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의정부지법 형사합의 11(고충정 부장판사)는 주먹으로 피해여성의 얼굴 등을 수차례 폭행해 뇌사상태에 빠지게 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데이트폭력 가해자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재판부의 집행유예 판결의 근거는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 범행으로 보이며, “피해자 유족 모두 피고인을 용서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는 등 피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다했다는 것이다이에 고심을 했다는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교정과 재발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처분조차 하지 않은 채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었다피고인에게 지극히 공감하며 용서하고피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다 한 것은 다름 아닌 재판부이다.

 

도대체 왜 혼인이나 데이트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에서 유독 남성의 폭력행위는 우발적인 것이 되고감형의 이유가 되는가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이었다는 게 재판부에게는 납득할 만한 폭행의 이유와 상황인가배우자나 애인의 외도를 의심하고화가 나 때리고때리다보니 죽었다는 너무도 비합리적이고 부정의하고 끔찍한 가해자들의 범행동기와 시나리오는 왜 이토록 설득력을 갖는가?

 

한국여성의전화는 남편으로부터 지속·반복적인 폭언과 폭행강간외도 등 신체적성적정서적경제적 폭력을 당해 온 여성이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들을 수없이 목격하고 지원해왔다사법부는 피해여성들의 방위행위를 단 한 번도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고오히려 여성들에게 폭력을 피하지 못한 책임을 지우며, “계획적”, “잔혹한” 범행이므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반복해왔다이번 판결처럼 남편이나 애인의 외도가 우발적인 살인범행과 집행유예 판결의 근거 따위가 될 수 있었다면가정폭력데이트폭력 정당방위사건에서 실형을 받을 피해여성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의 사법부가 그토록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우발적인 범행은 무엇인가피해자가 사망했는데 누가 용서하는가피해자가유족이 용서하면국가는 처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사법부는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과 성차별로 점철된 판결들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여성에 대한 폭력 가해자들이 매번 지껄이는 피해자 비난과 책임전가의 변명들에 공감하고 이를 받아쓰는 판결들은 당장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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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4월 28일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대표는 ‘이주여성 폭력 실태와 상담과정’을 주제로 한국여성의전화 49기 여성상담전문교육(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 강의를 진행했다. 한국 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주여성을 위한 민간 대사관으로서 이주여성을 단일주제로 다루는 민간단체이다. 


 이주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국내 체류 외국인 수도 지난 10년 사이 두 배 증가해 2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세계 여성 이주자의 72%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논의는 가사노동과 성 산업에 국한되어있다. 허오영숙 상임대표는 한국 사회가 이주와 이주여성을 얼마나 타자화, 대상화하고 있는지 지적하며 강의를 이끌어나갔다.


 “이주여성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난할 것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과 결혼해 시골에 살 것이다” 이러한 편견과 일반화는 이주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한국 사회의 이주여성에 대한 시각



한국여성의전화 7기 기자단 석박지혜



우리 애는 특별해


 어떤 대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인 드라마에서 이주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대부분이 가사노동자이거나 결혼이주자로, 어수룩하고 서투른 모습이다. 문제만 일으키는 ‘민폐’ 캐릭터로 등장하는 일도 흔하며 이주여성을 부나 지성 같은 사회에서 중시하는 가치와 결부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반면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주 여성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고소득 직종 종사자 혹은 유학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혼이주의 경우 사랑해서 외국인과 결혼한 결혼이민자로 그려낸다. 한국 출신의 이주여성이 한국인 외의 유색 인종 이주여성과 같은 대우를 받을 때는 불편함을 느끼면서, 이주여성의 경우 교육 수준 · 경제 수준 · 거주지까지 어림짐작하며 낮추어 보고 웃음거리로 삼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송출국


 이주여성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은 송출국인 적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서독으로 이주해 간호사로 광부로 노동했고 월남전에도 참여했다. 이주목적국이 된 지금도 워킹홀리데이 등의 목적으로 꾸준히 외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결혼이주자로의 모습 역시 가지고 있었다. 1910년도 미국에서 사탕수수 노동자로 일하던 한국인 남성 이주노동자의 ‘사진 신부’ 가 대표적인 예다. 사진 신부로 바다를 건너온 한국 여성 역시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 여성과 같은 상황(경제적 · 계층적으로 불리한 위치의 사람들로 남녀가 평등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결혼을 결심한 사람들)에 처한 결혼여성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 결혼이주여성에게만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비난한다.  이주민이 하는 노동은 미래가 없는 일이며 한국인이 이주자로 가서 하는 노동은 긍정적이고 좋은, 청년의 꿈과 열정이 담긴 모습으로 그린다. 사실 워킹홀리데이와 이주노동 여성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중산층 정도의 경제환경을 지닌 교육받은 사람들이며 고국에서는 하지 않을 일을 좀 더 높은 보수와 해당 국가에서 살기 위한 목적으로 할 뿐이다. 또한 한국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해도 이를 이유로 무시하는 일은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적인 행위이다.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라는 말이 있다. 이주자를 오래전부터 받아들여온 서구 사회에서 생겨난 격언이라고 한다. 강의를 듣고 가사를 작성하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올 때 입맛에 맞게 어느 한 부분만 떼어 수용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가 그 사람을 ‘받아들였다’라고 할 때는 얼마나 많은 부분을 수용해야 하는지. 부끄러움이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국제결혼인가, 신부거래인가?



한국여성의전화 7기 기자단 윤선혜



 우리 사회가 이주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은 사실 기존에 한국 여성을 대상화하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주민이라는 소수자성이 이러한 태도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이주민이든 선주민이든,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사회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상업적 국제결혼 중개업은 이주여성의 극단적인 대상화가 거리낌 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유명 국제결혼 중개업체인 ‘하*****’의 홈페이지를 보면 과연 그들이 장려하는 것이 국제결혼인지 여성의 사고팖인지 의문이 든다.




모 국제결혼 중개업체 홈페이지 메인화면



쇼윈도에 진열된 외국인 아내


 첫 화면부터 마치 상품을 진열하듯 여성들의 사진이 국가별로 정리되어있다. 이주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물건처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대상으로 소비하는 모습이 한 화면 안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가별 여성의 특징을 한국 여성과 비교해 정리해놓은 메뉴는 이주여성뿐 아니라 한국여성까지도 일반화한다.


 홈페이지에서는 국가별 행사일정표, 즉 해당 국가 여성과 결혼하는 과정 또한 상세하게 공지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를 보자.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에는 처음 만난 신부와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이튿날 결혼식을 올린 뒤 1박 2일간 신혼여행을 떠난다. 4일째 밤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일정은 끝이 난다. 중개업 측에서 최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속성 결혼 코스’다. 



