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할 수 있을까?

-성폭력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절차의 이해-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리사



지난 3월 30일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018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수강생 40여명을 대상으로 한 박미혜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감의 ‘성폭력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절차의 이해’ 강연이 열렸다. 박미혜 경감은 활동가들과 수사관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면서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많은 질문이 불가피하지만 수사의 전 과정에 걸쳐 피해자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질문들


“피해자의 진술은 성폭력 사건의 7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박미혜 경감의 말처럼 확실한 물적 증거가 발견되기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상,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모든 수사 과정은 합의한 관계였다고 말하는 가해자와 강압이 있었다고 말하는 피해자의 서사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서사가 더 신빙성이 있는지 겨루는 이 전쟁에서 안타깝게도 법은 여성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리는 흔히 “법대로 해!”를 외치고 법원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이라 믿지만, 법원이 말하는 ‘객관’이란 ‘비장애인 이성애자 성인 남성의 주관’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남성의 언어로 쓰인 법은 강간이 성립되기 매우 어렵도록 고안되었다. 그래서 법적 싸움을 하기로 결심한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답해야만 한다.


왜 거부하지 못했어?

왜 도망가지 않았어?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어?

왜 가해자에게 다시 연락 했어?

왜 이렇게 늦게 신고했어?


 수사관은 사건의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듯 보인다. 이 일은 네가 거부하지 않아서, 도망가지 않아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서, 가해자에게 다시 연락해서, 늦게 신고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명백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이 질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박미혜 경감이 설명한 것처럼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꼭 입증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강간’과 법이 말하는 ‘강간죄’ 사이의 거리


 현재 대한민국 법원은 피해자가 ‘현저히 항거 불능한 상태’에서 최협의에 해당하는 ‘폭행과 협박’이 수반된 성관계가 있었을 때에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와 법률의 시각 차이는 여기서 가장 크게 두드러진다. 사회적으로 성폭력의 범주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형법」 297조에 규정되어 있는 강간죄의 경우 2012년에 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된 것을 제외하곤 1953년 제정 이래로 개정된 바가 거의 없다. 또한 피해자가 ‘현저히 항거 불능한 상태’에서 ‘최협의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태도도 1970년대 이후 명시적인 변화가 없는 실태이다. 그래서 법은 끊임없이 피해자에게 ‘왜?’냐는 질문을 쏟아 붓고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흠 없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법체계는 성범죄 신고율을 매우 낮게 유지시킴으로서 사회의 ‘강간 문화(Rape Culture)’[각주:1]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2차 피해 방지하는 “강간 피해자 보호 법(Rape Shield Law)”


 미국의 경우, 페미니스트들의 입법운동 결과로 1980년에 이르러 48개 주 모두에서 통과되었던 “강간 피해자 보호법 (Rape Shield Law)”에 의하여 피해자의 성적 평판, 성관계 경험, 당시 입었던 복장 등을 증거로 사용되는 것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만약 위와 같은 증거를 제시하려면 성관계의 동의 여부를 입증하는 데에 정말 꼭 필요한 것인지 법원이 판단하고 허가를 해야 가능하다. 흔히 가해자들이 펼치는 “그녀도 그걸 원했다(She was asking for it)”는 주장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형사소송법의 한 종류인 “강간 피해자 보호법(Rape Shield Law)”은 페미니즘 제 2 물결 이후,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시행 되고 있다.


“No means No”에서 “Yes means Yes”로


 이렇게 남성의 언어로 쓰인 법률을 여성의 언어로 가져오는 작업은 현재에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캐나다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입증 책임이 피고인에게 있다. 온타리오주 법원은 (R. v. Ururyar, 2016 ONCJ 448) 피해여성이 성적으로 개방된 사람이었고, 스스로 피고인의 집에 따라 들어갔으며, 피고와 데이트 관계에 있었으며, 술을 마셔 기억이 불완전함과 상관없이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의 행동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적극적인 합의’가 부재한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로 강간죄 성립을 긍정한 것이다. 이 판결과 비슷한 맥락으로 만들어진 캘리포니아 주의 “Yes means Yes” 법안은 주지사 제리 브라운이 서명했으며 시행을 앞두고 있다. No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Yes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법안의 요지이다.


몰아치는 #MeToo 해일, 아직도 꼬막 줍고 있는 한국


 이렇게 최근 급변하는 각 국의 법 동향에도 한국은 ‘흠 없는 피해자 프레임’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전무하다. 경찰 내부에서 성폭력 피해자 인권보호를 위한 지침이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지침에 그칠 뿐, 강제규정으로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전담조사관 제도, 국선변호사, 진술조력인 제도가 신설된 것은 고무적이나, 법적 다툼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를 차단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심지어 법원이 ‘폭행+협박+사력을 다한 저항’을 요구하는 현 상황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지닌 수사관이라도 피해자의 책임 여부를 물을 수밖에 없다. #Metoo로 모아진 성폭력 생존자들의 거대한 용기와 연대를 지지할 법적 기반은 매우 열악하다. 박미혜 경감은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거듭 강조했으나, 사실상 구조가 엉망인 상황에서 단지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경찰 개인, 검사 개인, 판사 개인이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요원할 뿐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물론 강간 문화 깨기는 하루아침에 일궈지지 않으며 여성들의 지난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1998년 7월 3일은 제인 도(Jane Doe 가명)가 토론토 경찰 당국을 제소하여 손해배상액 50만 달러의 지급 명령 결정을 받은 날이다. 이 사건은 강간 신화에 입각한 경찰 수사에 경종을 울렸다. 1986년 자신의 거주지 안에서 강간 피해자가 된 제인 도는 같은 범인이 이웃의 여성 4명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범행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경찰은 5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제인을 조롱하기 까지 한다. 그래서 “캐나다 인권 헌장(Canadian Charter of Rights and Freedom)”에 근거하여 경찰 당국이 ‘개인의 안전을 보장 받을 권리(Rights to security of the person)’ 침해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법원은 토론토 경찰이 그녀 이전에 4명의 피해 여성의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강한 선입견 때문에 피해자를 의심하느라 범인 검거를 지연시킨 사실을 인정했고 경찰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제는 신고를 늦게 한 이유를 피해자에게 질문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수사 과정에 있음을 인식하고 다시 되물어야 할 때이다. ‘강간 신화(Rape Myth)’[각주:2]에 근거한 법의 태도는 경찰 내사부터 공판에 이르는 모든 법적 절차를 2차 피해가 되게끔 만들고 있다. 별안간 낯선 사람에게 납치되어 흉기로 위협받고 강간당하는 포르노적 강간만이 진짜 강간이라는 그릇된 신화에서, 착하고 가장 믿을 만한 강간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피해자가 된다. 우리는 피해자다운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지지받을 수 있는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참고문헌>


