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의 봄


손명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





 겨울은 손 흔들어 보낼 겨를도 없이 훌쩍 가버리고, 봄은 벌써 온 천지에 자리를 펴고 있다.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려 온 몸으로 봄을 맞아들이고, 가지 끝마다 작은 망울을 맺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폭력으로 위기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인생의 봄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하는 ‘쉼터’를 서른 해 전에 개소하였다.


 지난 3월 14일에는 쉼터를 거쳐간 이들의 수기집인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출판기념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이들이 여성의전화와 처음 만났을 때엔 머리카락이 함부로 잘려져 있었고, 얼굴과 온 몸이 피멍으로 얼룩져 있기도 하였으며, 코브라 수도꼭지에 맞은 상처자리가 뱀이 묶였던 자국처럼 되어있기도 했다. 사냥총 개머리판으로 맞아 앉아 있을 수도, 누워있을 수도 없어서 엎드린 채로 상담을 받고 밥을 먹어야 했던 생존자도 있었다.

 

 전화 상담 중, 상황이 너무나 긴급해 즉시 입소를 권했던 30대 피해자가 있었다. 몇 시간 후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60대 여성이 상담실에 들어섰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으니, 입소를 권해서 찾아왔단다. 이름을 듣고서야 그녀가 바로 전화 상담을 했던 이임을 알았다. 그녀는 옷차림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며, 자신은 늘 시어머니가 주는 옷을 입어야 했단다. 자기 나이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가는 남편의 폭력의 구실이 되어 매일 시달려야만 했다고 했다. 그녀는 쉼터에 있는 내내 각선미가 드러나는 청바지만 입었다.


 그러나 그들이 쉼터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상담을 통해 임파워링되어 퇴소할 때의 모습은, 생존자를 넘어선 진정한 거인, 슈퍼우먼처럼 당당했다. 쉼터에서 함께 한 자매들과 상담자의 지지 안에서 얻은,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깨달음.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그들 속에 숨어있는 힘. 모두 그들이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서 글쓴이들 모두, ‘쉼터’에서 자신을 곧추 세우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성장했던 시간을 따뜻하게 추억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여성운동이 이론을 넘어서 공감과 치유를 통한 페미니즘의 완성을 지향할 수 있는 바탕은 ‘쉼터’였다. 여성주의 상담은 내담자들의 문제를 경청함을 넘어,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구조하고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인권운동의 역사가 되었다.


 폭력으로부터 용기 있게 탈출했거나 구조된 이들의 “곁에” 함께 한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30년. 준비 없이 소낙비를 만난 길동무와 우산을 함께 쓰면 두 사람 모두 어깨가 비에 젖게 되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함께”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처럼 쉼터는 생존자와 함께 걷는 ‘곁에 지기’였다.


 이제 쉼터 30주년 앞에서 우리는 소낙비를 피해 숨을 고르고 새 날을 준비한다. 그래서 저 앞에 무지개가 펼쳐진 길을 함께 갈 수 있길 소망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같이, 앞으로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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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함께라서 할 수 있었던, 변화


한국여성의전화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세상은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  



한해 활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가는 이즈음이면 돌아보게 됩니다.


2016년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새롭게 다시 직면하는 해였습니다.


일상적이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비극으로 가시화되었습니다. 잘못된 국가권력의 횡포가 드러나며 모든 국민이 고통받았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세월호는 천일을 맞았고, 오용된 국가권력에 백남기 농민은 살해되었으며, 박근혜와 그 정권은 국정농단을 넘어 국정을 파괴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지옥 같은 나라, ‘헬조선’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계기로 연대의 힘이 위대함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천만 촛불의 힘으로 지난 12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여성들의 ‘말하기’를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사회적 의제가 되었습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 시위, 여성의 몸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국가에 맞선 ‘검은시위’, 왜곡된 인식과 관행에 맞선 ‘#OO_내_성폭력’ 말하기 해시태그 운동 등 젠더폭력에 대한 경험을 드러내고 말하기를 통한 세상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에 발맞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일상과 광장에서 다양하게 펼쳐냈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 실현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더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전을 고수하며 함께 광장을 일구었고, 크고 작은 연대의 장을 마련해 함께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여느 해와 같이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더 많이 알리고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며,  그 어떤 해보다 활발히 여성폭력과 차별의 본질을 짚어낸 ‘말하기’에도 함께 힘을 싣는 한 해였습니다.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활동, 가정폭력피해자 정당방위사건의 정의실현, 스토킹 범죄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 성폭력 피해자의 무고죄 적용사건 대응,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 참여자 인권침해 집단소송,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한 우리에게’ 집담회 등 피해자 지원과 임파워링 활동은 한국여성의전화의 분명하고도 중요한 활동이었습니다. 이는 스토킹 처벌법 제정, 가정폭력방지법 개정 등의 정책변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젠더 폭력이 분명함을 알려내는 여성폭력 기본법(안) 제정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평등이 보장되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과 지부들의 노력도 돋보이는 한해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치와 비전이 분명한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은 회원토론회로, 전국지부 권역별 워크숍으로 펼쳐져 지혜와 힘을 모았습니다.