“신부를 샀다”


 순수한 의도에서 국제결혼을 마음먹은 남성이라도 이러한 상업적 결혼 중개 시스템을 따라가다 보면 상대 여성을 평등하게 바라볼 수 없다. 어쩌면 이주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그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 가까울지 모른다.


 ‘신부를 샀다’는 인식은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결코 평등할 수 없음을 짐작게 한다.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지난해 다누리콜센터에는 약 1만3000건의 가정폭력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보다 약 10년 일찍 상업적 국제결혼중개업이 시작된 대만은 그만큼 일찍 부작용을 겪었다. 대만은 이주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2007년 국제결혼중개업의 상업화를 없애고 비영리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만 국제결혼을 중개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도망가지 않는 베트남 신부”를 강조하는 광고 문구는 여성을 끊임없이 대상화하는 사회 구조와 인식의 변화 없이는 사라질 수 없다. 국제결혼 성공 사례를 앞세워 여성을 사고파는 것과 다름없이 진행되는 반인권적인 상업적 국제결혼중개업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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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③ ]

유니폼 속 ‘여성코드’ 지우기


메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슬림라인 블라우스', '매끈 어깨라인', '슬림라인 스커트'. 많은 교복 회사들이 여학생 교복을 광고할 때 쓰는 문구들이다. 딱 떨어지는 어깨라인과 슬림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교복을 입고 온종일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군복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활동성이 중요한 직업임에도 공식행사의 여군은 언제나 좁은 치마를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다. 왜 여성에게는 그 직업의 특성에 상관없이 격식을 차린 복장으로 치마와 하이힐이 주어질까? 우리는 활동성과 기능보다 미를 강조하는 유니폼이 여성에게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유니폼은 없는 것일까?




윤정미 작가의 작품 ‘Seohyun and Her Pink Things 2007’(위),

‘Michael and His Blue Things 2006’(아래) 



 지난 1월, 국제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스페셜 이슈 ‘젠더 레볼루션(Gender Revolution)’ 커버스토리로 윤정미 작가의 ‘핑크&블루 프로젝트’ 작업을 조명하였다. 윤정미 작가는 “여자 어린이들의 물건들과 남자 어린이들의 물건들은 이미 나눠어 있고, 그들의 사고와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여자 어린이들을 위한 많은 장난감과 책들은 핑크색, 보라색 또는 빨간색 계통의 것들이 많고, 대부분, 그것들은 화장, 옷 입는 것, 요리, 그리고 집안일들과 관계가 있다.”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작품을 통해 젠더에 따른 ‘컬러코드‘가 결과적으로 어린이들의 성 정체성과 사회적 체득과 연관됨을 지적하였다.  


 ‘컬러코드’가 적용된 사적인 물건들을 통해서 내재화된 젠더규범을 표현한 윤정미 작가의 사진을 염두에 두면, 옷을 입는 행위는 일상적이고 사적인 행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령, 청소년 시기는 치마 끝이 무릎 위로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에 따라 사회가 규정한 ‘학생의 본분’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평가를 받았다면, 교복으로부터 졸업한 성인이 되어서도 ‘여성’ 전문직에 어울리는 유니폼을 입도록 요구받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동일 직종의 남성에 비해 아름다움을 강요받는 모습을 보면서 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전문가가 아닌 별도의 대상으로 구분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본 기사에서는 현재 재학 중인 고등학생과 항공에서 승객의 안전을 담당하는 승무원을 모시고 여성에게만 적용된 ‘여성코드’를 제거하고 유니폼이 어떻게 변화하길 희망하는지 인터뷰하였다.




"서울에서 고등학교(여고, 특성화고, 사립)에 다니고 있는 18세 이희수(가명)입니다. 작년까지 공립 남녀공학 일반계고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Q. 본인의 교복에 관해서 설명해 주세요.


 하복은 블라우스, 치마, 생활복 상의로 구성되어 있어요. 동복은 블라우스, (앞뒤로 주름이 많은 주름) 치마, 셔츠, 니트 조끼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블라우스 위에 리본 타이는 사계절 필수이고, 춘추복 카디건은 하복, 동복 위에 모두 입을 수 있습니다.


Q. 하루의 반을 교복을 입고 생활하시는데, 교복을 입었을 때 불편하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하복 블라우스가 꽉 조이는 편이라 여름에는 특히 땀이 많이 차요. 색상도 흰색인데 꽉 조이니까 안에 (속옷이 비치지 않도록) 흰 티를 입어야 해서 더 덥죠. 그리고 블라우스가 전체적으로 끼고, 작은 것도 있는데, 우선 밑위가 너무 짧아요. 수선하지 않고 교복사에서 나온 그대로 입은 건데도 불구하고 조금만 팔을 올리면 배가 훤히 드러날 정도예요. 블라우스를 살 때 어깨, 가슴둘레에 맞추면 허리랑 겨드랑이 부분이 엄청 타이트하다는 문제도 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 동복 치마는 주름이 앞뒤로 몇 개씩 있어요. 그래서 겨울에 강풍이 불면 주름치마여서 통으로 다 올라가 버리는데, 학교가 언덕에 있어서 등교할 때마다 너무 불편해요. 치마 길이가 길든 짧든 그냥 후루룩 올라가요. 등교할 때 바람 불면 줄줄이 메릴린 먼로가 치마를 가리는 사진처럼 되죠.


Q. 복장과 관련된 교칙 중에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저는 복장 규정이 매우 엄격한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예를 들면, 등교할 때 항상 치마가 무릎을 덮고 있어야 해요. 길이 규정이 강해서 치마를 과하게 줄이는 학생도 없고 무릎 위 5~10cm 정도로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요. 등교 시엔 치마 단추를 풀고 내려 입거나 그냥 긴 치마를 입고 와서 등교 후에 치마의 허리 부분을 접어서 입기도 해요. 수업 중에 다들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선생님들이 알고 있는데도 등교 시에만 치마 길이를 단속해요.


Q. 최근, 뉴질랜드의 한 학교는 학생의 성별 관계없이, 반바지, 긴바지, 치마바지, 치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입을 수 있도록 교복 규정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성 중립’ 교복을 제시하여 학생들에게 교복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남성이 치마를 입거나 여자가 바지 교복을 입는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나요? 


 제가 재학할 당시엔 없었는데, 졸업한 여중에서 요즘 바지 교복이 생긴 걸 알게 되었어요. 길에서 많이는 못 봤지만 손꼽히게 입고는 다니는 듯해요. 현재 제가 재학 중인 고등학교에도 교복 바지가 있습니다.


