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맥락으로 뜯어보기 

- 남성성과 젠더 -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석박지혜


어쩌면 바로 곁의 이야기


 날씨가 좋았다. 미세먼지도 낮은 데에다 강의 장소가 북한산 근처라 나무가 많아 한결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경사진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걷다 보니 한국여성의전화 본부가 보인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서로 인사하고 음식을 나누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다.


3월 30일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진행된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 남성성과 젠더 5회차 강의가 시작되었다.


 권김현영 강사는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남성성이란 무엇인가요?’ 답변이 줄을 이었다. “힘이 세고. 씩씩하고. 책임감 있고. 술 잘 마시고. 리드하고...” 사회와 개인이 생각하는 남성성은 힘이 강하고 이끌어가는 존재,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한국 남성 고유의 특성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것임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의 남성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렸다. 그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한국 남성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특성은 씩씩함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특성이에요.” 권김현영 강사는 이야기한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한 번씩은 남자들에게 툭툭 떨어져 내리는 씩씩하게 자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씩씩하기만 하라 하던 목소리들은 아주 익숙하게 일상에 자리 잡았다.


 왜 그렇게 ‘씩씩함’에 집중하게 된 걸까. 이해를 위해서는 역사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 아래로는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 상대적으로 약한 국력은 힘에 대한 집착과 열등감을 가지게 하였다. 씩씩함은 결국 신체성과 힘에 대한 강조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역사는 남성의 유실과 아시아 남성 중심 혈통주의에서 비롯된 여성의 유기까지 불러오게 된다. 가정과 아내, 자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씨를 지닌 남성들을 지키는 것에만 열중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남성 유실의 시대는 끝나지만, 여성 유기의 맥락은 여전히 이어져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었음에도 고개 숙인 아버지상을 만들어내 기 살리기 운동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확장되어 남자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으며 남지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만들어 받아들이는 여성은 숭배, 수용하지 않고 남자를 선택하는 여성은 매도와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소년


 “현대 남성은 성인이 되지 않고 동시에 될 수 없는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되는 게’ 아니라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자연히 남성은 역할이나 책임이 관련된 부분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이미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니 당연히 성장도 없다. 곳곳에서 수강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성숙한’ 존재들에게는 돌봄이 필요하다. 사회에서는 돌봄을 여성에게 책임지운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의 희생을 통해 존재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근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남녀관계를 연애/성적인 의미가 있다고만 여기며 성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한다. 끊임없이 남근 중심적 사고의 남성과 사회가 상호작용하여 남성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회가 일종의 거대한 남성 양육 인큐베이터를 구축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이런 구조와 구조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남성이 타자와 동등한 관계 맺기 방법을 배울 기회를 상실하게 함과 동시에 남근 중심적 사고를 거부하는 남성들을 매도하고 배척하기에 이른다. 더욱 심각하게도 남근 중심적 사회에서 배척당한 남성들은 극단적인 경우 자기 파괴적 성격마저 띠게 되는데 이럴 때도 분노의 화살은 여성에게 날아들어 깊은 상처를 낸다.


 20년간 한국 사회는 왜곡된 소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남성들이 소년에서 벗어나 성장하기 위해선 기생적 관계를 버리고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을지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야 함을 이야기하며 권김현영 강사는 강의를 마무리했다.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의를 듣는 순간순간 주변의 남성들이 떠올랐다. 힘도 없이 늙는 건 죄라며 힘을 유지하지 못한 채 노인이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본인은 퇴직 후 바로 아무도 없는 오지로 가서 혼자 살다가 죽을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 다정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지만, 남자가 씩씩하지 못하다며 혼이나 거칠어지고 말수가 줄어든 사촌 동생.


 그들과 오랜 시간 알아왔는데도 왜 남자는 씩씩함을 강요받는지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는 게 그렇게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 개인의 생각이며 집안의 과도한 강요라고만 여겼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넘어가도 되었을 문제였을까.


 한국 남성성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알게 된 후 그들을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남근주의 질서의 중심에 있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그 흐름에서 떨어져 나가 받게 될 비난을 봐오면서 아무와도 만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니 오지로 홀로 떠나자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된 아버지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특성들은 무시당한 채 씩씩함만을 폭력적으로 강요받고 적응하지 못하니 점차 배척당해 성격도 변하고 말수까지 줄어들게 된 남동생도 결국은 한국 남성성의 왜곡된 모습에서 비롯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하는 49기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은 2017년 3월 23일 ∼ 5월 26일까지 총 100시간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내용은 여성학, 여성주의 상담, 가정폭력상담의 특성 및 사례연구 등이며 자세한 내용은 여성의전화 홈페이지(https://hotlin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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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우리는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메리


2030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2030 실용연애 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2009년을 시작으로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데이트 관계를 만들어 감은 물론, 여성주의 관점에서 '연애문화'를 성찰하기 위한 데이트 대중강좌이다. 한국여성의전화의 기획 강좌이며, 올해는 5강의 강의를 창비학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전신청은 창비학당 홈페이지(http://www.changbischool.com/main.do)를 통해 가능하다.


강좌 

1회 ‘정상성’의 종말을 꿈꾸며: 삶, 관계,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 만들기.

2회 이성애를 고민하다: 이성애주의에서 비껴나 다양한 관계를 탐색해 봅니다.

3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멜로드라마 속 데이트폭력과 대안적 연애.

4회 “언니, 그 오빠랑 만나지 마요”: 데이트폭력 대응 내공 쌓기.

5회 우리에겐 피임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는 피임 그리고 성적자기결정권.