논문

Catharine A. Mackinnon(1989), 「Rape: On Coercion And Consent」, Toward a Feminst Theory of the State, Havard University Press

Joan L. Brown(1988), 「Blaming the Victims: The admissibility of Sexual History In Homicides」, Fordham Urban Law Journal


판결문

Doe v. Metropolitan Toronto (Municipality) Commissioners of Police, 1998 CanLII 14826 (ON SC)

R. v. Ururyar, 2016 ONCJ 448 (CanLII)


기타

Marshall University Women’s Center, “Rape Culture”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Relationship & Sexual Violence Prevention Center, “Rape Myth and Facts”



  1.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용인하는 문화를 일컫는다. 강간문화는 여성혐오적 표현, 성적 대상화, 성폭력의 미화하는 것을 포함한다. Marshall University Women’s Center, “Rape Culture” [본문으로]
  2. ‘강간 신화(Rape Myth)’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다면 진짜 강간이 아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피해자가 모르는 낯선 사람이다. 강간은 범죄자의 통제불가능한 성욕 때문에 일어난다. 범죄자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정신 이상자이다. 피해자가 먼저 유혹했거나 술에 취해서, 혹은 술에 취한 듯한 행동을 해서 성관계를 요구했을 것이다.("She was asking for it") Relationship & Sexual Violence Prevention Center, “Rape Myth and Facts”, Washington University in St.Loui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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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모든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받는 날까지


2018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중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동성 간 성폭력상담 및 지원’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소원


지난 3월 30일 오후 2시,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루어졌다. 3월 15일부터 5월 4일까지 이루어지는 전체 교육 중 이번 순서는 '성소수자의 이해와 동성 간 성폭력 상담 요령'이라는 제목으로, '비온뒤무지개재단' 의 한채윤 상임이사가 진행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강연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도 하며 열심히 강연을 들었다. 나른한 봄날의 오후가 어느 때보다도 활기찬 배움의 장이 된 모습이었다. 





섹슈얼리티, 섹스, 젠더-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채윤 이사는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단어를 알려 주었다. 


먼저 '섹슈얼리티(Sexuality)'는 인간 성(性)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중 타인에게 느끼는 정서적, 애정적, 육체적, 낭만적 끌림을 의미하는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에 따라 섹슈얼리티를 분류해 본다면 ‘호모 섹슈얼리티(동성애)’, '헤테로 섹슈얼리티(이성애)', '바이 섹슈얼리티(양성애)', '에이섹슈얼리티(무성애)'등으로 나뉜다. 자신의 성적지향을 스스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면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을 가질 수 있다. 


다음으로, ‘섹스(Sex)’는 널리 알려져 있듯 XX와 XY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성을 일컫는 단어다. 그러나 한채윤 이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섹스도 사실은 젠더이며 인간에는 XX와 XY 외에 다른 염색체, 즉 '인터섹스'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단지 태어나자마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수술을 받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젠더(Gender)'는 이미 사회적으로 정해진 성을 의미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주민등록번호 상으로 부여되는 성별을 '지정성별'이라 한다. 사람은 성장하며 자신의 성별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때 지정성별과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쪽을 '시스젠더', 일치하지 않는 쪽을 '트랜스젠더'라고 한다. 


성소수자를 이야기할 때, 관련 학문이 일찍부터 순차적으로 발달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최근에 관련된 개념이 한꺼번에 들어왔기 때문에 용어나 범위의 혼란을 겪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보다도 인간을 남성과 여성 두 가지로 분류한 후 그 둘 사이의 성적 끌림과 종족 번식만을 긍정하는 '이성애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현실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형태를 벗어난 사람들은 쉽게 배제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포함되느냐'가 아니라, '누구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가' 이며 그 과정에서 '누가 소외되느냐'이다.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


앞에서 살펴봤다시피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이다. 더불어 성폭력은 이성애자 남성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여성에게 저지르는 범죄로 잘못 알려져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동성 간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동성 간 성폭력은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일 또는 일어나지 않는 일로 치부된다. 특히 남성 간 일어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더 입을 열기 힘들다. 동성 간 벌어진 일이므로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다는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피해자가 스스로 남성성이 훼손되었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 간 성폭력은 페니스의 질 내 삽입이 없었으므로 성폭력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오해 역시 고통을 가중하는 원인이다. 한채윤 이사는 실제로 이성애자 남성이 피해자일 경우 피해 사실을 말하기에 앞서 에이즈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피해자가 힘들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다 해도 사람들은 쉽게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의 변명을 더 쉽게 믿는다. 이성애주의를 바탕으로 본다면 동성에게 성폭력을 휘두르는 것보다 ‘친해지려고, 장난으로 그랬다’라는 가해자의 말이 더 정상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학교나 군대와 같이 좁고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가해자의 변명은 사람들에게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피해자가 동성애자 또는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일 경우 성 정체성과 성별 정체성이 약점이 된다. 실제 동성 간 성폭력의 가해자는 이성애자 남성인 경우가 많음에도 동성애를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여겨 동성애와 동성 간 성폭력을 동일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피해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피해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채윤 이사는 이에 대해 “실제로 피해자가 커밍아웃한 상대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구체적인 사례를 예로 들었다. 



모든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행위가 법률상 범죄로 인정되는 까닭은 그 행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과거 법에 따르면 성폭력은 정조권을 침해하는 범죄였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부녀자'에 한정되어 있었고 이를 벗어난 형태는 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법이 성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2013년에 성폭력방지법이 개정되면서 성폭력은 정조에 관한 죄가 아닌 강간과 추행에 관한 죄로 바뀌었다. 부녀자로 한정되던 피해자 역시 '사람'으로 수정되었다. 이는 성폭력이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라고 최소한 법적으로는 인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법률이 바뀌었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느리게 변하므로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채윤 이사는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확보할 수 있을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개선되어야 하는 인식 몇 가지를 소개했다. 