Q. 여자 학생이 바지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오면 어떨 것 같나요?


 남자 교복을 그대로 옮겨온 느낌이 아니면서도 여학생에게 잘 어울리는 바지 교복이 상상이 잘 안 돼요. 바지랑 어울리는 블라우스(나 셔츠)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긴 교복 바지는 워낙 여학생들이 안 입으니까, 치마가 너무 당연하게 인식되어서 더 어색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학교에 남자 바지가 있는지도 사실 오랫동안 몰랐어요. 교복사에서 교복 맞출 때도 바지가 있다고 따로 말 안 해주시더라고요.


Q. 이전 고등학교의 바지는 남자들 것으로 나와서 여자들도 사 입을 수 있게 허용된 건가요.

* 이전에 다니던 남녀공학 일반계 공립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춘추복 반바지가 있었다.


 아니요. 처음부터 남자용 여자용이 따로 있고 사이즈도 달랐어요. 저는 반바지가 원체 잘 안 어울려서 사놓고 안 입긴 했지만, 옷 잘 입는 애들은 예쁘게 스타일링해서 입기도 하고 그냥 편하게 교복 입는 친구들도 사서 입고 다녔어요. 반바지가 체육복 바지 느낌도 나고, 긴 바지만큼은 안 어색해서 그런지 반바지 입는 여자애들 자체를 이상하게 안 봤던 것 같아요.


Q. 지금까지 이야기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했을 때, 학생을 위한 교복을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라나요?


 하복 블라우스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애초에 어깨나 가슴둘레에 맞춰서 사면 처음부터 다른 부분이 끼고 길이가 짧게 디자인이 나와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선택지도 없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블라우스가 좀 더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치마 교복은 남학생들 교복보다 훨씬 불편해요. 남학생들은 안에 받쳐 입을 필요도 없고 딱 달라붙지 않으니까 속이 많이 비치지도 않잖아요. 그렇지만 치마가 바지로 바뀌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하도 오랫동안 치마만 입어 왔으니까 다른 형태는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바지가 여자애들 입어도 안 이상해 보이게 나오면, 한둘씩 입다가 잘 입고 다니게 되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KLM 항공사에서 근무했던 김아름(가명)입니다."



Q. 승무원 유니폼의 구성을 설명해 주세요.


모든 항공사 유니폼의 기본적인 구성은 블레이저, 블라우스, 조끼 또는 스웨터 그리고 치마나 바지로 구성되어 있어 있습니다. 요즘은 원피스 유니폼을 입는 항공사가 많아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유니폼에 대한 공통적인 특징은 승무원을 몸매가 드러난 유니폼을 입혀서 ‘예뻐 보이게만’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항공, 에어프랑스, KLM, 에어캐나다 유니폼을 입어 봤던 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 항공사 승무원 유니폼은 전반적으로 일할 때 불편하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 사람들, 아시아나항공’은 (항공사 입장에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선호해서 승무원들에게 바지를 허락하지 않아요. 반면, 에어캐나다의 유니폼 규정은 ‘유니폼만 착용하면 된다.‘라는 것이었어요. 스카프를 어떻게 매든 어떤 조합으로 입든 플렛 슈즈를 신든 머리를 묶든 풀든 상관하지 않았어요. 


Q. 유니폼과 관련해서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규칙이 있나요? 이러한 규칙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근무시간에는 더워도 블레이저를 꼭 입어야 했어요. 그 외, 기타항공사 승무원의 경우에는 승객들이 탑승하고 이륙할 때까지 그리고 착륙을 할 때 블레이저를 꼭 착용해야 하는 규칙 있는 곳이 있었는데, 더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예의 있어 보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우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또, 신발 굽을 최소 3cm 이상 신어야 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뻐 보여서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할 때면 굉장히 힘들죠.

* 대한항공의 경우 3cm는 기내용, 5cm는 기내 야외용, 7cm는 야외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승무원 유니폼에 편안함을 위해서 바지가 있긴 하지만, 바지 안에 스타킹을 신고 입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편해지려고 입었다가 너무 더워서 ‘쪄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규정은 신을 신으면 발이 보이는 점을 신경 써서 그런 것 같아요.


Q. 아시아나 항공사의 난동 승객 사건 이후, 승무원의 항공경찰로서 역할에 조명이 된 바 있습니다. 승무원은 현장에서 어떠한 행동을 수행하도록 교육을 받나요? 위와 같은 교육이 승무원의 역할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한국과 캐나다 양쪽 국가에서 항공 승무원으로서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우선, 캐나다에서는 항공 경찰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안전교육을 굉장히 터프하게 받습니다. 예를 들어, 호신술처럼, 기내 난동 승객을 제압하는 기술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교육을 받아요. 또한, 기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응급 상황과 그에 맞는 대처법(ex CPR, 불이 났을 때 etc)을 플레이를 통해서 배웁니다. 


 한국에서 승무원 교육을 받았을 때는 서비스 위주의 이미지트레이닝 같은 것들이 굉장히 강조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캐나다는 인사연습이나 미소를 띤 얼굴 등, 이미지 트레이닝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에 반면, 한국의 승무원 교육은 안전교육도 있긴 하지만, 서비스 성격이 훨씬 강했습니다. ‘얼마나 잘 웃고’, ‘얼마나 예쁜 목소리로 예쁘게 말하는지’, ‘얼마나 예쁜 다리로 서 있는지’를 수없이 배웠어요. 그리고 제 의견으로는 캐나다에서 받은 교육이 승무원의 역할에 훨씬 더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Q. 지금까지 이야기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했을 때, 앞으로 승무원 유니폼이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었으면 바라시나요?


 치마-블라우스 유니폼은 뛰는 것은 물론, 쭈그려 앉거나 팔을 올리는 기본적인 동작을 할 때도 불편한 점이 많아요.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에서 일어난 난동 승객 사건 때에도 모두가 느꼈을 거예요. 승무원은 기내에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인데, 비상시 뛰어다니다가 치마에 다리가 걸려서 넘어질 것 같아요. 어느 날은 근무시간에 쪼그려 앉았다가 치마가 터진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기내에서 장기간 앉아 계시는 승객의 눈높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부분 중 하나가 승무원의 엉덩이 쪽인데, 승무원의 엉덩이를 만진 승객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것과 승무원 유니폼의 형태가 전혀 연관성 없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화장실을 살살 뛰어 내려가다가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치마가 잘 안 늘어나는 소재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승무원의 업무와 맞는 신축성이 좋고 뛰어다닐 때도 편안한 유니폼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름다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스카프와 기내에서의 힐 착용을 강요하는 규정도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자료

내셔널 지오그래픽 

http://www.nationalgeographic.com/magazine/2017/01/pink-blue-project-color-gender/ 

윤정미 공식사이트 

http://www.jeongmeey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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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② ]

이 유니폼, 언제부터였나요


하정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슬림라인 블라우스', '매끈 어깨라인', '슬림라인 스커트'. 많은 교복 회사들이 여학생 교복을 광고할 때 쓰는 문구들이다. 딱 떨어지는 어깨라인과 슬림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교복을 입고 온종일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군복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활동성이 중요한 직업임에도 공식행사의 여군은 언제나 좁은 치마를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다. 왜 여성에게는 그 직업의 특성에 상관없이 격식을 차린 복장으로 치마와 하이힐이 주어질까? 우리는 활동성과 기능보다 미를 강조하는 유니폼이 여성에게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유니폼은 없는 것일까?



