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에게 ‘스토킹’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유미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정답은 모두 X입니다. 얼마나 맞추셨는지 궁금한데요. 한국 사회에서 이 범죄는 때로는 스토킹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데이트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된 것만 해도 스토킹 피해 여성에게 수백 회의 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히고 회사에 찾아가 소란을 피운 사건, 결국 살인에 이른 사건까지 뉴스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범죄 유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실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현재 경범죄 처벌법으로 신고할 수 있지만, 고작 범칙금 8만원에 불과한 처벌은 아무런 제지 효과가 없습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스토킹 범죄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피해자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현실입니다.


정부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협의체를 꾸리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법이 아니라면 여타의 여성폭력 문제처럼 도리어 스토킹 범죄를 ‘용인하는’ 결과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가정폭력·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를 상담하고 정책감시 및 제안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스토킹 범죄에 대해 이야기해왔고, 2013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여성의전화는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제안하고자 합니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

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은 관용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결코 그저 관용어가 아니다. 여성들은 친밀한 관계였던 남성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피하고, 그중 누군가는 남편 혹은 전남편으로부터 쫓긴다. 수십 통의 협박 전화와 문자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전송된다. 여성들은 집과 직장 앞에, 또 피신한 곳을 추적해 그 앞에 나타나는 가해자들을 맞닥뜨린다. “네가 도망치더라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겠다”는, 남편 혹은 전남편을 말이다.



‘아내’들에게 ‘스토킹’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남편의 폭력은 일상 속에 엉겨 붙어 있었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은 일상 자체를 떼어냈다. 가해남편을 피해 다른 곳에 숨고, 경찰에 폭력을 신고하며, 이혼을 시도했다. 그러나 ‘감히’ (자신의) 가정을 떠나려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자의 ‘스토킹’이 이어졌다. 



A씨는 남편의 폭력을 경찰에 고소하고 집을 나와 피신했지만, 남편은 A씨가 피신해 있는 곳으로 찾아와선 행패를 부리며 A씨를 위협했다. A씨의 생활 반경은 급격히 축소됐다. 피신해 있는 곳에서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서면 남편이 위해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자유로운 외출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이 됐다. 


B씨는 오랜 기간 남편의 폭력 속에 있다가 별거했으나, B씨와 B씨 어머니에 대한 남편의 폭력과 협박은 계속됐다. 더구나 B씨 어머니의 직장에도 남편이 나타나는 등의 스토킹이 이어졌다. B씨와 B씨 어머니, 자녀들 모두 가해자가 거주지나 직장에 찾아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상은 이제 예전과 같지 않았다.      



삶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졌다. 여성들은 가해자의 반복되는 스토킹 행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변의 안전이 최우선 문제가 됐다. 가해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오늘 또 나타날지도 몰랐다. 길을 나서면 사방이 두려웠다. 여성들은 더 이상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가해자로부터 몸을 숨겼다. 일상엔 불안감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참한 사회


그러나, 남편의 스토킹 행위는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됐다.


더군다나, 아내를 찾아가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위협하는 가해남편의 행위는 ‘가족’이기 때문에 스토킹으로 명명조차 되지 못했고, 그래서 더욱더 드러나기 힘들었다. 그러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주요하게 얘기되지도 못했다. 또한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를 신고한다 해도, 직접적인 폭력 피해가 발생하거나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만 ‘가정폭력 사건으로라도’ 처리될 수 있었다.


관련 해외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반 이상이 배우자에 의한 스토킹 피해를 경험하며, 폭력 피해를 입거나 살해당한 피해자의 약 90%는 폭력을 가하는 배우자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 가정폭력과 스토킹, 살해위협・살해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법원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과정에 있는 여성들에게 부부상담명령을 내리고, 가해자에게 자녀들을 주기적으로 볼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혼재판 과정 중 변론이나 조정 기일이 잡히면 가해남편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여성들에게, 이는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C씨는 남편의 폭력에서 피신했으나, 가해자는 자녀들이 비밀전학한 학교를 알아내 모습을 나타냈다. C씨는 또 다시 피신했다. 이혼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엔 법원에서 가해자가 자녀를 만날 수 있도록 면접교섭권을 주었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과도 같은 나날을 지나온 C씨의 맥락은 고려되지 않았다. 살아남는 건 C씨의 몫이었다.  


가정은 ‘여성’들이 깨뜨려선 안 됐다. 여성들은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집에 있(어야 하)는 ‘집사람’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집을 나간 ‘집사람’을 쫓았다. ‘자식’을 찾았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처자식’을 찾는 건 당연한 ‘권리’였다. 이혼 법정에선 눈물을 흘렸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호소했다. 법원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편이 안쓰러웠다. 손찌검 정도는 ‘처자식이 맞을 만한 짓을 했으면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부상담을 해보라 시켰다.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인데 자녀를 봐야하지 않겠냐며 면접교섭권을 내줬다. 



여성과 자녀들은 몸이 떨리고, 치가 떨렸다.



폭력을 가하는 남편은 일차적 문제였다. 여성들의 폭력 경험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사회는 무참했다. 



‘아내’에 대한 스토킹은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


가해남편은 여성의 일상에 가장 가깝게 밀착돼 있던 자였다. 그래서 여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해자는 직장, 가족관계 등 여성의 각종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여성이 어떤 부분에서 취약한지도 알았다. 가해자는 이러한 점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교묘하고 집요하게 여성을 찾아내고, 협박하며, 위협했다. 


가해자는 이혼하면 친정 식구들을 죽이겠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폭력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했다. 폭력에서 피신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망설였다. 이미 가해자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실제적인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도 두렵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건 더더욱 두렵고 끔찍한 것이었다.   


스토킹범죄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 실태와 그 심각성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확산되면서, 스토킹처벌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3년~2016년 상반기 상담통계 집계결과에 의하면, 스토킹 가해자의 평균 97%는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중 (전)애인이 69.1%, (전)배우자 7.9%(배우자에 의한 스토킹 피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고려했을 때 제한적인 수치임) 등 스토킹 피해의 대부분이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 


스토킹범죄 처벌 및 방지를 위한 정책마련과 법 제정 과정에서 이러한 스토킹범죄의 특성을 반드시 주요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족’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못한, ‘가족’이기 때문에 용인하거나 묵과된 가정폭력 가해자의 스토킹 또한 ‘스토킹범죄’로서 처벌될 수 있어야 하며, 데이트 상대자, 배우자, 동거인 등 신뢰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에 대해 스토킹범죄를 행한 경우엔 가중해 처벌하도록 하는 법조항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아내’에 대한 스토킹이 ‘스토킹’으로 이름 붙여지고, 인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범죄로서 처벌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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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어떤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면 말고'식 고소하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 성폭력 신고를 좌절시키는 가장 큰 장애물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한국여성의전화 20160906 화요논평 카드뉴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성폭력혐의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고, 피의자들이 고소한 여성들을 무고로 역고소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언론은 "000, 000, 000 누명, '아님 말고' 무고사회", "연예계는 '무고 공화국'", "판치는 무고...무고한 사람 명예 짓밟다"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을 쏟아내며, 성폭력 무고사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성폭력은 허위신고가 많은 범죄라는 우리 사회의 아주 오래된 광범위한 믿음 속에 성폭력 무고는 일명 '꽃뱀사건'으로 통용된다. 최근 몇 년간 친고죄 폐지 및 성폭력 처벌 강화 흐름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분명한 처벌로 이어지기보다는 '억울한 남성 피해자'가 증가할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과 무고사범 단속으로 환원되고 있다.

