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① ]

나는 왜 일할 때도 여성이어야 하는가?  


김예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슬림라인 블라우스', '매끈 어깨라인', '슬림라인 스커트'. 많은 교복 회사들이 여학생 교복을 광고할 때 쓰는 문구들이다. 딱 떨어지는 어깨라인과 슬림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교복을 입고 온종일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군복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활동성이 중요한 직업임에도 공식행사의 여군은 언제나 좁은 치마를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다. 왜 여성에게는 그 직업의 특성에 상관없이 격식을 차린 복장으로 치마와 하이힐이 주어질까? 우리는 활동성과 기능보다 미를 강조하는 유니폼이 여성에게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유니폼은 없는 것일까?


 2016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 일정에 ‘한류 행사’가 있었다. 이 한류 행사를 앞두고 통역 담당자를 모집했는데, 지원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이 있었다. 빨간색으로까지 강조된 이 조건은 “용모단정. 예쁜 분”이었다. 실제로 통역을 담당했던 한 참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통역은 외모가 아닌 언어가 1순위’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에게 능력이 아닌 외모가 요구되는 현실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늘 아름답길 강요받는 여성들


 여성들은 능력보다 외모를 요구받는다. 때론 그 외모가 실제 하는 일과 무관하거나 그 일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에 반해 남성은 직장에서 외모에 관련한 것을 강요받는 일이 현저히 적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인사담당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채용에 외모가 끼치는 영향은 남성보다 여성이 4배나 더 높았다.[각주:1] 취재진은 이런 ‘동일노동 다른 역량’이라는 이분화가 직업 유니폼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예가 승무원이다. 객실승무원은 기내에서 승객의 여행을 돕는 것을 주 업무로 하지만 유사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객실승무원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여승무원들의 복장은 H라인 스커트와 구두다. 저가 항공사들이 생기면서 청바지나 정장 바지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이런 스커트와 구두가 기본이다. 이 때문에 실제 항공 사고가 일어나면 여승무원들은 승무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원활하게 하는 데 불편을 겪는다. 승무원 준비생 안 모 씨는 “한 항공사 유니폼을 입고 화장실에 뛰어가는 데 치마가 벌어지지 않았다. 비상상황에서는 치마를 찢고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 당시 여승무원들의 복장이 논란이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아시아나 항공사 착륙 사고 당시 비판받은 승무원들의 복장


 

 이는 그 어떤 직업보다 남녀 활동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군대에서도 드러난다. 여군에게는 공식 행사에서 입는 정복에 스커트와 하이힐이 지급된다. 전투 현장이 아닌 공식 행사를 위한 것이니 무리가 없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따져보면, 국방을 지키는 군인으로서의 업무 역랑과 관련 없는 스커트와 하이힐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스커트와 하이힐은 전형적인 여성의 미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군인으로서 여성의 미를 강조하는 것이 여군들의 업무 역량과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육군 남성 정복



육군 여성 정복


 

언제부터 아름다워야 하는가


 더 눈여겨보아야 할 유니폼이 하나 더 있다. 직업 유니폼 이전에 대다수가 ‘최초’로 입는 유니폼, 바로 교복이다. 그리고 이 교복은 여성들이 유니폼에서 ‘미’를 찾기 시작하는 최초의 사례다. 학교에 대한 소속과 학생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서의 교복이 아니다. 이에 부합하는 사례가 바로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교복 광고다. 이들의 광고는 학생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선정성을 띤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학생의 교복에 ‘쉐딩 스커트’, ‘코르셋 재킷’ 등의 별칭을 붙여 날씬함을 강조했고, 지나치게 몸매를 강조한 모델의 자세가 미성년자인 학생들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가 된 광고. 멤버들의 과도한 자세와 밀착되는 교복이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최근에는 한 SNS에서 남녀 교복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각주:2] 같은 치수의 교복이지만 그 크기와 활동성이 눈에 띄게 차이났기 때문이다. 여학생용 교복은 맵시를 살리기 위한 ‘라인’이 들어가 있어서 팔을 들기가 어렵고, 지나치게 꼭 맞아 움직이면 옷이 쉽게 올라갈 정도다. 학생일 때부터 여성들은 ‘미’를 위한 유니폼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 


  여성 유니폼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오로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유니폼이라는 선택지뿐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이 여성 승무원의 바지 착용을 금지한 데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지만, 여전히 내부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선택지를 지워가면서까지 여성들이 ‘일할 때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업무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역량 자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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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모도 스펙…기업 채용 시 영향 미친다, 헤럴드경제, 2016.03.22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60322000053&ntn=0 [본문으로]
  2. 온라인에서 논란되고 있는 남녀 교복 셔츠의 차이, 중앙일보, 2017.07.03 http://news.joins.com/article/217217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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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③ ]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박세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앞선 연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이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으로 죽음에 이르는 피해자가 한해 100명이 넘길 정도로 심각한 수준임에도 데이트폭력은 ‘사적인 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연인 사이에 무슨?’ 만연... 침묵하고, 견디는 피해자


 사랑과 폭력은 공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데이트폭력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둘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연인 관계라는 친밀성에 의해 데이트폭력이 쉽게 은폐되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무슨 연인 사이에 강간, 폭력이 있을 수 있냐’는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데이트폭력으로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들도 많다. 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되는 사회에서 피해 여성은 자신이 겪은 일을 폭력이 아닌 사랑이나 애정으로 생각하며 견디기도 한다. 특히나 신체적, 성적, 언어적 폭력에 비해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항상 확인한다거나 옷차림을 제한하는 등의 ‘통제’는 피해자 스스로 데이트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제’는 62%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데이트폭력 피해 유형이었으나, 폭력 피해 직후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폭력 유형 중 가장 높았다. 특히나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응답한 비율이 32%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는데, ‘통제’가 폭력이라기보다는 애정이나 사랑으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데이트폭력 미화하는 미디어, 문화


 현재 방영하고 있는 KBS 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의 박서준은 여자 주인공 역의 김지원이 치마를 입고 등장하자 ‘옷 갈아입고 나와! 다리가 왜 예뻐! 다리가 완전 여자네’라며 여자의 옷차림을 통제한다. 이렇듯 드라마에선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의 옷차림을 통제하는 것이 클리셰처럼 등장하고, 이러한 장면 속 남성의 행동은 로맨틱한 것으로 묘사된다.