“브이텍이야!”

 

 95년생인 나는 2008년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뉴하트>를 인생 최초의 메디컬드라마로 기억한다. 전년도의 <하얀거탑>이 아니라 <뉴하트>인 까닭은 8할이 여성 수련의 ‘남혜석’(김민정) 캐릭터에 있었다. 여성 외과의사가 매회 다급하게 의학 전문용어들을 외치는 것은 그때까지 안방극장에서 생경한 풍경이었다. 극중 가장 긴장되는 상황은 단연 ‘브이텍’(심정지) 이었다. 누구든 저 대사를 외치면 레지던트 1년차 여의사 남혜석이 어디서든 젖 먹던 힘을 다해 병실로 뛰쳐왔다. 전기충격을 최고 강도로 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환자의 흉부를 메스로 개복해 침상에 올라탄 혜석이 손으로 직접 심장을 마사지하는 장면도 있었다.


 뜬금없지만 그가 그때 치마를 입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확히는 ‘치마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면’ 말이다. <뉴하트>가 불과 4반세기 전의 드라마였다면 혜석은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 종합병원 여의사들에게 ‘바지 입음’이 허용된 것은 세브란스에서 92년 말에서야 시작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여의사들에게는 품위 유지를 위해 의사가운 아래로 언제나 치마를 입어야 하는 엄격한 복장규정이 존재했다. 응급실에서 탈골 환자의 관절을 제자리에 맞추기 위한 지렛대 동작으로 다리를 치켜들어 뻗어야 함을 들어, 의대 여학생들이 바지의 필요성을 피력했던 것이었다. 종횡무진 병원을 누비는 ‘진짜’ 여의사가 2008년에야 브라운관에 짠하고 나타난 것이 미디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지 입은 여성의 근대사


 당시 바지에 대한 제한은 기실 여의사들의 고민만은 아니었다. 80~90년대 전문직 여성 전반이 겪고 있던 문제이며, 아직도 몇몇 직업 유니폼에 남아 있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의 품위 유지를 위해 바지를 금한다니? 요즘의 시선에서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멀지 않은 역사에서 여성 스스로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바지를 온 몸으로 거부한 적이 있었다. 물론 1940년대이긴 하지만 말이다. 


 1940년대는 우리나라 여성 의복사에서 충격적인 시기다. 중-일 전쟁에 이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뒤 방공 훈련이 일상화되자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과 겸하여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몸뻬 바지를 보급한 것이다. 구한말 개화기부터 발목을 보일 정도로 슬금슬금 짧아진 한복 치마가 1920년대에는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고 조선일보에서 비평을 쓴 일도 있었다(1927년 조선일보 만평). 그런데 바지라니! 당시 보급된 몸뻬는 물론 지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남성들의 서양식 정장 바지와도 확연히 다른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때까지 여성의 바지란 한복 치마 안에 입는 속곳으로만 존재했다. 여학교의 체육 시간에도 바지를 상상하지 못하던 때에 이러한 정책은 청천벽력 같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몸뻬는 조선에서 보급률이 영 시원치 못했다. 매일신보를 통해 적극적인 몸뻬 권장 분위기를 만들어도 이용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제는 결국 당시의 유행을 이끌던 여학생 집단에 눈을 돌리게 된다. 조선어 교육도, 한복 교복 착용도 억압받던 시기였지만 그때까지도 바지런한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조선어 수업을 파르라니 진행했던 이화, 숙명, 배화 등 경성 명문 사학들에까지 대대적인 교복 방침을 내린 것이다. 난데없는 몸뻬 교복령에 여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졌지만 40년대의 살벌한 조선 사회에서 대다수 여학교들은 곧 몸뻬 교복을 도입하게 되었다. 촉망받던 신여성 집단이 몸뻬에 운동화를 착용하자 사회적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숙명, 배화 등 소수 여학교에서는 끝까지 몸뻬 착용을 거부했다. 이들은 여학생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치마를 외쳤다. 일본색이 짙고 남성용 바지와 유별한 형태를 가진 몸뻬를 강제로 입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숙명은 남성 정장과 흡사한 서양식 바지 교복을 지정했고 배화는 서양식 세일러복 블라우스에 주름치마 교복을 도입해 해방 때까지 바지 착용을 거부하였다. 전통적인 치마 복장이 유교 문화의 가부장제로 고착된 산물이라 할지라도, 이는 엄연히 착장의 자유라는 존엄한 권리를 지켜낸 결과일 것이다. 여자의 바지 입음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통념에 반일 감정까지 가세했으니, 90년대 세브란스 여의사들에게까지 그 잔존이 이어진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


치마든 바지든, 여성의 품위는 여성이 지킨다


 어쨌거나 지금은 2017년이다. TV를 켜면 늠름한 ‘여성 태양의 후예’가 나오고(태양의 후예), 청색 바지 수술복을 입은 여성 의사도 나온다(낭만닥터 김사부). 달라붙는 블라우스에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여성도,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도 직업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치마든 바지든 여성의 유니폼 형태를 강제하는 문화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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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① ]

나는 왜 일할 때도 여성이어야 하는가?  


김예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슬림라인 블라우스', '매끈 어깨라인', '슬림라인 스커트'. 많은 교복 회사들이 여학생 교복을 광고할 때 쓰는 문구들이다. 딱 떨어지는 어깨라인과 슬림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교복을 입고 온종일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군복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활동성이 중요한 직업임에도 공식행사의 여군은 언제나 좁은 치마를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다. 왜 여성에게는 그 직업의 특성에 상관없이 격식을 차린 복장으로 치마와 하이힐이 주어질까? 우리는 활동성과 기능보다 미를 강조하는 유니폼이 여성에게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유니폼은 없는 것일까?