   


성폭력 신고율 10% 미만, 피해자 중 '경찰에 도움 요청'한 비율은 1.1%


성폭력은 허위신고가 많다는 믿음은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영국 검찰청 보고서에 따르면 강간신고의 0.6%만이 허위신고로 나타났으며, 강간에 관한 허위신고가 만연하다는 대중의 인식이 허위라고 지적했다(한국에는 성폭력 무고에 관한 공식집계 자료조차 없다).


전 국민 성폭력예방교육 의무화 시대, 성폭력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이며 내가 '동의하지 않은 성적행위는 성폭력'이라고 배운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러한 상식과 믿음을 가지고 법에 호소하지만, 그 상식과 믿음은 부서지기 일쑤다.


한국의 법 현실에서 강간죄가 성립되려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폭행과 협박이 동반되어야 하며, 준강간의 경우 완전히 만취한 경우와 같은 심신상실, 항거불능의 상태를 요구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증거수집이 어려운 성폭력 사건은, 그 수사에 있어 피해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 과도하게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특히 사건과 무관한 성 이력이나 고소전력, 피의자와의 관계나 합의여부, 피해자의 외모나 나이, 직업 및 사회경제적 지위, 말투나 행동양식 등을 근거로 피해자의 고소의도와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판단하는 수사기관의 관행은 심각한 문제이다.


나는 성폭력은 범죄이고 신고하면 된다고 배워서 신고를 했는데, 가해자가 처벌은커녕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성폭력을 당한 것보다 더 고통스럽습니다. 나는 이제 내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더라도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법은 가해자의 편이고 나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원한 성폭력 무고사건 당사자의 말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되어 처벌받게 될 때의 그 고통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고는 큰 죄이다. 큰 죄인만큼 무고죄 적용은 상당히 엄격해야 하며, 사안이 허위라는 것에 보다 적극적인 증명이 필요하다. 성폭력이 아니라는, 즉 서로간의 적극적 동의(affirmative consent)하에 이루어진 성행위라는 입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한국사회의 성폭력 무고 기소와 처벌은 우리 사회의 법이 말하는 '객관적'인 증거와 철저한 수사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에 기반을 두어 이루어지고 있는가.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성차별적 젠더 규범에 근거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은 성폭력 신고를 좌절시키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를 반증하듯이 성폭력 가해자는 증거부족 등을 빌미 삼아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법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말하기를 가로막고 범죄를 은폐시키는 무분별한 성폭력 무고 적용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무고에 대한 인식과 실재, 전면적인 점검과 성찰 그리고 변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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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김포공항 사태에 대한 분노, 

여성노동의 현실 바꾸는 시작점 되어야


지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가벼운 차림보단 양손 가득 짐과 캐리어를 동반한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김포공항의 1층. 로비 한 가운데에는 한국공항공사 소속인 김포, 김해, 제주 공항의 높은 평가 순위를 자랑하는 원기둥 형 전광판이 비치되어 있다. 그러나 공항운영의 ‘효율성’ 평가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이들은 여성노동자의 시각에서 보았을 땐 결코 떳떳하지 못하다. 최근 김포공항의 청소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유린의 실태가 폭로되면서, 이들의 원청업체인 한국공항공사가 구설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지속적인 성추행 문제 제기… ‘공항 마피아’가 문제일까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이 지난 12일 파업결의 대회를 기점으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이들이 겪는 고충이 하루가 다르게 널리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국내선, 국제선, 화물청사 등 김포공항 내 모든 시설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데, 연간 7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규모에 비해 청소노동자의 수는 150여 명에 불과하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공항 한 층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카트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어느 청소노동자의 말에 따르면, 층별로 배치된 노동자는 2명에 불과하다고 하니 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해마다 늘어나는 승객 수에 비해 일하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 고강도·장시간 노동은 기본이다. 또한, 시간당 8,200원의 시중 용역단가와 상여급 400% 지급을 규정한 정부 지침이 무색하게, 이들은 최저 시급과 175%에 그친 상여급을 받고 있었다.


논란에 더욱 불을 붙인 것은, 용역업체 관리자들에 의한 상습적인 성추행 실태이다. 파업결의 대회에서 손경희 지부장은 공항청소노동자들이 용역업체 관리자들로부터 상습적으로 ‘추행과 술접대 강요’를 받아왔다고 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그에 따라 정당한 보상조차 이뤄지지 않는 체계, 이에 여성에 대한 폭력까지 더해진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자연스레 ‘인권’을 외치게 되었다. 사태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한국공항공사의 ‘낙하산 인사’가 지목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의 퇴직자들이 낙하산 인사를 통해 공항의 주차, 청소 업무를 관리하는 용역 업체의 간부가 되는 관행 속에서 부당한 대우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정치인, 언론사는 공항 마피아, 소위 ‘공피아’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소리 높여 비판하고, 시민들의 분노 또한 이에 집중되는 듯하다.


여성노동의 얼굴을 비추는 청소노동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고충의 일차적인 가해자인 ‘공피아’와 원청업체인 공항공사에 대한 분노는 합당하다. 그러나 관심과 분노의 수렴 점은 ‘공항 마피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청소노동으로 대변되는 여성노동의 현실로 모여야 한다. 청소노동자들이 겪는 불안정 고용, 장시간·저임금 노동, 성추행과 같은 비인간적 대우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의 문제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공피아의 척결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니다.






여성노동은 ‘여성의 임금노동’이란 포괄적인 표현으로 정의되는데,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그 내용이나 성격은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가사·돌봄과 같이, 한 사람과 사회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이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가정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이는 여전히 ‘여성노동’의 이름을 하고 있다. 재생산 노동은 집안에서 꾸준히 여성이 해오던 일이고, 많은 부분 시장화된 현재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여성의 몫이다. 그간 여성들이 무급으로 가정의 재생산 영역을 맡아오면서, 청소노동과 같은 여성노동은 여성이 원래 하는 일(앞으로 여성이 맡아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중심적이기보단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일로 취급받는다. 이에 더해, 우리 사회에는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을 단순히 남성 배우자의 수입에 대한 보조적인 역할로 간주하는 통념이 자리하고 있다. ‘반찬값 벌기 위해 나온 여성’이라는 왜곡된 시각은 여성을 한 명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부당한 성별 임금 격차와 저임금을 합리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성희롱·성추행 등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성인 성폭력 피해의 경우 직장 내 고용주 및 상사에 의한 피해가 매우 빈번한데, 고용주와 직원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특별히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명 중 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중심적인 직장 문화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경험하는 여성노동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맞서는 것은 생존권의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김포공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응축된 문제이다. 공항공사의 공피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이는 공항이 아닌 학교, 마트, 기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이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바꾸는 시작점 되어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 야당 의원들, 전국의 여러 사회단체와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아직 앞서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못한 다른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몰래 응원의 눈짓을 보낼 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의 투쟁이 저마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부당한 ‘갑’의 횡포에 맞서는 속 시원한 투쟁이 될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들의 승리는 노동조건의 최저선을 상승 시키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필자는 이번 싸움이 여성노동자들 스스로 직장 내 성차별,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을 바꿔가는 투쟁이라 생각한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사람들의 높은 관심과 지지가 갑질과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분노에 그치지 않고, 여성노동과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시작점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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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월경의 재조명

 

김채영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마법’이 아니라, 월경

 

인류의 절반은 생애 상당 부분 동안 피를 흘린다. 물론 그 기간이나 규칙성의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지만, 여성들은 평균 십삼 세에서 오십 세까지 자궁점막이 출혈과 함께 배출되는 생리현상을 겪는다. 이 평범한 현상은 ‘그날’도,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닌 ‘월경’이다. 월경은 생리현상 전반을 의미하는 ‘생리’라는 순화된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날’과 ‘마법에 걸렸다’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왜 우리는 월경이라는 정확한 말을 두고 그날 혹은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월경과 생리가 그리도 거북한 것일까?