2017년 새해에도 우리는 묵묵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해결하는 길은 녹록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광장에서도 여전히 여성혐오는 존재하고, 혐오와 폭력으로 많은 여성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깨어있는 활동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은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17년에도 그 길을 함께 일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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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여행 - 어쩌다, 오키나와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은 이번 10월19일~22일(3박4일) 더 나은 활동을 위한 재충전과 쉼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016년 사업을 마무리하는 한참 바쁜 시기였지만, 언제라도 바쁘지 않은 날은 없다며 여행을 감행한 우리. 


말 없던 그녀의 큰 웃음 소리, 종종 거리던 그녀의 여유 있는 발걸음, 요 근래 볼 수 없었던 밝아진 그녀의 표정,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눈 좀 더 깊은 이야기들 속에서 행복하게 영글어지는 3박4일이었습니다.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바빠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깊어진 마음에 '잘 다녀왔다'고 되뇌입니다. 


* 이 여행은 한국여성재단 지원으로 다녀왔습니다.




자유와 여유, 설레임

 

오래뜰 활동가 수리

 



인천공항...  참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간혹 공항을 가기는 하지만 지인을 마중하거나 배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들고 손을 흔들며 출구를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늘 부러웠다.


그런데 그 자유와 여유가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다가왔다정말 어쩌다 보니 생전 처음으로 외국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너무 기분 좋았다만나게 될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기대새로운 것을 만나는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잔뜩 설레었다.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들고 인천공항 출구를 당당히 빠져나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두어 시간을 구름 위를 날고 난 후 나하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소박한 공항 모습과 아담한 야자수들이 우리를 반긴다혹시 국제미아가 되면 골치 아프니까 호텔이름과 전화번호를 사진 찍어 저장해놓는 것은 기본!! 환전도 해 놓았으니 이제 여행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얏호~~




 

한가한 자유 시간에는 바다를 실컷 구경하고한국에서는 거의 가지 않았던 호텔 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을 즐기다가 일본에 온 기념으로 때를 밀기도 하고비오스 언덕에서는 아름다운 식물들을 구경하며 감탄을 연발했다넓디넓은 만좌모구름과 바다와 땅이 만나는 치넨미사키 공원파란 바다 속에 사는 니모를 구경할 수 있는 글라스 보트종유석이 가득한 옥천동 동굴까지 오키나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맛있는 자색 고구마 과자를 선물로 준비하며 화려하고 신기한 물건이 많은 국제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쉼터 특성상 회의나 전체 행사를 제외하고는 활동가들과 만날 시간이 부족했다. 이 기회에 사무처, 상담소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짧은 기간이지만 경험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활동의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왁자지껄 웃음소리, 짧은 영어와스미마셍’,‘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오겡끼데스를 연발하며 아쉬운 34일의 일본여행이 막을 내렸다.

 


인천 공항에서 케리어를 찾아 자동문을 나오면서 속으로 외친다.

여권에 도장 찍힌 여자야~~’

서로 집으로 돌아가는 활동가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 이 사람들과 해서 더 특별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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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신입활동가 유진과 나눔의 출근기 잡담


나눔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

신유진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왼쪽부터 상희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신입활동가 나눔 교육조직국, 닷 성폭력상담소, 유진 기획홍보국




Q.첫 출근 할 때 기분이 어땠나요?


유진(이하 진): 엄청 떨렸고 사고는 치지 말아야 하는데 싶어 걱정되고 그랬어요.


나눔(이하 눔): 저도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잤어요. 사무실에서 어색하게 서 있을 제 모습이 상상 됐어요. 첫 날 너무 일찍 와서 혼자 북한산 생태공원에 앉아 모두가 출근하는 걸 지켜봤어요. 말해놓고 나니 좀 무섭네요.(웃음) 그런데 교육이 진행 돼서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Q.첫 근무를 마쳤을 때는 어땠나요?


