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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by kwhotline 2017. 12. 15.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재인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시설장)



한국여성의전화 쉼터 30주년 기념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출간과 함께, 저자와의 만남이 3월 14일 7시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렸다. 책은 아내폭력 생존자 8명이 쓴 폭력현장의 기록으로, 가정폭력과 가정폭력 생존자에 대한 통념을 깨는 생생한 증언으로 채워져 있다. 더욱이 이날의 행사는 한국사회 최초로 시도된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용감한 말하기는 가정폭력의 실상을 알리고, 가정폭력을 둘러싼 제도와 정책 변화의 물꼬를 트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인 란희의 사회로 진행된 본 행사의 뜻깊은 이야기 중 일부를 대담형식으로 정리하였다. 본 글을 통해 이미 책을 읽은 독자에게도,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날의 감동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란희 : 오랜 기간 끝에 책이 출간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는 소감이 어떠한지?


붉은노을 : 글을 쓴지 3년이 지났는데 출판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며칠 전 세 번 연달아 꼼꼼히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글을 쓸 당시는 고통스러웠는데 책으로 받아보니 너무 신기했다. 


잎싹 : 내 딸이나 아들에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겠단 마음으로 썼었다. 스스로 제 인생을 정리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해나 : 다 같이 썼기 때문에 책으로 나올 수 있었고 너무 뿌듯하다. 이 자리에 있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란희 : 말씀해 주신대로 감개가 무량하다. 에스더 님의 글에 “한 번 쓰고 한 번 직면하고 나면 기억이 조금 편해지곤 했다. 경험을 직면한다는 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는지?


에스더 : 글을 쓸 당시에는 끔찍했던 순간의 두려움과 좌절, 수치심이 살아나서 글을 쓰고 난 후 꼭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조금씩 편해지면서 나 자신의 상처와 아이들의 상처까지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3년이 지난 지금 여러 가지 상황이 좋아져서 마음이 편한 상태로 읽었고 나 자신이 많이 회복된 것을 알았다.





란희 : 쉼터에 오시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씩 얘기해 달라.

해나 : 잘못했다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해서 용서한 폭력이 12년이나 지속되었다. 남편은 모든 폭력 상황을 내 잘못으로 돌렸고 안 보이는 곳만 골라 때렸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무수한 폭력들을 견디면서 열심히 살았고, 정말 후회 안 하겠다 할 때까지 참았다. 


사랑 : 폭력으로 피가 많이 날 정도였고 주위의 신고로 경찰이 왔다. 경찰로부터 여성의전화 쉼터를 안내받았지만, 핸드폰 사용 제한 등 공동체 생활을 위한 규칙들 때문에 쉽게 입소 결정을 못 했다. 하지만 아이의 학교와 집 주위를 계속 맴돌면서 문자로 괴롭히는 상대방이 너무 무서워서 밖을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상대방을 피해 쉼터에 오게 되었다. 


마린 : 시댁에서 남편의 발로 맞아 잠시 숨이 끊어졌다. 내 생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얘 죽었나 본데”라며 나를 흔들고 부르는 남편의 소리에 눈을 떴다. 와중에 시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한 걸로 얘기하라며, 부부끼리 싸울 수도 있지 않으냐고 했다.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쉼터에 와서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에스더 : 남편의 석면에 대한 강박증으로 집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감금된 생활이 폭언, 신체적 폭력보다 더 힘들었다. 석면 때문에 암에 걸릴 거라고 불안에 떨던 남편은 결국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분노가 폭발한 남편은 ‘어차피 나는 죽을 목숨이니 너도 죽고 애들도 같이 죽자’하면서 때리기 시작했다. 너무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맞아 죽으면 깨끗하게 고통이 끝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들을 지켜야 했고 폭력을 피해 쉼터에 올 수밖에 없었다. 


란희 : 사랑 님의 말씀대로, 가해자가 집요하게 추적해오기 때문에 쉼터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고, 더욱이 공동체 생활이다 보니 불편한 부분이 있다. 이 불편한 부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모든 쉼터의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처럼 비공개 쉼터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쉼터는 모두 비공개 쉼터로 한정된 한계가 있다. 



란희 :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한 경험들이 있다. 경찰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에스더 : 7~8년 전 남편의 폭력으로 눈 위가 찢어져서 일곱 바늘 정도 꿰맸고, 더는 못 살겠다 싶어 남편을 형사고발 했다. 이때 경찰은 “아줌마 맞는 것 누가 본 적이 있느냐, 경찰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거 신고해서 힘들게 하냐, 이혼할 때 유리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 남편이 무고죄로 걸면 아줌마가 오히려 당하니까 지금 취하해라”라는 등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오히려 취조하듯이 강압적으로 말해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쉼터 퇴소 이후 남편의 폭력을 피해 ‘SOS112콜서비스’로 신고를 했는데, 경찰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장난 전화가 아니냐고 했다. 만일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똑같은 사례로 살해당한 경우가 있었다. 경찰들은 폭력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붉은노을 : 제 맞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신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때린 남편에 대한 조치는 전혀 없었고 내가 맞았다고 하니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으로 끝냈다. 이후에도 남편의 폭력으로 뇌출혈까지 있어 병원에 입원했고 남편은 현행범으로 잡혀갔다. 강력처벌을 원한다고 했는데도 남편은 2시간 만에 풀려났다. 1주일 입원해 있다가 남편을 피해 쉼터에 입소했다.  





