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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장애 여성의 관점으로 본 가정폭력

by kwhotline 2017. 12. 18.


장애 여성의 관점으로 본 가정폭력  



한국여성의전화 7기 기자단 박세원



 4월 27일,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 중 하나인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실태와 상담과정’ 취재를 위해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여성의전화로 향했다.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가 진행한 이 날 강의는,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4월 13일, 14일 양일간 진행되었던 상담원 숙박교육 동안 교육생들이 함께 공감과 연대의 시간을 가진 이후라 교육장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한층 더 화기애애했다. 서로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분위기에 본 기자의 마음도 덩달아 편해졌다. 10시가 되자 이날 강의자인 배복주 대표가 강의를 시작했다.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되는 가정폭력


 여성가족부가 실행한 ‘2016년도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1%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집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되며 범죄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결국,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그 뿐 아니라 가정폭력을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끌어내기 힘들다. 법무부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이 검찰 접수된 후, 기소조차 되지 않는 비율이 50.4퍼센트에 달한다.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피해자가 외부로 도움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외부에 도움을 구한다 하더라도 처벌을 끌어내기 힘든 현실이다.


 배복주 대표는 가정폭력방지법의 초점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가정회복에 맞춰지곤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보여주듯, 다른 범죄들에 비해 가정폭력은 엄격한 처벌의 대상이라고 인식되지 못하고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실태는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될수록 가정폭력피해자가 장애 여성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장애 여성이 당사자인 가정폭력 피해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실태 


 배복주 대표는 장애 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할 경우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장애 여성의 경우, 그 장애의 특성으로 인해 폭력에 저항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다. 장애 여성은 가족 안에서 일방적으로 보호받는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폭력에 노출되더라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그 공간을 탈출하기 힘든 것이다. 예를 들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배복주 대표는 자폐를 가진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하지 않아 도움을 제공하기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장애 여성의 가정폭력에 대한 지원이 어려움을 설명했다. 가정폭력 자체가 범죄라고 인식되기 힘든 상황인데, 장애 여성의 경우는 더욱이 가정폭력을 범죄라고 인식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우며 설령 범죄가 신고 된다 하더라도 장애 여성의 진술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장애 여성을 위한 가정폭력 대책은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장애 여성을 위한 가정폭력상담소는 전국에 두 곳, 가정폭력 쉼터는 세 곳밖에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장애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지원체계가 열약하다. 배복주 대표는 가정폭력 쉼터에서 장애 여성을 받아주지 않아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예를 들어 장애 여성에 대한 대책이 미흡함을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에 많은 교육생이 탄식을 내뱉었다. 

이러한 특수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애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상담은 비장애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상담과는 구별되는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교육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예비 상담원으로서 교육생들이 가지는 고민의 무게가 느껴졌다.  


 비장애인 여성으로 살아온 나는 장애 여성의 삶에 대해 무지했다. 가정폭력의 피해 여성 중  장애를 가진 경우가 있으리라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너무나 당연하게 피해 여성이 비장애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동안 가정폭력에 대해 나름대로 많이 공부했고, 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졌다.


 장애 여성은 비장애 여성과는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장애 여성이 경험한 가정폭력은 비장애 여성의 그것과는 구분되는 차이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 맞는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구조 속에서 장애 여성이 가정폭력에 노출될 경우,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올 때와 달리, 교육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타인의 삶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해보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과 그동안 그렇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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