가장 먼저 성범죄는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성을 이용한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성’이 아니라 ‘폭력’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성범죄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이성애자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르는 범죄’이므로 성 정체성과 관련 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동성 간 성폭력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는 게 우선이다. 동성애와 동성 간 성폭력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며 개인의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더불어 현재는 가해자의 핑곗거리로 이용되는 '합의'에 대한 감수성과 범위를 넓히는 등 성문화 전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개선될 때 비로소 더 많은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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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 수사,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서울지방경찰청 박미혜 경감의 <성폭력수사에 대한 경찰수사 절차의 이해> 강의-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8기 길시유



한국여성의전화는 2017년 11월 “#경찰이라니_가해자인 줄”이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을 시작했다. SNS 상에서는 20만 건이 넘는 폭로가 이어졌다. 수많은 폭로의 핵심은 ‘경찰에 의한 2차 피해’였다. 가정폭력부터 시작하여 성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의 젠더 기반 폭력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를 신고한 후 겪은 경찰의 올바르지 못한 대응에 대한 증언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나왔다. 신고에 대한 잘못된 대응은 물론이고 수사 과정에서 겪었던 2차 가해 역시 화두에 올랐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경우, 명확하고 가시적인 증거가 없는 한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때문에 수사의 초점이 자연스레 피해자의 진술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2차 가해와 수사의 경계선 다툼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다툼에는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까?




지난 3월 30일 10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 중인 ‘2018 성폭력 전문상담원교육’ 프로그램으로 <성폭력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절차의 이해> 강의가 열렸다. 강의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박미혜 경감의 진행으로, 수사의 의의와 성폭력 범죄의 정의 및 유형 그리고 초동조치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더불어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유명 사건부터 박미혜 경감이 직접 수사하였던 사건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다 직접적인 이해를 도왔다.




수사 과정에서의 2차 가해, 무엇이 원인인가


박미혜 경감은 강의 중에서도 특히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사관들의 2차 가해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성폭력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후에 채집된 가해자의 DNA 또는 범죄 상황을 암시하는 메시지 등의 가시적이고 명확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는 한 피해자의 진술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때문에 범죄를 특정하고 수사해야 하는 수사관의 입장에서는 피해자의 진술만이 사건을 수사할 단 하나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상황 판단이 되어야만 사건을 수사할 수 있고 나아가 그다음 단계로도 진행시킬 수 있다. 피해자가 겪은 상황, 가해자와의 관계, 주변 정황 등은 범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와 같은 요소를 찾기 위하여 수사관은 피해자에게 더욱 자세하고 노골적인 질문을 넘어 2차적인 가해를 하게 된다. 이를테면 ‘그 상황에서 충분히 허리를 비틀어 성기의 삽입을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 와 같은 질문들이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되는 것이다. 질문의 의도가 저항 여부를 묻는 것임은 차치하고, 이 과정에서 수사관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충분한 지지와 공감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질문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가 된다.


한편, 수사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사회적 측면의 원인으로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꼽을 수 있다. 성범죄는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그 원인과 책임을 물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옷차림, 상황 대처 등을 원인 삼아 성범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지나치게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하여 사건을 조명하거나 피해자에게서 범죄의 원인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빈번한 2차 가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인식이 수사 과정에서의 2차 가해를 야기한다.




해결책은 수사관의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박 경감은 수사에 앞서 수사관이 피해자에게 믿음을 주고 지지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피력했다. 성폭력 수사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피해자와의 공감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사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질문들을 하기 전에 먼저 수사관 자신이 피해자를 지지하고 있으며 최대한 도움을 줄 것임을 전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 경감은 이때 ‘질문의 방식’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를테면 피해자에게 피해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이 수사는 당신에게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피의자가 당신의 피해 사실을 부정하려고 할 것이므로 당신의 자세한 진술이 필요합니다.’와 같은 방법으로 기존의 질문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특히 아동 또는 청소년의 친족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에게 지지자가 없는 것이 치명적인 지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사관이 지지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사관의 지지와 공감이 기반 된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는 비로소 2차 가해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며 수사 진행 역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 우리 사회 공통의 과제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비단 수사 절차에서만 필요한 과정이 아니다. 박 경감은 이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수사관은 물론 성폭력 상담원에게도 필요한 자세임을 강의 대상자들에게 강조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공감은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2차 가해를 멈추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피해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당신을 믿고 지지하며 돕겠다는 자세가 기반 되었을 때 비로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사회적 조치 및 온전한 권리회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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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은 젠더 권력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성소수자와 성폭력에 대한 이해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지현



  지난 30일, 2018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되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가 3시간에 걸쳐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동성간 성폭력 상담 및 지원’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점심시간 직후 강연이라 졸음과의 사투가 걱정되었지만, 교육생들은 한채윤 이사를 큰 환영의 박수로 맞으며 교육에 대한 열정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 집단을 성적 소수자로 낙인찍는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시스젠더(Cis gender-지정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hetero, 이성애)를 정상성의 기준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 이용해왔다. ‘여자’와 ‘남자’는 각자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별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 둘 사이의 사랑만이, 즉 이성애만이 “재생산을 통한 종족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수행하지 않거나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이성애 중심주의는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에 근거하여 이성애를 정상성의 기준으로 보고, 이러한 체계 안에 사회 구성원들을 편입시키기 위하여 성 역할을 규범화하고 성차를 위계화한다. 이는 곧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논리적 기제가 된다. 한채윤 이사는 한국 사회는 성적 소수자(sexual minority)를 LGBTIA와 같이 개인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내가 누구이고 누구를 좋아하는가’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집단으로서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성적 소수자인가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은 ‘왜 성소수자 집단이 배제되고 차별받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한채윤 이사는 한국 사회에서 성(性)이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생물학적 차이로 결정되는 성인 섹스(sex),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젠더(gender), 그리고 성적 욕망(sexual desire),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등 가장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구분하여 설명했다. 


