 수소문 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마을로 들어갔던, 가정폭력없는 움직이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참 시의적절하게 제 기능을 해주었다. 물론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이럴때 필요한게 네트워킹이고, 연결된 이후의 전방위적인/ 전문적인 지원인 거다. 지역운동팀의 역할은 소재파악까지. 이제 상담소와 인권정책국이 움직인다.


경찰서로 달려가고 상황을 파악하고. 재판지원이 시작됐다. 법무법인 원의 원민경 변호사가 흔쾌히 사건지원을 맡아주셨다. 마을 사람들이 정숙현씨의 석방을 바라는 탄원서명에 동참해주었다. 역시나 법원은 가정폭력 아내의 정당한 자기방어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모든 과정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닐거다. 정당방위를 30년째 인정하지 않는 중이라도 꼐속꼐속꼐속! 정당방위를 주장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같은 노력들로 4년형을 받았다. 그 4년동안 고미경 대표를 포함해서 여성의전화 회원분들이 편지와 면회를 이어갔다.


이제야 여성의전화에 '첫' 방문했을 정숙현씨. 나는 뵌적도 없지만. 앞으로 아이들과 웃을일만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한국여성의전화_회원_활동가_너무멋진거아님‬?

‪#‎여성폭력_근절_당신과_나의_우리모두의_책무‬



김홍미리_한국여성의전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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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폐지

그 뒤에 남겨진 것들


이동화 한국여성의전화 전화상담회원

 



이제 어쩌나? 나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였는데…….”

 

간통죄 폐지 이후 내담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내담자는 울먹였다. 그녀는 결혼 30년 동안 남편의 폭언폭력외도를 참고 견디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구박을 해도, 이혼 과정에서만큼은 간통죄로 고소해서 개망신 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단다. 내담자에게 간통죄는 일종의 무기 혹은 힘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힘이 쭉 빠져 버렸어요. 나 같은 사람은 어찌 살라고. 돈 있고 잘난 여자들은 괜찮겠지만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이제 남편이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더 뻔뻔하게 굴 것이라고, 더 큰 소리치며 망나니짓을 하고 다닐 거라 말했다. 여차하면 이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걱정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간통죄를 폐지한 국가에 대해 원망을 토로했다.

 

가정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며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다른 내담자는 정말 외롭고 힘들어서 그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껴서 정리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이를 알게 되었단다. 결국 그녀는 간통죄로 이혼하게 되었고, ‘돈 한 푼 없이쫓겨나 아이들도 못 보게 됐다고 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직장까지 잃은 그녀는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했다.

 


간통죄는 왜 문제적인가

 

간통죄는 가정의 기초인 혼인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법을 선량한 성도덕,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가족생활의 보장 등을 위해 유지해왔다고 한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과 도덕성, 부부관계, 가정 유지 등에 간섭해서 벌을 주겠다는 의도나 다름없었다. 또한 간통죄는 선량한 성도덕혹은 결혼한 부부가 지켜야 할 상호간의 신뢰와 성실성을 국가가 규정짓고, 이 틀을 벗어나면 철퇴를 가하던 위험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226, 간통죄는 62년 만에 폐지되었다. 간통죄는 국민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고, 기본권인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간통죄의 처벌을 통해 혼인제도와 부부간의 정조 의무를 강요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국가권력이 개인의 성생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의지를 존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법은 1%의 낮은 실형 선고 비율로 처벌이 미비하였고, 지난해 간통 혐의로 기소된 892명 중 구속된 피고인이 단 한 명도 없는 등 억지로 유지되어온 유야무야한 법이었다.

 


간통죄 폐지를 환영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심각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면서 사회적 약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있다. 경제력이 동등하지 못해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했고, 그렇기에 자신을 희생해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사례가 많다. 또한 이들에게는 이혼이라는 방법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따라주지 않기 마련이다.


첫 번째 상담사례에서 보듯, 어떤 내담자는 오랜 세월을 참고 또 참으며 지냈다. 언어적·경제적 폭력 및 정서적 괴롭힘 등은 차치하더라도 외도 행위에는 처벌이 가해지길 원한다고 했지만, 간통죄가 폐지된 후로 남편이 도리어 큰 소리 치는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경우에 내담자에게 결혼 생활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의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상담사례였다. 또한 앞으로 내담자가 상황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두 번째 상담사례에서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들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을, 한 번의 실수로 그 간 내담자의 고생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부부간의 신뢰와 성실성이 국가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상황에서, 그녀의 결혼생활 유지를 위한 노력은 일방적으로 무시된 결과인 것이다.