진: 첫날 교육에서 한국여성의전화가 걸어온 길을 담은 30주년 기념 영상 보면서 내가 한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한 단체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들고, 사무실의 분위기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느낌이 강해서 ‘내가 좋은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기쁘고 안심이 됐어요.


눔: 저도 활동가로서의 책임감도 다시 한 번 들었어요. 단순히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한여전 가족이 되었다는 기분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5시 반 퇴근이라서……. 좋았습니다. ^~^


Q.부서별 교육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진: 둘째 날의 재판 참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스토킹 살인사건 가해자 심문이 있는 날이었는데 재판 내내 우시는 피해자 가족들의 모습에서 고통이 전해져 저도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가해자가 끝까지 피해자를 물질적 가치밖에 모르는 나쁜 사람인 듯 몰면서 처벌을 면하려 하던 모습에 정말 화가 났고요. 실제 여성혐오 범죄의 끔찍함을 피부로 체감하고 나니까 앞으로 정말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눔: 저도 마찬가지로 실제 가해자의 논리를 생생히 느끼고 분노할 수 있어서 가장 인상 깊었어요. 인권정책국에서 ‘침묵을 말하라’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피해생존자들의 상처를 딛고 변화를 끌어내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Q.2주간 근무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말해주세요


진: 저희 교육이 여성인권영화제 준비 기간과 겹쳐서 사무실이 엄청 바빴어요. 5일째인가 초청장 우편 발송 작업을 온종일 했는데 활동가 분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부업하듯이 작업하니까 재밌었어요. 천 통 가까이 되는 우편물들을 문 닫기 직전의 우체국까지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때 상담소 활동가가 우체국에서 메모하시다 메모하던 볼펜으로 우체국 카드기에 결제 서명을 하시는 바람에 다들 엄청 웃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재밌었어요.


나눔: 맞아욬ㅋ 그래서 제가 그거 손으로 문질러서 지웠어요 ㅋㅋㅋㅋ


Q.교육 프로그램이 일정이 빠듯했는데 힘들진 않았나요?


눔: 영화제 기간이라서 워낙 다들 바쁘셔서 제가 힘들다 뭐다 할 처지는 안 되는 거 같네요. 책 3권을 읽고, 참관 보고서, 토론문 등을 작성하는 과제가 있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한국여성의전화의 활동 기조와 지금까지 활동해 온 구체적인 역사와 사건들을 알 수 있어서 여전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만들고 방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을 하면서 토론한 것이나 참관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제는 저한테 경험을 언어화해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만들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진: 부서별 OT마다 써야 하는 보고서들, 여성주의 관련 도서 세 권 읽고 독후감, 화요 논평 토론까지 2주 동안의 일정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빠듯해서 놀랐어요.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교육국장님 말씀대로 지금 이런 공부들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기회도 없다는 걸 알기에 감사했어요. 교육 덕분에 2주 만에 한국여성의전화가 하는 일들의 전체 그림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가정폭력을 비롯한 여성인권침해가 여전히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시는지 알 수 있었고요. 영화제 일이 겹치니까 힘들다고 좀 투정을 부렸는데 사실은 신입 나부랭이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곳은 드물다는 것 잘 알기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Q.교육 때 기존 활동가들의 연관검색어를 묻는 친해지기 미션은 어땠나요? 그리고 본인의 2주간의 연관검색어는 뭐라고 생각해요?


진: 활동가 선생님들 다 엄청 개성도 강하고 재밌는 분들이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배울 점도 많았고요. 일단 거의 매일같이 야근하며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 자체가 존경스럽지만,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들이 많았어요. 이런 미션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고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 연관검색어는 ‘번역‘일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매일 사무실에서 영화제 상영 영화 자막 번역만 하고 있거든요.


눔: 맞아요. 유진 선생님은 거의 정시퇴근을 못 했던 게 기억 나네요. 광광... 다들 에피소드가 재밌었는데요, 그중에 문숙 선생님의 ‘행복한 외국인’이라는 연관검색어가 가장 재밌었어요. 딱 봐도 문숙쌤하고 엄청 어울리는 연관 검색어잖아요. 저는 문숙 선생님이 진짜 외국인인줄 알았는데, 외국 국적을 가지고 계시긴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상희쌤 에피소드도 재밌었어요. ‘태초에 그녀가 있었다.’인데, 이게 원래는 팔씨름 일인자여서 붙은 연관검색어라는데 상희 선생님은 본인이 서울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직접 겪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사건들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생생히 말씀해주셔서 기억에 남네요. 저의 연관 검색어는 ‘계란 집 딸래미’라고 할까요? 부모님이 양계하셔서 사무실로 계란 보내주셔서 같이 계란 많이 먹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계란 캐릭터 실내화를 신고 있기도 하고요… ㅎㅎ


Q.앞으로 독박골에서 어떻게 지내고 싶나요?