‘정상성’의 종말을 꿈꾸며: 삶, 관계,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 만들기

2017년 3월 24일, 김순남 성공회대 젠더센터 연구교수의 강의를 시작으로 <2030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가 열렸다. 일상 중 서점을 돌아다니면 자기계발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애에서도 계발서가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형화된 연애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는 강박마저 느낀다. 이러한 심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순남 교수는 근대 사회가 동질성, 유사성, 획일성을 강조하고 규범 외는 미숙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사람들이 경험을 교류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배제해버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강의는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연애 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사진 : 2015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김순남 교수 강의



이성애 ‘정상성’

흔히 사람들은 이성 간 연애 혹은 결혼을 함으로써 ‘내 인생의 반쪽을 찾는다’고 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이성 간의 교류가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연인이 소풍을 갈 때는 여자가 도시락을 싸 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연인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전에 여성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랑의 기술을 표피적으로 습득하길 강요하고 이를 수행해야만 자아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낭만적 신화’를 생산한다.


문제는 성을 근거로 형성된 역할 수행이 젠더 권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 행정자치부는 저출산의 이해력을 높이고 지자체 간 출산 지원 혜택 자율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출산지도를 통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결국 결혼제도는 재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결혼제도의 혜택을 이성애에게만 부여하고 있음을 체감하였다. 결국 이성애 정상성에 근거하여 설정된 성 역할을 여성의 책임으로 설정하고, 성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허용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자존감, 완전한 존재로서 나

그렇다면, ‘정상적인 규범’을 수행하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유튜브 채널 ‘프란-PRAN’에서 ‘비혼 할머니가 편견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삶을 솔직하게 소개한 김애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정상 가족’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김애순 할머니는 76년간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해 “남자 없어도 얼마든지 떳떳하고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거 한다”라며 “남자를 의지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애순 할머니는 늙어서 혼자면 외롭다는 편견에 “결혼을 해도 외롭고 하지 않아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라며 “나이 들면 결혼을 했던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똑같이 혼자가 된다”라고 답했다.


김애순 할머니의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라는 미성숙한 인간이 결혼을 통해 영원히 완성된 상태가 될 것이라는 낭만적 신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최근 비혼이라는 단어가 이슈화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 다수의 사람이 기존의 이성애적 가족관계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김애순 할머니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관계

김애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성애적인 가정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밸런타인데이에 커플들이 사탕을 주고받도록 시장이 자극하는 것처럼 사회는 알게 모르게 이성애주의와 커플주의를 강요한다. 하지만 김애순 할머니의 비혼주의 삶 속에서 이성애 커플 중심의 낭만주의 신화는 더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김순남 교수는 ‘관계를 퀴어링(queering)하라’고 제시한다. 퀴어는 단순히 성적 지향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성애 규범성뿐만 아니라 ‘규범성’ 자체에 대한 균열과 변화를 퀴어라고 일컫는다. 가령, 커플 혹은 부부라는 정형화된 관계는 이성애를 근거로 규범화된 행동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한다. 김애순 할머니와 같은 비규범적인 존재로서의 퀴어는 이러한 이성애 커플 중심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물어본다, 규범 속에서 정말로 안정감을 느끼냐고.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관계적 시민권’에 초점을 맞춰 볼 필요성이 있다. 관계적 시민권이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권리를 뜻한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혈연 혹은 부부가 아니어도 사적인 영역의 관계를 공적인 관계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다. 미국에서는 9.11 참사 당시에 죽은 희생자의 국가 배상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다각적으로 진행 된 바 있으며, 법적인 배우자나 혈연관계 외에 ‘친밀성’을 근거로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생활동반자법’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의원의 ‘동반자등록제’가 제시되면서 관계적 시민권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미혼모 가정, 동성 가정, 다문화가정, 한 부모 가정, 1인 가구 등 법적으로 인정된 정상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강의를 듣고 어렸을 때 친구들이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결혼으로 단순화되어버린 삶 속에서 나의 주관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현재에서도 남들의 눈에 비정상으로 비추어지는 관계는 낭비로 치부해 버리며 살아왔다. 규범화된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주저하던 본인에게 있어서 “시간을 들여 삶, 관계, 사랑을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새로운 아비투스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김순남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더는 정상성이라는 기준으로 나의 감정을 옥죄이지 않는 해방감을 얻을 수 있었던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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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아내폭력의 실태와 대책-


한국여성의전화 제7기 기자단 정윤하


3월 31일 금요일 오후 2시 서울 불광동에 위치한 (사)한국여성의전화에서 아내폭력의 실태와 대책을 주제로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의 강의가 열렸다. 올해 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제49기 여성상담전문교육은 지난달 23일 시작해 다음달 26일까지 약 3달간 진행된다.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실습과정까지 마치면 가정폭력전문 상담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강의는 폴레트 켈리의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시가 흐르는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화자는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아내폭력 피해자다. 남편은 범죄를 저지른 다음날 어김없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화해의 꽃을 선물한다. 화자가 자신의 장례식에서 결국 마지막 꽃 선물을 받는 결말로 영상이 마무리되자 장내는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아내폭력의 실태

영상의 여운을 가라앉히며 펼친 책자에는 07년 여성가족부가 가정폭력상담소와 보호시설 이용자 612명을 분석한 아내폭력 내용별 조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1주일에 2-3회’에서 ‘거의 매일’의 빈도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경우 언어적 폭력(모욕적인 말, 욕설, 고함 등)이 56.6%로 가장 많았다.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일일이 허가받고 돈을 쓰게 하기, 돈을 쓴 곳을 추궁하기 등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폭력도 32.0%의 높은 수치를 보였다. 때리려고 위협했다(28.2%), 원치 않는데도 성관계를 강요했다(24.6%)등 신체적·성적 폭력도 심각한 빈도로 발생하고 있었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 그 정도를 볼 때 1주 정도의 치료를 요하는 상태가 절반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가장 많았다. 신 소장은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흉기가 될 수 있다”면서 “유리컵을 던져서 깨거나 문이나 벽을 쾅 치는 등의 소리를 내서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동도 심각한 정서적 폭력”이라 설명했다. 