  인간에게 실제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성별은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성별 젠더(gender)이다. 젠더(gender)는 장르, 분류를 의미하던 개념이었으며 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기대되는 태도, 성격, 행동 양식을 개인이 내면화한 성적 태도나 정체성을 의미한다. 성기의 유무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개념인 섹스(sex)와 인간의 성에 대한 가장 넓은 개념인 섹슈얼리티(sexuality)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규범을 수용하도록 사회화된다.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로만 인식하는 것은 생물학적 특징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분법적 틀 안에 가루는 사회적 인식, 즉 젠더의 결과인 것이다. 한채윤 이사는“생물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한다면, 간성인(intersex)은 어떤 성이 속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수술로 하나의 성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설명했다.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이다. 성적(sexual)이라고 느끼는 감정, 욕망, 실천, 행위, 정체성을 통틀어 섹슈얼리티(sexuality)라고 한다. 한채윤 이사는 그중에서도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적, 낭만적, 육체적, 애정적 끌림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적 지향을 스스로 인지하여 자신을 정체화하면, 크게는 이성애(heterosexuality), 동성애(homosexuality), 양성애(bisexuality), 무성애(Asexuality)로 구분할 수 있다. 더 세부적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성소수자들이 존재하지만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 데보다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들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어떻게 구조화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고, 사회에서 배제되는가’라고 강조했다. 사회는 모든 사람을 이성애자로 전제하기 때문에 침묵만으로도 차별을 당하거나 존재를 부정하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이라고 하면 성행위, 성관계를 먼저 떠올리며 그 단어를 말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 한다. 즉, 이성 간의 성기결합(intercourse) 중심으로 성을 규정함으로써 성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보고 이는 성추행, 성폭력, 혹은 성적 행위를 본능의 차원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본질주의적 접근은 이성애 남성 중심적인 것이며, 여성과 남성으로 범주화하여 이성 간의 사랑만을 제도화한 사회는 이분법적인 젠더라는 체계 속으로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편입시킨다. 생물학적 차이를 위계화된 차별로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젠더 권력의 문제이며 이성애가 아닌 것을 비정상으로 라벨링하고(labeling) 여성성을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착취함으로써 섹슈얼리티에도 이러한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한채윤 이사는 성폭력의 경우에 “폭력”의 형태에 ‘성’이 개입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가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벌인 일이라며 가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이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적, 언어적, 비언어적인 성적 접근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성욕은 억제할 수 없는 자연적인 본능이라는 성적 규범이 깔려있기 때문에 성폭력이 “폭력”의 형태라 할지라도 ‘남성성의 본능’으로 이해된다. 사회적 통념상 남성과 여성 간에 성폭력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지극히 성폭력을 가해자와 성욕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은 성욕이 일으킨 폭력이 아니라 성별, 지위 등의 권력 관계를 이용하여 성욕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택한 것이다. 한채윤 이사는 ‘폭력’에 방점을 찍으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즉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었는지를 볼 수 있고 자신의 의사와 반하여 성적 피해를 입은 방식으로 성폭력을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나 이성애 제도 내에서 많은 강제적인 성적 접근이나 행위는 폭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동성 간 성폭력은 ‘장난으로’ 또는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말로 쉽게 가려질 수 있으며 권력 관계에서 피지배적 위치에 놓인 피해자는 합의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학교, 군대, 감옥 내의 남성 간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는 여성화된 지위, 즉 남성성의 손상을 입게 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말하거나 신고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배경과 권력이 동원되는 구조화된 폭력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지, 그리고 ‘NO’라고 했을 때 이후의 불이익이나 피해가 예상되는지 않는지가 성폭력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얼마나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소극적 권리로서, 주장의 차원이 아니라 “존중”의 차원이며 더 나아가 모든 성적 정체성을 아울러 상호 존중하는 성 문화 개선과 정착, 그리고 교육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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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 E.L.F

(Empowering, Leadership, Feminism)


E.L.F(엘프)는 한국여성의전화 교육 브랜드입니다.

2007년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엘프는 이제 한국여성의전화의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브랜드입니다.


E Empowering 활동역량

L Leadership 여성주의 리더십

F Feminism 여성주의 가치와 정체성





○ 전국활동가 교육


한국여성의전화는 더욱 단단하고 영향력 있는 여성의전화와 지역 활동가들의 성장을 위해 매년 교육을 진행합니다. 2017년은 직무연수, 권역별 네트워크 교육 뿐 아니라, 중간 연차 활동가들의 리더십 향상 및 네트워킹을 위한 중간 리더십 교육, 회원소통 및 여성폭력 없는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모델 만들기를 주제로 사업별 네트워크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전국신입활동가 직무연수 1회(2박3일), 36명 

통합직무연수 1회

 - 전국지부대표자 직무연수 1회(1박2일), 17명

 - 전국사무국장 직무연수 1회(1박2일), 14명

 - 전국부설기관장 직무연수 1회(1박2일), 22명

중간리더십 교육 1회(2박3일), 28명

권역별 네트워크 교육 총 4회

 사업별 네트워크 교육

 - 여성폭력없는 움직이는 지역사회 모델만들기 1회, 12명

 - 회원소통 1회, 11명

 - 회계 교육 2회, 16명

본부 신입활동가 교육 1회(1주), 2명

본부 활동가 교육 8회




○ 지역운동


여성폭력 없는 움직이는 지역사회 모델 만들기

교육 기회가 부족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더 많은 지역단체와 관계하기 위해 회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민주노점상연합과 네트워킹을 통해 여성위원회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성주의 미디어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폭력예방교육을 지역주민 워크숍으로 진행하여, 지역사회에 확산하고자 하였습니다. 기존의 지역 네트워크를 토대로 ‘지역단체 간담회’를 진행하여 지역단체의 욕구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실천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같은 활동을 토대로 지역주민을 위한 지침서(가정폭력, 데이트폭력)를 제작, 지역에 배포하였습니다. 


지역사회단체 간담회 1회, 8개 단체 참여

폭력예방교육강사 모임 총 10회

여성폭력 없는 움직이는 마을 운동팀 8명, 회의 9회


 지역주민 워크숍 25회 

지역주민을 위한 움직이는 지침서(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제작 20,000부




○ 대중 교육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데이트 관계에서 당연시되거나 숨겨져 왔던 폭력적인 문화를 바꾸기 위한 대중강좌를 시작했습니다. <2017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연애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을 기반으로 데이트폭력을 우리 사회의 ‘연애각본’과 연결시켜 이해하고, 대안적 연애담론 확산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총 5강에 걸쳐 진행, 125명이 참여했습니다. 




여성주의 집중 아카데미 ‘뜨거운 시선’ - ‘페미니스트 정치 특강’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주제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성주의 집중 아카데미 <뜨거운 시선>을 매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시국을 맞아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바라본 정치와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교육에는 285명이 참여했습니다.




