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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①] 나는 왜 일할 때도 여성이어야 하는가?

by kwhotline 2017. 11. 9.


[ 강요된 아름다움, 유니폼 ① ]

나는 왜 일할 때도 여성이어야 하는가?  


김예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슬림라인 블라우스', '매끈 어깨라인', '슬림라인 스커트'. 많은 교복 회사들이 여학생 교복을 광고할 때 쓰는 문구들이다. 딱 떨어지는 어깨라인과 슬림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교복을 입고 온종일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군복 역시 마찬가지다. 신체적 활동성이 중요한 직업임에도 공식행사의 여군은 언제나 좁은 치마를 입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다. 왜 여성에게는 그 직업의 특성에 상관없이 격식을 차린 복장으로 치마와 하이힐이 주어질까? 우리는 활동성과 기능보다 미를 강조하는 유니폼이 여성에게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지는 않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유니폼은 없는 것일까?


 2016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 일정에 ‘한류 행사’가 있었다. 이 한류 행사를 앞두고 통역 담당자를 모집했는데, 지원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이 있었다. 빨간색으로까지 강조된 이 조건은 “용모단정. 예쁜 분”이었다. 실제로 통역을 담당했던 한 참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통역은 외모가 아닌 언어가 1순위’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에게 능력이 아닌 외모가 요구되는 현실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늘 아름답길 강요받는 여성들


 여성들은 능력보다 외모를 요구받는다. 때론 그 외모가 실제 하는 일과 무관하거나 그 일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에 반해 남성은 직장에서 외모에 관련한 것을 강요받는 일이 현저히 적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인사담당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채용에 외모가 끼치는 영향은 남성보다 여성이 4배나 더 높았다.[각주:1] 취재진은 이런 ‘동일노동 다른 역량’이라는 이분화가 직업 유니폼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보았다. 


 대표적인 예가 승무원이다. 객실승무원은 기내에서 승객의 여행을 돕는 것을 주 업무로 하지만 유사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 객실승무원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여승무원들의 복장은 H라인 스커트와 구두다. 저가 항공사들이 생기면서 청바지나 정장 바지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이런 스커트와 구두가 기본이다. 이 때문에 실제 항공 사고가 일어나면 여승무원들은 승무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원활하게 하는 데 불편을 겪는다. 승무원 준비생 안 모 씨는 “한 항공사 유니폼을 입고 화장실에 뛰어가는 데 치마가 벌어지지 않았다. 비상상황에서는 치마를 찢고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 사고 당시 여승무원들의 복장이 논란이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아시아나 항공사 착륙 사고 당시 비판받은 승무원들의 복장


 

 이는 그 어떤 직업보다 남녀 활동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군대에서도 드러난다. 여군에게는 공식 행사에서 입는 정복에 스커트와 하이힐이 지급된다. 전투 현장이 아닌 공식 행사를 위한 것이니 무리가 없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따져보면, 국방을 지키는 군인으로서의 업무 역랑과 관련 없는 스커트와 하이힐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스커트와 하이힐은 전형적인 여성의 미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군인으로서 여성의 미를 강조하는 것이 여군들의 업무 역량과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육군 남성 정복



육군 여성 정복


 

언제부터 아름다워야 하는가


 더 눈여겨보아야 할 유니폼이 하나 더 있다. 직업 유니폼 이전에 대다수가 ‘최초’로 입는 유니폼, 바로 교복이다. 그리고 이 교복은 여성들이 유니폼에서 ‘미’를 찾기 시작하는 최초의 사례다. 학교에 대한 소속과 학생 신분을 증명하는 수단으로서의 교복이 아니다. 이에 부합하는 사례가 바로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교복 광고다. 이들의 광고는 학생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선정성을 띤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학생의 교복에 ‘쉐딩 스커트’, ‘코르셋 재킷’ 등의 별칭을 붙여 날씬함을 강조했고, 지나치게 몸매를 강조한 모델의 자세가 미성년자인 학생들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가 된 광고. 멤버들의 과도한 자세와 밀착되는 교복이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최근에는 한 SNS에서 남녀 교복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각주:2] 같은 치수의 교복이지만 그 크기와 활동성이 눈에 띄게 차이났기 때문이다. 여학생용 교복은 맵시를 살리기 위한 ‘라인’이 들어가 있어서 팔을 들기가 어렵고, 지나치게 꼭 맞아 움직이면 옷이 쉽게 올라갈 정도다. 학생일 때부터 여성들은 ‘미’를 위한 유니폼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 


  여성 유니폼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오로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유니폼이라는 선택지뿐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이 여성 승무원의 바지 착용을 금지한 데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지만, 여전히 내부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사실이 이를 알려준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선택지를 지워가면서까지 여성들이 ‘일할 때도 아름답기를’ 바라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업무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역량 자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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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외모도 스펙…기업 채용 시 영향 미친다, 헤럴드경제, 2016.03.22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60322000053&ntn=0 [본문으로]
  2. 온라인에서 논란되고 있는 남녀 교복 셔츠의 차이, 중앙일보, 2017.07.03 http://news.joins.com/article/217217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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