신 소장은 이어서 “가정폭력이 더욱 잔인한 이유는 가족 관계가 해체되기 전까지 폭력이 반복·지속되거나 심화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해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가정폭력 지속기간의 평균은 약 11년 2개월이다. 응답을 더 들여다보면 ‘폭력의 횟수가 점차 늘어감’(22.5%), ‘폭력의 정도가 심해져감’(25.8%), ‘여러 종류의 폭력으로 확대되어감’(15.0%) 등 총 63.3%의 사례에서 폭력의 심화를 경험했다.




아내폭력의 원인

신 소장은 “위계가 세워져 있는 구조는 폭력을 내포한다”며 아내폭력의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고정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가해자에게 가정뿐만 아니라 남녀관계, 사회생활 중에서도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이용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반대로 이러한 권위에 순응하여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무기력함, 수치심 등을 내면화하게 된다. “폭력 피해 여성분들 보면요, 잘 하시는 게 정말 많아요. 그런데 상담할 때 보면요, 본인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세요.” 교육자들 사이에 안타까운 한숨 소리가 퍼져나갔다.


교묘한 것이다. 단순히 관심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학대 남성도 피학대 여성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초반에 저항을 보이지만 점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실망감과 좌절감을 얻고 저항을 점차 포기하는 흐름을 보인다.


‘폭력 행위’-‘화해’-‘긴장 조성’ 3단계 반복의 ‘피학대 여성 증후군’(maguigan, 1998)은 무기력이 확대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학대 남성의 비위를 맞추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그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거나 저항을 할 때 폭력이 발생하는데, 이후에는 폴레트의 시처럼 ‘꽃을 주는’ 등의 일방적 화해가 이어진다. 지난밤엔 폭언과 구타를 가하고 오늘 아침은 비굴할 정도로 화해를 취하는 남편의 태도는 피해자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린다. 종내에는 전기 충격을 가해도 도망치지 않는 셀리그만의 개처럼, 무기력이 서서히 학습된다.


어떻게 풀 것인가

때문에 아내폭력 해결을 위한 개인적 차원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도록 돕는 ‘지지세력의 여부’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피해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내면화한 피학대 여성은 수치심을 키워가며 대인 기피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신 소장은 “반대로 내가 이렇게 맞고 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어 밖에서 자신을 아주 건강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며 “두 경우 모두 주변의 지지적인 반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한 피학대 여성이 ‘네가 좀 더 잘해봐라’, ‘남자들은 다 그렇다’ 식의 반응을 받는 일이 많다는 보도가 스쳐지나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사회적·제도적 차원의 변화가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프라는 괄목할 만큼 늘어났다. 현재 전국 244개소의 상담소에서 매년 12만여 가정폭력 상담을 받고 있으며 피해자 보호시설은 전국 6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인프라의 확대 속도에 비해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도는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 소장은 “08년도 가정폭력 검거 건수가 1만 1,461건인데 구속 건수는 그 중 0.7%(80여 건)에 그친다”며 “14년도에도 전체 1만 7,557건 중에 1.6%(280여 건)만 구속되었다”고 우려를 표했다. 여성폭력 근절과 관련된 그 어떤 과제보다 사회적·법제도적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3시간의 긴 강의를 마치고 밖을 나오니 아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펼치자 거칠게 내달리는 기차에서 막 내린 기분이 들었다. 단면으로 인지해 오던 폭력을 전분가의 눈을 통해 낱낱이 조감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하고 압도적이었다. 무기력에 파묻혀 있는 당사자들과 스스로가 가여워 한동안 끙끙 앓을 강의였다.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연약한 봄비에 마음이 자꾸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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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3.31 실용연애특강 2강 ‘이성애주의에서 비껴나기’

부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오직 ‘나와 당신’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이린


한국여성의전화와 창비학당이 함께 준비한 실용연애특강은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연애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 강의마다 주제가 다르지만, 크게 관통하는 공통점은 우리 사회의 ‘연애 각본’을 들여다보며 ‘좋은 연애’란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해 본다는 것이다.


전체 강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링크(https://goo.gl/KNd1v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용연애특강’이라는 강의의 대주제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이 날 강의는 오랜 시간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해온 한채윤 인권활동가의 강의였다. 강사의 약력과, ‘이성애주의에서 벗어나기’라는 강의의 제목만 보면 ‘이 강의는 성소수자의 연애를 주로 다루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강의가 시작되자, 굳이 성소수자의 연애, 이성애자의 연애를 나눌 필요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서의 연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활동가는 연애를 하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태도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연인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더라도 스스로와 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함으로서 연인과의 관계를 지속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만약 연인이 변한다면,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연인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계속되었다. 구체적으로 ‘행복한 연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성 역할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기

“연인이 ‘나 요즘 주름이 늘어난 것 같아’라는 말을 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한채윤 활동가는 ‘연애를 하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각종 ‘연애학’ 서적 등과 실제 연애 과정에서도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이 질문에 수강생들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활동가는 가장 흔히 내놓을 수 있는 답인 ‘주름 하나도 없는데?’나, ‘그래, 그런 것 같아’ 같은 말은 자칫하면 연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연인이 이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제가 상담한 사례에서 연인 분은 30대 여성이셨고, 레즈비언 커플이었습니다. 30대 여성이면 주변에서 한창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을 나이에요. 그런데 ‘주름이 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는 건, ‘계속 이렇게 성소수자로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늙으면 이젠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생겼다는 거지요. 결국 이 질문에는 ‘내 눈에는 주름이 는 것 같지 않지만, 네가 불안하다면 주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답이 필요합니다.”