여성주의 번역가 교육


전 세계의 여성폭력과 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우리의 언어로 알릴 ‘여성주의 번역가 양성과정’을 진행하였고, 총 33명이 수료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여성주의 의식을 갖춘 번역가를 양성하고, 실전을 통해 여성주의 번역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2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약 8:1의 경쟁률로 선발된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교육생들은 2월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워크숍을 시작으로, ‘역할 워크숍’, ‘여성주의 글쓰기’, ‘여성주의 미디어 제작’, ‘10대와 인권’ 등 교육과 가정폭력피해 10대 여성 리더십 캠프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팟캐스트(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활동을 통해 여성인권활동을 고민하고, 직접 기획하는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가정폭력피해 10대 여성 리더십 캠프


가정폭력피해 10대 여성들이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가정폭력피해 10대 리더십 캠프(보라 리더십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이 캠프를 통해 참가자들이 가정폭력피해를 치유하고, 역량강화 할 수 있도록 지지집단과의 교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해외 연수 등 다채로운 경험의 장을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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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2017년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해외 스터디투어를 통한 현장 연구와 국제연대활동을 펼쳤습니다. 4월 스웨덴, 7월 대만, 10월에는 미국에서 각국의 여성폭력 근절을 위해 일하고 있는 현장 단체와 국가 기관 등을 만났습니다. 오늘날의 성과를 견인한 세계 각국 페미니스트 조직의 역사와 노하우, 국가 기관에서 기대했던 그 이상의 관점과 감수성을 보고 느낀 한 해였습니다. 한국의 사회제도가 그 실효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사회적 합의도 이룬 적 없는 현실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는 어떤 해답을 발견했을까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알차게 진행된 연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웁살라 4.22.-4.30




방문 목적 : 스웨덴에서 추진하고 있는 폭력 피해 여성 지원 프로그램 및 서비스 제공 현장을 견학, 한국의 가정폭력 피해여성 자립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 가능한 정책방안 모색.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분명한 관점, 유기적 협력”


가정폭력 피해자의 ‘자립’에 대한 한국 사회의 척박한 논의를 고려해볼 때, 보편적 복지국가이자 성평등 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에서의 제도와 정책은 눈여겨볼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만나본 기관 모두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성차별적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각자의 영역별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며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보건 및 사회복지,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에게 폭력 경험을 질문하여 피해를 발견하고,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촉발하는 시스템, 피해자 관점의 정보 제공 통로도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제도에 기반을 둔 포괄적인 지원에 더해, 각 기관이 여성폭력 피해를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고 있는 점, 폭력 ‘가정’이 아닌 피해자 여성과 아동 ‘개인’의 회복을 중시한 제도와 정책 방향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방문기관


ROKS(스웨덴의 여성 및 여성 청소년 쉼터를 위한 전국협회)

The Crime Victim Compensation and Support Authority (범죄 피해자 보상 지원청)

The Swedish Women’s Lobby (스웨덴 여성 로비)

The Swedish Police Authority (스웨덴 경찰청) 

Domestic Violence Coordinator (여성폭력 코디네이터)

The Swedish National Centre for Knowledge on Men’s Violence Against Women, NCK (남성의 여성 폭력에 대한 스웨덴 국가지식센터)

Arbetsformedlingen Public Emplyment Service Center (공공고용서비스청)

RFSL(The Swedish Federation for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Queer Rights, 스웨덴  퀴어인권단체)




대만 타이페이 7.23.-7.26. 



방문 목적 : 가정폭력 피해 10대 여성 및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교육생들의 대만 내 여성폭력의 실태와 여성인권운동 탐색


“한국 사회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느껴보다”


7월, 한국여성의전화는 2주간 가정폭력피해 10대 여성 리더십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캠프 참가자 및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교육생들과 대만에서 한국여성의전화와 Asian Network of Women's shelters(여성쉼터네트워크)로 국제연대 활동을 이어온 단체를 만나고, 대만의 여성인권운동의 역사를 엿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만의 여성단체 방문을 통해 여성폭력 문제를 주제로 한 기록 전시 및 영상물을 직접 보며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부터 퀴어 이슈까지 대만 전반의 높은 인권감수성을 체험하는 장이었습니다. 특히 전국민이 가정폭력 및 성폭력신고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참가자 모두의 감탄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방문기관


The Garden of Hope Foundation(청소년 성매매 여성 및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여성인권단체)

Taipei Women’s Resque Foundation(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AMA Museum 운영)

AMA Museum(대만 위안부 박물관)



미국 미네소타 주 둘루스 10.14.-10.21. 



방문 목적 : 미국의 여성폭력 예방 및 근절 선진 사례인 미네소타 주 ‘둘루스 모델’을 탐구, 둘루스 모델 실행 단체, 형사사법기관, 시민단체 등 관련기관을 방문하여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법, 정책, 피해자 지원체계에 대해 심층연구 진행.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경험과 목소리”


둘루스 모델은 가정폭력을 권력과 통제의 문제로 인식하고 즉각 저지되어야 할 폭력행위임을 분명히 하면서, 피해자의 안전에 대한 책무를 개인이 아닌 지역사회와 정부로 이동시킨 ‘지역사회의 협력적 대응(CCR)’을 핵심적 방법론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의 의무체포제도는 가정폭력의 특성을 고려하여 ‘피해자의 증언’만으로도 체포가 가능하고, 피해자의 권리와 구제책에 대한 안내가 의무화되어 있어 시사한 바가 컸습니다. 또한 경찰, 검사, 보호관찰관, 쉼터 관계자, DAIP 등이 개별 사건의 기록을 열람, 의견 교환을 실행하는 시스템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둘루스 모델은 이를 통해 지역 사회가 피해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개선해가고 있었습니다.


방문기관


DAIP (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grams, 가정폭력관련 개입 프로그램)

St. Louis County Court House (세인트 루이스 지방법원)

Safe Haven Resource Center (안전한 피난처 자원 센터)

Praxis International Duluth Office (여성과 자녀들의 폭력근절을 위한 비영리법인)

PAVSA (Program for Aid to Victims of Sexual Assault, 성폭력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

St. Louis County Attorney’s Office (세인트 루이스 카운티 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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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한국 남자, 맥락으로 뜯어보기 

- 남성성과 젠더 -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석박지혜


어쩌면 바로 곁의 이야기


 날씨가 좋았다. 미세먼지도 낮은 데에다 강의 장소가 북한산 근처라 나무가 많아 한결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경사진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걷다 보니 한국여성의전화 본부가 보인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서로 인사하고 음식을 나누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다.


3월 30일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진행된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 남성성과 젠더 5회차 강의가 시작되었다.


