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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③]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by kwhotline 2017. 11. 8.


[ 무엇이 데이트폭력을 '사소하게' 만드는가 ③ ]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박세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 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관계에서 폭력피해(통제/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이르렀고,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11%에 이르렀다. 친밀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높은 비율로 데이트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 경험 후 상의 및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했으며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현저히 적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렇게 심한 폭력은 아니어서’가 가장 높게 응답되었고, 그 다음으로 ‘창피해서’,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가 순서대로 응답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통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리거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데이트폭력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이나 사적인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오히려 피해자가 폭력의 책임 대상이 되며 그 폭력이 사소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밀한 이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층 취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우리사회의 데이트 폭력 실태와 인식이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데이트폭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어떠한 문화와 제도들이 데이트 폭력을 조장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면서 마무리한다. 


 앞선 연재를 통해 데이트폭력이란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관계, 또는 과거에 만났던 적이 있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서적·언어적·성적·경제적 폭력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으로 죽음에 이르는 피해자가 한해 100명이 넘길 정도로 심각한 수준임에도 데이트폭력은 ‘사적인 일’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 해결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연인 사이에 무슨?’ 만연... 침묵하고, 견디는 피해자


 사랑과 폭력은 공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데이트폭력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둘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연인 관계라는 친밀성에 의해 데이트폭력이 쉽게 은폐되는 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무슨 연인 사이에 강간, 폭력이 있을 수 있냐’는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게 된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데이트폭력으로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경우들도 많다. 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되는 사회에서 피해 여성은 자신이 겪은 일을 폭력이 아닌 사랑이나 애정으로 생각하며 견디기도 한다. 특히나 신체적, 성적, 언어적 폭력에 비해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항상 확인한다거나 옷차림을 제한하는 등의 ‘통제’는 피해자 스스로 데이트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통제’는 62%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데이트폭력 피해 유형이었으나, 폭력 피해 직후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폭력 유형 중 가장 높았다. 특히나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응답한 비율이 32%의 높은 응답률을 보였는데, ‘통제’가 폭력이라기보다는 애정이나 사랑으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데이트폭력 미화하는 미디어, 문화


 현재 방영하고 있는 KBS 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의 박서준은 여자 주인공 역의 김지원이 치마를 입고 등장하자 ‘옷 갈아입고 나와! 다리가 왜 예뻐! 다리가 완전 여자네’라며 여자의 옷차림을 통제한다. 이렇듯 드라마에선 호감을 갖고 만나거나 사귀는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의 옷차림을 통제하는 것이 클리셰처럼 등장하고, 이러한 장면 속 남성의 행동은 로맨틱한 것으로 묘사된다.


 ‘사랑’의 감정은 본능적이거나 자연적이기 보다 사회에 의해 학습되는 것에 가깝다. 어떠한 상황이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감정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등은 그 사회의 문화와 관습에 따라 달라진다. 즉, 연애는 즉흥적이거나 본능적이기보다는 구조화된 사회 제도이다.드라마 ‘쌈마이웨이’와 같은 미디어들은 연인관계에서의 ‘통제’가 연애 각본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통제’가 데이트폭력이 아닌 로맨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연인관계에서 ‘통제’는 하나의 각본처럼, 사랑한다면 따라야 할 규율로 규범화되는 것이다.



 ‘통제’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데이트폭력 역시 미디어에 의해 로맨스로 미화된다. 작년에 인기리에 방영한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남자주인공 역할의 에릭이 여자주인공 역할의 서현진의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벽으로 밀고 가 강압적인 키스를 하는 장면이 연출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당 장면에 대한 반응으로는 ‘로맨틱하다’, ‘심쿵한다’, ‘설렌다’는 것이 주를 이뤘고, 이 장면이 방영된 9회는 드라마 방영 이래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만큼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미디어와 문화는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통제, 폭력적인 성적 관계 요구 등의 명백한 데이트폭력을 ‘연인 사이의 낭만적인 일’로 묘사한다. 결국, 데이트폭력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포장되어진다.


데이트폭력 사랑이라 말하는 사회...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 필요 


 데이트폭력을 사랑이라 묘사하는 미디어가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들은 연애 각본의 성역할에 따라 ‘여자라는 이유’로 불쾌한 감정을 넘기기도 하고, 혹은 이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견디기도 한다. 또한, 데이트폭력이 발생하더라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특성상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는 등 피해자의 반응은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데이트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명백한 범죄로 인식하고 신고할 수 있기 위해선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여겨지던 연애 관계를 폭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1년부터 데이트폭력에 주목해왔고, 피해자 상담 및 인권지원 활동 외에도 대중강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기존의 연애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폭력을 사랑으로 미화하기 바빴던 우리 사회와 미디어는 데이트폭력을 사랑이 아닌 심각한 범죄로 바라봐야할 것이며 데이트 관계에 있는 개인들은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위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데이트폭력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명백한 범죄


 그러나 인식만 바뀐다고 해서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거나 근절하기엔 역부족이다. 데이트폭력은 친밀한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그 특성상 ‘개인적인’, ‘사소한’ 일로 치부되어 왔고, 사회가 개입해서 해결해야 할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피해자의 구조요청으로 경찰이 출동해도 연인 사이라고 하면 ‘알아서 하라’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올해 1월에도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한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몇 달 동안 지속된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이 여성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연인관계라는 말을 듣자 남성을 풀어줬다. 결국, 이 남성은 파출소를 떠난 지 2시간 만에 여성을 무참히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간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지나치게 안일했음을 보여준다. 데이트폭력은 사회의 개입이 필요한 명백한 범죄인만큼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태도가 변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뿐만 아니라 사법처리 과정에서 친밀한 사이에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특성을 고려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가해자가 연인일 경우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는 바로 신고를 하지 못한다거나 신고를 하더라도 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해자는 ‘사랑해서 그랬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연인 사이였다는 사실을 범죄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사법기관은 ‘왜 바로 신고를 하지 않았냐’고 피해자를 의심하기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 경험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피해자 지원체계, 법체계도 바뀌어야


  성폭력 피해 지원에 있어 데이트폭력은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중심으로 한 현행 지원 체계 안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어디에,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많고, 도움을 청해도 지원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답변을 받기 일쑤다. 데이트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지원체계 역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데이트폭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폭력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위협과 폭력으로부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스토킹은 데이트폭력의 연장선에서 관계중단 과정에서 주요하게 나타나는 행위인 만큼, 스토킹 처벌은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폭력의 재발을 막는 데 많은 기여할 수 있다. 현행법 상 경범죄처벌법으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으나 범칙금 8만원 부과로 매우 미약하여 범죄 행위 제지 및 재발방지에 실효성이 없다. 스토킹을 ‘경범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데이트폭력을 연인 사이의 사랑이나 다툼으로 보는 기존의 법 체계가 변화해야 데이트폭력에 대한 예방과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고 젠더폭력방지 계획을 수립하고 전담기구도 설치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그동안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서 국가는 남녀 사이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늘고 있다”면서 국가가 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현재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을 위한 검토와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데이트폭력·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체계 강화 방안뿐만 아니라 젠더폭력 특수성이 반영된 피해자 지원 시스템 구축 등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계의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던 만큼 제대로 된 법 제정이 기대되는 바이다. 우리 사회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 개인들의 연애 관계에 있어서의 성찰과 더불어 사법기관의 태도, 법 체계 등이 함께 변화해 나갈 때 진정한 데이트폭력 근절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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