즉, 연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되, 연인이 사회 속에서 성 역할로 인해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연인을 상대방 그 자체로가 아닌, ‘남성’ 또는 ‘여성’ 둘 중 하나로만 받아들이면, 상대와 나 사이에는 항상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와 나는 가까워질 수 없고, 연애를 지속하려면 ‘사랑의 힘’으로 그 차이를 이겨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성 역할을 수행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를 연인 관계에까지 끌고 들어오는 것으로, 두 사람이 행복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연애를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의 결합’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성애주의라고 한 활동가는 말했다.


사진 : 2015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中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기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날 강의에서 한 활동가는 ‘감탄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칭찬은 상대의 ‘칭찬할 구석’을 찾아야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내내 계속 하기가 쉽지 않지만, 감탄은 순간순간 상대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더라도 감탄을 통해 분위기를 가볍게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분명히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했는데 상대가 버리지 않았을 때, ‘또 쓰레기 안 버렸지? 맨날 잊어버리네, 진짜 귀엽네.’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생활 전체가 감탄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 연인에게 자주 감탄을 해야 할까? 한 활동가는 ‘연애는 상대방이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흔한 사람’이지만, 연애를 할 때만큼은 상대방에게 ‘세상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이 날 한 활동가는 ‘연애를 행복하게 오래 하는 법’을 계속 설명했지만, 사실 연애는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특히 연인이 나를 몰아세우는 말을 하면 굳이 상대를 ‘고쳐 쓰려’ 하지 말고 얼른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난하거나, 가족을 욕하거나, 너는 왜 이정도 밖에 안 되냐고 나무라는 등이 ‘몰아세우는 말’의 예시에 해당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한번 연애를 하면 오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 연애를 끝낼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인의 잘못을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보다’며 합리화하느니,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활동가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주변에서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사례를 보면, ‘그러게 사람을 잘 만나야 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게 그런 말로만 끝낼 수 있는 걸까요? 우리 모두가 살다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해요.”


이 날 강의를 듣고 내가 연애를 하면서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연인이 변해버리면 어떡할지,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강의를 듣고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감정이었다. 내가 연인을 계속 사랑하고, 내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실용연애특강’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연애의 매 순간순간에 실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 강의였다. 연애가 ‘연인이 원하는 남성상’ 또는 ‘연인이 원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꽤 답답한 관계가 되어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연애 역시도 상대 그 자체를 사랑하고, 그 상대와 함께 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알게 해 준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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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여성에 대한 ‘일상’의 폭력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김민지


3월 23일 목요일 오후2시,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에서 이화여대 한국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허민숙 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주최하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과 성폭력 전문상담교육은 2017년 3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진행되며 두 가지 모두를 이수한 이들은 소정의 실습과정을 마친 후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전문상담원으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자원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사랑? 그게 뭔데!

이 날 강의는 ‘여성의 삶과 생활 속의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허 교수는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 사랑으로 보이는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동성 간의 결혼식 장면, 가난해 보이는 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젊고 아름다운 백인의 여성이 백인 남성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인정한다. 허 교수는 이런 사람들의 편견을 언급하며 사랑의 감정과 행위 역시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떤 장치들이 우리로 하여금 이들의 모습만을 사랑으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로맨틱한 사랑으로 포장되는 폭력과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돌봄노동

자본주의 사회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생산 노동을 하는 인력과 이들을 집에서 보조하는 재생산 노동을 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가사노동 자녀 출산 및 양육 등을 포함하는 재생산 노동이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노동은 무보수로 온전히 여성에게만 부담 되어왔다. 이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를 약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허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들이 가부장제를 강화 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이 강제로 여성에게 스킨십을 하거나 손목을 끌고 가는 장면은 분명한 폭력이지만 미디어는 이것을 사랑과 로맨틱으로 포장한다. 남성들은 폭력성을 ‘서투른 사랑’으로 해석하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애교와 권력관계

 남성에게 의존하는 위치를 여성에게 강요하는 비가시적인 폭력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허 교수는 리우 올림픽 당시 여성 선수를 대상으로 한 해설자의 몇 가지 멘트를 언급했다. ‘남편에게만 보여주는 애교를 우리 저 국민들한테 한번 보여주면 좋겠는데’, ‘스물 여덟이면 여자 나이로는 많은 나이거든요’, ‘원랜 잘 웃습니다, 애교도 많아요.’ 등 운동선수로서 큰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애교’를 요구하는 것이다. 


누군가 누구에게 애교를 요구할 수 있는 사회는 이는 권력을 가지고 여성에게 특정 위치를 요구하는 사회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허 교수는 강조했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은 폭력에 노출된다. 일반 여성들의 연애경험담을 보면 폭력은 걱정과 보호, 염려를 가장한 통제와 욕설로 시작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는 서투른 사랑 표현으로 묵인되고 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사소하게 보였던 일들은 사소하게 끝나지 않는다. 2016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들은 최소 82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5명이다.  허 교수는 최근 송파 살해 사건을 언급하며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동시에 이런 여성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측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을 비판했다. 