 권김현영 강사는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남성성이란 무엇인가요?’ 답변이 줄을 이었다. “힘이 세고. 씩씩하고. 책임감 있고. 술 잘 마시고. 리드하고...” 사회와 개인이 생각하는 남성성은 힘이 강하고 이끌어가는 존재,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한국 남성 고유의 특성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것임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의 남성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렸다. 그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한국 남성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특성은 씩씩함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특성이에요.” 권김현영 강사는 이야기한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한 번씩은 남자들에게 툭툭 떨어져 내리는 씩씩하게 자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씩씩하기만 하라 하던 목소리들은 아주 익숙하게 일상에 자리 잡았다.


 왜 그렇게 ‘씩씩함’에 집중하게 된 걸까. 이해를 위해서는 역사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 아래로는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 상대적으로 약한 국력은 힘에 대한 집착과 열등감을 가지게 하였다. 씩씩함은 결국 신체성과 힘에 대한 강조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역사는 남성의 유실과 아시아 남성 중심 혈통주의에서 비롯된 여성의 유기까지 불러오게 된다. 가정과 아내, 자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씨를 지닌 남성들을 지키는 것에만 열중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남성 유실의 시대는 끝나지만, 여성 유기의 맥락은 여전히 이어져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었음에도 고개 숙인 아버지상을 만들어내 기 살리기 운동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확장되어 남자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으며 남지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만들어 받아들이는 여성은 숭배, 수용하지 않고 남자를 선택하는 여성은 매도와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소년


 “현대 남성은 성인이 되지 않고 동시에 될 수 없는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되는 게’ 아니라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자연히 남성은 역할이나 책임이 관련된 부분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이미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니 당연히 성장도 없다. 곳곳에서 수강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성숙한’ 존재들에게는 돌봄이 필요하다. 사회에서는 돌봄을 여성에게 책임지운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의 희생을 통해 존재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근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남녀관계를 연애/성적인 의미가 있다고만 여기며 성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한다. 끊임없이 남근 중심적 사고의 남성과 사회가 상호작용하여 남성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회가 일종의 거대한 남성 양육 인큐베이터를 구축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이런 구조와 구조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남성이 타자와 동등한 관계 맺기 방법을 배울 기회를 상실하게 함과 동시에 남근 중심적 사고를 거부하는 남성들을 매도하고 배척하기에 이른다. 더욱 심각하게도 남근 중심적 사회에서 배척당한 남성들은 극단적인 경우 자기 파괴적 성격마저 띠게 되는데 이럴 때도 분노의 화살은 여성에게 날아들어 깊은 상처를 낸다.


 20년간 한국 사회는 왜곡된 소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남성들이 소년에서 벗어나 성장하기 위해선 기생적 관계를 버리고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을지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야 함을 이야기하며 권김현영 강사는 강의를 마무리했다.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의를 듣는 순간순간 주변의 남성들이 떠올랐다. 힘도 없이 늙는 건 죄라며 힘을 유지하지 못한 채 노인이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본인은 퇴직 후 바로 아무도 없는 오지로 가서 혼자 살다가 죽을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 다정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지만, 남자가 씩씩하지 못하다며 혼이나 거칠어지고 말수가 줄어든 사촌 동생.


 그들과 오랜 시간 알아왔는데도 왜 남자는 씩씩함을 강요받는지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는 게 그렇게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 개인의 생각이며 집안의 과도한 강요라고만 여겼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넘어가도 되었을 문제였을까.


 한국 남성성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알게 된 후 그들을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남근주의 질서의 중심에 있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그 흐름에서 떨어져 나가 받게 될 비난을 봐오면서 아무와도 만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니 오지로 홀로 떠나자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된 아버지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특성들은 무시당한 채 씩씩함만을 폭력적으로 강요받고 적응하지 못하니 점차 배척당해 성격도 변하고 말수까지 줄어들게 된 남동생도 결국은 한국 남성성의 왜곡된 모습에서 비롯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하는 49기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은 2017년 3월 23일 ∼ 5월 26일까지 총 100시간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내용은 여성학, 여성주의 상담, 가정폭력상담의 특성 및 사례연구 등이며 자세한 내용은 여성의전화 홈페이지(https://hotlin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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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우리는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메리


2030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2030 실용연애 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2009년을 시작으로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데이트 관계를 만들어 감은 물론, 여성주의 관점에서 '연애문화'를 성찰하기 위한 데이트 대중강좌이다. 한국여성의전화의 기획 강좌이며, 올해는 5강의 강의를 창비학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전신청은 창비학당 홈페이지(http://www.changbischool.com/main.do)를 통해 가능하다.


강좌 

1회 ‘정상성’의 종말을 꿈꾸며: 삶, 관계,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 만들기.

2회 이성애를 고민하다: 이성애주의에서 비껴나 다양한 관계를 탐색해 봅니다.

3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멜로드라마 속 데이트폭력과 대안적 연애.

4회 “언니, 그 오빠랑 만나지 마요”: 데이트폭력 대응 내공 쌓기.

5회 우리에겐 피임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는 피임 그리고 성적자기결정권.



‘정상성’의 종말을 꿈꾸며: 삶, 관계,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 만들기

2017년 3월 24일, 김순남 성공회대 젠더센터 연구교수의 강의를 시작으로 <2030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가 열렸다. 일상 중 서점을 돌아다니면 자기계발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애에서도 계발서가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형화된 연애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는 강박마저 느낀다. 이러한 심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순남 교수는 근대 사회가 동질성, 유사성, 획일성을 강조하고 규범 외는 미숙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사람들이 경험을 교류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배제해버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강의는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연애 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사진 : 2015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김순남 교수 강의



이성애 ‘정상성’

흔히 사람들은 이성 간 연애 혹은 결혼을 함으로써 ‘내 인생의 반쪽을 찾는다’고 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이성 간의 교류가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연인이 소풍을 갈 때는 여자가 도시락을 싸 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연인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전에 여성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랑의 기술을 표피적으로 습득하길 강요하고 이를 수행해야만 자아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낭만적 신화’를 생산한다.