 ‘사랑’의 감정은 본능적이거나 자연적이기 보다 사회에 의해 학습되는 것에 가깝다. 어떠한 상황이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감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등은 그 사회의 문화와 관습에 따라 달라진다. 즉, 연애는 즉흥적이거나 본능적이기보다는 구조화된 사회 제도이다.드라마 ‘쌈마이웨이’와 같은 미디어들은 연인관계에서의 ‘통제’가 연애 각본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통제’가 데이트폭력이 아닌 로맨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연인관계에서 ‘통제’는 하나의 각본처럼, 사랑한다면 따라야 할 규율로 규범화되는 것이다.



 ‘통제’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데이트폭력 역시 미디어에 의해 로맨스로 미화된다.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남자주인공 역할의 에릭이 여자주인공 역할의 서현진의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벽으로 밀고 가 강압적인 키스를 하는 장면이 연출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당 장면에 대한 반응으로는 ‘로맨틱하다’, ‘심쿵한다’, ‘설렌다’는 것이 주를 이뤘고, 이 장면이 방영된 9회는 드라마 방영 이래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만큼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문화는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통제, 폭력적인 성적 관계 요구 등의 명백한 데이트폭력을 ‘연인 사이의 낭만적인 일’로 묘사한다. 결국, 데이트폭력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포장되어진다.


데이트폭력 사랑이라 말하는 사회...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 필요 


 데이트폭력을 사랑이라 묘사하는 미디어가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들은 연애 각본의 성역할에 따라 ‘여자라는 이유’로 불쾌한 감정을 넘기기도 하고, 혹은 이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견디기도 한다. 또한,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특성상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는 등 피해자의 반응은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데이트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명백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고할 수 있기 위해선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여겨지던 연애 관계를 폭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1년부터 데이트폭력에 주목해왔고, 피해자 상담 및 인권지원 활동 외에도 대중강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기존의 연애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폭력을 사랑으로 미화하기 바빴던 우리 사회와 미디어는 데이트폭력을 사랑이 아닌 심각한 범죄로 바라봐야할 것이며 데이트 관계에 있는 개인들은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위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데이트폭력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명백한 범죄


 그러나 인식만 바뀐다고 해서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거나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특성상 ‘개인적인’, ‘사소한’ 일로 치부되어 왔고, 사회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할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피해자의 구조요청으로 경찰이 출동해도 연인 사이라고 하면 ‘알아서 하라’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올해 1월에도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한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이 여성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연인관계라는 말을 듣자 남성을 풀어줬다. 결국, 이 남성은 파출소를 떠난 지 2시간 만에 여성을 무참히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간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지나치게 안일했음을 보여준다. 데이트폭력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명백한 범죄인만큼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태도가 변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사법처리 과정에서 친밀한 사이에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특성을 고려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가해자가 연인일 경우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는 바로 신고를 하지 못한다거나 신고를 하더라도 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해자는 ‘사랑해서 그랬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을 범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사법기관은 ‘왜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피해자를 의심하기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 경험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피해자 지원체계, 법체계도 바뀌어야


  성폭력 피해 지원에 있어 데이트폭력은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중심으로 한 현행 지원 체계 안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어디에,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고, 도움을 청해도 지원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답변을 받기 일쑤다. 데이트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지원체계 역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데이트폭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폭력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위협과 폭력으로부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스토킹은 데이트폭력의 연장선에서 관계중단 과정에서 주요하게 나타나는 행위인 만큼, 스토킹 처벌은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폭력의 재발을 막는 데 많은 기여할 수 있다. 현행법 상 경범죄처벌법으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으나 범칙금 8만원 부과로 매우 미약하여 범죄 행위 제지 및 재발방지에 실효성이 없다. 스토킹을 ‘경범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이트폭력을 연인 사이의 사랑이나 다툼으로 보는 기존의 법 체계가 변화해야 데이트폭력에 대한 예방과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고 젠더폭력방지 계획을 수립하고 전담기구도 설치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그동안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서 국가는 남녀 사이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늘고 있다”면서 국가가 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현재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을 위한 검토와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데이트폭력·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체계 강화 방안뿐만 아니라 젠더폭력 특수성이 반영된 피해자 지원 시스템 구축 등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계의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만큼 제대로 된 법 제정이 기대되는 바이다. 우리 사회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 개인들의 연애 관계에 있어서의 성찰과 더불어 사법기관의 태도, 법 체계 등이 함께 변화해 나갈 때 진정한 데이트폭력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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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② ]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데이트폭력


단비 · 이윤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최근에 ‘데이트폭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언제나 존재해왔고, 많은 여성이 고통받았음에도 이제야 가시화된 것은 ‘신당동 데이트폭력’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 사건은 7월 18일 오전 1시 30분쯤 20대 남성인 손 모 씨가 연인 관계의 여성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한 혐의다. 피의자는 길거리에서 상대를 폭행했고, 가까스로 도망친 상대가 주변 시민들에게 도움을 받자 1t 트럭으로 돌진하여 위협하였다.


 사건의 폐쇄회로 영상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에 응하여 관련 기사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급증하는’, ‘사랑에도 폭력이 존재하나요?’ 등의 제목으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 부재를 드러냈다. 데이트 폭력이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했다거나,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폭력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여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사들의 제목들처럼 데이트 폭력은 ‘급증’한 것일까?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폭력이 존재할 수 없기에 이는 단순한 개별 폭력사건인 것일까?


데이트 폭력은 가부장제의 성별 위계에서 비롯된다


 앞선 기사에서 말했다시피, 데이트 폭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한다. 데이트 폭력은 너무나도 익숙하여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혼으로 여성은 남성의 가족으로 편입되며, 남편의 통제가 당연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자란 사람의 연인관계에서는 성별 위계관계가 자연스럽게 학습되며 굳어진다. 법적인 관계가 없는 연인관계임에도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남성이 연인관계인 여성의 옷차림, 친구 관계, 귀가 시간을 통제하는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에서 남성의 폭력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통제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남성은 여성에게 소리 지르거나, 화내거나, 폭력을 가한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이자 일부로 여겨지고, 그에 따라서 통제가 가능한 가부장제는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데이트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데이트 폭력은 절대 ‘급증’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성별 위계의 위험


 성별 위계는 폭력을 비가시화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소유물이다.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옷차림을 통제하고 통금 시간을 강제하고,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을 단속한다. 더욱이 이것은 ‘많이 사랑해서’로 대체된다. 이러한 ‘단속’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연인 간의 사소한 다툼’, ‘사랑싸움’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리고 이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이에도 폭력이 발생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한다. 위계와 폭력은 이미 발생했는데 말이다.