미디어로 만들어지는 여성에 대한 문화적 부정의(cultural injustice)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여성은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강의가 이어졌다. 허 교수는 문화적으로 여성이 지배당하고 있는 문화적 부정의(cultural injustice)를 강조했다. 같은 주류광고에서도 소주 광고 속 여성들은 과감한 노출과 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하지만 맥주 광고 속 남성들은 양복을 차려 입고 잠재력 있고 특정 분야에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의자 광고 역시 여성이 모델일 때는 엉덩이를 노출하지만 남성이 모델일 경우 의자의 기능을 전문적으로 설명해준다. 


아주 오랫동안 방송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는 남성은 전문성을, 여성은 자신의 몸과 미소만을 강조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것은 비가시적인 불평등을 만들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남성의 기준으로 부과한 미적기준이 여성에게 상당한 수준의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성 중심 문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젊고 아름다워야 하며 수동적이며 순종적이어야 한다. 사회는 그들의 기준에 맞는 여성들을 극도로 찬양하지만 그에 해당하지 않는 여성들은 비난한다. 이것이 여성의 외모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유이다. 여성의 외모 문제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정치적 문제이다. 


허 교수는 취업 전쟁 속 여성의 능력은 여성의 외모로만 대변되어 여성이 스스로를 혐오하고 학대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통제력, 자기 절제력으로 환원되는 다이어트의 성공과 미덕은 결국 자본에 이익을 가져다주고 여성의 외모관리가 철저하게 남성적 시선과 권력에 의한 것임에도 자기관리라는 명목으로 그러한 권력관계를 은폐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바꿔보자 

허 교수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국 ‘환경’을 바꿔주면 된다는 것이 허 교수의 답이었다. 각자 다양한 단체에 속해 있고 다른 경험이 있는 53명의 교육생들이지만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교육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그들의 행동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교육은 오후 5시까지 이어졌지만 전혀 지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한 그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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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개인적이고 병리적인 문제? 

여성주의로 바라보는 가정폭력의 민낯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윤선혜


3월 24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여성폭력문제의 사회구조적 맥락과 이해’를 주제로 한국여성의전화 49기 여성상담전문교육(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 3회차 강의를 진행했다.


가정폭력 교육 이틀째였던 24일,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는 아직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이내 고미경 대표의 익살스러운 사투리에 함께 웃고, 강력범죄 피해자의 90.2%가 여성이라는 통계에는 함께 탄식하면서 분위기는 한층 풀어졌다. 뒤쪽에 앉은 수강생들은 동영상이 잘 보이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엠마 왓슨의 ‘HeForShe’ UN 연설 영상을 시청한 뒤에는 옆 사람과 활발하게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고미경 대표가 ‘벌집 토론’이라 설명했듯이 교육장 안이 벌처럼 윙윙거리는 말소리로 가득 찼다.




가정폭력은 왜 사회적 문제인가?

강의가 시작되고 고미경 대표는 “왜 이 문제는 사회적 문제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강의 주제에도 드러나 있는 ‘사회구조적’이라는 말은 한국여성의전화 캠페인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로 대변된다. 가정폭력은 사회 전체가 만든 문제이며, 그래서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강의는 부부싸움, 집안일이라는 말로 가정폭력을 쉬쉬해왔던 사회적 통념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가정폭력은 대부분 가해자가 남성,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별화된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폭력은 곧 여성폭력이자 젠더폭력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발생하거나 혹은 가해자의 정신질환, 지나친 음주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며 폭력 상황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고미경 대표는 가정폭력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로 폄하된다고 설명한다. 어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려면 실태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사회적 문제가 아니므로 정확한 통계 조사나 현상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또다시 문제 정의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폭력은 힘과 권력의 문제이며 차별의 극단적인 형태로서 발생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불평등한 젠더 관계 속에서 남성은 폭력을 수단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통제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는 한, 피해자는 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가정폭력을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성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에서는 한쪽의 일방적인 억압과 통제가 발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주의관점

고미경 대표는 반복해서 상담원의 여성주의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담원 교육이면 상담하는 법만 알려주지 왜 이런 얘기를 하나 싶으시겠다”며 웃었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정폭력 생존자와 마주해야 하는 상담원에게 올바른 관점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상담원이 어떤 시각으로 상담자를 바라보고 상담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그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중에서도 여성주의 관점일까?


가정폭력 전문 상담원의 경우 여성주의 관점을 깨닫지 못하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범하기 쉽다. 반복되는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여전히 남편을 두둔하는 이유 등 대부분 피해자가 보이는 태도는 피해 경험이 없거나 가부장제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이해함은 곧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건 집안일이 아니라 가정폭력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순간에 이르러야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하던 ‘여성혐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던 것에 관해 여러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면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된다. 지금껏 가정폭력은 ‘집안일’ 또는 폭력 가해자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각 가정의 교육,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거의 모든 통계에서 응답자의 50% 이상이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있다. 통계는 가정폭력이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를 사회적 문제로 끊임없이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더불어 고미경 대표는 ‘먼지 차별’ 영상을 소개하면서 상담원에게 여성인권뿐만이 아닌 모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먼지차별이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별, 나이, 인종, 성정체성, 장애 등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담은 표현을 뜻한다. 한 수강생은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나이, 학력에 따른 위계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일상적인 먼지차별에 관한 추가적인 논의를 이끌었다.