 2016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 일정에 ‘한류 행사’가 있었다. 이 한류 행사를 앞두고 통역 담당자를 모집했는데, 지원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이 있었다. 빨간색으로까지 강조된 이 조건은 “용모단정. 예쁜 분”이었다. 실제로 통역을 담당했던 한 참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통역은 외모가 아닌 언어가 1순위’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에게 능력이 아닌 외모가 요구되는 현실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늘 아름답길 강요받는 여성들


 여성들은 능력보다 외모를 요구받는다. 때론 그 외모가 실제 하는 일과 무관하거나 그 일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에 반해 남성은 직장에서 외모에 관련한 것을 강요받는 일이 현저히 적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인사담당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채용에 외모가 끼치는 영향은 남성보다 여성이 4배나 더 높았다.[각주:1] 취재진은 이런 ‘동일노동 다른 역량’이라는 이분화가 직업 유니폼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예가 승무원이다. 객실승무원은 기내에서 승객의 여행을 돕는 것을 주 업무로 하지만 유사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객실승무원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여승무원들의 복장은 H라인 스커트와 구두다. 저가 항공사들이 생기면서 청바지나 정장 바지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이런 스커트와 구두가 기본이다. 이 때문에 실제 항공 사고가 일어나면 여승무원들은 승무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원활하게 하는 데 불편을 겪는다. 승무원 준비생 안 모 씨는 “한 항공사 유니폼을 입고 화장실에 뛰어가는 데 치마가 벌어지지 않았다. 비상상황에서는 치마를 찢고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 당시 여승무원들의 복장이 논란이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아시아나 항공사 착륙 사고 당시 비판받은 승무원들의 복장


 

 이는 그 어떤 직업보다 남녀 활동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군대에서도 드러난다. 여군에게는 공식 행사에서 입는 정복에 스커트와 하이힐이 지급된다. 전투 현장이 아닌 공식 행사를 위한 것이니 무리가 없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따져보면, 국방을 지키는 군인으로서의 업무 역랑과 관련 없는 스커트와 하이힐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스커트와 하이힐은 전형적인 여성의 미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군인으로서 여성의 미를 강조하는 것이 여군들의 업무 역량과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육군 남성 정복



육군 여성 정복


 

언제부터 아름다워야 하는가


 더 눈여겨보아야 할 유니폼이 하나 더 있다. 직업 유니폼 이전에 대다수가 ‘최초’로 입는 유니폼, 바로 교복이다. 그리고 이 교복은 여성들이 유니폼에서 ‘미’를 찾기 시작하는 최초의 사례다. 학교에 대한 소속과 학생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서의 교복이 아니다. 이에 부합하는 사례가 바로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교복 광고다. 이들의 광고는 학생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선정성을 띤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학생의 교복에 ‘쉐딩 스커트’, ‘코르셋 재킷’ 등의 별칭을 붙여 날씬함을 강조했고, 지나치게 몸매를 강조한 모델의 자세가 미성년자인 학생들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가 된 광고. 멤버들의 과도한 자세와 밀착되는 교복이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최근에는 한 SNS에서 남녀 교복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각주:2] 같은 치수의 교복이지만 그 크기와 활동성이 눈에 띄게 차이났기 때문이다. 여학생용 교복은 맵시를 살리기 위한 ‘라인’이 들어가 있어서 팔을 들기가 어렵고, 지나치게 꼭 맞아 움직이면 옷이 쉽게 올라갈 정도다. 학생일 때부터 여성들은 ‘미’를 위한 유니폼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 


  여성 유니폼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오로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유니폼이라는 선택지뿐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이 여성 승무원의 바지 착용을 금지한 데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지만, 여전히 내부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선택지를 지워가면서까지 여성들이 ‘일할 때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업무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역량 자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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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모도 스펙…기업 채용 시 영향 미친다, 헤럴드경제, 2016.03.22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60322000053&ntn=0 [본문으로]
  2. 온라인에서 논란되고 있는 남녀 교복 셔츠의 차이, 중앙일보, 2017.07.03 http://news.joins.com/article/217217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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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③ ]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박세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앞선 연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이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으로 죽음에 이르는 피해자가 한해 100명이 넘길 정도로 심각한 수준임에도 데이트폭력은 ‘사적인 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연인 사이에 무슨?’ 만연... 침묵하고, 견디는 피해자


 사랑과 폭력은 공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데이트폭력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둘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연인 관계라는 친밀성에 의해 데이트폭력이 쉽게 은폐되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무슨 연인 사이에 강간, 폭력이 있을 수 있냐’는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데이트폭력으로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들도 많다. 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되는 사회에서 피해 여성은 자신이 겪은 일을 폭력이 아닌 사랑이나 애정으로 생각하며 견디기도 한다. 특히나 신체적, 성적, 언어적 폭력에 비해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항상 확인한다거나 옷차림을 제한하는 등의 ‘통제’는 피해자 스스로 데이트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제’는 62%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데이트폭력 피해 유형이었으나, 폭력 피해 직후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폭력 유형 중 가장 높았다. 특히나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응답한 비율이 32%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는데, ‘통제’가 폭력이라기보다는 애정이나 사랑으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데이트폭력 미화하는 미디어, 문화


 현재 방영하고 있는 KBS 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의 박서준은 여자 주인공 역의 김지원이 치마를 입고 등장하자 ‘옷 갈아입고 나와! 다리가 왜 예뻐! 다리가 완전 여자네’라며 여자의 옷차림을 통제한다. 이렇듯 드라마에선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의 옷차림을 통제하는 것이 클리셰처럼 등장하고, 이러한 장면 속 남성의 행동은 로맨틱한 것으로 묘사된다.


 ‘사랑’의 감정은 본능적이거나 자연적이기 보다 사회에 의해 학습되는 것에 가깝다. 어떠한 상황이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감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등은 그 사회의 문화와 관습에 따라 달라진다. 즉, 연애는 즉흥적이거나 본능적이기보다는 구조화된 사회 제도이다.드라마 ‘쌈마이웨이’와 같은 미디어들은 연인관계에서의 ‘통제’가 연애 각본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통제’가 데이트폭력이 아닌 로맨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연인관계에서 ‘통제’는 하나의 각본처럼, 사랑한다면 따라야 할 규율로 규범화되는 것이다.



 ‘통제’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데이트폭력 역시 미디어에 의해 로맨스로 미화된다.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남자주인공 역할의 에릭이 여자주인공 역할의 서현진의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벽으로 밀고 가 강압적인 키스를 하는 장면이 연출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당 장면에 대한 반응으로는 ‘로맨틱하다’, ‘심쿵한다’, ‘설렌다’는 것이 주를 이뤘고, 이 장면이 방영된 9회는 드라마 방영 이래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만큼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문화는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통제, 폭력적인 성적 관계 요구 등의 명백한 데이트폭력을 ‘연인 사이의 낭만적인 일’로 묘사한다. 결국, 데이트폭력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포장되어진다.


