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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어디서 멈출지 모르는 상담의 길’

by kwhotline 2017. 11. 24.


'어디서 멈출지 모르는 상담의 길'

전화상담원양성 심화 과정 후기



조동숙 (2017 전화상담원양성 심화과정 교육생)



 2017년 2회를 맞이한 전화상담원양성 심화 과정이 지난 6월 9일 한국여성의전화 2층 교육장에서 ‘상담활동 오리엔테이션’ 강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여성주의 상담원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된 전화상담원양성 심화 과정은 상담 구조화 및 참관, 실전 등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올해에는 성폭력·가정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100시간을 각각 모두 수료한 열여덟 명의 교육생이 심화 과정에 참여하여 여성주의 상담과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그 어떤 일도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은 필연!’이라고 믿는 내가 2017년 한국 여성의 전화 ‘성폭력·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과정’을 만났다. 다른 이들의 몫으로만 여겼던 상담이라는 길에 무려 200시간이라는 긴 흔적을 남겨버렸다. 힘든 순간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읊조리며 ‘여성주의’의 매력과 설렘, 동기생들의 격려, 활동가 쌤들의 애정 덕분에 무사히 성폭력·가정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과정을 수료까지 했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인 5월 10일엔 ‘한국 여성의 전화’ 회원도 되었다. 어차피 시작한 일,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전문상담원 심화 과정’도 신청했다. 어디서 멈출지 모르는 상담의 길이자 한국여성의전화 회원의 길에 발을 깊이 담가버렸다.


 심화 과정이 시작된 6월 9일 금요일 아침. 복숭아뼈 골절 수술 이후 모두를 무사히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긴장과 설렘으로 ‘상담활동 오리엔테이션 및 상담 전산화 프로그램 활용 교육’과 ‘쉼터 연계 안내’를 들으며 역시 인간은 물리적 환경에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다시 확인했다. 골절 수술 후 처음 긴 시간 공부하려니 어찌나 진땀이 나고 이해력이 딸리던지. 자괴감으로 만신창이가 되려는 나를 맛 난 점심으로 겨우 재충전했다. 상담사례를 통한 ‘상담 구조화에 대한 이해와 실습’에 대한 토론은 앞으로 있을 ‘참관과 실전’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말과 글로 배울 수밖에 없는 심화 과정 교육생들을 위해 상담소 활동가 쌤들의 열정과 안내가 눈부신 시간이었다.


 교육의 느낌이 살아있을 때 얼른 ‘전화 상담 참관’을 해서 실전을 준비해야겠다는 간절함에 참관 첫 번째 순서로 성폭력 전화 상담실에 들어갔다. 3월부터 교육받으며 늘 상상했던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한 평도 안 되는 듯 한 작은 전화 상담실에서 정말 열심히 듣고 쓰고 집중했다. 성폭력·가정폭력 각각 3시간씩의 참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에는 내내 걱정... 걱정... 걱정밖에 없었다.


 ‘전화 너머 들려오던 목소리에 난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내담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통화일 수 있을 그 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잘 해낼 수 있을까?’


 드디어 6월 19일 아침 가정폭력 전화 상담실에서 첫 전화 상담을 했다. 전화 상담 실전이 상상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 내담자를 통화하는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탐색하지 못한 채 판단하고 평가하느라 바빴던 그 날의 내가 지금도 부끄럽다.


 다행히 첫 전화 상담의 기억은 6월 28일 수요일 ‘여성주의 상담 슈퍼비전 참관’을 통해 아픔이 아닌 경험이 되었다. 상담을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이상 하고 계신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회원 선생님들과 슈퍼바이저 박근양 선생님, 심화 과정 교육생들과 함께한 3시간은 감동의 시간이었다. 부족함으로 자신 없는 나에게 ‘솔직하고, 유쾌하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여신들의 대화가 촉촉하고 달콤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이렇게 마냥 배움의 시간으로 충만할 것 같았던 심화 과정에 태풍이 몰아쳤다.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했던 7월 4일 화요일, 유명연예인 박00 ‘무고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재판 참관은 젠더폭력이란 현실의 잔인함을 처절하게 목격한 날이었다. 이날 재판 참관 평가서에 써낸 내용을 잊지 않고 싶다.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자로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오로지 성차별적 고정 관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법조인들을 보며 생존자들은 평생을 싸울 수밖에 없겠다는 사실을 ‘고개 숙인 피고인의 옆모습’과 함께 뼛속 깊이 각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난 누구와 함께 있는가?’로 연결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과정인 슈퍼비전이 기다리고 있다. 몇 번의 전화 상담을 거쳐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게 불확실할 때 모든 가능성이 살아있다’는 희망으로 금요일을 기다려본다. 매 순간 알 수 없는 삶이 나를 마주하기에 늘 불안하고 걱정이 되지만, 지금은 한국여성의전화와 인연이 된 많은 사람이 마음 한편에 있기에 든든하다. 여성주의라는 무기로 함께 성장하고 차별과 폭력에 함께 싸울 더 많은 사람을 찾아낼 수 있는 한국여성의전화가 더 잘 되면 좋겠다. (나도 묻어가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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