강의는 ‘말하기의 힘’을 다시금 강조하며 마무리됐다. 고미경 대표는 “말하기를 통해서 본질을 얘기하고 질서를 흔들 때 세상이 바뀌고 정책이 바뀐다”며 말하는 힘을 모아 연대하면 변화는 반드시 이어진다고 논했다. 이때 여성주의 시각은 나 자신과 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은 5월 26일까지 총 100시간 동안 실시될 예정이다.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과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모두 이수한 수강생은 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전문상담원으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자원 활동할 수 있다. 교육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한국 여성의전화 홈페이지(www.hotlin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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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 여성주의


                                                         박세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3월 21일 화요일 10시,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하는 20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이 시작됐다. 3월 21일부터 5월 23일까지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진행되는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은, 여성폭력문제와 상담에 관심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여성과 인권, 여성주의상담, 유형별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진행된다. 여성혐오, 성폭력, 성매매, 성소수자 등 다양한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며 숙박교육과 수요집회 참여 등의 활동도 예정되어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이 날 교육장에는 54명의 교육생들이 교육장을 가득 메웠다. 강의 시작 전,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와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의 축사에 이어 한국여성의전화 상근활동가들과 전화상담회원들의 환영인사로 교육생들을 반겼다. 환영 인사 후 활동가들이 교육생들에게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여 한국여성의전화가 제작한 장미를 나누어 줌으로써 두 달간 진행될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의 시작을 알렸다.




이 날 강의자인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페미니즘은 공정하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통념에 대해 언급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남성이 보편으로 여겨졌으며 보편으로 여겨지는 남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경험이 구성되어 왔다. 그렇기에 기존의 지식 역시 객관적이지 않았으며, 객관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덜 편파적’이고 ‘덜 왜곡된’, 여성 스스로의 경험을 말하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허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서구,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주의는 단지 여성에게 집중하겠다는 것이 아닌, 비서구, 유색인종, 가난한 사람, 비이성애자, 장애인, 여성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겠다는 것이며 기존의 편향적인 시각에 의한 차별을 없애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어서 허교수는 ‘여성우선주차구역이 있다. 이렇듯 여성이 살기 편한 세상인데 페미니즘은 역차별이다’는 식의 ‘역차별’ 담론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여남 임금격차는 OECD 1위이고 여성노인빈곤율도 OECD 1위다. 이러한 수치들이 보여주는 실질적인 여성의 불평등은 외면한 채, ‘여성우선주차구역’과 같은 정책들을 근거로 ‘여성상위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성폭력과 성매매,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보기

허교수는 ‘SBS 스페셜’의 ‘잔혹동화,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편의 일부분을 보여줬다. 영상은 여성들이 성범죄를 겪은 이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일상생활에서 공포를 느끼게 됐음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를 경험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여성들의 고백에 크게 공감한 듯, 교육생들은 이 영상을 보며 울기도 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허교수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이 외국과 같이 강력해져야함을 말하며, 성범죄자에게 1000년이 넘는 징역을 선고한 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허교수는 한국사회를 ‘가해자를 걱정하느라 잠 못 드는 사회’라고 칭하며 사법부의 기존 관점을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법부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 성범죄 가해자에게 ‘앞날이 창창해서’, ‘공무원인데 처벌을 받으면 직업을 잃게 돼서’, ‘의사라서’와 같은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턱없이 짧은 징역을 선고한다. 또한 공권력은 성범죄를 사적인 일로 치부하며,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결국, 성범죄에 대한 국가의 소극적 태도는 성범죄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성범죄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사는 것은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된다. 허교수는 이러한 현실들이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기존의 남성중심적 관점이 아닌,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고 접근해야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허교수는 성매매에 대한 기존의 관점 역시 비판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원정 성매매를 많이 하는 국가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성구매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남성은 성매매를 통해 성욕을 풀어줘야’한다는 식의 생각들이 만연해 있고, 남성의 성구매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남성중심적 관점들은 성구매 남성의 이해만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허교수는 성판매 여성을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통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은 성매매를 통해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이 개별 성판매 여성보다는 거대한 조직임을 망각한 주장이다. 또한 여성이 성판매를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대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데도, 성구매자보다 성판매 여성을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관점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허교수는 성매매 역시 기존의 관점을 탈피하여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고정관념을 넘어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사회를 향해  

잠깐의 휴식시간 이후에 허교수는 우리 사회가 성별 이분법에 따른 고정관념이 공고하다는 것을 언급하며 강의를 다시 진행했다. 한국 사회는 ‘여자는 날씬하다’, ‘여자는 꽃이다’, ‘여자는 약하다’와 같은 고정관념이 만연하다. 허교수는 앵커를 예로 들어 직업에 있어서 성별 고정관념에 대해서 설명했다. 직업에 있어서 여성은 전문성보다는 외모로 평가받기 때문에, 대부분 뉴스에서 앵커는 ‘나이 든 남성’과 ‘젊고 예쁜 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렇듯, ‘여자는 꽃’이라는 고정관념이 공고한 사회에서 일정 나이를 넘긴 여성이 공적영역에서 경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허교수는 이러한 고정관념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관념으로, 누구나 옳다고 믿지만 사실은 면밀히 검토되지 않는 관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로부터 벗어나야함을 강조했다.


이어서 허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을 예로 들며 기계적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기계적 평등을 고려한다면,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 칸 수는 똑같아야한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을 위해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해야하고, 그렇기에 여성의 화장실 칸이 남성의 화장실 칸보다 많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이들을 고려하여 결과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한다. 