 


간통죄 폐지에 따른 보완이 필요하다

 

간통으로 인한 형사 처벌은 없어졌지만 민사적 절차를 통한 보완을 기대한다. 결혼 제도 안에서 파탄의 귀책사유가 있는 배우자에게 민법상 강력히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이혼 시 위자료 지급의 방식이 기존의 최대치에서 더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또 양육권이나 양육비의 미지급 등에서도 기존의 안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간통이나 외도의 문제를 떠나 큰 틀에서 혼인 파탄의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와 정서도 매우 중요하며, 실제로 공평하게 진행된 사례가 등장하길 바란다.

 

결혼을 통해 부부들이 합의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만족스럽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필요할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 시점에서, 국가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만드는 것이 국민을 보호하는 길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여성들이 더 당당하게, 힘 있게 자신의 역량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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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 후 ③] 윤필정씨 정당방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마주하며



윤필정씨 정당방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마주하며

 

유미|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지난 20139,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던 한 여성이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사건이 오랜 세월 의 가정폭력 피해로 인해 발생한 정당방위 사건이라 판단하고, 법무법인 ()원과 함께 공익소송으로 위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정씨(가명)를 지원했다. 상담회원과 변호사, 로스쿨 학생들이 참여한 정당방위사건지원팀은 1심에서 대법원 선고 재판에 이르기까지 본 사건의 핵심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당방위 사건임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거리 서명 운동과 함께 다음 아고라와 뉴스펀딩 사이트에서도 서명 운동을 벌여 총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윤필정씨 사건의 정당방위 인정을 촉구하는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1년 반이란 시간이 흐른 올해 2, 대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윤필정씨는 최종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남편이 사건 발생 3일 전 윤필정씨의 목을 노끈으로 조르고 목에 식칼을 들이대고, 사건 발생일 오전 망치로 윤필정씨의 머리통을 부수어버리겠다고 위협한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남편이 윤필정씨를 괴롭히기 위한것이지 실제로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 윤필정씨가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할지라도 마음만 먹으면도망칠 수 있었다고 하며 이 사건이 남편의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정당방위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작년 5월과 10월에 각각 있었던 1, 2심 판결내용과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윤필정씨의 몸은 20년 넘게 시달려온 폭력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굳어지고 위축됐을 것이다. 윤필정씨에게는 가정이라는 공간이 연일 아무도 모르게 고문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곳과도 같았을 것이다. 한국사회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자 살인 사건 재판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고, 실제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정폭력방지법과 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그 법과 제도를 집행하는 사람들이 가정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겪는 공포와 오래도록 폭력을 견뎌야 했던 맥락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가 가정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반대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를 사망하게 하는 불행한 사건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윤필정씨의 자녀 수지(가명)는 가정폭력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무거운 비밀이라고 했다. 비록 윤필정씨 사건은 정당방위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여성의전화는 그 무거운 비밀을 가진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분노하고, 피해생존자들을 지지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윤필정씨 사건 지원에 함께했던 법무법인 유()과 본회 정당방위사건지원팀, 그리고 서명에 함께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201410월 발생하여 현재까지 지원하고 있는 가정폭력피해자 정희정씨(가명) 정당방위 사건에도 관심과 지지로 힘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윤필정씨의 딸, 수지에게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 소장님^^ 수지입니다. 메일 확인 잘 했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고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오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막막했던 20139월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1심 첫 번째 공판에서, 선고를 내려줄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어렸던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안아주고 도와주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선고 날을 1.2심 두 번 겪어보고 저도 많이 단단해졌는지, 대법원 기각판결에 대해서는 마음이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참 울컥하는게... 15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슬퍼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고생 많이 해주신 감사한 모든 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무거운 비밀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렵게 말하고, 남의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촬영도 하고, 숨 막히는 법정에서 증인을 서고, 엄마를 마주하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버거울 때 건네주셨던 티슈, 1심 선고 날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던 다 같이 먹은 북부지법 앞 칼국수, 부족한 문장력에 밤새 고민해서 썼던 탄원서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큰 용기를 받았던 아고라 서명운동, 혼자 끙끙 힘들었던 동생과의 생계를 도와준 모금운동, 인내를 배우게 된 2심 재판과정...수많은 일들이 떠오르고 내 옆에 정말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구나..다시 한 번 깊게 느낍니다.