 ‘남자 기 살려주기’가 일상인 성별위계 사회에서 ‘남자 기 살려주는 역할’은 여성에게 부여된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 단호한 거절을 어려워하게 한다. 때문에 많은 여성이 ‘오빠가 싫어할까 봐’라는 이유로 불편한 스킨쉽을 참게 된다. 불쾌하고 불편함에 어렵게 거절하게 된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남성은 소유와 통제의 대상인 여성에게 거절당하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그리고 폭력을 가한다. 남녀 사이의 폭력은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폭력이 아니다. 이는 성별위계에 따른 일방적이며, 잔혹한 폭력이다.


데이트 폭력, 해결의 첫 단계는 인식의 개선


 데이트 폭력은 항상 존재했다. 연인 관계 또한 성별 위계 내에서 존재했기 때문에, 폭력이 비가시화 되어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성별위계로부터 비롯되는 데이트폭력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법적인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이 젠더폭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인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시와 통제를 성찰해야 한다. “사랑해서 그랬다”라는 변명은 ‘변명’으로 남아야 한다. 그 때에 비로소, 여성은 보호받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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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① ]

폭력도 사랑이 되나요


경은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데이트 폭력 작년에만 8367건, 여성단체, 빙산의 일각”(한겨레신문) 최근 불거진 서울 신당동 데이트폭력 사건 후 나온 한 기사의 제목이다. 정말 빙산의 일각이다.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아주 내밀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폭력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향해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그 인식 때문에 더 해결되기 어려운,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문제다.


데이트 폭력이 도대체 뭐야? - 인식의 부재


 사람들은 대부분 데이트 폭력이라고 했을 때, 심각한 물리적 혹은 성적 폭력을 떠올린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우선 데이트 폭력이란, “넓게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의미하며 물리적 폭력을 비롯하여 정서적, 환경적, 성적 폭력을 포함한다.”[각주:1] 여기에 덧붙여, 때리고 강간하는 것뿐 아니라 옷차림을 제한하는 등의 통제 역시 데이트 폭력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중 윤보화의 글에 따르면, 술에 만취한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모욕적인 사진을 찍고 유포한 남자친구, 헤어진 애인에게 염산을 뿌리거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폭력 등 다양한 층위와 유형의 폭력이 존재한다. 한국형사정책원의 연구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80% 이상이 다양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있고, 그 중 ‘행동 통제’는 72%로 가장 많았다.[각주:2] 이처럼 데이트 폭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에 만연해 있다. 


 '사소한' '사랑싸움'에 불과했던 데이트 폭력은, 최근 들어 겨우 폭력이라고 명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물리적, 성적 폭력만을 부각시켜 보도한다. 며칠 전 서울 신당동에서 발생한 사건의 경우도, 많은 경우 남성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앞세워 보도했다. 그러한 보도는 데이트 폭력을 가시적인 폭력으로만 가두고, 일상적인 폭력은 인식하기 어렵게 한다. 해당 보도에 대해 사람들은 “데이트 폭력이 아니라 그냥 폭력 사건이다”, “너 어디야? 라고 물어도 폭력이냐”라고 반응한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정비되지 않은 법 – 법률의 부재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의 부재는, 관련 법률의 부재에 의해 심화된다. 폭력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현상은, 법적으로 규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행 헌법상 협박이나 폭행 등으로 가해자를 신고할 수는 있지만, 해당 혐의로 신고되어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피해자의 신변보호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가해자가 집과 학교, 회사 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신체적 폭력이 되돌아올 수도 있고, 성관계 동영상 유포 등으로 협박해 신고를 막기도 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각주:3] 경찰은 여전히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피해가 있어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관련 법률의 부재 및 경찰을 포함한 사법체계의 인식과 태도는 데이트 폭력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법률의 부재는 또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데이트 폭력 사건과 관련해서 발행된 기사들에 대해,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 중 다수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피해 상황에서 “귀찮아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경찰관의 태도는, 데이트 폭력을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는 상황 역시 데이트 폭력을 처벌받을 만큼 심각한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트 폭력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이 먼저 확산되어야 한다. 다른 요소들의 부재에 대한 말하기 앞에, 사회적 인식의 부재에 대한 말하기가 계속 있어야 한다.


어디에서든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데이트 폭력은 이제 막 폭력이라고 명명되기 시작했고,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기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 데이트 폭력의 다양한 상황과 양상을 인식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폭력에 대한 인식도 바꾸어야 한다. 또한 데이트 폭력의 원인이 되는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전반적인 이성애 연애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 현대사회의 이성애 연애는, 가부장적 성별 위계와 성차별에 대한 학습의 장이다. 남자친구가 됨으로써 여자친구를 통제해도 된다, 혹은 통제해야 한다는 것, 여자친구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 등이 그 예시다. 또, 연애라는 친밀한 관계는 사적인 영역이므로 그 관계 내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가정폭력 역시 가정폭력이라고 명명되기 전까지 “여자는 3일에 한번씩 맞아야 고분고분해진다”는 인식, 폭력이 아니라 집안 문제라는 인식 때문에 가능했다. 데이트 폭력 역시 우리가 고민 없이 따라가고 있는 이성애 연애 각본과 남성중심적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랑이 아니라 성차별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며, 표면적인 행동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적이지 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여성도 안전하게 사랑하고 이별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보다 더 구체적인 데이트 폭력의 양상과 그 기저에 있는 사회적인 젠더 위계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룰 것이다. 또한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현행 제도뿐 아니라 앞으로의 사회적 인식의 변화 방향도 제시할 것이다. 폭력 없는 사회를 함께 만들기 위해, 앞으로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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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보화,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본문으로]
  2. ytn 기사 인용: http://www.ytn.co.kr/_ln/0103_201707220001324983 [본문으로]
  3. 한겨레 신문 기사 인용: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3636.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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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제모 ④]

제모, 안녕


지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지난 겨울 이후, 겨드랑이 제모 없이 지내고 있다. 마침 따뜻한 동남아로 여행을 갔던 지난해 12월 말, 그곳의 워터파크를 가기 위해 겨드랑이털을 남김없이 밀었으니 지금까지 딱 7개월 정도 기른 셈(?)이다. 주기적으로 해야 했던 귀찮은 일 하나가 줄어들자, 굉장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모 없는 일상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새삼 중학생 때부터 10년 동안 제모를 정기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옷의 소매가 짧아지는 계절이 다가오자 편안함은 긴장감을 동반했고,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외출할 때 거울에 비춰보는 것은 기본, 애매한 길이의 옷을 입으면 어느 각도가 가장 아슬아슬한지 확인하곤 했다.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숱한 상황들, 지하철 손잡이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위치일 때, 솔직히 말하면 그간 누렸던 편안함보다는 ‘그냥 한번 밀고 올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먼저였다.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