눔: 건강하고 많이 웃으면서 지내고 싶네요. 사무실에 거의 웃음이 끊이지 않아서 늘 재밌습니다. 살면서 두 번째로 많이 웃는 시기가 될 거 같아요. 활동가분들 다 개그 코드가 잘 맞는지 정말 웃깁니다. 활동가로서는 나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점검하는 제가 되도록 공부 열심히 하고 활동 열심히 하려구용 ><


진: 공기 맑은 북한산 아래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와 성차별도 깨끗이 없애는 활동들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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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오래뜰’자아여행 이야기

오래뜰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오래뜰 가족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쳤던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자아여행'을 다녀옵니다. 2016년 자아여행에서는 9월 21일(수) ~ 23일(금) 2박 3일 동안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오래뜰 가족들이 함께 떠난 여행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족들이 작성한 후기를 소개합니다.




2박 3일의 가족여행. 대한민국 안의 강원도, 강원도 안의 속초, 속초 안의 오래뜰 가족과 선생님들. 평범함을 넘어선 비범한 여행이었다. 9월이라는 것도 좋았고, 빨간 관광버스까지도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힘들었던 날들이 잠깐씩 생각났다가 사라졌다. 속초의 파란 하늘이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었다.  

-단비


첫째 날에 케이블카를 탄 게 좀 무서우면서도 재밌고 풍경이 예뻤다. 케이블카 안에서 팝송이 나와서 웃겼다. 이튿날 워터피아에서 워터슬라이드를 6번이나 탔다. 지쳤지만 재미있었다. 마지막 날에 바우지움 미술관에 가서 조각들을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며 공원에 앉아 쉬면서 여유를 느끼는 게 너무 좋았고 청설모도 보았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혜수


이번 여행은 기획의도처럼 자주적이고 치유가 되는 여행이었다. 단체 티부터 장소, 음식 메뉴까지 기획회의 때 계획이 반영되었다. 회의 때 더 세부적인 것까지 의견을 내봐도 되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활동가분들이 가족들의 진정한 자아여행이 될 수 있도록 고생하신 것 같아 감사하다.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고, 맛보고 싶었던 것들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한 만족도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지영


출발하는 날까지도 설렘과 두근두근, 기대감 이런 것들이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설악산의 절경과 아름다움에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며 흠뻑 빠져들었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누려본 적이 없어 자유로움이 조금 어색했지만, 집단 프로그램에서의 웃음, 눈물, 감동이 있었다. 물놀이와 온천에서는 여유와 편안함, 노래방 체험은 끼와 스트레스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으며, 조각 미술관은 자연과 조각이 함께 어우러져 감상하면서 내 마음을 힐링하는 데 충분했다. 향긋한 커피 한 잔과 여유 있는 감상 시간에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자아여행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인화




여행의 설렘도, 아무 느낌도 없었다. 가족들을 집에 두고 긴박하게 이곳에 와 있으며 마음도 불안정해 하루하루의 생활이 불안과 초조함과 분노로 가득했다. 언제쯤이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되어 자유롭게 홀로 설 수 있을까. 노심초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자아여행이 시작되는 날. 출발하니 그때부터 기대 반 설렘 반이 시작되었다. 설악산 바위   틈에서 뿜어 나오는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에 모든 것을 잊은 채 즐겁고 행복했다. 춤 테라피 집단프로그램에서는 오래뜰 가족들과 마음껏 웃고 울고 감동적인 시간을 나누었다.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의 다양한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며 그동안의 아픈 가슴과 상처들을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바우지움 미술관 잔디밭에서 커피를 마시던 시간은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행복함이 가득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의미 있고 뜻 깊은 자아여행이었다. 고생하신 활동가 선생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원


떠나자 여행이다. 가슴 가득 기대를 품고 출발. 다 털자.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온전히 나만을 위한 여행이 되기를. 차창 밖의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가슴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슬픔을 내던지고, 조급하게 살지도 않을 거야. 걱정도 안 할 거야. 온몸으로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고, 비바람을 이기고, 알곡을 가득 담고, 굳건하게 서 있는 벼처럼. 내가 그렇게 할 거야. 보란 듯이 살아내야지. 나를 아끼고 귀하게 받아들여야지. 내가 결심하고, 다짐한 것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열심히 돕고 계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어떻게 보답을 할까 생각하면서 한국여성의전화에 높은 자긍심을 품는다. 나는 이 여행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마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잊지 못할 것이다.