문제는 성을 근거로 형성된 역할 수행이 젠더 권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 행정자치부는 저출산의 이해력을 높이고 지자체 간 출산 지원 혜택 자율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출산지도를 통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결국 결혼제도는 재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결혼제도의 혜택을 이성애에게만 부여하고 있음을 체감하였다. 결국 이성애 정상성에 근거하여 설정된 성 역할을 여성의 책임으로 설정하고, 성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허용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자존감, 완전한 존재로서 나

그렇다면, ‘정상적인 규범’을 수행하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유튜브 채널 ‘프란-PRAN’에서 ‘비혼 할머니가 편견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삶을 솔직하게 소개한 김애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정상 가족’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김애순 할머니는 76년간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해 “남자 없어도 얼마든지 떳떳하고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거 한다”라며 “남자를 의지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애순 할머니는 늙어서 혼자면 외롭다는 편견에 “결혼을 해도 외롭고 하지 않아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라며 “나이 들면 결혼을 했던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똑같이 혼자가 된다”라고 답했다.


김애순 할머니의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라는 미성숙한 인간이 결혼을 통해 영원히 완성된 상태가 될 것이라는 낭만적 신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최근 비혼이라는 단어가 이슈화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 다수의 사람이 기존의 이성애적 가족관계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김애순 할머니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관계

김애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성애적인 가정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밸런타인데이에 커플들이 사탕을 주고받도록 시장이 자극하는 것처럼 사회는 알게 모르게 이성애주의와 커플주의를 강요한다. 하지만 김애순 할머니의 비혼주의 삶 속에서 이성애 커플 중심의 낭만주의 신화는 더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김순남 교수는 ‘관계를 퀴어링(queering)하라’고 제시한다. 퀴어는 단순히 성적 지향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성애 규범성뿐만 아니라 ‘규범성’ 자체에 대한 균열과 변화를 퀴어라고 일컫는다. 가령, 커플 혹은 부부라는 정형화된 관계는 이성애를 근거로 규범화된 행동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한다. 김애순 할머니와 같은 비규범적인 존재로서의 퀴어는 이러한 이성애 커플 중심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물어본다, 규범 속에서 정말로 안정감을 느끼냐고.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관계적 시민권’에 초점을 맞춰 볼 필요성이 있다. 관계적 시민권이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권리를 뜻한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혈연 혹은 부부가 아니어도 사적인 영역의 관계를 공적인 관계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다. 미국에서는 9.11 참사 당시에 죽은 희생자의 국가 배상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다각적으로 진행 된 바 있으며, 법적인 배우자나 혈연관계 외에 ‘친밀성’을 근거로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생활동반자법’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의원의 ‘동반자등록제’가 제시되면서 관계적 시민권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미혼모 가정, 동성 가정, 다문화가정, 한 부모 가정, 1인 가구 등 법적으로 인정된 정상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강의를 듣고 어렸을 때 친구들이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결혼으로 단순화되어버린 삶 속에서 나의 주관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현재에서도 남들의 눈에 비정상으로 비추어지는 관계는 낭비로 치부해 버리며 살아왔다. 규범화된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주저하던 본인에게 있어서 “시간을 들여 삶, 관계, 사랑을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새로운 아비투스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김순남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더는 정상성이라는 기준으로 나의 감정을 옥죄이지 않는 해방감을 얻을 수 있었던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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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아내폭력의 실태와 대책-


한국여성의전화 제7기 기자단 정윤하


3월 31일 금요일 오후 2시 서울 불광동에 위치한 (사)한국여성의전화에서 아내폭력의 실태와 대책을 주제로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의 강의가 열렸다. 올해 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제49기 여성상담전문교육은 지난달 23일 시작해 다음달 26일까지 약 3달간 진행된다.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실습과정까지 마치면 가정폭력전문 상담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강의는 폴레트 켈리의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시가 흐르는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화자는 남편에게 주기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아내폭력 피해자다. 남편은 범죄를 저지른 다음날 어김없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화해의 꽃을 선물한다. 화자가 자신의 장례식에서 결국 마지막 꽃 선물을 받는 결말로 영상이 마무리되자 장내는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아내폭력의 실태

영상의 여운을 가라앉히며 펼친 책자에는 07년 여성가족부가 가정폭력상담소와 보호시설 이용자 612명을 분석한 아내폭력 내용별 조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1주일에 2-3회’에서 ‘거의 매일’의 빈도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경우 언어적 폭력(모욕적인 말, 욕설, 고함 등)이 56.6%로 가장 많았다.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일일이 허가받고 돈을 쓰게 하기, 돈을 쓴 곳을 추궁하기 등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폭력도 32.0%의 높은 수치를 보였다. 때리려고 위협했다(28.2%), 원치 않는데도 성관계를 강요했다(24.6%)등 신체적·성적 폭력도 심각한 빈도로 발생하고 있었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 그 정도를 볼 때 1주 정도의 치료를 요하는 상태가 절반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가장 많았다. 신 소장은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이 흉기가 될 수 있다”면서 “유리컵을 던져서 깨거나 문이나 벽을 쾅 치는 등의 소리를 내서 공포심을 유발하는 행동도 심각한 정서적 폭력”이라 설명했다. 


신 소장은 이어서 “가정폭력이 더욱 잔인한 이유는 가족 관계가 해체되기 전까지 폭력이 반복·지속되거나 심화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해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가정폭력 지속기간의 평균은 약 11년 2개월이다. 응답을 더 들여다보면 ‘폭력의 횟수가 점차 늘어감’(22.5%), ‘폭력의 정도가 심해져감’(25.8%), ‘여러 종류의 폭력으로 확대되어감’(15.0%) 등 총 63.3%의 사례에서 폭력의 심화를 경험했다.




아내폭력의 원인

신 소장은 “위계가 세워져 있는 구조는 폭력을 내포한다”며 아내폭력의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고정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가해자에게 가정뿐만 아니라 남녀관계, 사회생활 중에서도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이용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반대로 이러한 권위에 순응하여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무기력함, 수치심 등을 내면화하게 된다. “폭력 피해 여성분들 보면요, 잘 하시는 게 정말 많아요. 그런데 상담할 때 보면요, 본인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세요.” 교육자들 사이에 안타까운 한숨 소리가 퍼져나갔다.


교묘한 것이다. 단순히 관심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학대 남성도 피학대 여성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초반에 저항을 보이지만 점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데서 실망감과 좌절감을 얻고 저항을 점차 포기하는 흐름을 보인다.


‘폭력 행위’-‘화해’-‘긴장 조성’ 3단계 반복의 ‘피학대 여성 증후군’(maguigan, 1998)은 무기력이 확대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학대 남성의 비위를 맞추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가 그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거나 저항을 할 때 폭력이 발생하는데, 이후에는 폴레트의 시처럼 ‘꽃을 주는’ 등의 일방적 화해가 이어진다. 지난밤엔 폭언과 구타를 가하고 오늘 아침은 비굴할 정도로 화해를 취하는 남편의 태도는 피해자를 극심한 혼란에 빠뜨린다. 종내에는 전기 충격을 가해도 도망치지 않는 셀리그만의 개처럼, 무기력이 서서히 학습된다.