데이트폭력 사랑이라 말하는 사회...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 필요 


 데이트폭력을 사랑이라 묘사하는 미디어가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들은 연애 각본의 성역할에 따라 ‘여자라는 이유’로 불쾌한 감정을 넘기기도 하고, 혹은 이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견디기도 한다. 또한,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특성상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는 등 피해자의 반응은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데이트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명백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고할 수 있기 위해선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여겨지던 연애 관계를 폭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1년부터 데이트폭력에 주목해왔고, 피해자 상담 및 인권지원 활동 외에도 대중강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기존의 연애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폭력을 사랑으로 미화하기 바빴던 우리 사회와 미디어는 데이트폭력을 사랑이 아닌 심각한 범죄로 바라봐야할 것이며 데이트 관계에 있는 개인들은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위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데이트폭력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명백한 범죄


 그러나 인식만 바뀐다고 해서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거나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특성상 ‘개인적인’, ‘사소한’ 일로 치부되어 왔고, 사회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할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피해자의 구조요청으로 경찰이 출동해도 연인 사이라고 하면 ‘알아서 하라’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올해 1월에도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한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이 여성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연인관계라는 말을 듣자 남성을 풀어줬다. 결국, 이 남성은 파출소를 떠난 지 2시간 만에 여성을 무참히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간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지나치게 안일했음을 보여준다. 데이트폭력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명백한 범죄인만큼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태도가 변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사법처리 과정에서 친밀한 사이에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특성을 고려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가해자가 연인일 경우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는 바로 신고를 하지 못한다거나 신고를 하더라도 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해자는 ‘사랑해서 그랬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을 범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사법기관은 ‘왜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피해자를 의심하기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 경험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피해자 지원체계, 법체계도 바뀌어야


  성폭력 피해 지원에 있어 데이트폭력은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중심으로 한 현행 지원 체계 안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어디에,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고, 도움을 청해도 지원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답변을 받기 일쑤다. 데이트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지원체계 역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데이트폭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폭력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위협과 폭력으로부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스토킹은 데이트폭력의 연장선에서 관계중단 과정에서 주요하게 나타나는 행위인 만큼, 스토킹 처벌은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폭력의 재발을 막는 데 많은 기여할 수 있다. 현행법 상 경범죄처벌법으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으나 범칙금 8만원 부과로 매우 미약하여 범죄 행위 제지 및 재발방지에 실효성이 없다. 스토킹을 ‘경범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이트폭력을 연인 사이의 사랑이나 다툼으로 보는 기존의 법 체계가 변화해야 데이트폭력에 대한 예방과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고 젠더폭력방지 계획을 수립하고 전담기구도 설치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그동안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서 국가는 남녀 사이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늘고 있다”면서 국가가 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현재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을 위한 검토와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데이트폭력·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체계 강화 방안뿐만 아니라 젠더폭력 특수성이 반영된 피해자 지원 시스템 구축 등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계의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만큼 제대로 된 법 제정이 기대되는 바이다. 우리 사회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 개인들의 연애 관계에 있어서의 성찰과 더불어 사법기관의 태도, 법 체계 등이 함께 변화해 나갈 때 진정한 데이트폭력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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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② ]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데이트폭력


단비 · 이윤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최근에 ‘데이트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언제나 존재해왔고, 많은 여성이 고통받았음에도 이제야 가시화된 것은 ‘신당동 데이트폭력’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 사건은 7월 18일 오전 1시 30분쯤 20대 남성인 손 모 씨가 연인 관계의 여성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한 혐의다. 피의자는 길거리에서 상대를 폭행했고, 가까스로 도망친 상대가 주변 시민들에게 도움을 받자 1t 트럭으로 돌진하여 위협하였다.


 사건의 폐쇄회로 영상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에 응하여 관련 기사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급증하는’, ‘사랑에도 폭력이 존재하나요?’ 등의 제목으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 부재를 드러냈다. 데이트 폭력이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했다거나,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폭력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여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사들의 제목들처럼 데이트 폭력은 ‘급증’한 것일까?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폭력이 존재할 수 없기에 이는 단순한 개별 폭력사건인 것일까?


데이트 폭력은 가부장제의 성별 위계에서 비롯된다


 앞선 기사에서 말했다시피, 데이트 폭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 데이트 폭력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혼으로 여성은 남성의 가족으로 편입되며, 남편의 통제가 당연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자란 사람의 연인관계에서는 성별 위계관계가 자연스럽게 학습되며 굳어진다. 법적인 관계가 없는 연인관계임에도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남성이 연인관계인 여성의 옷차림, 친구 관계, 귀가 시간을 통제하는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에서 남성의 폭력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통제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남성은 여성에게 소리 지르거나, 화내거나, 폭력을 가한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이자 일부로 여겨지고, 그에 따라서 통제가 가능한 가부장제는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데이트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데이트 폭력은 절대 ‘급증’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성별 위계의 위험


 성별 위계는 폭력을 비가시화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소유물이다.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옷차림을 통제하고 통금 시간을 강제하고,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을 단속한다. 더욱이 이것은 ‘많이 사랑해서’로 대체된다. 이러한 ‘단속’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연인 간의 사소한 다툼’, ‘사랑싸움’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리고 이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이에도 폭력이 발생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한다. 위계와 폭력은 이미 발생했는데 말이다.


 ‘남자 기 살려주기’가 일상인 성별위계 사회에서 ‘남자 기 살려주는 역할’은 여성에게 부여된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 단호한 거절을 어려워하게 한다. 때문에 많은 여성이 ‘오빠가 싫어할까 봐’라는 이유로 불편한 스킨쉽을 참게 된다. 불쾌하고 불편함에 어렵게 거절하게 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남성은 소유와 통제의 대상인 여성에게 거절당하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그리고 폭력을 가한다. 남녀 사이의 폭력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폭력이 아니다. 이는 성별위계에 따른 일방적이며, 잔혹한 폭력이다.


데이트 폭력, 해결의 첫 단계는 인식의 개선


 데이트 폭력은 항상 존재했다. 연인 관계 또한 성별 위계 내에서 존재했기 때문에, 폭력이 비가시화 되어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성별위계로부터 비롯되는 데이트폭력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법적인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이 젠더폭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인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시와 통제를 성찰해야 한다. “사랑해서 그랬다”라는 변명은 ‘변명’으로 남아야 한다. 그 때에 비로소, 여성은 보호받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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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① ]

폭력도 사랑이 되나요


경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데이트 폭력 작년에만 8367건, 여성단체, 빙산의 일각”(한겨레신문) 최근 불거진 서울 신당동 데이트폭력 사건 후 나온 한 기사의 제목이다.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아주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폭력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향해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그 인식 때문에 더 해결되기 어려운,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문제다.