 

월경의 역사

 

지난 7월 인사동에서 생리대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한 공사판 벽면에 생리혈과 붉은 물감이 묻은 생리대와 속옷이 붙고, “임신과 출산은 고귀하지만, 생리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입니까?”, “나 오늘 넘어져서 손바닥에 피 났어. 나 그거 해. 왜 생리는 생리라고 못하나요?”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 퍼포먼스는 큰 관심을 끌며 기사화되었는데, 상당수의 의견이 ‘더럽다, 과격하다, 여자인 나도 더럽게 생각하는 생리대를 왜 붙이느냐’ 등이었다. 생리혈에 대한 반감, 월경의 터부시가 명백히 표면화된 것이었다.


출처:m.mt.co.kr출처:www.womennews.co.kr




 

금기로서의 월경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고대 로마 자연학자 플리니는 월경혈을 ‘죽음에 이르는 독극물’이라고 생각하였고, 호주의 일부 선주민 부족은 월경혈이 남자를 죽일 수 있다고 믿었으며, 알래스카의 콜로쉬인들은 초경을 하는 소녀가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일 년 동안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게 하였다. 이런 터부시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생리를 더럽고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과학을 통해 월경이 무엇인지 규명이 된 오늘날에도 인식은 그대로이다.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생리대를 건네받을 때 혹 남들이 볼까 비밀스럽게 행동하고,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사면 점원은 이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는다. 우리는 생리를 숨겨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로, 생리혈은 더러운 것으로 여기도록 강요받아 온 것이다.

 

월경은 숨겨야 하는 대상인 동시에 여성을 보다 열등한 성으로 만드는 수단이었다. ‘히스테리’는 '자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hysteria)에서 유래하였는데, 과거 정신장애가 여성에게 자주 일어나는 증상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는 여성이 기분이 나쁘면 생리 중이라는 편견과 그 맥을 같이하는데, 생리 중인 여성은 비논리적이고 비정상적으로 감정 기복이 있다는 사회적 통념은 오늘날에도 만연하다. 월경전증후군으로 여성의 감정이 진단되면서 월경은 질병으로, 여성의 감정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월경은 보여서는 안 되는 금기이자 여성을 보다 열등하게 만드는 현상으로 정의되어 왔고, 또한 정의되고 있다.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

 

지난 5월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이나 휴지를 사용한다는 소식이 큰 쟁점이 되었다. 생리대를 할 수 없어 일주일 내내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 눈치를 보며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아 써야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필수품인 생리대의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6월에는 광주 광산구의회 정례회에서 저소득층 지원 물품에 생리대를 추가하자는 내용의 건의안에 새누리당 박상용 의원이 "위생대, 그러면 대충 다 알아들을 것이다, 본회의장에서 생리대라는 것은 좀 적절치 못한 그런 발언이지 않으냐 그런 생각이 든다"라는 생리대 혐오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7월에는 재난구호 물품에서 생리대가 제외되었는데, “생리대는 활용도가 낮은 데다 활용 연령대도 제한적이다. 제품 선택 등 개인 취향의 문제가 있고 오래 보관할 경우 변질 가능성이 있어 제외했다”라는 것이 그 연유였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생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면서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을 촉발하였다. 이 캠페인으로 생리대 가격 인하를 주장하고 생리에 대한 무지함과 혐오를 꼬집는 인사동 생리대 퍼포먼스가 전개되었다.

 

출처:https://twitter.com/g__susan

우리나라의 생리대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의하면, 한국 생리대의 개당 가격은 331원으로 일본, 프랑스. 덴마크, 미국, 캐나다 5개국의 평균 가격인 187.6원보다 높다. 또한, 소비자물가지수를 고려해볼 때 생리대 가격이 물가보다 빨리 올라 소비자들이 면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생리대가 있고, 구매 경로마다 가격차가 있으므로 정확한 비교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생리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주장에 인용되는 통계는 이마트의 노브랜드 생리대를 기준으로 하거나, 한국 팬티라이너와 외국 생리대를 비교하는 등의 오류가 있어 신뢰하기 힘들다.

 

또한, 생필품인 생리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식이 부족하다. 면도기는 필수품이지만 생리대는 기호품이고, ‘생리’가 거북하니 ‘위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발상은 젠더 감수성이 모자란 국가 기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스레 사회 일반의 생리에 대한 상식 부재와 혐오에 대한 문제로 퍼졌는데, 생리대 가격 인하 주장이 일자 “생리대는 하루 두 개면 충분하지 않나”, “생리를 참았다가 집에서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와 같은 상식 밖의 의견들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생리대를붙이자 캠페인은 생리대 가격 인하와 인식 개선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났다. 저소득층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 서울시와 성남시의 생리대 지원, ‘생리대 만드는 청년’의 저가 생리대 보급 프로젝트까지 실질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개선이 없다면, 이는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해결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고, 모든 여성이 경제적 부담 없이 생리대를 사용하며, 생리휴가를 쓰면서 필요한 휴식을 취하는 사회는, 월경을 불편하고 거북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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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는 전쟁이 있었고, 전쟁에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몸은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가부장제와 결합하며 ‘전리품’ 또는 ‘성노예’의 형태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성노예’나 베트남전쟁의 ‘성노예’, 한국전쟁 이후의 ‘양공주’, 그리고 기지촌의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섹슈얼리티의 결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 민족주의적 질서 속에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들이 강제든 아니든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민족주의적 가부장제의 관점에서, 여성의 고결함과 정숙은 민족주의적 자부심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전쟁, 반복되는 역사②

애국주의와 기지촌


김채영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1992년 10월 28일 동두천에서 윤금이라 불린 미군 상대 성 판매 여성이 미국인 케네스 마클에 의해 살해되었다. 전국의 사회운동단체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였고 그 결과 1994년 마클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사건은 ‘민족적 수치’로 여겨졌던 기지촌 성 판매 여성의 죽음에 온 국민이 분노했다는 점에서 인권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라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비판의 초점이 한미관계에 맞추어져 정작 기지촌 성 판매 여성의 현실은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2014년 6월 25일 살아있는 전직 기지촌 위안부 122명이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가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했음에도 기지촌을 특정 지역으로 지정하여 성매매를 조장하였고, 성병 검진과 치료를 강요하였으며 ‘애국교육’까지 실시하였다고 밝혔다. 여과 없이 증언되고 있는 당시 정부의 기지촌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은 전쟁 속에서 여성의 몸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국가가 이를 어떻게 활용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안보와 달러를 가져온 애국자들


한국 전쟁 이후, 휴전 상태에 들어섰지만 사실상 전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주한미군의 군사력에 의지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이들을 위해 군산 아메리카 타운을 건설하고 매매춘을 만드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거기에 닉슨독트린으로 일부 주한미군이 철수를 단행하자, 박정희 정부는 추가 철수를 막기 위해 대대적인 기지촌 정비를 공식적으로 실시하였다. 전장의 병사들이 섹스를 즐길 수 있되 성병으로 인한 전투력 손실을 막기 위해 안전한 성을 공급한다는 기지촌 정화운동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깨끗한 성’을 보급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매주 강제로 성병 검진을 하였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면 견디기 고통스러운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3.4일간 ‘몽키하우스’라고 불린 보건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의정부 기지촌 성매매에 종사했던 여성은 ‘페니실린을 맞으면 한쪽 다리가 찢겨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거의 걸을 수 없었다.’고 증언하였다. 검사결과가 어떻게든 음성으로 나오길 바라면서 약국에서 항생제 주사약을 구입하여 스스로 주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페니실린 과다투여로 쇼크사하는 여성들이 속출했지만, 정작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보건사회부의 기록에 따르면 1956년부터 1957년 총 성병 검진횟수 43만~49만 중 경기도가 반에 해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경기도의 기지촌을 제외하면 대부분 내국인 상대 성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었다. 미군의 수는 한국 남성 인구의 1%에 불과했음에도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에 대한 성병 검진이 과반수를 차지하였다. 기지촌 여성들은 또한 마지막 검진일이 표기된 검진 카드를 소지하고 다녀야 했는데, 단속되었을 때 카드가 없으면 보건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공무원들은 그녀들에게 “애국하는 것이니 자랑스러워하라”라고 하였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기지촌을 미군 주둔을 위한 수단으로뿐 아니라 외화를 벌어올 기회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기지촌의 경제 위력은 대단했는데, 1964년 외화수입 1억 달러 중 미군 전용 홀에서 벌어들인 돈은 970만 달러에 달했다. 그들은 ‘원자재 없이 외화를 벌어들이는 산업전사’였지만, 포주의 빚에 시달리고, 마약에 빠지고, 폭력에 시달렸다.


