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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 - 스웨덴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제도 탐방기

by kwhotline 2017. 10. 25.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 


‘성평등 국가’ 스웨덴의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제도 탐방기

  


유미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지난 4월,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피해여성 자립 지원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해외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제도와 정책을 살펴보고자 총 9일간(4/22-4/30)의 스웨덴 여정에 올랐다. 기관방문 첫날의 스웨덴 여성 및 여성청소년쉼터 전국협회(이하 ROKS, 1984년 설립된 스웨덴에서 가장 큰 여성 쉼터 조직)에서부터 마지막 날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 관한 스웨덴 국가지식센터(The Swedish National Centre for Knowledge on Men's Violence Against Women, 이하 NCK)까지, ‘성평등’ 국가 스웨덴이 보여준 면모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바로 ‘문제에 대한 분명한 관점과 목표로 분야별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로 나아간다’는 것.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 분명히 명명하다

 

 ‘성평등 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 이 나라에는 지난 30년 동안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Men's violence against women)’이라는 명명 아래 싸워왔던 역사가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 스웨덴은 성별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신적·성적·경제적 폭력을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으로 명확히 명명한다. 남성에 의한 폭력 피해자의 절대 다수는 여성이며, 여성폭력은 성차별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본질을 ‘흐리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대하는 관점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와 관련, ROKS의 위베카는 어떤 용어를 쓰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명명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제1원칙이라는 사실을 스웨덴은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과연 무엇을 침해하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스웨덴은 법률상 규정을 통해 개념화하고 있다. 1998년 스웨덴 형법상에 제정된 ‘여성의 존엄성 침해(Gross violation of a woman's integrity)’에 관한 법률 또한 스웨덴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근절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로 보인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의 존엄성을 반복적으로 침해하고 자존감에 극심한 손상을 입히는 범죄행위(Gross violation of integrity)를 규정한 형법 조문에서 별도로 규정돼 있는 ‘여성의 존엄성 침해(Gross violation of a woman's integrity)’ 법률은 ROKS의 위베카에 따르면 스웨덴의 유일한 페미니스트 법률이기도 하다. 이 규정을 통해 여성에게 가하는 복합적인 형태의 폭력을 중대한 범죄행위로서 포괄하여 가해자를 기소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문제에 대해 각 기관이 공통 관점을 가지고 기관별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은 놀라운 점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스웨덴 탐방팀이 방문한 5개 기관 모두- 스웨덴 여성 및 여성청소년쉼터 전국협회(ROKS), 범죄피해자 보상지원청, 스웨덴 여성 로비, 스웨덴 경찰청,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 관한 스웨덴 국가지식센터(The Swedish National Centre for Knowledge on Men's Violence Against Women, 이하 NCK)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성차별적 권력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각자의 영역별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며 전문성을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일례로 경찰청 방문 시에는 경찰들이 여성폭력 수사와 피해자 지원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언어적·정서적 폭력을 증명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등)을 인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관련 연구결과와 지식을 확산하기 위한 기관인 NCK의 경우, 1) 전문가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폭력 관련 각 전문가들이 분야별 관점을 공유하고, 논의와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폭력에 대한 태도가 변화될 수 있도록 목표하는 점, 2) 보건과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서 여성들에게 폭력 경험을 질문하여 폭력 피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발견했다면 뒤따라 어떤 조치들이 필요한지 알고 실행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방법론을 제안하는 점은 매우 특기할 만했다. 또한 개별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필요로 하는 부분에 따라 정보를 용이하게 얻고 지원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관점에서 각 기관별 인터넷 사이트에 내용을 알기 쉽게 구성하여 게시하고 배치해 놓은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결론적으로 단 하나의 해결책은 없다는 것. 일차적으로는 사회보장제도에 기반을 둔 여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과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라는 명명으로 문제를 보는 관점을 분명히 하고, 경찰·사회복지·보건·지원기관 등 각 분야 간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역할을 분명히 수행하며 전문성을 발전시켜나가는 스웨덴의 시스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스톡홀름 지역의 기관들만 방문하여 살펴본 것이기에 실제 여성폭력 실태와 관련 기관의 집행내용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출발선에 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지난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이었던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 제정’에 속도를 내는 흐름 속에서, 이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여성폭력 근절에 대한 국가 책무를 규정하고 피해자 지원의 원칙 등을 분명하게 세워가야 한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여성의전화가 여성인권운동단체들과 함께 국가에 외쳤던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요구는 이제야 정부 정책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의 폭력피해율이 매우 높은 폭력에 대해 범죄행위로서 분명히 처벌하고 피해자 보호·지원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여 관련법들이 제정됐지만, 여성폭력에 대한 기본 관점과 지향조차 갖추지 못한 정책 내용과 집행으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해왔다. 이제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양태들로 포괄하여 다시 정확히 명명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정의와 본질, 여성폭력이 무엇을 침해하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가까운 관계에서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함에도 더욱 사소화되는 여성폭력의 특성을 반영하고, 여성폭력 근절이라는 분명한 목표 아래 이에 관여하는 각 분야 협력체계의 역할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겉만 그렇게 보이는 형태가 아닌 진정 페미니스트 법제도와 정책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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