 여러 의미에서 가장 ‘짜릿함’을 느꼈던 건 학교 농구장에서였다. 운동하거나 앉아서 쉬는 사람들, 오가며 구경하는 동기들, 주변에 참 보는 눈 많은 그곳. 나는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해서 그곳에서 종종 농구를 하거나 동아리 부원들과 미니 풋살 게임을 하는데, 팔과 겨드랑이가 자유롭지 않고서는 제대로 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편한 복장으로 눈치 보지 않고 운동을 하던 중, 슛을 하려고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그 순간! 뒤늦게 ‘아차’싶어서 그 뒤로 잠깐 동안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팔의 동작을 의식하기도 했지만, 털을 밀지 않고도 자유롭게 팔을 휘적거리는 내 모습에 느끼는 해방감이 더 컸다. 한편으로 남자 농구선수들이 민소매다 못해 겨드랑이가 시원하게 파인 농구 유니폼을 내의 없이 입는 모습을 떠올리면 부러움이 샘솟기도 했다. 제모를 시작한 이래로 최장기간 제모에 손 놓은 채 지내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나를 의식하는 모습에서 아주 벗어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내 몸의 이 곳 저 곳을 의식했던 기억은 털 외에도 많았다.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줄곧 ‘수영하면 어깨 넓어져서 여자한테는 안 좋다’라는 이야기가 따라붙었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이라도 조금 뛰면 흔히 ‘다리 굵어지는데 괜찮냐’는 둥 조언 아닌 조언을 듣곤 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는 꽤 많은 여학생들이 체력관리를 위해 점심,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 같이 줄넘기를 했는데, 그때 어느 여선배가 ‘줄넘기하면 가슴살부터 빠져서 후회할 텐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운동하면 근육이 발달하고 특정 부위의 살이 빠지는 건 시간이 흘러 털이 자라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법인데, 여성의 몸이 ‘자연스럽게만’ 자라는 건 종종 걱정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예쁘고 멋진 이상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두고 내 몸을 좀 의식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이 유독 단일한 모습, 혹은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괜찮은 걸까. 그 기준을 벗어난 몸을 가진 사람들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기본 값’으로 여겨져도 되는 걸까. 무엇보다도,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마치 지적과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여겨지고 있다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억압적인’ 측면이라고 봐야한다.



제모할까 하지 말까, 정답은 없다 


 사실 이 이야기에 뚜렷한 결말은 아직 없다. 제모 없이 몇 개월을 지냈지만, 막상 남은 올여름 그리고 또 내년, 내후년의 여름을 떠올리면 털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진행형일 것만 같다. 제모의 사회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깨달았다고 해서 제모를 반강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수년간 그 규범을 내면화해온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의 털, 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모를 하는 행위가 곧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혹은 막연히 제모를 ‘거부’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제모 없이 지낼 때 느껴지는 해방감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겪어보니, 중요한 건 여성을 보는 왜곡된 사회적 시선의 변화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앞선 ‘제모 이야기’ 기획을 통해 보았듯 여성에게 그렇게 쉽게 요구되는 제모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제모의 탄생부터가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한 모습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현대 사회 또한 ‘미적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여성에겐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불합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여성의 털에서 멈추지 않고, 여성의 몸과 행동양식 전반을 향한다.


 결국, 낡은 통념이 여전하다면 제모 없이 사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한들 여성의 몸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매년 여름이 돌아오듯 반복되는 제모 이야기를 풀 열쇠는 단순히 여성들의 제모 ‘거부’가 아니라 자기 몸에 대한 여성의 모든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로의 이행,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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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제모 ③ ]

"너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이린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민소매를 입어야겠다고 생각한 날, 당연한 듯이 털을 밀고 있는데 문득, 제모를 하지 않는 생활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구글에 ‘제모’를 검색하니 제모용품, 제모 전문 샵 등 광고가 가득 나온다. 광고 말고 좀 더 개인적인 경험담을 찾기 위해 ‘제모 안 하는 여자’로 검색어를 바꿔 본다.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여성이 주체가 되는 글은 거의 없다.(‘제모를 안 하면 어떤 느낌일까요?’라든지) ‘여자친구가 너무 자기관리를 안 해요’, ‘제모 안 한 여자 만나느니 배 나온 여자와 사귀겠다’, ‘제모 안 한 여성은 게으르고 지저분하다는 인상 줘’ 등, 제모를 안 한 여성이 남성에게 어떠한 인상을 주는지에 대한 글만 가득하다. 순간 ‘제모를 안 하면 어떨까’하던 생각이 움츠러든다. 역시 나는 살던 대로 살아야 하나 보다.



남성의 시선, 대상화되는 여성


 제모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논할 때 남성의 시선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성의 시선’이란 페미니즘 연구에서 오랫동안 다뤄진 부분이다. 서구 철학에서 시각 권력은 대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나비를 관찰하는 것이 결국에는 해부하고 죽이는 데까지 이르듯이 말이다. 인간 사회에서 이러한 시각 권력을 가진 사람은 남성이고, 시각의 대상은 여성이다.


관찰의 대상인 여성은 ‘신체 없는 기관’으로서 소비된다. 신체 없는 기관이란 신체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상품화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미디어에서 여성이 출연할 때 카메라의 시선이 다리를 훑는 것,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입술이나 가슴 등 특정 부위가 강조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예시가 될 수 있다. 이 ‘신체 없는 기관’의 극단적인 예시도 있다. 여성의 성기를 본뜬 남성용 자위기구를 살펴보면, 여성의 가슴이나 발에 질이 재현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남성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기관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내 마음 속 또 다른 시선


 남성의 시선이 남성들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계속 학습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스스로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바라볼 때 내가 얼마나 편한지,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는지보다 ‘남성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염두에 두게 되는 것이다. ‘제모를 하지 않는 여성’이 여성성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과 큰 관련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누구도 ‘제모를 하지 않으면 땀이 차나요?’, ‘제모를 하지 않으면 따가운가요?’ 등을 묻지 않는다. ‘제모 안 하는 여자친구 어떻게 생각하나요?’ 같은 질문은 발에 채일 듯 많은데도 말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제모를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위가 변화하는 현상 역시도 남성 선호의 변화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음부를 제모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서양에서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여성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남성 선호가 달라진 것과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1~20년 전까지만 해도 음부에 털이 없는 여성은 기괴하게 여겨졌다.심지어는 ‘음부에 털이 없는 여성과 섹스하면 한동안 재수가 없다’ 등의 말이 남성들 사이에 돌았다고 한다. 여성 화장실에서도 쉽게 ‘털 없어서 고민이면 무모증 치료하세요’ 등의 스티커를 볼 수 있었다.