이어 허교수는 부모 모두 청각장애인이고 본인도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 헤더에 대한 영화 ‘sound and fury'에 대해 소개했다. 헤더가 수술을 받을 경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지만, 부모가 극심하게 반대했다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본인이 장애가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정상규범에 얽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우리 사회는 청각장애인과 같이 정상규범에 벗어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함에도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거나 비정상으로 치부한다. 허교수는 정상규범을 벗어나 있거나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어야함을 강조했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끝으로 강의는 마무리 되었다. 허민숙 교수는 “성평등이 맞고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것이 우리 사회가 이루어 내야 할 결과라고 생각하자”며 “인종 간 결혼이 범죄이던 때가 있었듯, 분명 현실은 변화하기에 확신을 가지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평등을 향해 가는 길에 한국여성의전화와 본인이 함께 하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훈훈하게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날 강의는 성폭력, 성매매, 성별 고정관념, 성평등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뤘고, 그만큼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눈빛을 빛내며 수업에 집중하는 교육생들에게서, 성평등을 향한 열망과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허민숙 교수와 열정적인 교육생들을 통해서 성평등을 이루어내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연대의 힘을 얻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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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헌법을 사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하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_문정

 

 

최근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더불어 헌법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여전히 헌법은 일반 시민들에게 멀고도 어려운 존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헌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운 적도, 조문을 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헌법을 알기 위해서는 헌법 책을 읽고 외워야만 하는 것일까?

2월 14일,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 주최한 <2017 여성주의 집중 아카데미 : 뜨거운 시선>에서는 ‘헌법 읽는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으로 오정진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강의가 열렸다. 강의는 ‘저도 헌법 조문이 몇 개인 지 모릅니다. 조문을 안다는 게 중요한가요?’라는 오정진 교수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헌법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헌법은 사회의 지향점을 담고 있다. 그래서 헌법은 지켜야 할 구체적인 절차나 규칙보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헌법을 아는 것보다 헌법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오정진 교수는 ‘헌법을 읽는 것 역시 새로 쓰는 행위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때에 헌법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돼요.’라고 말하며 법의 정치성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법은 사회의 흐름에 따라, 그것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법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이 그러하듯 헌법은 ‘아는 것’을 넘어 ‘사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헌법이 살아있어야, 그리고 우리가 헌법을 살고 있어야 헌법의 본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신비화 속에 죽어있던 헌법

그러나 오정진 교수는 ‘현재 헌법은 살아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법이 신비화의 장막을 가지고 있으므로 헌법이 대중에게서 멀어졌다고 말한다. 아직도 존재하는 판사 복은 신비화된 법과 판사의 절대적인 힘을 상징한다. 또한, 오정진 교수는 판사들은 옷뿐만 아니라 드나드는 문이나 먹는 밥까지도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권위로 포장된 법정에서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을 제대로 수호할 수 있을까? 반면 법정은 일반 대중에게는 지나치게 엄숙할 것을 요구한다. 법정에서는 마스크와 모자를 쓸 수가 없다. 그것을 써야만 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더라도 참작이 되지 않는다. 또한 법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명목으로, 판사가 입장하는 경우 모두가 일어서야만 한다. 일어서지 않는 사람은 법정에서 퇴출당한다. 법정은 법에 신비주의를 씌우고 이를 집행하는 판사들에게는 신비화된 권력을 부여하며 일반 시민에게는 온순한 몸이 되기를 강제한다. 헌법에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운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헌법과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다.

  



‘인간들의 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낙담하기는 이르다. ‘헌법을 사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지만, 동시에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을 사는 것 역시 멋진 ‘이상’으로써 신비화할 필요는 없다. 오정진 교수는 헌법을 산다는 것은 헌법을 세속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헌법의 세속화는 헌법을 ‘인간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법을 따라야 한다는 준법정신의 틀을 깨고, 법이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신비화된 법의 장막을 벗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만지지 못할 절대선처럼 작용했던 기존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력자들이 말하고 남성들이 말했던 이전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헌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오정진 교수는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상이라도 많이 해야지 현실이 조금이라도 커진다.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꿈꾸고 맹렬하게 욕망하자.’고 말하였다. 그리고 꿈꾸는 것을 배우지 못한, 그래서 욕망하는 것을 머뭇거리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이제까지 못해왔다고 앞으로도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삶은 지속돼요”


법에 의존하지 말고, 법을 살자 

강의 끝 무렵, 성 평등을 위한 헌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정진 교수는 이렇게 답하였다. ‘성 평등은 지금 있는 헌법으로도 가능합니다. 이건 조문을 하나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법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함께 논의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은 사람들의 관심과 논의이지 법이 아니다. 법조문에 쓰여있지 않은 많은 공백은, 우리가 법을 살아감으로써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법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평등’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헌법을 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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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페미니즘 정치'를 꿈꾸고 있다면



지원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가부장제 사회에서 페미니즘 말하기는 그 자체로 저항이며 운동이다. 미디어와 일상의 여성혐오에 대한 폭로로 시작해 여성이 박탈당한 수많은 권리를 되찾아오는 일까지, 각계각층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의 실천은 어느 하나 부차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공(公)적 영역’인 정치에서 페미니즘을 말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2월 16일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여성주의 집중 아카데미 <뜨거운 시선>의 강연 ‘국회로 간 여성인권운동가’에서 연사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만나보았다.



누가 정치를 남성의 영역으로 만드는가

정치는 제한적인 자원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논의의 과정이다. 그런데 누가 논의 테이블에 참여할 수 있는가는 매우 성별화되어 있다. 지난 20대 총선은 역사상 최다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했지만, 그 비율은 17%에 그쳐 국제의원연맹 회원국의 평균치(22.7%)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회의원 선거 시 비례대표의 50%와 지역구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해야 한다는 조문은 사실상 시혜적인 시선에 머무르고 있다.

