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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살인으로 이어진 스토킹 범죄,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우다

by kwhotline 2017. 11. 24.


살인으로 이어진 스토킹 범죄,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우다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활동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2016년 4월 19일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한 여성이 한 남성에게 흉기에 수차례 찔려 무참히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데이트 관계에 있었던 자로, 교제 기간에도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를 일삼았고,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만남을 요구하며 스토킹과 협박을 가했다. 두 달여에 걸쳐 스토킹과 협박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끝내 가해자에 의해 극도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생을 잃어야만 했다.


 피해자가 떠나간 지 1년 하고도 5개월여의 시간이 지났다. 결코 흘러가지 않는, 피해자가 없는 그 시간들 속에서 한국여성의전화는 유가족을 만났고, 법무법인 지평과 함께 공익소송을 통한 지원활동을 이어갔다. 한결같이 스토킹과 협박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살인이 본인의 정신적인 문제와 피해자 유발에 기인한 우발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가해자측의 공세 속에 고인이 된 피해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재판부에 제대로 전하기 위한 투쟁의 나날들이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1심부터 3심까지 총 14차례에 걸친 공판이 진행되었다. 법정에서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없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범행을 축소·은폐하려는 가해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본 사건을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명명하고, 데이트폭력 및 스토킹범죄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여성살해 사건으로서 이에 입각해 제대로 다뤄지고 엄중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갔다. 그리고 지난 9월 7일 대법원은 검사와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며 2심을 확정했고, 가해자는 1심과 2심에 이어 사실상 법정 최고형이 무기징역을 받았다. 


 가해자 처벌을 위한 형사소송은 끝이 났다. 가해자의 주장은 모두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스토킹과 협박, 계획적이고 잔혹한 범행수법,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유족들의 피해감정 회복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아니한 점 등이 상당부분 인정됐다. 하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망 자체에 대해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단되지는 않았다’라는 등 피고인의 유리한 정상을 과도하게 해석·참작했고, 가해자의 가석방 및 보복의 위험성을 고려한 1심의 전자장치부착명령을 기각했다. 


 한계와 아쉬움이 남는 판결이지만, 가해자는 법의 이름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본 판결은 힘을 잃지 않고 매일같이 탄원서를 제출하며 대응해 온 유가족과 그 곁에서 서명운동과 재판방청 활동 등으로 함께한 6천3백여명의 시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주요활동


피해자 가족·지인·변호인 면담 20회

재판모니터링 14회, 참관자(2심) 55명

논평·의견서 13회 (피해자대리인 7회)

가해자 엄중 처벌 촉구 서명운동 6300명

피해자 가족 등 진정서 제출 204회




데이트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맞서다


 상당수의 언론은 본 사건을 ‘이별범죄’, ‘이별살인’이라 보도했다. 수많은 데이트폭력 사건들이 ‘이별범죄’라는 제목을 달고 피해자의 헤어지자는 요구나 시도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인 것 마냥 보도되고 있다. ‘일방적인’ 이별통보, 연락두절 등으로 범행동기가 구성되고 ‘안전이별’이란 말을 등장시키며 이별을 ‘잘’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폭력의 원인과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 유발론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별에 상처받은’ 가해자의 심경을 그리거나 ‘집착이 빚은 참극’ 등으로 묘사하며 가해자 개인의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본 사건의 가해자 역시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철저히 기대어 주장을 펼쳤다.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긴밀하였기 때문에 피고인이 갑작스럽게 이별하게 되자 미처 마음을 정리하지 못해 피해자를 붙잡기 위하여 연락한 것일 뿐 스토킹 및 협박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 “오랫동안 앓아오던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피해자의 집 앞에 가서 자살시도를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에 사건 당일 피해자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우연히 피고인이 본 피해자의 핸드폰 카카오톡 메시지 … 보고 추궁하는 도중에, … 겁을 먹은 피해자가 무단히 집밖으로 도망가자 피고인이 흥분한 상태에서 도망가는 피해자를 쫓아가 살해를 하게 되었다”


 “전 여자 친구와의 이별 트라우마로 피해자와의 이별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여 자살시도를 하는 등 정상적인 사리분별력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


- 피고인 변호인 의견서 중에서





 “결혼을 전제”로 피해자와 교제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대하며”, “잘” 지내왔다고,

스토킹이나 협박이 아니라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살”하러간 것이라고,

우울증 등으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 행위였다고...


 법정에 선 살인범은 그렇게 이별에 따른 마음정리를 못한 “상처받은 자”로, “심신미약의 정신 상태에 있었던 자”로 스스로를 위치지우며 범행을 축소·은폐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특히 자신의 목숨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자살협박을 하며 폭력을 행사했던 가해자는 살인범행이 ‘자살하러 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헤어지면 죽겠다”는 자해·자살 협박이나 시도는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이 이별을 요구하는 상대방의 행동을 좌절시킬 목적으로 주요하게 사용하는 수법이다. 한국사회에서 폭력은 여전히 물리적 폭력을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자살·자해 협박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에게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따른 두려움과 책임감을 갖게 하고, 특히 데이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폭력 사용보다 피해자의 행동을 통제하는데 강력하게 작동한다. 본 사건의 가해자 역시 매일같이 피해자에게 죽겠다고 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죽을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를 겁박했다. 자살을 하러 갔다는 가해자의 주장은 소지한 흉기 등을 미뤄볼 때도 전혀 근거가 없을뿐더러, 그 자체가 피해자를 옥죄이던 협박이자 폭력이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스토킹, 폭력의 출구가 있는 세상을 위하여 

 

 피해자 아버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지”라는 질문에 신고해봤자 소용없었을 거라고, 오히려 더 빨리 딸을 잃을 수 있을 거라고, 신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씀했다. 가해자의 스토킹과 협박 속에서 가해자를 타이르고 피해자의 출퇴근을 동행하며 서로를 지키고자 했던 가족들이 후회하는 것은 사건 당일 피해자의 곁에 같이 있지 못했다는,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만약 스토킹이 범죄로서 분명하게 인식되고 처벌되는 사회였다면,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고 있는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근거가 있었다면, 피해자와 가족들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킹이 여전히 “구애행위”나 “상대의 마음정리의 과정” 정도로 미화되며, 개인들 간에 해결해야 할 사적인, 감정적 영역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회에서 가해자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오롯이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 쉽게 주문한다. “헤어지면 되잖아”, “경찰에 신고해”라고. 그러나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에서 ‘이별’은 온전히 가해자의 것이며, 신고 이후 피해자의 안전 확보와 분명한 사건처리가 동반되지 않는 한 경찰 신고가 폭력으로부터의 탈출로가 될 수 없다. 

 

 스토킹은 데이트폭력을 비롯한 친밀한 상대에 의한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 중단과정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폭력이다. 스토킹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안은 1999년부터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왔다. 현재 20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관련 법안이 총 5개가 발의되었으나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발의법안 중 3개 법안이 스토킹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원칙과 피해자 보호 및 수사·재판상의 권리 확보를 위한 조치 등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속해서 제안해온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스토킹범죄 처벌법 제정, 그것이 데이트폭력의 출구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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