데이트 폭력이 도대체 뭐야? - 인식의 부재


 사람들은 대부분 데이트 폭력이라고 했을 때, 심각한 물리적 혹은 성적 폭력을 떠올린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우선 데이트 폭력이란, “넓게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의미하며 물리적 폭력을 비롯하여 정서적, 환경적, 성적 폭력을 포함한다.”[각주:1] 여기에 덧붙여, 때리고 강간하는 것뿐 아니라 옷차림을 제한하는 등의 통제 역시 데이트 폭력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중 윤보화의 글에 따르면, 술에 만취한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모욕적인 사진을 찍고 유포한 남자친구, 헤어진 애인에게 염산을 뿌리거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폭력 등 다양한 층위와 유형의 폭력이 존재한다. 한국형사정책원의 연구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80% 이상이 다양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있고, 그 중 ‘행동 통제’는 72%로 가장 많았다.[각주:2]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에 만연해 있다. 


 '사소한' '사랑싸움'에 불과했던 데이트 폭력은, 최근 들어 겨우 폭력이라고 명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물리적, 성적 폭력만을 부각시켜 보도한다. 며칠 전 서울 신당동에서 발생한 사건의 경우도, 많은 경우 남성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앞세워 보도했다. 그러한 보도는 데이트 폭력을 가시적인 폭력으로만 가두고, 일상적인 폭력은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해당 보도에 대해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이 아니라 그냥 폭력 사건이다”, “너 어디야? 라고 물어도 폭력이냐”라고 반응한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정비되지 않은 법 – 법률의 부재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의 부재는, 관련 법률의 부재에 의해 심화된다. 폭력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현상은, 법적으로 규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 헌법상 협박이나 폭행 등으로 가해자를 신고할 수는 있지만, 해당 혐의로 신고되어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피해자의 신변보호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해자가 집과 학교, 회사 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신체적 폭력이 되돌아올 수도 있고, 성관계 동영상 유포 등으로 협박해 신고를 막기도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각주:3] 경찰은 여전히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피해가 있어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관련 법률의 부재 및 경찰을 포함한 사법체계의 인식과 태도는 데이트 폭력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법률의 부재는 또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데이트 폭력 사건과 관련해서 발행된 기사들에 대해,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 중 다수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피해 상황에서 “귀찮아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경찰관의 태도는, 데이트 폭력을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는 상황 역시 데이트 폭력을 처벌받을 만큼 심각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트 폭력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이 먼저 확산되어야 한다. 다른 요소들의 부재에 대한 말하기 앞에, 사회적 인식의 부재에 대한 말하기가 계속 있어야 한다.


어디에서든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데이트 폭력은 이제 막 폭력이라고 명명되기 시작했고,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기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 데이트 폭력의 다양한 상황과 양상을 인식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폭력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야 한다. 또한 데이트 폭력의 원인이 되는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전반적인 이성애 연애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이성애 연애는, 가부장적 성별 위계와 성차별에 대한 학습의 장이다. 남자친구가 됨으로써 여자친구를 통제해도 된다, 혹은 통제해야 한다는 것, 여자친구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 등이 그 예시다. 또, 연애라는 친밀한 관계는 사적인 영역이므로 그 관계 내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가정폭력 역시 가정폭력이라고 명명되기 전까지 “여자는 3일에 한번씩 맞아야 고분고분해진다”는 인식, 폭력이 아니라 집안 문제라는 인식 때문에 가능했다. 데이트 폭력 역시 우리가 고민 없이 따라가고 있는 이성애 연애 각본과 남성중심적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랑이 아니라 성차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며, 표면적인 행동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적이지 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여성도 안전하게 사랑하고 이별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보다 더 구체적인 데이트 폭력의 양상과 그 기저에 있는 사회적인 젠더 위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룰 것이다. 또한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현행 제도뿐 아니라 앞으로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 방향도 제시할 것이다. 폭력 없는 사회를 함께 만들기 위해, 앞으로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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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보화,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본문으로]
  2. ytn 기사 인용: http://www.ytn.co.kr/_ln/0103_201707220001324983 [본문으로]
  3. 한겨레 신문 기사 인용: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3636.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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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제모 ④]

제모, 안녕


지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지난 겨울 이후, 겨드랑이 제모 없이 지내고 있다. 마침 따뜻한 동남아로 여행을 갔던 지난해 12월 말, 그곳의 워터파크를 가기 위해 겨드랑이털을 남김없이 밀었으니 지금까지 딱 7개월 정도 기른 셈(?)이다. 주기적으로 해야 했던 귀찮은 일 하나가 줄어들자, 굉장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모 없는 일상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새삼 중학생 때부터 10년 동안 제모를 정기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옷의 소매가 짧아지는 계절이 다가오자 편안함은 긴장감을 동반했고,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외출할 때 거울에 비춰보는 것은 기본, 애매한 길이의 옷을 입으면 어느 각도가 가장 아슬아슬한지 확인하곤 했다.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숱한 상황들, 지하철 손잡이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위치일 때, 솔직히 말하면 그간 누렸던 편안함보다는 ‘그냥 한번 밀고 올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먼저였다.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


 여러 의미에서 가장 ‘짜릿함’을 느꼈던 건 학교 농구장에서였다. 운동하거나 앉아서 쉬는 사람들, 오가며 구경하는 동기들, 주변에 참 보는 눈 많은 그곳. 나는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해서 그곳에서 종종 농구를 하거나 동아리 부원들과 미니 풋살 게임을 하는데, 팔과 겨드랑이가 자유롭지 않고서는 제대로 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편한 복장으로 눈치 보지 않고 운동을 하던 중, 슛을 하려고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그 순간! 뒤늦게 ‘아차’싶어서 그 뒤로 잠깐 동안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팔의 동작을 의식하기도 했지만, 털을 밀지 않고도 자유롭게 팔을 휘적거리는 내 모습에 느끼는 해방감이 더 컸다. 한편으로 남자 농구선수들이 민소매다 못해 겨드랑이가 시원하게 파인 농구 유니폼을 내의 없이 입는 모습을 떠올리면 부러움이 샘솟기도 했다. 제모를 시작한 이래로 최장기간 제모에 손 놓은 채 지내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나를 의식하는 모습에서 아주 벗어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내 몸의 이 곳 저 곳을 의식했던 기억은 털 외에도 많았다.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줄곧 ‘수영하면 어깨 넓어져서 여자한테는 안 좋다’라는 이야기가 따라붙었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이라도 조금 뛰면 흔히 ‘다리 굵어지는데 괜찮냐’는 둥 조언 아닌 조언을 듣곤 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는 꽤 많은 여학생들이 체력관리를 위해 점심,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 같이 줄넘기를 했는데, 그때 어느 여선배가 ‘줄넘기하면 가슴살부터 빠져서 후회할 텐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운동하면 근육이 발달하고 특정 부위의 살이 빠지는 건 시간이 흘러 털이 자라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법인데, 여성의 몸이 ‘자연스럽게만’ 자라는 건 종종 걱정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예쁘고 멋진 이상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두고 내 몸을 좀 의식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이 유독 단일한 모습, 혹은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괜찮은 걸까. 그 기준을 벗어난 몸을 가진 사람들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기본 값’으로 여겨져도 되는 걸까. 무엇보다도,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마치 지적과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여겨지고 있다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억압적인’ 측면이라고 봐야한다.