- 은희


30년 만에 가는 여행이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하고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질 만큼 그저 주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앞만 보고 여기까지 달려와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간다고 하니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설레고 기다려졌다. 특히 우리가 직접 계획하고 발로 뛰며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가 좋은지 알아보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더 애착이 가고 좋았다.


 함께한 오래뜰 가족들과 떠나는 여행이라 더 의미가 있다. 낙산사는 그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내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저녁 시간 집단 프로그램에서는 어우러져서 춤도 추고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참 좋았고, 가족들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해 줄 때 그 마음이 느껴져서 행복했다. 두 번째 집단 프로그램 시간에는 A4용지에 돌아가면서 옆 사람 얼굴을 한 부분씩 그리는 것을 하였다. 다 같이 참 많이도 웃고 재밌었다. 마치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또한, 독사진을 찍고 희망의 메시지를 적어서 사진첩에 넣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 인상적이고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 평화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나 홀로 떠나는 여행. 하지만 뜰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어서 들뜬 마음으로 출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 상쾌하고, 푸르름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숙소에 도착 후 춤 테라피를 통해 춤도 추고, 행복했던 일을 떠올리고, 마음이 따뜻한 시간이 되었다. 숙소로 와서 노래방으로 고고! 오랜만에 목청껏 소리도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날려 보냈던 시간이었다. 다음날 낙산사에서는 초등학교 때 놀러 왔던 기억을 더듬어 돌아보니 문득 생각나는 것도 있어 더 즐거웠다. 숙소 앞 호수를 산책하며 즐겁게 지내고,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에서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쉬면서 안정시킬 수 있었다.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돋움이 되는 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행복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의 권금성을 올라갔다.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그림처럼 펼쳐진 아름답고 기괴한 바위와 절벽. 놀랄 만큼 멋진 자연의 모습에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양양 낙산사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 또한 더욱 긍정적인 생각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넓은 시야로 남을 이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박 3일의 여행으로 자유와 긍정의 힘으로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다.

- 고은






1987년 시작된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오래뜰은 한국 최초의 가정폭력피해생존자 쉼터입니다. 치유 프로그램, 법률소송 지원, 의료 지원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의 가치로 평등한 관계를 맺고 스스로 주체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가정폭력 쉼터는 가정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용기 있게 집을 나선 여성들과 동반 아동이 살고 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는 여성과 아동들이 폭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안전하고, 소중한 공간입니다.

 

쉼터로 탈출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살기 위해' 생활의 터전인 집을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쉼터는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생계비는 가장 기본적으로 확보해야하는 비용입니다. 가정폭력피해여성과 아동이 또 다른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분들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당신의 지지가 그들의 새로운 출발에 큰 힘이 됩니다.


<<쉼터 오래뜰 바로가기>>


 

☎ 상담 전화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02-2263-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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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에 첫발을 내디디며

닷 성폭력상담소


올해 3월, 한국여성의전화 19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듣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6호선의 끝자락, 거기서 다시 한 정거장 버스를 타고, 약간의 등산(?) 후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와 함께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담원 교육을 들으며 목격한,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이 가진 자부심과 당당함은 저에게 여성의전화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침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을 통해 청년젠더활동가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인턴 경험을 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성의전화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우선,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먼지 차별’ 캠페인을 통해 여성의전화가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시키려는 현실이 제가 목소리 내고 싶었던 부분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여성의전화가 걸어온 길에 동참하고, 여성의전화 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컸기 때문입니다.


여성단체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성폭력 관련 사례와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폭력 사례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출근 첫 주의 가장 큰 바람은, ‘내가 앉은 책상으로는 전화가 걸려오지 말았으면 좋겠다’였습니다.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이고, 상황별로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 전화를 연결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입 활동가 오리엔테이션에서 전화 응대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정말 유용했습니다. 


