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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여성과 제모 ④] 제모, 안녕

by kwhotline 2017. 11. 7.


[여성과 제모 ④]

제모, 안녕


지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을 풀어내는 토크쇼에서 여성의 제모를 다룬 적이 있다. 겨드랑이, 다리털 제모 등으로 한 번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본 출연자들은 매우 공감한 주제였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느냐’며 이해하기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쉽게 말한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제모가 왜 그렇게 문제냐고, 어떻게 여성 억압까지 될 수 있냐고. 하지만 과연 여성의 털이 여성 개인만의 문제였던 적이 있을까? 누군가에겐 선택이지만 여성에겐 그렇지 않은 제모 이야기, 그저 ‘보기 좋다’거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의 제모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더 깊게 파고들어보자.


 지난 겨울 이후, 겨드랑이 제모 없이 지내고 있다. 마침 따뜻한 동남아로 여행을 갔던 지난해 12월 말, 그곳의 워터파크를 가기 위해 겨드랑이털을 남김없이 밀었으니 지금까지 딱 7개월 정도 기른 셈(?)이다. 주기적으로 해야 했던 귀찮은 일 하나가 줄어들자, 굉장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모 없는 일상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새삼 중학생 때부터 10년 동안 제모를 정기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옷의 소매가 짧아지는 계절이 다가오자 편안함은 긴장감을 동반했고,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반팔 티셔츠를 입고 외출할 때 거울에 비춰보는 것은 기본, 애매한 길이의 옷을 입으면 어느 각도가 가장 아슬아슬한지 확인하곤 했다.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숱한 상황들, 지하철 손잡이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로 올려다봐야 하는 위치일 때, 솔직히 말하면 그간 누렸던 편안함보다는 ‘그냥 한번 밀고 올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먼저였다.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


 여러 의미에서 가장 ‘짜릿함’을 느꼈던 건 학교 농구장에서였다. 운동하거나 앉아서 쉬는 사람들, 오가며 구경하는 동기들, 주변에 참 보는 눈 많은 그곳. 나는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해서 그곳에서 종종 농구를 하거나 동아리 부원들과 미니 풋살 게임을 하는데, 팔과 겨드랑이가 자유롭지 않고서는 제대로 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편한 복장으로 눈치 보지 않고 운동을 하던 중, 슛을 하려고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그 순간! 뒤늦게 ‘아차’싶어서 그 뒤로 잠깐 동안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팔의 동작을 의식하기도 했지만, 털을 밀지 않고도 자유롭게 팔을 휘적거리는 내 모습에 느끼는 해방감이 더 컸다. 한편으로 남자 농구선수들이 민소매다 못해 겨드랑이가 시원하게 파인 농구 유니폼을 내의 없이 입는 모습을 떠올리면 부러움이 샘솟기도 했다. 제모를 시작한 이래로 최장기간 제모에 손 놓은 채 지내고 있지만 습관적으로 나를 의식하는 모습에서 아주 벗어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내 몸의 이 곳 저 곳을 의식했던 기억은 털 외에도 많았다. 수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줄곧 ‘수영하면 어깨 넓어져서 여자한테는 안 좋다’라는 이야기가 따라붙었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이라도 조금 뛰면 흔히 ‘다리 굵어지는데 괜찮냐’는 둥 조언 아닌 조언을 듣곤 했다.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는 꽤 많은 여학생들이 체력관리를 위해 점심,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 같이 줄넘기를 했는데, 그때 어느 여선배가 ‘줄넘기하면 가슴살부터 빠져서 후회할 텐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운동하면 근육이 발달하고 특정 부위의 살이 빠지는 건 시간이 흘러 털이 자라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법인데, 여성의 몸이 ‘자연스럽게만’ 자라는 건 종종 걱정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예쁘고 멋진 이상적인 모습'을 기준으로 두고 내 몸을 좀 의식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성의 몸에 대한 기준이 유독 단일한 모습, 혹은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모습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괜찮은 걸까. 그 기준을 벗어난 몸을 가진 사람들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기본 값’으로 여겨져도 되는 걸까. 무엇보다도,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마치 지적과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여겨지고 있다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억압적인’ 측면이라고 봐야한다.



제모할까 하지 말까, 정답은 없다 


 사실 이 이야기에 뚜렷한 결말은 아직 없다. 제모 없이 몇 개월을 지냈지만, 막상 남은 올여름 그리고 또 내년, 내후년의 여름을 떠올리면 털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진행형일 것만 같다. 제모의 사회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깨달았다고 해서 제모를 반강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수년간 그 규범을 내면화해온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의 털, 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모를 하는 행위가 곧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혹은 막연히 제모를 ‘거부’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제모 없이 지낼 때 느껴지는 해방감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겪어보니, 중요한 건 여성을 보는 왜곡된 사회적 시선의 변화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앞선 ‘제모 이야기’ 기획을 통해 보았듯 여성에게 그렇게 쉽게 요구되는 제모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제모의 탄생부터가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한 모습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현대 사회 또한 ‘미적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여성에겐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불합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는 여성의 털에서 멈추지 않고, 여성의 몸과 행동양식 전반을 향한다.


 결국, 낡은 통념이 여전하다면 제모 없이 사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한들 여성의 몸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매년 여름이 돌아오듯 반복되는 제모 이야기를 풀 열쇠는 단순히 여성들의 제모 ‘거부’가 아니라 자기 몸에 대한 여성의 모든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로의 이행,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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