 

지금은 미뤄두었던 제 삶을 찾아 평범하게 회사에서 열심히 적응하고 일하며 지내고 있는데, 수지로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매사에 더욱 감사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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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사건 그 후 ] 무고죄 무죄 판결에 부쳐



합리적 의심’? 피해자 사라진 법정

20152월 무고죄 무죄 판결에 부쳐 



완두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왜 그 시간에 거길 지나갔습니까?”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묻지 않는다.

많이 배운 사람이 어떻게 강도를 당할 수 있습니까?” 강도 피해자에겐 묻지 않는다.

가만히 있었으니 당신도 동의한 거 아닙니까?” 학교폭력 피해자에겐 묻지 않는다.

 

사랑하는 관계입니까?” 성폭력 피해자에겐 묻는다.




불의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가당치도 않은 이 질문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합리적 의심' 이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질문한다.

 

201312월 말, B씨는 지인에 의한 강제추행으로 상해를 입고 가해자를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과정 중 검사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허위사실로 고소하였다며 무고로 기소하였다. 유독 성폭력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피해 내용을 벗어나 피해 자격을 묻는 일은, 이번 무고 기소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검사는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간과하고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가해자와 친분관계에 있는 주변인들의 진술에 근거하여, 어렵게 성폭력 고소를 결심했던 B씨를 무고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이후 B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피해자라면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는 기존의 편견을 답습한 강압적인 질문과 피해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2015212, 의정부지방법원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피고인의 일관된 진술과 이에 대비되는 증인들의 엇갈린 진술, 피고인의 죄를 증명하기 어려운 점 등을 거론하며,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이 있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B씨에게 무고죄 무죄를 선고하였다.

 

여성가족부 2013년 전국성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피해를 경험한 조사대상자 중 단 1.1%만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많은 경우 피해자들은 가해자와의 관계, 평소 행실, 과거 이력 등 피해 당시 상황과 무관한 일로 끊임없이 비난과 의심을 받고, 무고의 피의자로 몰려 유죄판결을 받기도 한다.

 

법조계 내 고착된 성에 대한 이중 잣대와 남성 중심적 해석의 폐해가 또 한 번 드러난 이번 사건을 통해 검찰은 성폭력 범죄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책임을 통감하며 자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함께 질문해 봐야 할 것이다.

사회적 범죄인 성폭력 피해를 보는 합리적 의심은 누구를 위한 기준인지,

성폭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지,

성폭력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며, 이 중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지 않겠다."99%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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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사건 그 후,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원했던 사건,

그 후의 이야기를 엮었다.


한 사건의 법적 절차가 종결되었다는 것이

끝을 읨히하지는 않는다. 사건마다 다른 서사가 있지만

결국 부딪히는 기막힌 현실은 꼭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때로는 승리의 기억이든,

원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 기억이든,

이 속에서 여성의전화가 포착한 진실이 중요하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사건에 대한 보고와 함께

판결 과정의 이면에 드러난 

또 다른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사건 그 후 ] 정희정씨 사건 재판방청후기



허상과도 같은 

객관적인증거에만 매달린 재판부


가정폭력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정희정씨 국민참여재판 참관 후기



김윤정한국여성의전화 전화상담회원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201410월에 발생한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의 피고인 정희정씨(가명)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재판은 지난 25-6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고,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와 회원들이 이틀간 참관하였다. 다른 재판과 달리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참여하여 판결에 영향을 주는 제도이기에, 재판결과에 기대와 희망을 가져 보았다.

 

그러나 증인심문, 양측의 쟁점에 대한 변론과 진술 과정에서 배심원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 나의 바람이 헛된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법원의 결정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사법부 판사, 검사의 주관적 견해와 가치 판단이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현실, 또 가정폭력의 특수성을 간과해 일반화, 보편화된 법 해석과 논리로 판결을 내리는 재판부의 오류. 30년간 지속된 가정폭력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단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으로 몰고 가, 오직 살인이라는 결과로만 치부하는 재판부의 권력 앞에 무기력함과 참담함을 느꼈다.

 

정희정씨가 폭력과 학대를 받으며 살아온 30년의 세월을 헤아리지 못한 채, 허상과도 같은 객관적인증거에만 매달린 재판부의 불공정한 판결은 법의 횡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30년의 가정폭력 피해 상황을 제출한 병원 진단서 부수로만 확인하여 지속적인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불합리한 재판부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분노, 무기력, 상실감, 허탈함 등 수많은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다.