어떻게 풀 것인가

때문에 아내폭력 해결을 위한 개인적 차원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도록 돕는 ‘지지세력의 여부’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피해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내면화한 피학대 여성은 수치심을 키워가며 대인 기피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신 소장은 “반대로 내가 이렇게 맞고 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어 밖에서 자신을 아주 건강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며 “두 경우 모두 주변의 지지적인 반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한 피학대 여성이 ‘네가 좀 더 잘해봐라’, ‘남자들은 다 그렇다’ 식의 반응을 받는 일이 많다는 보도가 스쳐지나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사회적·제도적 차원의 변화가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프라는 괄목할 만큼 늘어났다. 현재 전국 244개소의 상담소에서 매년 12만여 가정폭력 상담을 받고 있으며 피해자 보호시설은 전국 6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인프라의 확대 속도에 비해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는 사회적 합의도는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 소장은 “08년도 가정폭력 검거 건수가 1만 1,461건인데 구속 건수는 그 중 0.7%(80여 건)에 그친다”며 “14년도에도 전체 1만 7,557건 중에 1.6%(280여 건)만 구속되었다”고 우려를 표했다. 여성폭력 근절과 관련된 그 어떤 과제보다 사회적·법제도적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3시간의 긴 강의를 마치고 밖을 나오니 아직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펼치자 거칠게 내달리는 기차에서 막 내린 기분이 들었다. 단면으로 인지해 오던 폭력을 전분가의 눈을 통해 낱낱이 조감하는 일은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하고 압도적이었다. 무기력에 파묻혀 있는 당사자들과 스스로가 가여워 한동안 끙끙 앓을 강의였다.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연약한 봄비에 마음이 자꾸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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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3.31 실용연애특강 2강 ‘이성애주의에서 비껴나기’

부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오직 ‘나와 당신’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이린


한국여성의전화와 창비학당이 함께 준비한 실용연애특강은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연애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 강의마다 주제가 다르지만, 크게 관통하는 공통점은 우리 사회의 ‘연애 각본’을 들여다보며 ‘좋은 연애’란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해 본다는 것이다.


전체 강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링크(https://goo.gl/KNd1v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용연애특강’이라는 강의의 대주제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이 날 강의는 오랜 시간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해온 한채윤 인권활동가의 강의였다. 강사의 약력과, ‘이성애주의에서 벗어나기’라는 강의의 제목만 보면 ‘이 강의는 성소수자의 연애를 주로 다루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강의가 시작되자, 굳이 성소수자의 연애, 이성애자의 연애를 나눌 필요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서의 연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활동가는 연애를 하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태도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연인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더라도 스스로와 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함으로서 연인과의 관계를 지속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만약 연인이 변한다면,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연인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계속되었다. 구체적으로 ‘행복한 연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성 역할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기

“연인이 ‘나 요즘 주름이 늘어난 것 같아’라는 말을 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한채윤 활동가는 ‘연애를 하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각종 ‘연애학’ 서적 등과 실제 연애 과정에서도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이 질문에 수강생들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활동가는 가장 흔히 내놓을 수 있는 답인 ‘주름 하나도 없는데?’나, ‘그래, 그런 것 같아’ 같은 말은 자칫하면 연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연인이 이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제가 상담한 사례에서 연인 분은 30대 여성이셨고, 레즈비언 커플이었습니다. 30대 여성이면 주변에서 한창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을 나이에요. 그런데 ‘주름이 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는 건, ‘계속 이렇게 성소수자로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늙으면 이젠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생겼다는 거지요. 결국 이 질문에는 ‘내 눈에는 주름이 는 것 같지 않지만, 네가 불안하다면 주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답이 필요합니다.”


즉, 연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되, 연인이 사회 속에서 성 역할로 인해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연인을 상대방 그 자체로가 아닌, ‘남성’ 또는 ‘여성’ 둘 중 하나로만 받아들이면, 상대와 나 사이에는 항상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와 나는 가까워질 수 없고, 연애를 지속하려면 ‘사랑의 힘’으로 그 차이를 이겨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성 역할을 수행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를 연인 관계에까지 끌고 들어오는 것으로, 두 사람이 행복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연애를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의 결합’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성애주의라고 한 활동가는 말했다.


사진 : 2015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中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기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날 강의에서 한 활동가는 ‘감탄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칭찬은 상대의 ‘칭찬할 구석’을 찾아야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내내 계속 하기가 쉽지 않지만, 감탄은 순간순간 상대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더라도 감탄을 통해 분위기를 가볍게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분명히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했는데 상대가 버리지 않았을 때, ‘또 쓰레기 안 버렸지? 맨날 잊어버리네, 진짜 귀엽네.’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생활 전체가 감탄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 연인에게 자주 감탄을 해야 할까? 한 활동가는 ‘연애는 상대방이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흔한 사람’이지만, 연애를 할 때만큼은 상대방에게 ‘세상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이 날 한 활동가는 ‘연애를 행복하게 오래 하는 법’을 계속 설명했지만, 사실 연애는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특히 연인이 나를 몰아세우는 말을 하면 굳이 상대를 ‘고쳐 쓰려’ 하지 말고 얼른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난하거나, 가족을 욕하거나, 너는 왜 이정도 밖에 안 되냐고 나무라는 등이 ‘몰아세우는 말’의 예시에 해당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한번 연애를 하면 오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 연애를 끝낼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인의 잘못을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보다’며 합리화하느니,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활동가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주변에서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사례를 보면, ‘그러게 사람을 잘 만나야 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게 그런 말로만 끝낼 수 있는 걸까요? 우리 모두가 살다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해요.”


이 날 강의를 듣고 내가 연애를 하면서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연인이 변해버리면 어떡할지,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강의를 듣고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감정이었다. 내가 연인을 계속 사랑하고, 내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실용연애특강’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연애의 매 순간순간에 실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 강의였다. 연애가 ‘연인이 원하는 남성상’ 또는 ‘연인이 원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꽤 답답한 관계가 되어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연애 역시도 상대 그 자체를 사랑하고, 그 상대와 함께 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알게 해 준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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