한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던 여성 체모시술 광고 스티커



 하지만 서양 여성들의 모습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더 나아가 하나의 미적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남성들 역시도 음부에 털이 없는 여성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여성의 아름다움을 남성 시선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제모 형태도 남성의 선호를 철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평가로 가득 찬 일상


 남성 시선은 여성이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언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여성에 대한 신체적 억압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대중을 상대로 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항상 외모에 대한 평가에 노출된다. 남성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크게 받지 않지만, 여성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떤 여성에게든 ‘오늘은 화장이 이상하다’와 같은 평가가 이어진다. 대중을 상대로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 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동료나 친구들에게 이러한 말을 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하는 평가에 주로 작용하는 건 ‘남성이 여성을 볼 때의 미적 기준’이다. 이 사실이 더 극명하게 드러날 때는, ‘너 그렇게 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같은 말을 들어야 할 때다.


 남성이 여성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여성 역시도 그러한 시선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SNS에서는 ‘남자친구가 없으니 제모를 안 해도 돼서 편하다’는 유머가 쉽게 공감을 받는다. 이는 여성이 남성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성은 사실 제모를 할지 안 할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제모를 안 하면 견뎌야 할 온갖 시선과 비난을 어떻게 할지, 아니면 그냥 제모를 하고 다닐지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제모는 여성의 선택이다. 하지만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존과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결국 많은 여성들은 그냥 불편함과 비용을 감수하고 제모하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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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제모 ② ]

제모의 뿌리를 찾아서


이현경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는 제모가 마치 선택인양 비추어진다. 그러나 우리에게 제모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온갖 불편함과 비용지출을 감당하며 털을 밀어 피부를 매끈매끈하게 가꿔야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왜 이렇게 제모를 ‘해야만 하게’ 되었을까? 다른 시대의 다른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 털을 대해야 했을까? 역사를 짚어보며 그 뿌리와 원인을 알아보자. 



제모, 그 오래된 역사 : 가부장제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까지, 제모는 인류와 함께했다. 제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 문화는 털이 있는 것을 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겨서, 이방인과 노예를 제외한 모든 남녀는 온몸을 말끔히 제모 해야 했다. 가장 오래된 제모는 종교적 이유로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이 이후의 제모는 유행의 일종으로 취급되었다. 로마 시대의 상류층 여성들은 콧구멍 속 털도 제거해야 했고 때론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과 얼굴의 잔털을 족집게로 뽑아야 했다. 그들은 조개껍데기 같은 비교적 안전한 제모 도구부터 등잔불, 석황 등 신체에 위험한 도구까지 위험을 감수하며 사용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선 시대별 유행의 변화에 따라 여성에게 제모가 요구되는 부위는 항상 달라졌다. 반면 유교권 국가에서는 제모를 금기시하여 털이 많은 여자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모를 해야 하건 털을 길러야 하건, 이러한 선택이 여성의 자유의지와는 상관 없이 시대와 유행의 요구에 따라 좌우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행이라고 서술하였지만, 그 유행은 사실 남성 선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여성들에겐 남성 선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남성에게 선택되고 결혼하는 것에 생존이 걸려 있을 정도로 간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상기시킨다면 제모의 양상을 단순히 유행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가부장제에서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서 존재하던 여성들이 선택해야 했던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털이 자본주의를 만났을 때


 이처럼 현대 이전의 제모가 가부장제의 남성 선호에 봉사했다면 현대의 제모는 상업화에 의해 가속화되 었다. ‘아름다움의 발명’의 저자 테레사 리오단에 따르면, 19세기 말부터 세계 1차 대전 이전까지 여성의 체모는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며 피부를 더 많이 드러내는 여성복의 유행하기 시작했고 제모한 여성 영화배우들이 대중문화 전반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감지한 질레트는 ‘마이레이디’라는 여성전용 면도기를 발명했다. 여성전용 면도기라고 해보았자 이전의 면도기보다 조금 폭이 좁은 형태였지만 조금 더 비싼 값이 매겨졌다. 질레트는 이 면도기 광고에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아름답지 않다”라는 카피를 삽입한다. 이에 질세라 12개가 넘는 미용 기업들은 ‘여성의 털’ 사업에 뛰어든다. 이렇게 미용 산업은 ‘여성의 털은 부끄럽고 흉측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 의 저자 에머오툴은 그녀의 책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들로 하여금 여성성을 어떻게 구매하게 했는지 설명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 여성성은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것이라고, 남성과의 차이를 과장하는 방향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성별화 될 수 없다고, 여성성이라는 임의적 개념에 맞춰 스스로를 부호화하지 않으면 여성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택의 주체는 우리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체모를 기르기 시작한 뒤에야 내게는 조금도 선택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내 털의 소유권을 찾는 그 날


털의 깊은 역사를 따라가며 나는 내 털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벗어난 날을 상상을 해봤다. 오랜만에 반팔을 입고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때, 겨울 동안 자라난 내 털에 당황하지 않아도 되고 그 하루를 망칠까 봐 급하게 원치 않는 긴 팔을 살 필요도 없다. 여학생들이 체육시간에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날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내 털은 절대 내 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해 끊임없이 고민에 빠질 것이다. “다리털은 괜찮을까? 팔털은? 겨드랑이 털은? 눈썹은?” 




사진 출처: 

1. http://www.todayifoundout.com/index.php/2013/04/the-history-of-shaving

2. https://www.bustle.com/articles/196747-the-sneaky-manipulative-history-of-why-women-started-sh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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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제모 ① ]

털 앞에서 왜 나는 작아질까


윤선혜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어제 씻으면서 다리털을 밀었던가?” 옷장에서 반바지를 꺼내던 나는 잠시 망설였다. 손으로 다리를 슥 쓸어보니 삐죽 솟은 털이 유독 까칠하게 느껴진다. 아, 어제 씻으면서 밀어야 했는데……. 어젯밤 더위와 피곤에 찌든 채로 집에 들어와 만사가 귀찮다며 세수만 겨우 하고 잠든 내가 원망스럽다.