섹스동맹과 국가포주제


군대가 있는 곳에는 매매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지촌은 부도덕한 여성과 미군 병사 사이의 사적인 거래가 아닌, 한미 양국의 긴밀한 협력의 산물이었다. 병사들의 안전한 섹스와 스트레스 해소를 원한 미국과 주한미군의 주둔과 외화벌이를 원했던 한국 정부가 기지촌 정화 운동을 펼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본질에는 섹스동맹이 있었으며, 이는 국가 포주제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미군기지의 기지촌은 평택과 군산에만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기지촌 여성들이 담보하는 국가안보에 의지하고 그들이 번 돈에 기생하였기에, 나라 전체가 기지촌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었다. 여성들은 단순히 성욕 해소의 수단을 넘어, 국가 간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자본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흔히 전시체제에서 여성은 소녀, 어머니, 창녀라는 이미지로 묘사되지만, 이 ‘창녀’는 타락한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적으로 생산된 여성이었다. 기지촌은 전시체제에서 여성이 국가와 민족에 의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전후 한국문학에서 기지촌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 서술자들에 의해 ‘우리와 이질적인 미군들만을 상대하는, 성적으로 문란한 노동 계급’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이끈 것은 전쟁으로 인한 빈곤과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 남동생과 달러와 안보를 확보해야 하는 국가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기지촌의 여성들은 오늘날까지 페니실린과 마약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면서, 부도덕하고 문란한 ‘양공주’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작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122명 중 한 명인 만수화(가명) 씨는 코리아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도 가끔 잘 모르겠어요. 무엇을 위해서 왜 살았는가, 이런 거요. 그냥 참으면서 세월이 흘러간 거죠. 꿈이나 목적, 이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고. 가장 크게 잃은 건 시간 같아요. 그 시간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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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는 전쟁이 있었고, 전쟁에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의 몸은 근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전리품’ 또는 ‘성노예’의 형태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성노예’나 베트남전쟁의 ‘성노예’, 한국전쟁 이후의 ‘양공주’, 그리고 기지촌의 여성들은 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의 결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들이 강제든 아니든 ‘우리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가부장제의 관점에서, 여성의 고결함과 정숙은 민족주의적 자부심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여성과 전쟁, 반복되는 역사] 기획기사를 통해 페미니즘과 민족주의, 여성인권과 전시 성폭력에 대해 짚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성과 전쟁, 반복되는 역사①]

국가는 여성의 몸을 어떻게 활용해왔나


지혜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루벤스 - 브리세우스 아킬레우스>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에 집필한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은 여성의 몸이 전쟁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로이 전쟁은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를 파리스 왕자가 훔쳐갔다는 명분과 함께 발발한다. 전쟁 10년 차, 아테네 연합군의 수장인 아가멤논과 신이 내린 전사 아킬레우스 사이에는 분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전리품 여인’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가 받은 전리품 여인을 아가멤논이 겁탈하였던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이 책을 읽으며,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여자들이 전쟁의 명분 또는 전리품으로 환원되어 서술되는 것이 의아했다. 트로이 전쟁이 허구냐 실화냐의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9장에서 말했듯, ‘일어난’ 일을 기술하는 연대기와는 달리 시는 ‘일어날 법한’ 일을 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대기보다도 훨씬 ‘보편적’인 기록물로 기능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일리아스』에 나타난 여성의 몸이, 전쟁과 역사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느껴졌다.


전시 성폭력은 오래된 전쟁술 중 하나다. 이는 가부장제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가부장 지배하의 여성에게 중요한 덕목은 임신과 출산이다. 이 때문에 여성의 몸은 ‘남성의 씨’를 담는 ‘그릇 또는 토양’처럼 여겨졌다. 이를 전시 성폭력에 빗대 분석해보면, 적국 여성에 대한 강간은 적의 영토에 씨앗을 뿌리고 인종을 청소하는 행위인 셈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의 장수들에게 돌아가던 ‘전리품 여성’은 이러한 심리 전술의 정점에 위치한 상품이었다. 과거 유목민들의 전쟁에서는 타 부족의 여자를 전리품으로 잡아들여 승리한 족장의 부하들에게 나눠주던 풍습이 만연했다. 칭기즈칸 역시 아내가 납치당했다가 임신을 ‘당한’ 상태로 돌아와 괴로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전리품’에 대한 서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넘쳐난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려 시대에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성욕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만 고려의 여자들을 데려갔을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원나라 입장에서는 고려 남성들의 ‘씨’를 받아야 할 고려 여성을 정복하는 것이 그 자체로 훌륭한 ‘심리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고려 남성들이 정신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원나라에 심리적으로 복속되기 때문이다. 여성을 빼앗긴 것은 영토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유효한 문제다. 작년 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조직원들을 위한 ‘성폭행 안내서’를 출간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 책은 IS 대원들에게 포로로 붙잡힌 여성을 성폭행할 때 허용되는 사항과 허용되지 않는 사항에 관하여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중 “성폭행으로 여성 포로가 임신했을 경우 유산을 시키기보다는 출산할 때까지 잘 돌봐준다”는 규칙이 있다. 이 대목은 IS가 단순한 성욕 충족을 위해 여성 포로를 성폭행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만약 성폭행의 이유가 그저 성욕 충족일 뿐이라면, 임신한 여성은 ‘성 노리개’로서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살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유엔 연례 보고서는 IS,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무장조직의 성범죄가 단순 성욕 분출 수단이 아닌 분명한 전략적 목적을 지닌 전쟁 도구라는 점을 밝혔다. 극단주의 조직들이 상대 민족이나 국가 여성들에게 저지르는 성폭행과 성노예화, 강제 결혼 등은 자신들의 행위를 과시하고 점령 지역 주민들을 정신적으로 복속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북부 치복에서 수백 명의 소녀가 보코하람에 납치되어 강제 결혼이나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이라크에서 지난 몇 달간 1500여 명이 성 노예로 전락한 사건은 모두 이와 같은 ‘전시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사람들에게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과 유지에 강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국가가 민족주의를 지탱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국민에게 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주입하기도 하고, 타국이나 타민족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게끔 여론을 끌어내기도 한다. 이때 흔하게 사용되는 도구 중 하나가 ‘섹슈얼리티’다.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있으며, 통치 전략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가부장적인 곳일수록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가 높다.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점을 노려 섹슈얼리티와 결합한다.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것이 가부장 사회의 관습인 것에 착안한다면, 타민족의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국가나 타민족을 공격하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섹슈얼리티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극대화될 경우, 타민족, 다른 국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엄청난 정당성을 갖는다. 그것이 ‘애국’을 위해 수반되는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섹슈얼리티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반드시 타민족, 타국 여성만 노리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시에는 자민족, 자국 여성까지도 가차 없이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성적 희생물이 된다. 우리나라의 ‘기지촌’이나 ‘기생 관광’을 떠올려보자. 가부장제가 존재하는 한, 여성의 몸은 주체적 신체이기 이전에 국가와 민족의 소유로 인식된다.