란희 : 가정폭력이 있으면 “이혼하면 되지 왜 사냐”, “신고하면 되지”라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왜 쉽지 않은지, 또 이혼소송 과정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듣고 싶다. 


해나 : 이혼소송은 1년 반 정도 걸렸다. 조정관은 “이혼해도 재혼하니까 그냥 이혼하지 마라, 재혼할 의사가 없으면 남편과 합치는 걸 생각해봐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정말 대꾸할 가치조차 없었다. 가정폭력 피해 증거가 있는데도 가해자 남편과 함께 부부상담도 해야 하고, 가사 조사도 받아야 하고, 변호사, 판사도 바뀌면서 이혼 소송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마린 : 혼자서 진술서 다 써야 하고 증거자료까지 다 찾아다녀야 해서 정말 쉽지 않았다. 가정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율을 줄이려는 법원에 맞서 싸워야 했고, 1년 정도 걸려서 아이들 친권, 양육권, 위자료 다 포기하고 나서야 이혼할 수 있었다.  



란희 : 잎싹님은 쉼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는 어땠는지?


잎싹 : 쉼터에서 힘을 키워서, 나 자신이 전쟁터에 나갈 총알을 많이 장착하고 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선 순간, 폭력에 간접적으로 노출되었던 아이가 온몸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아이를 위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는 자연 속에서 조금씩 치유되었다. 남편은 아들의 증세에 자신의 모습을 뉘우치기 시작했고 나와 남편은 아이를 치유하겠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간 게 이혼하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었다.


란희 : 쉼터에서의 경험이 쉼터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시는지? 


사랑 : 가끔 그립다. 무엇보다 나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고 아이도 많이 치유되었다. 열심히 생활하고 있지만 한부모로서 힘든 게 많다. 


해나 : 쉼터에서 9개월을 머물다 주거지원을 받았다. 쉼터 이후 일절 지원이 뚝 끊겨서 힘들었지만, 혼자서 살아가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면서 돈도 모으고 살고 있다.  


란희 : 말씀해 주신대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이, 현재 쉼터에 입소한 670여명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자립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쉼터 30년을 맞아 새로운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이 새롭게 도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을 좀 더 폭넓게 영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들이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기관을 만들고 싶다. 자립을 위한 교육을 받는 동안, 기본생계비 지원 및 교육비를 지원하고자 하는 계획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거시설도 만들어보고 싶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새롭게 시도하는 활동들이 우리나라 정책의 시작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참가자 : 엄마가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데, 정작 엄마는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엄마 자신을 위해 이혼을 권하지만 망설이고 있는 엄마에게 어떤 얘길 해드리면 좋을지? 


마린 : “엄마의 삶이 중요하고,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엄마를 지지하고 힘이 되는 말을 해주시면 좋겠다. 더불어 여성의전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고, 저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가자 : 폭력을 당하면서 사는 제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이혼을 왜 안 하냐”고 물어봤을 때 “너희들 시집 장가갈 때까지는 참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정말 필요할 때 엄마가 도와달라고 해달라”는 대답을 들었고, 결국 자녀들의 도움으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에스더 : 이혼하는 건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용기를 내서 주변 친구들에게 나의 삶을 공개하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손길이다.         



란희 : 오늘처럼 모여서 얘기하는 게 처음이다. 오늘 소감이 어떠셨는지?


잎싹 :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로 가족들 모두 평온한 상태다.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온 것만으로도 삶의 유연성과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랑 :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 못했던 말들이 많다. 책으로 대신하고 싶고, 책을 출간해낸 여성의전화에 감사를 전한다.  


해나 : 열심히 살았고, ‘피해자’란 말은 듣고 싶지 않고,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잘살아가고 있는 것을 다시 느꼈고, 너무 기쁘고 좋은 하루였다. 


에스더 : 세상에 바뀌지 않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뀐다는 건 다른 사람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오신 분들은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오셨을 것이다. 관심이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붉은 노을 : 이혼 당시 막막했지만, 막상 이혼하고 나니 살만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랐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오늘은 특별히 둘째 아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축사도 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마린 : 아이러니하지만, 가정폭력 때문에 여성운동을 알게 되었고 여성의전화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이런 자리를 갖게 되고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용감한 말하기는 계속됩니다. 오는 5월, 가정폭력을 겪은 성인 자녀들의 집담회가 열립니다. 가정폭력에 관한 통념 너머의 현실을 당사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변화가 무엇일지 모색하는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가정폭력 문제의 당사자이자 그 이웃인, 우리 모두에게 뜻깊은 본 집담회에 꼭 참여해 주세요.



일시 : 2017.05.31. 오후 7시

장소 : 창비서교빌딩 B2 50주년홀

※ 참가신청 및 상세내용은 추후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www.hotline.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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