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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성폭력은 젠더 권력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by kwhotline 2018. 4. 23.

성폭력은 젠더 권력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성소수자와 성폭력에 대한 이해


한국여성의전화 8기 기자단 김지현



  지난 30일, 2018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되었다.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가 3시간에 걸쳐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동성간 성폭력 상담 및 지원’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점심시간 직후 강연이라 졸음과의 사투가 걱정되었지만, 교육생들은 한채윤 이사를 큰 환영의 박수로 맞으며 교육에 대한 열정도 보여주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 집단을 성적 소수자로 낙인찍는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시스젠더(Cis gender-지정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hetero, 이성애)를 정상성의 기준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로 이용해왔다. ‘여자’와 ‘남자’는 각자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별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 둘 사이의 사랑만이, 즉 이성애만이 “재생산을 통한 종족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수행하지 않거나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이성애 중심주의는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에 근거하여 이성애를 정상성의 기준으로 보고, 이러한 체계 안에 사회 구성원들을 편입시키기 위하여 성 역할을 규범화하고 성차를 위계화한다. 이는 곧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논리적 기제가 된다. 한채윤 이사는 한국 사회는 성적 소수자(sexual minority)를 LGBTIA와 같이 개인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내가 누구이고 누구를 좋아하는가’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 집단으로서 이해할 것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성적 소수자인가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은 ‘왜 성소수자 집단이 배제되고 차별받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한채윤 이사는 한국 사회에서 성(性)이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생물학적 차이로 결정되는 성인 섹스(sex),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젠더(gender), 그리고 성적 욕망(sexual desire),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등 가장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구분하여 설명했다. 


  인간에게 실제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성별은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성별 젠더(gender)이다. 젠더(gender)는 장르, 분류를 의미하던 개념이었으며 한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기대되는 태도, 성격, 행동 양식을 개인이 내면화한 성적 태도나 정체성을 의미한다. 성기의 유무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개념인 섹스(sex)와 인간의 성에 대한 가장 넓은 개념인 섹슈얼리티(sexuality)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문화적으로 지배적인 규범을 수용하도록 사회화된다.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로만 인식하는 것은 생물학적 특징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분법적 틀 안에 가루는 사회적 인식, 즉 젠더의 결과인 것이다. 한채윤 이사는“생물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한다면, 간성인(intersex)은 어떤 성이 속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수술로 하나의 성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설명했다.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이다. 성적(sexual)이라고 느끼는 감정, 욕망, 실천, 행위, 정체성을 통틀어 섹슈얼리티(sexuality)라고 한다. 한채윤 이사는 그중에서도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즉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적, 낭만적, 육체적, 애정적 끌림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적 지향을 스스로 인지하여 자신을 정체화하면, 크게는 이성애(heterosexuality), 동성애(homosexuality), 양성애(bisexuality), 무성애(Asexuality)로 구분할 수 있다. 더 세부적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성소수자들이 존재하지만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 데보다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들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어떻게 구조화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고, 사회에서 배제되는가’라고 강조했다. 사회는 모든 사람을 이성애자로 전제하기 때문에 침묵만으로도 차별을 당하거나 존재를 부정하는 질문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이라고 하면 성행위, 성관계를 먼저 떠올리며 그 단어를 말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 한다. 즉, 이성 간의 성기결합(intercourse) 중심으로 성을 규정함으로써 성은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보고 이는 성추행, 성폭력, 혹은 성적 행위를 본능의 차원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런 본질주의적 접근은 이성애 남성 중심적인 것이며, 여성과 남성으로 범주화하여 이성 간의 사랑만을 제도화한 사회는 이분법적인 젠더라는 체계 속으로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편입시킨다. 생물학적 차이를 위계화된 차별로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젠더 권력의 문제이며 이성애가 아닌 것을 비정상으로 라벨링하고(labeling) 여성성을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착취함으로써 섹슈얼리티에도 이러한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한채윤 이사는 성폭력의 경우에 “폭력”의 형태에 ‘성’이 개입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가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벌인 일이라며 가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이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적, 언어적, 비언어적인 성적 접근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성욕은 억제할 수 없는 자연적인 본능이라는 성적 규범이 깔려있기 때문에 성폭력이 “폭력”의 형태라 할지라도 ‘남성성의 본능’으로 이해된다. 사회적 통념상 남성과 여성 간에 성폭력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지극히 성폭력을 가해자와 성욕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은 성욕이 일으킨 폭력이 아니라 성별, 지위 등의 권력 관계를 이용하여 성욕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택한 것이다. 한채윤 이사는 ‘폭력’에 방점을 찍으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즉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었는지를 볼 수 있고 자신의 의사와 반하여 성적 피해를 입은 방식으로 성폭력을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나 이성애 제도 내에서 많은 강제적인 성적 접근이나 행위는 폭력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동성 간 성폭력은 ‘장난으로’ 또는 ‘친해지기 위해서’라는 말로 쉽게 가려질 수 있으며 권력 관계에서 피지배적 위치에 놓인 피해자는 합의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학교, 군대, 감옥 내의 남성 간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는 여성화된 지위, 즉 남성성의 손상을 입게 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말하거나 신고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배경과 권력이 동원되는 구조화된 폭력으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지, 그리고 ‘NO’라고 했을 때 이후의 불이익이나 피해가 예상되는지 않는지가 성폭력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얼마나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소극적 권리로서, 주장의 차원이 아니라 “존중”의 차원이며 더 나아가 모든 성적 정체성을 아울러 상호 존중하는 성 문화 개선과 정착, 그리고 교육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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