 

재판관이 법정에 입장할 때 모든 사람은 기립한다. 그만큼 법은 존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권력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번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법이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수백억 원 대 자산가의 부인이었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 명의의 카드 한 장 조차 없었던, 정희정씨의 처절했던 삶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정의가 무엇이고,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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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윤필정씨 선고 재판을 다녀와서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윤필정씨를 만나러 가는 구치소에는 단풍이 빨갛게 들어 있었다. 그날은 윤필정씨의 선고재판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함께 걷던 윤필정씨의 딸 수지는 벌써 일 년이 지났다고, 구치소를 다니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계절의 변화를 몰랐는데 구치소를 다니다 보니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짙은 녹색의 나무을 보고, 가을에는 단풍이 드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수지는 그런 계절의 변화를 앞으로 1년이나 더 보아야 한다.

 

윤필정씨는 지난 51심 재판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우리는 1심 판결에 수긍할 수 없어 항소 했고, 검사측은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며 항소를 하였다. 2심 재판은 8월부터 시작되었다. 1심 판결에서 이혼 등 가정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윤필정씨가 그동안 경찰, 법원 등에 찾아가 가정폭력에 벗어나려 했던 노력들에 대해 증인심문을 통해 입증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윤필정씨의 2심 재판을 알렸다. 오마이뉴스와 다음 뉴스펀딩, 한겨레21 등 언론에 윤필정씨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려 윤필정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임을 알리고 재판부에 압력을 가하였다.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동화, 김윤정 회원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이 재판을 참관하며 윤필정씨에게 지지를 보냈다. 윤필정씨는 2심 재판 최후 진술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내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몰랐는데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자신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준 여성의전화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전하였다.

10242심 재판의 선고가 있던 날. 법원에서 만난 수지는 한층 수척해있었다. 수지는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 그리고 혹시 엄마가 나올 수 있으니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검사와 변호인의 쌍방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범행이 있기 3일 전 피해자가 피고인의 목을 노끈으로 조르고 식칼을 피고인의 목에 들이대기도 하는 등 육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을 했지만 결국은 살해 범행이 일어나지는 않았다피해자의 이러한 행위는 피고인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 일뿐 실제로 피해자가 피고인을 실제로 살해할 마음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자리를 회피하거나 나중에 해결하고자 했다면 큰 사고 없이 상황이 종결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남편이 윤필정씨와 함께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며 자신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엿보인다는 점과 남편의 가정폭력이 우울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상담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파국은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과 윤필정씨가 상담을 받은 것은 단 한번뿐이었고, 상담에서 남편이 무섭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윤필정씨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밤새도록 맞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남편이 상담한 노력만 인정하고 그 이후 남편이 윤필정씨를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을 지켜보았던 수지와 회원들 모두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수지는 눈물을 흘리며 판사님들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공포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을 행하는 아버지 입장만 이해하는 것 같다며 재판부를 원망하였다.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윤필정씨는 사건 전부터 앓아오던 자궁근종으로 인해 하혈을 하는 등 몸이 많이 좋지 않아 구치소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재판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날 판결문 어디에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윤필정씨 2심 선고재판으로 가정폭력에 의한 정당방위 인정은 또 미뤄졌다. 마치 대본이라도 있는 듯한, 한결같은 내용의 정당방위 사건 판결에 우리는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언제쯤 여성폭력에 대한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까? 판결이 있은 후 윤필정씨와 의논하에 대법원 상고를 결정하였다. 대법원 상고에서는 전향적인 판결이 나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회원들과 시민들이 윤필정씨 사건에 대한 관심과 지지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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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무고에 걸리면 어떡하죠?”

- 성폭력 피해자의 무고죄 재판을 지원하며

 