전쟁을 중단하면 문제가 사라질까? 나는 그에 대해 회의적이다. ‘동남아 여성 매매혼’이나 ‘코피노’를 떠올려보자. 단 며칠 만에 심사를 보고 아버지뻘 나이의 한국 사람에게 ‘팔려와’ 성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 맞아 죽은 동남아 신부들을 떠올려보자. 전쟁 상황이 아니더라도 섹슈얼리티와 민족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앞서 열거한 공녀, IS 성폭행, 기지촌, 베트남 전쟁,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의 본질은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조직적으로 여성의 몸을 활용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다. 전쟁은 단지 그것을 극대화하여 보여주기에 충분했던 시간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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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법 앞에 멈춰선 여성들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②]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정폭력‘처벌법’


장유미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사랑과 희생, 화목함의 상징인 가족. 그러나 한국 가정의 53.8%는 ‘폭력’ 가정. 그만큼 경험으로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 ‘감히 참견해서는 안 될 가정사’라고 생각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인식. 이처럼 가족과 가정폭력을 둘러싼 이중적인 잣대, 인식의 괴리는 폭력의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올해로 33년 동안 아내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여성의전화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가정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보수적인 가족상과 폭력의 연관성, 현 가정폭력 관련 제도의 문제, 가정폭력과 얽혀있는 또 다른 폭력의 실상을 파헤쳐봅니다. 


* 본 기사들은 한국여성의전화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의 일환으로 연속 연재되었습니다.


  2015년 한 해, 대한민국에서는 최소 93명의 ‘아내’들이 가해자 남편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거나 살해당했다(한국여성의전화, 2015년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통계 분석). 여성들은 가해자에게 수차례 맞고, 흉기에 찔렸으며, 몸에 붙은 불에 화상을 입는 등으로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입었다. 


  가해자가 진술하는 폭력 혹은 살해의 주된 동기는 여성들이 가해자에게 헤어지자고 했을 때, 혹은 싸우다가 ‘홧김에 우발적으로’였다. 홧김에 범죄를 저지른 구체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았다. 여성들이 ‘이사 오기 전의 노인정과 성당에 계속 다녀서’, ‘함께 술을 마시는 도중 휴대전화만 봐서’, ‘설익은 강낭콩 껍질을 벗겨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타 지역에 가서 함께 살기를 거부해서’,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아서’. 


  ‘아내’들은 지난 한 해, 그렇게 가해자의 폭력을 견디거나, 마침내는 가해자의 폭력 끝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내폭력의 ‘이유’

  한 가정의 ‘아내’라는 역할은 오랜 역사 속에서 ‘어머니’란 역할과 함께 여성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정체성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집에 있어야 ‘자연스러웠다’. 여성들은 아내로서뿐 아니라 ‘어머니’로서 집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보살피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 구성원들이 안락하게 음식을 먹고 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종일 바빴다. 하지만 여성들의 일은 ‘집에서 놀면서’ 하고 있는 하찮은 일이 되었다. 혹여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될 땐 ‘여자가’ ‘집에서 놀면서’ 뭐하느냔 얘기가 돌아왔다. 


  물론, 여성들이 언제나 집에 있진 않았다. 생계를 위해 여성들은 집 밖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집이었다. “애는 어떻게 하고 나왔냐, 얼마나 번다고 그러느냐”라는 얘기는 여성들에게만 돌아왔다. 여성들은 집을 ‘오래’ 떠나 있지 못했다. 


  여자라면 으레 어때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그 결과로 어떠한 일이 크게 잘못됐다고 느낄 때, 불안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것을 ‘이유’로 남편이 폭력을 가한다면,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원인을 돌려야 그 상황을 일단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가하는 폭력은 ‘설익은 강낭콩 껍질을 벗겨서’와 같이 자의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폭력이 행사되는 대상은 ‘아내’였다. 여성들에게 집은 그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가정 보호’. 법의 목적은 분명했다




  여성들이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가정에서, 아내폭력은 으레 일어나는 일이었다. 1983년 여성의전화가 조사했던 아내구타 실태조사에서 결혼 후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여성의 비율은 42.2%에 달했다. 그럼에도 어떠한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던 아내폭력은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고서야 처벌받을 수 있는 사회적 범죄가 되었다. 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가 가진 인식은 아내폭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여성들의 생명권과 인권을 보장하고, 가해 남편을 처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외부에서는 개인들이 서로 ‘사적’으로 만났다가도 범죄사건이 벌어지면 가해자가 처벌대상이 되건만, 집이라는 ‘남성의 사적 공간’에서 일어난 폭력은 가부장이 가정 구성원들을 ‘통솔하고’,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 한 행위들로 간주됐다. 남이 보기에 가부장의 폭력은 아내 혹은 아이들이 ‘맞을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끼어들 수 없는 ‘남(성)의 가정사’, ‘남(성)의 집안일’이었다. 


  특히 일선에서 아내폭력 사건에 대응하고 피해여성의 생명권을 보장해야 할 경찰의 인식이 그러했다. 2013년 5월 경찰청이 전국 경찰관 8,932명과 가정폭력 담당 수사관 9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폭력 인식 조사에서,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안에서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57.9%,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35%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행 가정폭력방지법의 성격을 봤을 때, 놀랄 일도 아니다. 가정폭력방지법은 궁극적으로 피해여성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 목적조항은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법이 우선으로 하는 목적은 명백했다. 가정폭력은 ‘가정을 파괴하는’ 범죄이며, 회복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은 가정이다. 피해여성의 인권 보장은 부차적인 것이다. 


  여전히 처벌되지 않는 ‘아내폭력’

 


  가정을 회복하여 지키고자 하는 법체계에서 가해자 처벌은 당연히 주 관심사가 아니었고, 실상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2013년 가정폭력 피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찰 신고 뒤 아무런 법적 조치를 받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8.3%였다. 또한 검사가 가정폭력 사건을 형사법원에 기소하는 비율은 2015년 7월 기준 8.7%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법무부, 2015년 8월). 한편, 재판 청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불기소 처분 비율은 2011년 64.1%, 2012년 62.6%, 2013년 60.4%로 연간 60%를 웃돌고 있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현행 가정폭력처벌특례법의 운용실태 및 입법적 개선방안 연구」, 2014). 이외 사건들은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어 가정법원에 재판이 청구된다. 


  그러나 실상 가해자의 ‘성행 교정’을 위한 가정보호사건 처분 내용이란 것이 ‘처벌’이랄 것도 없다. 특히 ‘접근행위금지, 친권행사제한, 사회봉사·수강명령, 보호관찰, 감호위탁, 치료위탁, 상담위탁’ 등의 보호처분 내용 중 그나마 피해여성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접근행위금지, 친권행사제한 처분 비율은 2014년 기준 0.6%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불처분은 30%, 상담위탁 처분은 19.2%, 사회봉사명령 처분 9.3%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법원행정처, 2015 사법연감). 가정보호 사건으로 둔갑한 아내폭력 사건은 가정보호와 유지를 최종적인 목표로 하는 당국의 법 집행 과정에서 기껏해야 가해자에게 상담을 받도록 하는 처분이 고작이었다.