 거대한 찜통 속 같은 여름 날씨가 계속되자 사람들의 옷차림은 더욱 가볍고 짧아졌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반소매와 반바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옷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맨살이 더 드러남을 의미하고, 겨우내 잘 감춰왔던 내 털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녕. 잘들 있었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혹자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성큼 다가온 여름을 실감한다고 하지만, 나는 드럭스토어에서 제모 용품을 고르며 여름을 실감한다.


 드럭스토어에서 제모 용품 코너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겨울보다 진열 범위도 훨씬 넓어졌고 ‘여름 필수템’ 판넬이 크게 붙어있기 때문이다. 나란히 줄 서 있는 분홍색 면도기들과 피부 타입, 부위, 방법별로 세세하게 나뉜 제모 용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막막함이 밀려온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제모해야 할지, 밀어야 할지, 뽑아야 할지, 녹여야 할지, 그리고 가격은 또 왜 이렇게 비싼지.

 




 대학가에 위치한 드럭스토어에 두 곳에서 판매 중인 제모 용품 45개를 제모 부위와 방법별로 나눈 뒤 평균 가격을 계산했다(기획구성, 특가상품은 제외했다). 아주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라는 털 때문에 꾸준히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한 것이 사실이다.


 피부과나 왁싱샵을 찾아 레이저, 왁싱 등 전문적인 관리를 받을 경우에는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칼럼에 따르면 영구 레이저 제모 시술 비용은 범위가 좁은 겨드랑이와 비키니 라인은 5회에 50만원 이내, 범위가 넓은 팔다리의 제모는 5회에 100만원 이상의 가격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물론 제모 수요가 증가하면서 매우 저렴한 가격에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곳들도 늘어났다. 


 제모 부위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김지혜(가명, 23세)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인중털을 제모했다. “어느날부터인가 인중털이 유독 도드라지는 것 같아 여성용 면도기로 밀기 시작했어요. 인중은 다리에 비해 범위도 적고 그렇게 귀찮지는 않아요.” 인중털을 밀면 털이 더 굵게 자란다는 말에 망설였지만, “너무 보기 싫다는 생각에” 제모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문 왁싱샵에서는 인중 털, 손가락 털부터 시작해 머리를 묶었을 때 깔끔해 보이도록 목 뒤 잔털까지 제모해야 한다고 광고한다.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인식이 강했던 브라질리언 왁싱도 여러 매체에 등장하며 꽤 보편화됐다.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위까지도 관리해야 한다는 묘한 압박감을 느낀다. 


 잦은 제모 탓에 상한 피부와 색소침착도 골칫거리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또 추가로 돈을 써야 한다. 이쯤 되면 그렇게 밀어대는데도 눈치 없이 또 자라는 털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귀찮고 성가신 일인 걸 알면서도 삐죽 올라오는 검은 털을 가만둘 수가 없다. 짧은 소매 사이로 보이는 겨드랑이털이,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다리털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털이 많다는 이유로 ‘바야바’라고 놀림 받던 친구 생각도 잠깐 한다. 


 앞서 언급한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칼럼 조회수에 기반을 둔 네이버의 빅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해당 칼럼을 가장 많이 읽은 연령대는 10대였다. 20대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2위에 위치했다. 성별 이용률은 여성 57%, 남성 43%로 결과적으로 10대 여성이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실제로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8명의 여성 중 6명이 10대에 제모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이지영(가명, 21세)씨는 샤워를 할 때마다 샤워커튼 사이로 친구들과 면도기를 주고받곤 했다고 한다. “교복 치마를 입으면 어쩔 수 없이 다리가 드러나니까 검은 스타킹을 신을 만큼 춥지 않은 이상 항상 다리털을 밀었어요. 친구들이 미니까 왠지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저도 겨드랑이는 고등학교 때 처음 밀어봤어요.”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왜 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번 여름만큼은 제모 없이 지내보려고 소매가 긴 옷을 여러 벌 샀지만, 찜통더위에 굴복하고 말았다. 머리카락을 기르려고 트리트먼트를 잔뜩 샀다는 친구가 인중에 난 털은 어떻게 뽑아야 하냐고 물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쯤 내 몸에 당당할 수 있을까. 내 털들은 언제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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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장생활 생존기



목화




* 이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서, 나이, 직업, 회사 모두 실제와 다릅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다


 저는 재작년 4월부터 서초동에 있는 한 로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애매한 중상위권 성적의 여성 변호사는 누구도 탐탁해 하지 않는다’는 세간의 소문을 애써 외면하며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던 중 어렵게 구한 직장이었기에, 반드시 살아남고자 선배들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듣고 최소한 한두 가지는 의연히 대처하기로 각오를 다졌습니다. 첫째는 정말 일이 쏟아지듯 많고 초과근무는 일상이 되리라는 것, 둘째는 오랫동안 남초였던 법조계의 성비 불균형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상존하리라는 것. 물론, 각오가 충분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데, 업무도 생활도 최소한의 합리성은 보장될 것이라고 은연중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의 순진한 믿음은 첫 환영식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6명의 신입 변호사 중 여성이 저 혼자뿐이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날 참석한 구성원 변호사(파트너 변호사)가 두 분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이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남초였던 법조계에서 이 정도의 성비 불균형은 어쩌면 당연하겠습니다만, 그 불균형을 직접 한 컷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윗분들은 만남의 기쁨을 폭탄주 잔의 숫자로 헤아리는 분들이셨고 그래서 신입 변호사 모두가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셨습니다. 저는 원래 술을 좋아하지만 이런 술자리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첫인상에 미움이 박히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중간에 도망가면 나머지 입사 동기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빼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너는 여자 변호사답지 않아서 좋다”



통과 의례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인정받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조금 전 발언은 여성차별’이라고 감히 지적할 수도 없었습니다. 털털한 성격을 타고나서인지, “예전에 있던 애는 뭐 말만 해도 울 것 같았는데, 너는 느낌이 통한다. 여성 변호사는 그게 중요한데 잘 하고 있다”라는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침묵하면, 나도 공범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저는 억지로 술을 더 비우며, 웃으며 농담처럼 “에이, 변호사님, 이럴 때면 참 옛날 분 같으세요~” 라고 얼버무렸습니다. 