인턴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한국여성의전화의 신입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나의 언어와 경험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말하는 것이 좋았고, 그 과정에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신입 활동가로 출근하는 첫날 아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실감한 차이는 ‘30분 앞당겨진 출근 시간’과 ‘고정된 내 자리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2주간의 교육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신입 활동가로 이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익히는 데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무실 근처 지형을 익히고, 사무실로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와 인사도 나누고,  ‘그때가 아니면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격려와 함께 과제 도서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 중 <여성인권운동사>를 통해 짧은 줄거리로 요약되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화 두 대로 시작한 여성의전화에 모여든 가정폭력 사례들, ‘두 아이와 함께 집을 나온 여성을 위해 쉼터를 마련했다’, ‘성폭력/가정폭력 특별법을 제정했다’는 문장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책에도 모든 사연과 목소리가 다 담길 수는 없었겠지만 여성 폭력의 현실에 다시 눈뜨고, 여성운동의 고민과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의 방법으로 상담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앞으로 상담소에서 일할 저에게는 중요한 지침으로 삼을 원칙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스토킹 살인사건 재판에 참석해서 활동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도 있었습니다. 검사가 사형을 구형한 후 피해자 가족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피해자를 지원하는 분들이 모여서 얘기 나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활동가로서 어떤 시선과 마음가짐으로 피해자를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여성인권운동 활동가로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고민했다면, 지난 일주일을 통해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각 부서의 업무에 대해 조금씩 설명을 들으며, 여성의전화가 그 동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하기도 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하며 꿈을 그리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 멋있었습니다. “상담원 교육 때만 해도 선생님과 함께 일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출근 첫날 동료 활동가에게 들은 말처럼, 여성인권운동 활동가로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를 무사히, 즐겁게 마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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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33+10. 그 단순한 진심


고미경 손명희 오영란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



여성인권영화제가 올해로 어느덧 1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여성인권영화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06년에 시작했습니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동안 계속된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많은 사람과 여성인권운동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인권영화제 10회, 한국여성의전화 33주년이라는 시간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단순한 진심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993년 6월. 성폭력 특별법 제정.

1997년 12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2004년 9월. 성매매 방지법 제정.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여성폭력에 대한 3대 법안이 마련되었습니다. 2005년 호주제 폐지와 함께 성평등이 수십 년 이상 앞당겨지리라는 작은 바람도 품어 보았습니다. 법과 정책만으로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예방하거나 방지할 수는 없지만 작은 방패를 갖추게 되었다는 생각에 그때의 겨울은 꽤 따뜻했습니다.


혹자는 성평등은 지금부터 100년은 더 지나야 올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 사회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특히 여성인권에 대한 많은 희망을 볼 수 있는 해였기도 합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된 젠더폭력에 대한 관심과 변화를 위한 말하기, 그리고 행동이 이미 큰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여태껏 무언가를 바꿔낸 세월이 그러했던 것처럼, 올해로 10회를 맞는 여성인권영화제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또 다른 의미와 변화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올해 여성인권영화제의 주제는 ‘단순한 진심’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창립 이후 33년 동안 여성운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든 폭력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아주 단순한 진심이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여성인권이 침해되는 현실은 분명히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과 진심.


올해 여성인권영화제를 통해 여러 관객분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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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변화를 위한 행동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강남역 10번 출구.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공간입니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10번출구 인근 화장실에서 그 여성이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끝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현재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강남역 여성살해 처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유가족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일상이 된지는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발표하고 있는 언론에 보도된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통계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최소 1.9일의 간격으로 1명의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경찰청에서도 살인·강도·방화·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3년 기준 90.2%에 달했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젠 여성폭력,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강남역 10번 출구 여성살해 사건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에 누군가가 써놓은 말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는 문제의 본질을 똑똑히 보고 정부의 제대로 된 대책과 사회구성원 모두의 행동이 필요합니다.화장실과 정신질환자의 문제라는 정부의 문제규명방식이나 범죄의 성격을 흐리게 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는 문제를 더욱 왜곡시키고 악화시킬 뿐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사건에서 가해자 범죄행위에 대한 ‘깊은’ 공감과 ‘상당한’ 이해를 하는 반면, 여성들이 처해 있는 현실에는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젠더규범을 걷어내야 할 때입니다.    


변화를 위한 말하기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살해 사건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추모행렬과 직접적인 행동들은 가부장제 한국사회에서 ‘사소하게’,‘개인적으로’,‘피해자의 탓으로’으로 만들어 놓았던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가 몇몇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문제임을,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성차별적 사회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성이 생존을 넘어 다른 삶을 꿈 꿀 수 있는 세상을 원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피해여성들을 기억하며 추모합니다. 사회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응원하며 깊은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른 세상은 우리들이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변화를 위한 행동. 다른 세상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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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불완전 복귀 소감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현정 성폭력상담소 책임상담원