  2007년부터는 법원까지 갈 것도 없이 검찰 단계에서 상담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처벌을 면해주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가 등장하면서, 아내폭력 범죄에서 가정유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국가적 대응 방식의 정점을 찍었다.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를 받은 인원의 비율은 2007년 가정폭력사범 대비 1.4%, 기소유예인원 대비 6.2%에서 2014년 9월 기준 가정폭력사범 대비 3.2%, 기소유예인원 대비 29.6%로 훌쩍 증가한 상황이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현행 가정폭력처벌특례법의 운용실태 및 입법적 개선방안 연구」, 2014). 


  이제 가해자들은 법원에 가서 재판을 통해 상담 처분을 받는 수고로움(!) 없이 검찰 단계에서 상담을 받기만 하면 되었다. 더군다나 대검찰청의 2013년 「가정폭력사범 조건부 기소유예 처리지침」을 보면 대상 사건을 ‘사안이 경미하고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하여 가정구성원간 화합과 치유 등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사건, 가정폭력행위자의 범행 경위, 전력, 성향 등을 종합하여 가정폭력 행위자에게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으로 모호하게 규정하여 대상 사건의 적합성 여부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무엇보다도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는 아내폭력 사건 대부분이 불기소되거나 상담위탁 처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아내폭력이 처벌받는 범죄이기보다는 상담을 받는 일탈 행위 정도로 인식되는 것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범죄행위에 대한 국가적 처벌이 상담을 받는 정도로 끝나는 범죄, 그게 바로 아내폭력이다.


  여성들은 ‘그 곳’에 있다 




  우리 사회는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에 대한 오래된, 그리고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들어 왔다. 여성들에게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과 실제론 동등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는 경험이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볼 때 그 정도가 경미하든 중하든, 폭력은 서로가 가진 권력이 동등하지 않은 관계, 열등하다고 간주되는 존재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형태다. 아내폭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스며든 우리 사회의 단면이며,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된 일면이다.


  여성들 중 누군가는 ‘그 곳’을 떠날 수 있었거나, 누군가는 ‘그 곳’에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다 가해자에 의해 마침내는 목숨을 잃었거나, 혹은 누군가는 가정을 지키려는 사회 앞에 수없이 발길을 뗐다가도 돌리며 ‘그 곳’, 가정에 있다. 가해자의 폭력을 멈춰주지 못하는 국가시스템 앞에 멈춰서 있는 여성들에게 우린 어느 누구도 책임을 논할 수 없다. ‘그 곳’에서 살아남는 몫을 여성에게 돌리지 않으려면, 또한 ‘가정폭력 근절’이 껍데기만 남은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가정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아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더 이상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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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①] 박제된 가족을 넘어


김홍미리 여성주의연구활동가,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사랑과 희생, 화목함의 상징인 가족. 그러나 한국 가정의 53.8%는 ‘폭력’ 가정. 그만큼 경험으로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 ‘감히 참견해서는 안 될 가정사’라고 생각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인식. 이처럼 가족과 가정폭력을 둘러싼 이중적인 잣대, 인식의 괴리는 폭력의 본질적인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올해로 33년 동안 아내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한국여성의전화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가정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보수적인 가족상과 폭력의 연관성, 현 가정폭력 관련 제도의 문제, 가정폭력과 얽혀있는 또 다른 폭력의 실상을 파헤쳐봅니다. 


* 본 기사들은 한국여성의전화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캠페인의 일환으로 연속 연재되었습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올해에도 어김없이 가정의 달이 찾아왔다. 내내 소홀하더라도 일 년에 한 달 만큼은, 그 한 달 중에 하루만큼은 서로의 ‘소중함’을 기억해보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어린이날(5/5), 어버이날(5/8), 세계가정의날(5/15)에 이어 부부의날(5/21)까지 5월 한 달은 그야말로 곁에 있는 가족구성원들을 차근차근 호명하면서 ‘가족이란 나에게 무엇인지’ 물어온다. 낯설게 보지 않는다면 이 질문은 종종 ‘가족의 소중함을 알자’는 식의 식상한 답으로 돌아오기 쉽다. ‘인사를 잘하자’라거나 ‘서로 배려하자’는 캠페인 문구처럼 누구나 듣기에 틀린 것 없어 보이는 말로 정리하면서 답하기 난해하고 복잡한 질문을 어물쩍 넘긴다. 


가족은 소중하다. 그런데 이 문장의 포인트는 ‘소중하다’가 아니다. 소중해야 할 그 ‘가족’이 과연 무엇인지, 왜 소중하다는 말이 반드시 소중해야 할 것처럼 재차 강조되는지가 포인트다. 가족이 무엇인지 되짚지 않고 중요하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외칠 때 우리는 ‘가족’을 박제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소외시키기 시작한다. 어린이날 인기 선물을 한 달 전에 미리 확보해둔다거나 TV에 나온 맛집을 어버이날 전에 예약해 둔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족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만이 아니라 가족의 무거움도 감지한다. 가족의 지겨움과 고단함, 가족 구조의 서열과 경직성, 가족에 대한 내 감정의 난해함과 난감함을 함께 경험한다. 복잡한 감정의 회로를 ‘가족’이라는 단어에 새기며 살아가며, 이건 인사하기나 배려하기라는 규범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은 소중하다’는 말 아래에 숨고, 그 말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방식으로 복잡한 마음을 꾸역꾸역 눌러 담는다. 이런 억지스러움을 포장지에 싸는 다급함으로 5월 가정의달에 ‘정상가족’ 코스프레는 정점을 찍는다.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진정 인사 잘하기 정도로 가볍게 ‘가족에게 잘하기’ 코스프레나 하고 살면 되는 걸까?  



그 사람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가족이 무엇인가를 질문할 때에 종종 주어를 생략한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것을 가정하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은 권력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공간이며, 이때 가족의 의미는 주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 말하기에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묻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우리는 신문에 오르내리는 기사를 통해 그 사람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할 기회를 얻지만, 그것을 특수한 가정의 보편적이지 않은 문제로 치부할 때 종종 그 기회는 상실되곤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그녀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들 속에서 ‘가족’은 박제가 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2016년 4월 어느 날 나는 열아홉 살 때부터 지속된 형부의 성폭력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그 아이를 살해했다는 기사를 접했다(2016년 4월 5일). 아픈 언니와 조카를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신고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이모이자, 처제이자, 엄마인 1) 이 여성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별거 중인 아내를 불러내 지하 창고에 감금하고 폭행한 남편이 아내를 불러낸 명분이 ‘면접교섭권’이었다는 기사도 접한다(2015년 3월 28일).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는 ‘자녀’였다. 법은 가정폭력 가해자이기에 앞서 아버지인 그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며, ‘가족을 지키려는’ 법의 의지 앞에 가정폭력은 신중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덕분에 이혼과정에서 살해되는 여성들이 꾸준하다. 2015년 12월에도 남편은 면접교섭권을 빌미로 아내와 아이를 불러내 둘 다 살해했다.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연거푸 묻는 질문이 있다. 2) 법이 지키려는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3) 잃을 바에는 같이 죽거나 죽인다는 이 아버지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올 3월에는 아내와 딸을 살해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난해 10월에는 50대 가장이 말기 암 아내와 특목고생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일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10년 전 LA에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내와 두 자녀에게 총격을 가하고 자살한 아버지와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딸의 이야기는 2016년 4월 LA타임즈 기사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살아남은 이를 보며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4) 살아남은 딸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누구’라는 주어를 생략하고, 삶의 맥락을 삭제한 채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할수록 가족은 점점 박제가 되어간다. 쉴 곳과 기댈 곳을 찾는 무수한 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그게 바로 ‘가족’이라고 당연하듯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빼곡하게(그리고 덕지덕지) 규범으로 채운 세계에서 ‘가족’은 특정한 조건 속에서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안식’이라는 걸 준다. 안식은,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처제를 강간하는 형부에게, 그리고 폭력에 저항하기보다 ‘인내’를 선택한 아내를 지속적으로 구타하는 남편에게 도달할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접고 저항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녀와 ‘가족’을 책임지려는 ‘처제’와 ‘아내’에게 가족은 안식처일 수 없다. 