 미봉책으로 대처하던 도중, 결정적인 사건은 머지않아 찾아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제가 속한 팀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는 젊은 여성 변호사가 입사하면 그분을 유흥업소에 데려가 ‘충성심을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의연하게 대처하면, 너는 우리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아니면 ‘이래서 여자애들이랑은 일하기 불편하다’라고 씹고 끝내면 그만입니다. 이 자리를 지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저는 이 시험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적당히 둘러대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고민했지요. 


 ‘내가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이 일에 침묵하지도, 묵언의 공범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일까.’


 

남성처럼, 때로는 어린 여성처럼


 노파심에 이야기하자면, 저는 제 입사 동기들에게 ‘너는 남자라서 인생이 편하겠다’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와 제 입사 동기들은 매일 자정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고 같이 시달리며 살고, 한국사회에는 제가 겪는 것보다 고통의 총량이 훨씬 큰 ‘막내’들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수많은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가운데 말단 사회초년생이 각자 고달픔을 안고 살지만, 분명 “여성 직장인”만의 서사가 있고, 그 서사가 어떻게 전개되든 간에 그 기저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성공한 여성 직장인이 되려면, 그냥 그 사람이 성격이 좋고 일을 잘 한다고 충분한 것이 아니라, “명예 남성”으로 인정받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명예 남성으로 인정받는 절차는 몇 가지 통과의례부터 시작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친 일부 선배들은 “나도 여자지만 여자애들이 이해가 안 갈 때가 너무 많다”는 단골 발언으로 동료 남성으로부터 암묵적 지지를 얻곤 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대다수의 여성 후배들은,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성을 타자화하는 데 실패”하고, ‘여자애들’로 묶여 평가받게 될 것이며(남성의 경우, 개저씨나 개부장처럼 개인 혹은 해당 직책 군(群)으로 평가받는다는 점과 대조적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본인의 결혼생활과 육아를 위해 대부분 직장을 등지게 됩니다. 


 특히 전문직에서는 남성성이 미덕이고, ‘여자처럼 구는 것’은 금기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바람직한 드레스코드부터 사회생활 요령까지 다양하지만 제대로 된 기준이 있을 리가 없는 내용이라 그런지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권력을 쥔 남성의 연대에 편입되기 위한 것으로서 자신을 그 연대의 말단으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나 본인은 배제될 수 있고(때로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미덕이기도 하고) 특히 출산, 육아를 거치게 되면, 그 각본은 도무지 수행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재밌는 것은, 제가 단순히 성격이 털털하다는 이유로 ‘명예 남성 유망주’에 꼽혔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순간에는 “어린 여성”의 역할을 요구받았다는 점입니다. 식사자리에서 아재 개그에 웃어주고 지루한 교양, 자기 인생 자랑을 경청하는 임무를 수행하되, 상사의 업무지시에 또래 남자애들보다는 그의 의견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것을 기대받기까지, 그 역할은 예기치 못할 때 오직 상대방의 필요에 따라 요청되었습니다. 비슷한 능력을 갖춘 변호사들끼리도, 남성 변호사에게는 좀 더 중요한 업무가, 여성 변호사에게는 번다하고 사소한 업무가 배당된다는 의심을 하게 하는 순간도 왕왕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괜히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 역할도 일상생활에서 편리한 부분(예컨대, 어린 여성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신사적’으로 군다거나)도 있으니 이를 누리라고 했고, 실제로 그 점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요구한 적도 없고 소질도 없는 역할을 단지 내가 이 나잇대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나마 저는 싱글이라 ‘여성이어서 갖추고 있는지 의문스러운 자질’ 예컨대 조직에 대한 헌신을 초과업무로 증명해낼 여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선배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찌 된 연유에서인지 가사노동을 전담하거나 더 많은 몫을 부담하게 되고, 출산과 함께 체력을 잃으면서 결국엔 야근을 감당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애초에 회사가 사람을 적게 써서 벌어진 일인데도, ‘정규 근로시간’만 일하는 탓에 주어진 일을 다 소화하지 못하는 기혼 여성은 상사와 동료에게 모두 천덕꾸러기가 되고, 그녀의 보이지 않는 고군분투를 알아주는 이는 손에 꼽습니다. 오히려 ‘가사도우미를 써서 버티고 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선배가 한 하소연하자, 일부 눈치 없는 상사들은 ‘우리 애는 알아서 다 자라있던데’라고 킬킬거리거나, ‘여자들 일해서 버는 월급이 다 도우미 월급으로 나갈 거면 본인이 안 키우고 굳이 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대꾸하기까지 합니다. 



잘 살아남고자 하는 각오


 통과의례의 밤에, 저는 ‘여성성을 타자화하여’ 인정받는 것의 부당함과 그 정치학의 한계, 그리고 나의 직장 내 생존전략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내에서 ‘여자 마초’라고 소문난 한 선배 변호사가, 혹시라도 의뢰인이 자신이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쁘게 볼까 두려워, 의뢰인에게 ‘잠깐 몸이 안 좋아서 간단한 수술을 하고 왔다’며 출산휴가를 거짓으로 숨겼다는 일화, 다른 모 사기업에서 상사가 여직원을 성추행하자 우선은 담당 상사를 징계하되 그 해 티오에서 여성을 삭제했다는 일화, 매일 식사자리에서 반복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 가장 어린 여자 막내를 꼭 집어, ‘아, 혹시 이런 말도 요새 여성단체에서 여성차별이라고 하나?’라는 식으로 묻던 질문들, 술자리에서 빠지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비난과 동시에 2차에서 여성 직원이 빠지는 것이 미덕이 되는 시점 등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부적절한 발화나 행동에 맞춰주지 않으면서, 한 사람의 몫을 다하며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뾰족한 해답은 얻지 못했으나, 그 대신 ‘할 수 있는 선에서 저항하기’라는 세 번째 각오를 추가했습니다. 물론 슬프게도 그 각오의 대가로 조금이라도 덜 미움을 사기 위해 저를 야근과 주말 근무로 혹사시키고 있습니다만,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미봉책을 세워두고 더 나은 생존전략에 대해 고민을 이어갈 생각입니다(그래서 조금 더 용기가 생기면, 네 번째 각오는 ‘직업적 헌신으로 설명되지 않는 노동착취에 대한 저항’으로 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요새는 “여자 변호사답지 않아서 좋다”는 말에 대답하지 않거나, 각자 하기 나름이라고 응수하고, 그래도 말이 길어지면 (짐짓 밝은 얼굴을 지어 보여야 합니다만)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런 발언은 여성차별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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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수수 (초등성평등연구회)