정은경|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치소라는 곳에 면회를 갔다. 함께 손을 잡고 끌어안고 토론을 하던 나의 첫 피해지원자. 그녀가 성폭력 고소 재판을 진행하던 중 무고죄로 재판정에서 바로 구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난 후 그녀를 본 순간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전문상담원의 역할로 그녀를 위로하고 상태를 살피라는 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의 부탁이 있었지만 면회시간 20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의 죄책감만 커지는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햇수로 5년째 상담 및 다양한 자원 활동을 하면서 소소한 보람을 느끼며, 일상을 유지하던 나에게는 더욱 말이다. 지난해 6월 성폭력상담소 소장님께 전화한통이 걸려왔다. 내일모레 대질심문을 받는 성폭력피해자가 신뢰인 동석을 요청해왔다며 오후 반나절 정도 시간이 되면 함께 해달라는 전화였다. 사명감과 의욕(?)을 넘어 현장에 함께 하고픈 욕심에 두려움을 떨치고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이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앉아 피해자의 편이 되어 반나절을 보내며 수사현실을 경험하였다. 이후 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형사의 전화를 받고 경찰서에 가서 심문내용을 확인하고 피해자와 밥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과로와 겹친 스트레스로 몸이 아파 상담을 쉬게 되었고 그 일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성폭력 재판을 진행하면서 너무 속상하고 우울해서 죽을 것 같다는 문자였다. 혼란스러웠다. ‘확실한 성폭력피해가 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 후 피해자가 두 건의 무고에 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뭔가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사가 '피해 후 상당시간이 지났다, 진술의 일관성이 업삳' 등의 이유로 그녀를 무고죄로 기소한 것이다. '성폭력피해자'였던 그녀가 졸지에 무고의 '피의자'가 되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3년 성폭력 관련법이 엄하게 개정되면서 무고죄를 강력 처벌한다는 법원의 발표가 있었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죄의 누명을 쓰게 될까 두려워 고소를 주저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신고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꽃뱀(?)에 엄정하게 대처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상담실에서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사건이 분명함에도 무고에 걸리면 어떡하죠?”,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당황스러운 상담전화들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경찰과의 상담을 거쳐 고소를 결정했음에도 무고에 걸리게 되어 실형을 받을 처지에 놓인 성폭력무고죄사건도 속속 발생했다. 경찰의 판단을 믿고 고소했는데 검찰 측에서는 경찰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단지 경찰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일축하고 마는 것이다. 경찰의 말을 믿고 고소했다는 정황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검찰 측의 입장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사권의 유무와는 별개로 최초로 만나는 공권력의 판단에 많은 의지를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안심하고 고소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는 기관- 가령 경찰 혹은 공인된 상담센터 등-에서 조언을 받아 피고인이 고소에 이르렀다면 그의 무고의 고의를 판단하는 데 있어 그 정황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폭력 범죄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 또한 이렇게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성범죄의 경우에는 무고죄와 관련, 법에 특별조항을 신설하는 등 강력한 입법 조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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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의 편지

 - 가정폭력피해자 정당방위 사건 윤필정씨(가명)의 그 후 이야기 -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윤필정씨(가명)의 재판이 대법원 상고에서 기각되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지지서명에 약 2만 여명이 참여해주셨고, 상담회원과 로스쿨 학생들, 변호사들 참 많은 사람들이 윤필정씨의 무죄 판결을 위해 함께해왔는데요.

 

윤필정씨의 딸인 수지(가명)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장문의 문자를 보내와 공유합니다.

 

감옥 안이 아닌 창살 밖에서 하루 빨리 필정씨를 뵙기 바라며,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한국여성의전화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수지입니다.

 

메일 확인 잘 했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고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오네요.

아무것도 모르고 막막했던 2013년 9월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

1심 첫 번째 공판에서, 선고를 내려줄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어렸던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진심으로 안아주고 도와주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선고 날을 1심.2심 두 번 겪어보고 저도 많이 단단해졌는지, 대법원 기각판결에 대해서는 마음이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참 울컥하는게... 1년5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슬퍼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고생 많이 해주신 감사한 모든 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무거운 비밀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렵게 말하고, 남의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방송 그것이 알고싶다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촬영도 하고, 숨 막히는 법정에서 증인을 서고, 엄마를 마주하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버거울 때 건네주셨던 티슈, 1심 선고 날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던 다 같이 먹은 북부지법 앞 칼국수, 부족한 문장력에 밤새 고민해서 썼던 탄원서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큰 용기를 받았던 아고라 서명운동, 혼자 끙끙 힘들었던 동생과의 생계를 도와준 모금운동, 인내를 배우게 된 2심 재판과정...

 

수많은 일들이 떠오르고 내 옆에 정말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구나..다시 한 번 깊게 느낍니다.

 

지금은 미뤄두었던 제 삶을 찾아 평범하게 회사에서 열심히 적응하고 일하며 지내고 있는데, 수지로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매사에 더욱 감사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윤필정씨 사연보기 http://me2.do/FczP6dNn

 

 

* 응원 댓글을 달아주시면, 수지씨에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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