박제된 ‘가족’의 옳지 않은 활용에 대하여


지난 20대 총선 기독자유당 홍보물에 서정희가 등장했다. 1983년 ‘성폭행 비슷한 것’으로 인해 서세원과 결혼하게 됐다는 서정희는 지난 30년 폭력으로 점철된 생을 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간통죄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동성애와 이슬람으로부터 가정을 지키자’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간통죄 부활이 서세원의 외도, 구타, 강간을 멈추게 할 리 없고, 성소수자와 무슬림에 대한 혐오는 소수자 혐오정서를 확산시킴으로써 결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수자’인)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는 일에 기여할 뿐이다. 결국, 이 세 가지 모두 가족구성원의 목소리가 고루 존중받는 가족문화를 만드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거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기독자유당은, 그리고 서정희는 ‘가정을 지키자’는 박제된 문장 하나로 이 모든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한다. 동성애를 처단하는 것도 ‘가정’ 파괴를 막기 위해서고, 이슬람을 처단하는 것도 ‘가정’을 위해서라고 부르짖으며, 간통죄를 부활해야 하는 것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우긴다. 이것은 뿌리깊은 한국사회의 ‘가족주의’가 정당하지 않는 일에 편의적으로 활용되는 전형적인 예다. 만약 ‘편의적 활용’에 대해 동의가 어렵다면, 기독자유당과 서정희는 간통죄 부활 및 무슬림과 동성애자 혐오를 통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정’이 무엇인지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정’은 눈 가리고 아웅할 때 사용하는 만능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청년세대의 절망을 결혼 못 해서 슬프겠다고 퉁치는 일(삼포, 오포, 육무), ‘외국 처녀라야 총각딱지 떼는’ 농촌 총각을 불쌍히 여겨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을 국가가 나서서 실천하는 일(국제결혼지원조례), 저출산(과거에는 고출산)을 경제성장 발목 잡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일, 37만 명 성감별로 낙태된 여아를 뒤로하고 ‘올해 총각 6명 중 1명은 결혼불가-최악의 남초’를 걱정하는 일 등은 불평등하게 구축된 글로벌자본주의의 문제와 전 지구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젠더권력관계를 가뿐히 삭제한 후, 가정문제(결혼 못하는 문제와 출산 안하는 문제)로 분리되어 안착한다. 공사영역이 완벽히 구분된다는 근대의 발명품은 마치 가족에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들이 사회와 무관한 것처럼 가족을 진공상태로 상상한다. 글로벌자본주의와 전 지구적 젠더체계를 가정에서 떼어내고, 개인의 인내, 개인의 ‘노오오오력’, 개인의 (낙태/결혼/출산) 선택의 문제로 단순화된다. 결국 공사이분법은 모오오오오든 골치 아픈 문제를 가정이 책임지고 개인이 노력하게 하는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첫 번째 단추였던 셈이다. 


가정이라는 불가침의 영역, 가족의 이름으로 겪어내는 폭력


덕분에 가족은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든지 상관없이 가족이 담당해야 할 기능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을 수 있게 됐고, 수행하지 못할 경우의 비난도 감수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저출산이 문제라며 여성들을 들들 볶는 일, 심지어 알레르기 질병의 유병율 증가를 ‘핵가족화와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청소기회 감소’로 지목하는 것을 보면,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다 가정이 바로서지 못했기 때문이고, 가정을 버리고 과욕을 부려 사회로 나가려는 여자들 때문이라고 할 날도 머지 않았다. (벌써 왔을 것도 같다.)


그런 ‘가족’이 뭐라고, 가족을 구성하는 데에도 자격을 묻는다. 성적지향과 장애, 나이, 인종, 종교 등을 둘러싸고 결혼과 출산의 자격이 물어진다. 동성애자의 결혼과 장애여성의 출산은 허락되지 않는다. 다양한 주체들의 가족구성권리는 ‘정상적인 형태의 가족’만을 수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참 당당하게 침해당하는 중이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이 사회의 시민 됨을 인정하는 절차여서 그렇다. 시민과 비시민을 가르는 경계에 ‘가족’이 있고, 그 자격 기준 운운하는 사이에 정작 가족은 부족한 개인들의 공동체적 연대의 개념에서 점점 멀어지는 중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하나 있다.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는 관계를 그저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인간이 독립적이라는 근대의 믿음은 허상에 불과하고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산다. 독립적인 시늉을 하려 애쓰지만 ‘별에서 온 그대’가 아닌 이상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받으면서 산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관계를 표현하는 적절한 말로 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까 망설인다. ‘가족’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무수한 폭력들 사이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은 따뜻함의 의미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한다. 그 의심을 거두고 가족의 이름으로 누구나의 안식을 바라는 일을 기대해도, 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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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


작성 김나영 연구팀장

편집 최지수 칼럼팀






‘여성주의 정보생산자조합 페미디아’는 2016년 5월 9일, 한국에 더 많은 여성주의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Your Feminist Idea’를 줄인 ‘페미디아’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습니다.

 

페미디아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인천 지역과 녹색당에서 생태주의 및 청년활동을 하던 진달래씨였습니다. 그는 우리말로 된 여성주의 정보와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던 중, 올해 4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문제에 관련된 외신을 번역하고, 여성주의 및 젠더 관련 다양한 연구를 소개하는 웹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사업 계획을 알렸습니다. 때마침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덕분에 짧은 시간에 진달래 대표의 문제의식과 사업 계획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30여명 모여 <페미디아>를 창간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다양한 관심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합류해 현재는 총 96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페미디아>는 창간 이후 현재 페이스북(좋아요 5,870명)과 트위터(팔로워 2,450명)를 통해 여러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환대를 받으며 자라고 있는 매체입니다. 창간 소식을 알린 <한겨레>를 비롯,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책을 조명한 <시사IN>의 인터뷰, 퀴어퍼레이드에서의 활동을 취재한 <여성신문> 및 <일다>, <블로터>,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첫 두 달 동안 페미디아는 총 100편이 넘는 글을 발행했으며, <허핑턴포스트> <블로터> <직썰> 등 다양한 매체와 기사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또한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살해’(femicide)이자 혐오범죄로 명명하고 이에 관련된 기사들을 발행한 몇 안 되는 매체 중 하나였습니다. 이외에도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의 부담을 나눠 지지 않는 한국의 남성들을 꼬집는 포스터의 제작,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글들의 번역, 가부장주의적 가족제도 내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일간지의 칼럼에 대한 비판적 칼럼의 발행 등의 활동으로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으며 여성주의를 말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마주치게 되는 여성혐오와 반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출판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20여일 만에 4,369만원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벨 훅스는 여성주의를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라 정의했습니다. 페미디아는 짓밟힌 이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짓밟는 구조와 문화를 고발하고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려 합니다. 구체적으로 번역팀에서는 젠더문제에 대한 외신 뉴스를 우리 맥락에 맞는 우리말로 옮기고, 연구소개팀에서는 여성학/젠더학과 관련된 국내외의 흥미로운 연구를 설명하며, 칼럼팀에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쓴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페미디아는 게임팀을 통해,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언어폭력을 실제로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우리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게임 <졸업 축하해>를 8월을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또한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조합원들과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페미 꿈나무’)들을 위한 교과서 등의 콘텐츠 제작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영상팀을 통해 여성주의적 이슈와 흥미로운 인물에 대한 취재, 여성주의 영상/라디오 제작, ‘올페미’(old femi)와 ‘영페미’(young femi) 사이의 세대 차이를 이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족한 미술팀에서는 여성주의 웹툰/만평 발행, 문구류/생활용품 등의 소품 제작 등의 활동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여성해방 없는 해방은 해방이 아니며 여성인권 없는 인권은 인권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한국에 많아지고 서로 연결되어 물결을 일으킨 덕분에 페미디아도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여성주의는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민족과 국가, 전공과 방법론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페미디아가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영역과 방식 또한 다양하고 무한합니다. 더욱더 많은 여성주의를 펼쳐 더욱더 많은 물결에 힘을 보태고 온 세상을 뒤엎어버릴 거센 파도를 불러올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1) 우리가 보고 싶은 뉴스와 콘텐츠를 만들자, 2) 여성주의 담론 영토를 넓히자, 3) 천천히 지속가능하게 가자는 기조하에 다양한 활동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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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보도를 집계·분석한 ‘분노의 게이지’에 의하면,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남성에 의해 총 1,051명의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뻔 했다. 그 중 살해당한 여성은 657명이다. 이는 물론 최소치이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에 의한 피해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657명. 