여성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성별에 따른 이중 잣대에 기대고 있다. 여성 정치인을 감정적이고 무능하다고 보거나 여성에게 ‘가정’에서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것, 그리고 일상적인 성희롱은 여성 정치인의 활동에 직·간접적인 제약을 가한다. 정춘숙 국회의원은 ‘초선’ ‘비례대표’ ‘여성’ 정치인으로서 국회에서 겪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생애 최대(?)의 성차별의 현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누구도 대신 권리를 말해주지 않기에

강자의 시선에서 약자는 늘 사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고 여성은 정치계에서조차 아내·엄마로서의 역할, 외모와 옷차림 등 ‘사적인’ 부분에 의해 평가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의 무대는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고 팍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성 정치인이 수적으로 부족하고, 동시에 여성문제를 말하는 의원이 적어질수록 우리 사회의 수많은 여성문제의 해결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여성 정치인의 부족은 여성의 과소대표를 낳고, 이는 또다시 성차별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 정치인에게 차별적인 정치계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결국 그 성차별의 현장에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뛰어들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연사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정책을 제안했지만, 그 정책이 입안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초기의 의도와는 달리 많은 변형을 거쳐 당황스러웠던 경험을 덧붙이기도 했다. 결국 정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정책에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주는 정치이고, 그 정치의 과정을 예민하게 지켜보며 개입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성차별 구조의 피해자이자 권리의 당사자인 여성들, 누가 그들의 권리를 대신 말해줄 수 있을까.

최근 여성·성소수자 이슈와 관련해 정치인들의 입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유력 대권 주자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 성소수자의 권리와 ‘낙태죄 폐지’에 대한 입장들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날 강연에서도 화제가 되는 페미니즘 의제에 대한 당내 의견 충돌은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연사는 페미니즘 의제에 대해 진보적인 태도를 가진 여성 정치인들조차, 이에 반하는 분위기 속에서 쉽게 의견을 고수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여성 정치인의 양적 증가와 더불어, 관련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집단적인 관심과 의견 표출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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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여성’대통령 박근혜를 넘어, 미래의 정치를 위하여



경은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2월 9일 늦은 7시,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여성주의집중아카데미 <뜨거운 시선>에서 “‘여성’대통령 그 후, 젠더 정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열렸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보인 한국의 젠더 정치 담론과 그 미래의 방향에 대해 열띤 강의를 들려주었다.



‘여성’대통령 박근혜?


박근혜는 여러모로 최초의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름이다. 박근혜가 사용한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당선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은 여성 리더는 선진화의 지표이며, “섬세함과 감성을 갖춘” 여성적 리더십이 대한민국에 필요하다며 당선의 정당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략에 불과했다. 박근혜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여성’ 정치인 이라고 말할 때의 여성은 단순히 성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정치인들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모순적이었다. 여성은 항상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 이라고 이름 붙여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여성’ 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그 대상은 특별한 기대와 역할을 갖게 된다. 정치라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정치인들은 모성 혹은 평화의 상징이 되거나 능력주의 신화와 함께 남성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와, 여성 인권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박근혜가 “몸만 여성이다”라는 비판은, 오히려 여성이라는 맥락을 삭제한 채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에는 기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든 여성을 단일한 집단으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낳았고, 여성 정책의 퇴보로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통령’ 박근혜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 붙여진 박근혜와 여성의 권리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여성 대통령으로 사람들에게 존재한다. 박근혜는 여성으로서 수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없고 당선되었다. 유권자들 중 대부분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인 것보다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여성이 권력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젠더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박근혜에게 표를 던졌던 것이다. “여자가 나온다니까 좋아요”, “여자가 대통령으로 나온다는 게 자랑스럽다”라는 지지자들의 말들은 박근혜의 당선이 여성 유권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고 여성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여성 정치인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여성들은 국가 정책의 시행을 위해 끊임없이 도구화되었다. 가족계획도, 산업발전도 가족과 직장 속의 여성들이 없었더라면 그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근대화 속 여성들에 대한 박근혜의 감사와 인정은 유신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은 2012년 대선 당시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의 빛을 넘겨받은 덕분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페미니스트 정치를 실현하지도, 여성 대통령으로서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박근혜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박근혜가 남겨둔 ‘여성’ 정치인과 여성주의 리더십에 대한 수수께끼를 우리는 치열하게 겪고 싸워가야 한다.


페미니스트 정치와 페미니스트 리더, 남녀동수로부터!


이전의 젠더 담론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이야기하기 바빴다. 여성이 가진 특질을 담론적으로 만들어내고, 차이를 주입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덫에 걸려 여성은 젠더적 차이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정치라는 영역에서도 여성은 과도한 기대를 짊어지고 스스로 모순적 존재라고 칭해야 했지만 남성들은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면책되었다. 하지만 여성은 모든 곳에 있고, 모든 것은 여성적일 수 있다. 여성이 대표가 되었을 때 도출되는 특수한 결과에 주목하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시민됨”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페미니스트 정치에 한발 다가서기 위해서 여성 대표자의 숫자가 중요하다고 이진옥 대표는 말했다. 박근혜 같은 여성 정치인이 여러 명인 것이 여성 인권의 증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물론 정치인의 숫자가 정책결정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구하는 사람이 많은 정책의 실현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박근혜를 넘어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표성을 갖고 정책결정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남성중심적인 제도 정치를 흔들어 놓기 위해서, 바로 그 제도 정치에 조직된 힘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지형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다양성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이기 위해서 항상 균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정치라는 땅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 그리고 현재 국회와의 간극은 커졌고,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균열에서 피어나는 다양성의 정치를 위해서는, 팔로우십에 반하더라도 여성주의 담론을 안고갈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남녀동수를 전제로 조직된 힘을 갖추고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야 한다. 흔들리고 부딪치는 그 속에서, 여성주의 정치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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