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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힘을 주고받는 공간, 한국여성의전화 -신입회원 만남의 날 F-DAY 후기

by kwhotline 2017. 11. 24.


힘을 주고받는 공간, 한국여성의전화

신입회원 만남의 날 F-DAY 후기



황연주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나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 교육을 들었다. 듣는 동안 여성의전화는 나에게 지옥이자 천국이었다. 잊고 있던 사소한 기억까지 끄집어내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울게 만든 지옥. 동시에 내 안에 감춰진 힘을 발견하고 키워준 천국.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천국에 좀 더 가까워졌나 보다. 예전처럼 주눅 들지도 않고, ‘나’로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고, 내 과거에 대해 창피해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부작용(?)이라면 말이 많아졌다는 것.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동기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안 되겠다. 언니는 거기 다시 가야겠네.” 그 친구의 말에 갈까 말까 망설였던 신입회원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소개이다. 학교에서 매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겪는 고통의 시간. 첫 만남의 어색함 때문이 아니다. 아주 작은, 표면적인 것들로 나를 판단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한 자기소개는 좀 달랐다. “내가 받고 싶은 질문을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무슨 책을 좋아하세요? 하루 중 좋아하는 시간은요?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요? 이런 주관적인 질문들은 듣는 사람들을 끄덕이게 만든다.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 후에 각자가 겪었던 먼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여기저기 깔려있고, 쌓이면 해로운 먼지와 같은 차별. 누군가의 성별, 나이, 출신지, 외모 등만으로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이 내가 자기소개를 싫어하는 이유다! 먼지 차별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차별이었음을, 모두가 일상에서 겪는 일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같은 고민을 갖는 분들 이야기를 듣고 사소하지 않은 일이 사소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 조금 서글퍼졌다. 하지만 신입회원 만남의 날은 차별을 차별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이해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성소수자, 난민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최근 논란이 된 사건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서로의 의견에 피드백을 주었다. 다른 장소에서의 토론과 다른 점은 그곳에 있던 모두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네가 틀렸어,”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와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공간.


 한국여성의전화는 그런 곳이다. 내가 입은 피해를 피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해주며 힘을 주고받는 공간. 누군가 상처는 감출수록 곪는다 했다. 공기에 노출해야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는다고. 그동안 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용기를 내어 나의 피해사실을 고백한 순간에 되돌아오는 연민, 비난, 충고를 마주한 후에는 어떻게든 숨기려 했다. 십여 년 동안 상처는 곪았고 다시는 낫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여성의전화는 확신을 주었다. 우리가 겪은 일들이 전혀 사소하지 않음을, 말하기의 힘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앞으로 난 괜찮을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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