그리고 2016년 5월 17일, 또 한 명의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이제 ‘여성’들이 그 “살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고통스러운 고백으로 시작된 이 목소리는 인터넷망에서 망으로, 거리에서 거리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 2016년 한국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 혐오와 멸시에 뜻 깊은 발걸음을 새겨가는 중임에 틀림없다.  



5월 17일 이후, 현재까지 진행 중인,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여성들의 목소리를 『베틀Ⅲ』 7호에서 함께 기록한다.  



여성폭력범죄 정부종합대책 비판과 대안 

여성대상 강력범죄 종합대책- 

왜, 유독, 여성만을 대상으로 발생하는지 묻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본 글은 6월 9일, 국회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원인과 대책 후속토론회 - 여성대상 강력범죄 종합대책,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본회 송란희 사무처장이 발표한 토론문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동기 없는 범죄’는 왜 강조되는가

정부는 지난 6월 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여성대상 강력범죄 및 동기 없는 범죄 종합대책(이하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이미 그것이 소위 ‘묻지마 범죄’라 할지라도 여성만을 대상으로 했기에, ‘묻지마 범죄’, 혹은 ‘정신질환자’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사건 이후, 널리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종합대책을 수립하면서 여성대상 강력범죄와 동기 없는 범죄를 등치시켰다. 정부종합대책 또한 추진배경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동기 없는 살인·상해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것을 들고 있으면서, ‘동기 없는 범죄’를 ‘여성대상 강력범죄’와 같은 무게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책의 초점은 소위 ‘동기 없는’ 범죄가 왜 유독 여성을 대상으로 빈번히 발생하는지에 맞춰져야 하는 것 아닌가.  


같잖은’ ‘동기 있는’ 여성대상 범죄

여성대상 범죄는 동기가 없지 않다. 다만, 그 ‘동기’라는 것이 어떻게 해석되는가가 문제이다. 특히, 언론이나 수사기관에서 밝히는 범죄의 동기라는 것은 가해자의 변명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언론에 보도된 가해자의 여성살인 동기(변명)는 다음과 같다. “헤어지자고 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서/의심해서”,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생활고 때문에”, “식사 차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술 취한 모습에 화가 나서”, “강낭콩 껍질을 벗겨서”, “양말과 운동화를 세탁하지 않아서”,  “전화 받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홧김에”, “술에 취해” 등. 이는 가해자와의 관계가 남편, 전남편, 애인, 전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었을 경우이며, 가해자와 일면식도 없던 경우, 가해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나서” 등을 그 ‘동기’로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여성대상 범죄를 다루는 방식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여성대상 범죄와 동기 없는 범죄를 등치시켜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피해자가 남편 혹은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했거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거나, ‘그 곳에 갔기’ 때문으로, 피해자에게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면 가해자가 ‘술’에 취해거나, ‘정신질환’이 있기 때문인 식으로 말이다.


이 같은 여성대상 범죄 실태 파악의 실패 혹은 의지 없음, 범죄자의 범행동기(변명)에 근거한 대책은 피해자의 범죄 유발 원인을 제거하거나(밤늦게 혼자 다니지 말 것 등) 범죄자의 특성에 따른 (또 다른 인권침해인) ‘잠재적 범죄자’ 제재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종합대책, 전면 재검토해야


정부 종합대책은 범죄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환경 개선, 정신질환 및 알코올 중독에 대한 치료지원 강화, 재범방지를 위한 치료 및 관리 강화, 강력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 양성평등문화 조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책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여성대상 범죄,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여성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명백한 범죄행위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 기인한다. 이는 곧, 가부장적 권력관계, 차별적인 문화규범,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폭력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대책의 1순위로 환경개선을 배치한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골목길 순찰, 안심귀가 서비스, 비상벨 설치, 범죄안전지도 작성·배포, CCTV 추가설치, 남녀화장실 분리설치 의무 대상범위 확대 등은 ‘늦게 귀가하는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된다’, ‘여성범죄는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발생한다’, ‘여성이 조심하면 범죄를 피할 수 있다’ 등의 여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강화한다. 또한, CCTV 확대, 비상벨 설치 등은 범죄 예방보다는 신고와 범인 검거 등 사후적 대응에 효과적인 조치들이다. 여성 대상 범죄예방에 있어 CCTV 설치 등 치안인프라 구축은 일정 정도 필요하지만, 문제는 여성에 대한 범죄 예방정책이 물리적 환경 개선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며, 여성들이 주로 폭력 범죄를 당하는 가정은 애초에 제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밤낮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나 발생함. 가해자 또한 낯선 사람, 전과가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특정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전체 여성폭력, 여성대상범죄에 있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정신장애 범죄자 비율 0.4%, 정신이상, 정신박약, 기타 정신장애 포함, 2014 범죄분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대책은 정신질환 및 알코올 중독에 대한 조기 발견, 행정입원, 치료명령·치료감호 적극 시행, 보호수용제도 도입 추진 등을 종합대책의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약자를 방패삼아 호도하는 것인 동시에,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한편, 여성대상 강력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 강화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대책이다. 많은 여성피해자들은 사건이 발생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의 저조한 신고율만 보아도 명확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종합대책은 기존에 비판받아왔던 ‘여성안전정책’들을 짜깁기하고, 실효성 없는 처벌강화를 내세우며, ‘양성평등문화 조성’을 끼워 넣어 구색을 맞춘 수준에 불과하다. 심각한 것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정책들을 핵심으로 배치했다는 것이다. 진단이 틀렸기에 대책도 틀린 것인데, 결과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만 강화하는 꼴이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의 대부분은 매우 친밀한 관계에서, 또 일상적인 공간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여성 대상 범죄의 발생 장소와 상황을 특정하고, 특정한 사람을 잠재적 가해자로 선별하는 것은 여성폭력의 현실과 맞지 않으며, 여성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또 다른 성차별적이고 여성 억압적인 행동규범을 강화하기 쉽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효과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범죄 예방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균형을 맞춰 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해자에 대한 적극적 체포와 기소 정책, 사각지대 없는 피해자 지원(이를 위한 법률적 정비), 성평등과 인권교육의 공교육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여성대상 범죄 통계구축은 전제사항이다.  


한편, 성차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원인이자 그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 번도 강력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한 적이 없다. 이제, 여성대상 강력범죄의 대책은 성평등정책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정책 조정 기능을 상실한 현재 상태를 감안했을 때, 국가의 성평등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새로운 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에 불과하다. 소위 여성혐오가 공기처럼 포진해있는 세상에서 성평등이 공기처럼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변화, 우리 개개인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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