 나의 아동 시절, 나는 남자이고 싶었다. 어릴 때 사진 속 박박 깎은 머리, 장난기 가득한 얼굴, 탐험 놀이라며 해안가 돌밭과 들판을 마구 헤집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내아이였다. 맏이인 데다 꽤 똑똑했던 나에게 기대가 컸던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넌 아들이나 다름없어. 넌 우리 집 맏아들이나 마찬가지다.’ 아들처럼 키워진 딸. 하지만 나는 아들이 될 수 없었고, 어렸던 난 남자가 되길 원했다. 성 정체성의 문제는 아니다. 아동기부터 꽤 오랜 기간 고민해온 나의 성 정체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니까. 그런데도 여자인 내가 남자가 되고 싶어라 했던 이유는? 답은 간단했다. 그때 각종 매체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고, 아버지를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서 듣던 칭찬은 모두 남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령기의 아이들을 둔 집에는 으레 위인전집이 있었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학년 때의 나는 국내외 위인전집에 푹 빠져있었고, 읽었던 위인전에 대해 3일에 한 번꼴로 독후감을 썼었다. 위기 속에서 용기를 발휘하고, 공동체를 지키고, 멋진 이론이나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위인은 대부분 남자였다. 나는 책 속 인물들처럼 멋진 위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자가 되어야 했고, 여자인 나는 남자가 될 수 없었으니 남자처럼 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일러문> 등 여아용 애니메이션에도 심취해있었지만, <썬가드> 등 남아용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을 사랑했다.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보다 괴롭히는 쪽이었다. 남자아이들이 ‘아휴, 네가 남자냐?’며 나에게 기가 죽었을 때, 어른들이 ‘여자아이 같지 않게 씩씩하네.’라는 말을 할 때, 나는 창피하면서도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이건 뭔가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굳이 남자가 되지 않더라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남성 선망이 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남자가 되기를 그만둔 나에게 ‘여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말하는 ‘여자’는 젊고 아름다워야만 한다. 일요일 아침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나게 했던 <디즈니 만화 동산>의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가냘픈 몸매에 희고 깨끗한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 그렇지 않은 캐릭터들은 악역이거나 희화화된 캐릭터다. 또 당시 방영되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인 일본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은 각종 성적 대상화와 괴롭힘, 성희롱을 당하고도 가해자를 향해 화내거나 때려주기는커녕 하하 웃고 마는 인물이었다. 뉴스 진행자,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 드라마 속 주인공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TV 속  사람들은 성별이 여자라면 모두 젊고 아름다웠다. 그렇지 않은 여성들은 개그-를 빙자한 비웃음-의 소재가 되거나, 바가지 긁는 아내, 고약한 시어머니 등 악랄하게 그려지거나, 남성의 뒷바라지를 하는 보조적인 역할, 보호받는 역할이 고작이었다.


 나는 늘 젊고 아름다울 자신이 없었다. 왕자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내가 왕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아름답지 않고, 순종적이지 않은 여자는 죄다 악당이거나 웃음거리라니! 이런 ‘여자’들을 보면서 나는 여자라는 카테고리 안에 나를 넣고 싶지 않았다. 남자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은데 여자도 될 수가 없었다. 잠깐, 나는 여자인데 왜 여자이길 싫어해야 했던 걸까? 나는 이미 여자이고 여자이기에 앞서 사람인데, ‘사람’이 되면 됐지 ‘여자’가 되어야 하는 건 왜 그런 거지?? 여전히 교실에는 이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자아이들이 있다. 아직도 사회가 말하는 ‘여자’는 젊고 아름다워야만 한다. 여성 롤모델은 부족하거나, 왜곡된 여성관을 전달하며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아이들은 멋진 사람(=남자)이지 못해 고통 받고, 밥맛 캐릭터들과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자신의 성별을 인정하더라도 예쁘고 아름답지 못한 신체를 부위별로 검열하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 불필요한 고통에 빠지고,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프다. 교사인 내가 경험했던 과정이기에 더 마음 아프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마음껏 꿈꾸고 원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르면 꿈꿀 수 없고, 모르면 바랄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알고, 꿈꾸고, 바란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생각하기에 ‘멋진 것’을 원하게 되어있다. 그동안 이 ‘멋진 것’이, ‘멋진 경험’이 얼마나 한 쪽 성에 쏠려있었나. ‘멋짐’을 한쪽 성이 독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스타워즈 7>의 주인공 레이. 비행기 조종도, 포스의 사용도, 적군과의 싸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그를 보며 나는 감동했다. 너무나도 멋있었으니까. <고스트버스터즈>를 보면서는 여자여도, 완벽한 모습이 아니어도 영웅이 되어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히든 피겨스>에서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을 생각했다. 남자들은 늘 이런 감동과 쾌감을 느꼈단 말이지. 물론 남성 영웅 캐릭터, 위인들에게서도 감동을 했었지만 같은 성별에게서 느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어른인 나도 이만한 영향을 받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느낄까.


 성별과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멋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멋질 수 있다고 꿈꾸게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디즈니 만화 동산>의 디즈니는 이제 엘사, 모아나 등 새로운 공주를 보여주고 있다. 젊고 아름답지 않은, 착하고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도 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지위를 얻는 여성 인물들이 많아졌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내가 어렸을 때 보다는 성별과 관계없이 감동받을 수 있는 롤모델과 이야기가 늘어났다.


 초등성평등연구회를 통해 이런 롤모델들을 어떻게 수업에 녹여낼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성별에 상관없고 왜곡되지 않은 롤모델 찾기에 흥미를 느끼도록 할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을 가린 직업 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성별일지 맞춰보도록 하고, 자신이 자주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성비와 인물별 역할을 분석해보게 했다. 잊혀진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찾고,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탐구했다. 아주 느린 변화지만 자신들이 경험하는 세계의 불평등함을 깨닫고 이를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나와 우리가 겪은 고민과 고통이 옛일이 될 때까지 앞으로 더 많은 롤모델들을 찾아 제시하고, 아이들이 경험할 멋짐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이리라.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개개인이 가진 멋짐을 사랑하게 하는 교사,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도록 하는 길라잡이, 또 하나의 롤모델로 나 역시 멋진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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