2016년 3월 7일 월요일 14:30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사무실의 활동가들이 모두 월례회의에 들어간 시각, 사무실 전화벨이 정신없이 울립니다. 제가 전화를 받고 메모를 하는 동안 다른 전화벨이 울리고, 실습 선생님이 그 전화를 받아 메모를 하고 끊기 무섭게 다른 전화가 웁니다. 상담원교육에 대한 문의,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섭외 문의, 각종 용건과 연락처를 받아 적습니다. 지부 활동가, 상담소가 지원하는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넉넉잡아 다섯 시쯤에는 회의가 끝날 것이라고 전합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분에게는 이쪽은 사무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상담 전화번호를 안내합니다. ‘넉넉잡아’ 다섯 시에 끝날 줄 알았던 회의는 다섯 시를 좀 넘겨서야 끝이 납니다. 2층에서 회의를 마치고 내려온 활동가들이 각각 화장실에 가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 후,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분명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활동가들은 그제야 업무를 시작하는 모양새라서, 먼저 퇴근한다고 인사하기가 미안해집니다. 제가 활동하던 2008년에도 그랬듯이 전체 회의가 있는 월요일이면 항상 반복되는 사무실의 풍경입니다.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저는 2008년 3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약 3년간 여성의전화 본부의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했습니다. 이런저런 전화에 응대하고, 상담원 선생님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면접상담을 하고 나면 상담일지와 의견서를 쓰는 업무는 고스란히 저녁으로 밀렸습니다. 사무소 회의나 연대단체들과의 회의, 재판 참관이라도 있는 날은 더했지요. 고단한 날이 많았지만, 성폭력피해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시 살아나는(생존자가 되는) 과정을 직접 보는 것은 활동가이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만으로 ‘잘’ 활동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누구는 여성학을, 누구는 사회복지학이나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갔을 것입니다. 저는 법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호기롭게 활동을 그만둔 것이 무색하게, 한 번의 낙방 후 그 다음해인 2013년 3월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과도기인 로스쿨제도 하에서 학생들은 크게 네 부류로 분류됩니다. 사법시험 2차 경험자/사법시험 1차 준비경험자/법학 전공자/비법학 전공자. 가장 비천한 신분은 저와 같은 비법학 전공자입니다. ‘엄정한 상대평가제’는 수강생들을 A+부터 D+까지 의무적으로 구분하도록 했고, 변호사시험성적을 공개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학벌과 학교 성적만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유일한 지표라고 여긴 로스쿨생들은 성적관리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습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우물 안 개구리로서의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이 여성의전화에 대한 그리움과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할동에 대한 기대였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상담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네, 여성의전화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의 긴장감을 어서 빨리 다시 느끼고 싶었습니다.




과거는 미화된다?


마침내 올해 초에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까지 노는 동안 여성의전화에서 일주일에 이틀을 책임상담원으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출근하던 3월 4일,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가끔 회상했던 출근길은 기억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무실 앞 경사로는 훨씬 더 가팔랐고 나무문 뒤의 계단은 더 높았으며, 그래서 사무실에 들어설 때에는 예상보다 더 숨이 찼습니다. 기억이 왜곡되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공부를 하는 동안 체력이 떨어진 것일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활동가들, 그리고 처음 뵙는 활동가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무실의 전화기는 새것으로 바뀌어서 전화를 당겨 받고 돌려주는 방법부터 배웠습니다. 첫날은 상담 전화를 받을 엄두도 못 냈습니다. 판례의 법리가 제 논리인 것처럼 튀어나오도록 훈련하느라 여성주의적 감을 죄다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지요.


"1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상담 전화를 딱 받는 순간, 그냥 주말 쉬고 출근한 것 같더라고."


다행히도 상담전화를 받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상담실을 지켜주시는 많은 상담원 선생님들 덕분에 상담실이 비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한정 피할 수는 없어서, 드디어 어느 날 저는 상담실에 뛰어 들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전화는 허둥대다가 면접상담을 연계하고, 두 번째 전화는 잠깐 이야기를 듣고 나서 법률상담을 연계한 후, 세 번째 전화에서는 조금 여유가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이문자 선생님, 배인숙 선생님, 유리화영 선생님이 점심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화영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면서, “내가 안식휴가 쓰고 사무실 일은 다 잊고 쉬고 왔잖아요. 그렇게 1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상담 전화를 딱 받는 순간, 그냥 주말 쉬고 출근한 것 같더라고요”라고 하시더군요. 여성폭력의 현실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영 선생님이 베테랑이어서 바로 ‘활동가로서’ 복귀하실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아직 미생이지만