제모할까 하지 말까, 정답은 없다 


 사실 이 이야기에 뚜렷한 결말은 아직 없다. 제모 없이 몇 개월을 지냈지만, 막상 남은 올여름 그리고 또 내년, 내후년의 여름을 떠올리면 털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진행형일 것만 같다. 제모의 사회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깨달았다고 해서 제모를 반강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수년간 그 규범을 내면화해온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의 털, 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모를 하는 행위가 곧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혹은 막연히 제모를 ‘거부’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제모 없이 지낼 때 느껴지는 해방감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겪어보니, 중요한 건 여성을 보는 왜곡된 사회적 시선의 변화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앞선 ‘제모 이야기’ 기획을 통해 보았듯 여성에게 그렇게 쉽게 요구되는 제모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제모의 탄생부터가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한 모습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현대 사회 또한 ‘미적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여성에겐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불합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여성의 털에서 멈추지 않고, 여성의 몸과 행동양식 전반을 향한다.


 결국, 낡은 통념이 여전하다면 제모 없이 사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한들 여성의 몸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매년 여름이 돌아오듯 반복되는 제모 이야기를 풀 열쇠는 단순히 여성들의 제모 ‘거부’가 아니라 자기 몸에 대한 여성의 모든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로의 이행,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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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제모 ③ ]

"너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이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민소매를 입어야겠다고 생각한 날, 당연한 듯이 털을 밀고 있는데 문득, 제모를 하지 않는 생활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구글에 ‘제모’를 검색하니 제모용품, 제모 전문 샵 등 광고가 가득 나온다. 광고 말고 좀 더 개인적인 경험담을 찾기 위해 ‘제모 안 하는 여자’로 검색어를 바꿔 본다.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여성이 주체가 되는 글은 거의 없다.(‘제모를 안 하면 어떤 느낌일까요?’라든지) ‘여자친구가 너무 자기관리를 안 해요’, ‘제모 안 한 여자 만나느니 배 나온 여자와 사귀겠다’, ‘제모 안 한 여성은 게으르고 지저분하다는 인상 줘’ 등, 제모를 안 한 여성이 남성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는지에 대한 글만 가득하다. 순간 ‘제모를 안 하면 어떨까’하던 생각이 움츠러든다. 역시 나는 살던 대로 살아야 하나 보다.



남성의 시선, 대상화되는 여성


 제모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논할 때 남성의 시선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성의 시선’이란 페미니즘 연구에서 오랫동안 다뤄진 부분이다. 서구 철학에서 시각 권력은 대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나비를 관찰하는 것이 결국에는 해부하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듯이 말이다. 인간 사회에서 이러한 시각 권력을 가진 사람은 남성이고, 시각의 대상은 여성이다.


관찰의 대상인 여성은 ‘신체 없는 기관’으로서 소비된다. 신체 없는 기관이란 신체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상품화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미디어에서 여성이 출연할 때 카메라의 시선이 다리를 훑는 것,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입술이나 가슴 등 특정 부위가 강조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신체 없는 기관’의 극단적인 예시도 있다. 여성의 성기를 본뜬 남성용 자위기구를 살펴보면, 여성의 가슴이나 발에 질이 재현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남성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기관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내 마음 속 또 다른 시선


 남성의 시선이 남성들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계속 학습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스스로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바라볼 때 내가 얼마나 편한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는지보다 ‘남성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염두에 두게 되는 것이다. ‘제모를 하지 않는 여성’이 여성성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과 큰 관련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구도 ‘제모를 하지 않으면 땀이 차나요?’, ‘제모를 하지 않으면 따가운가요?’ 등을 묻지 않는다. ‘제모 안 하는 여자친구 어떻게 생각하나요?’ 같은 질문은 발에 채일 듯 많은데도 말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제모를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위가 변화하는 현상 역시도 남성 선호의 변화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음부를 제모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여성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남성 선호가 달라진 것과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1~20년 전까지만 해도 음부에 털이 없는 여성은 기괴하게 여겨졌다.심지어는 ‘음부에 털이 없는 여성과 섹스하면 한동안 재수가 없다’ 등의 말이 남성들 사이에 돌았다고 한다. 여성 화장실에서도 쉽게 ‘털 없어서 고민이면 무모증 치료하세요’ 등의 스티커를 볼 수 있었다.



한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던 여성 체모시술 광고 스티커



 하지만 서양 여성들의 모습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더 나아가 하나의 미적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남성들 역시도 음부에 털이 없는 여성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여성의 아름다움을 남성 시선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제모 형태도 남성의 선호를 철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평가로 가득 찬 일상


 남성 시선은 여성이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언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여성에 대한 신체적 억압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대중을 상대로 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항상 외모에 대한 평가에 노출된다. 남성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크게 받지 않지만, 여성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떤 여성에게든 ‘오늘은 화장이 이상하다’와 같은 평가가 이어진다. 대중을 상대로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 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동료나 친구들에게 이러한 말을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하는 평가에 주로 작용하는 건 ‘남성이 여성을 볼 때의 미적 기준’이다. 이 사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날 때는, ‘너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같은 말을 들어야 할 때다.


 남성이 여성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여성 역시도 그러한 시선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SNS에서는 ‘남자친구가 없으니 제모를 안 해도 돼서 편하다’는 유머가 쉽게 공감을 받는다. 이는 여성이 남성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성은 사실 제모를 할지 안 할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제모를 안 하면 견뎌야 할 온갖 시선과 비난을 어떻게 할지, 아니면 그냥 제모를 하고 다닐지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제모는 여성의 선택이다. 하지만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결국 많은 여성들은 그냥 불편함과 비용을 감수하고 제모하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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