저는 3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도 상담전화와 이메일에 쩔쩔맵니다. 더 잘 해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왔는데 오히려 예전만 못한 느낌입니다.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양이가 된 기분도 듭니다. 가끔 고양이 손이나 보태면서 말이지요. 로스쿨졸업생들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 미생입니다. 무엇이든 다른 일에 정신을 쏟지 않으면 바들바들 떨면서 결과를 걱정하기 십상입니다. 한동안 바들바들 떨다가, 어차피 이제는 내 손을 떠난 문제라는 걸 새삼 깨닫고 겨우 다른 일에 정신을 쏟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떨어지고 다시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우물 밖으로 나와 잠시나마 여성의전화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에너지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에너지가 되어 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부디 올해 무사히 합격해서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네, 여성의전화입니다”라고 전화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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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첫 출근기’

마음 비껴 길을 내어주다


혜경 교육조직국


지금 같아선 도무지 생기지 않을 용기로 서울에 오게 된지 7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나는 소중한 친구를 얻었고 자발적으로 직장을 잃었다. 돌이켜 보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다 잘 될 거야’를 위로삼아 애를 썼지만 결국 울 할매가 즐겨 썼던 뭇 현인들의 말.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음’에 폭격되고 말았다. ‘쫄아든 마음’이라는 대가와 함께, 원치 않은 현인의 말을 강제 체화하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조각상으로 빚은 후 그 조각상을 깊이 사랑하자 조각상이 실제로 생명을 얻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 이야기처럼, 나는 어떤 일에든지 의미를 먼저 부여하고 그 의미대로 내가 변화되길 바랐었다. 그러나 합리적이지 못한 기대와 과대포장 된 신뢰로 인해 스스로에게 꽤나 피곤함을 주곤 했었다. ‘어떻게 살고 싶나’, ‘생의 끝자락은 어떠한 모습으로 남겨지길 원하는 가’ 질문에 대한 구현은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구속하는 족쇄였다. 





 

‘마음 비껴 길을 내어주다, 혜경’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오후 4시가 되는 날이 반복 되면 마치 하루를 인터셉트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잉여로운 인간놀이는 비교적 잘 맞았지만 간간히 지루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나의 생활 패턴을 지켜보던 친구가 지금은 좀 어때? 라며 말을 꺼냈다. 나는 무엇보다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조각이 걱정 되었다. 조각은 나를 괴롭혔고 무기력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해결되기를 바랐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저 주어진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조각을 떨쳐내는 노력보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도 마음도 들여다보지 않는 날들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돌아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잉여의 시간은 나름 혜경회복장치로써 제 역할을 한 것 같다. 해질 시간 노을로 발갛게 물든 하늘처럼 언제부터인가 쉼이 주는 위로가 마음에 번진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당시 꼭 맞는 처방이었고 약효가 들었던 것은 확실하다. 


2016년 1월. 야매(?) 진단과 처방이 남발했던 잉여로움을 발판으로 독박골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독박골 생활 3개월 차,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하철과 버스를 오고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를 한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날고 기는 여성들이 상주하는 여성단체에 내가 속했다는 것과 내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욕망(?)과 꾸밈의 욕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로 존중받기를, 그대로 내어주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독박골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겪은 일화가 생각난다. 그날은 오랫동안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해왔던 활동가를 떠나보내던 날이었다. 배관이 터질 정도로 추웠던 그날, 결국 지하에 있는 연구실은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순간, 짐을 싸고 있던 활동가의 선두로 모든 활동가들이 양말을 벗고 준비된 작업화(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건물마저 헤어짐을 슬퍼한다며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물을 퍼 담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보통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일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있는 이도 마무리를 짓는 이도 모두 뼛속까지 ‘앞으로도 여전히 독박골 일원’이 되는 진귀한 광경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독박골의 생활의 더욱, 썩– 마음에 들게 되었다. 





나를 지킴으로써 너를 지키고 너를 지킴으로써 나를 지키는 우리는 운명공동체


나는 여성인권에 대해 간간히 주변에서 들었을 뿐 많은 고민이나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독박골로 오기까지 망설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의식하는 것을 병처럼 여기는 사회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길을 찾아보았고 많은 의미에서 실패를 경험해 보았다. 


젠더 감수성이 건조한 나는 요즘 종종 ‘내 안에 너 있다.’를 경험한다. 전이라면 의식하지 못했을 가부장적인 생각과 행동, 차별적인 시선과 언어의 폭력성이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 자세가 희미하게 감지가 된다.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얻게 된 생각과 습관을 나는 독박골에서 직면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이곳은 나를 지킴으로써 너를 지키고 너를 지킴으로써 나를 지키는 운명공동체가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로가 지켜지는데 기여하는 이곳을 시작으로 여성들이 당당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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