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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21세기 新 여성인권운동 풍속도

by kwhotline 2017. 5. 12.


21세기 新 여성인권운동 풍속도

 


은총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휴거’도 Y2K도 없이 평화롭게 21세기의 태양이 떠오른 지 17년이 지났다. 새천년은 세기말의 난리통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히 찾아왔으나, 그 후 17년은 결코 무탈하지 않았다. 2015년에는 영화 <백 투더 퓨처 2>처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여전히 54.4%의 남성이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적 사고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각주:1]

 

그러나 2017년 현재, 여성인권운동에 신흥 기류가 불어 닥치고 있다. 온라인은 SNS를 중심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게릴라성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여성주의 서적은 우후죽순 출간되고 있으며, 다양한 소규모 프로젝트와 여성의 삶 전반에 대해 여성이 스스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론장이 활발히 생겨나고 있다. 이 기류의 시발점은 2015년 중반 일어났던 ‘메르스 갤러리’[각주:2]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여성들이 여성인권운동을 ‘언어유희’를 통한 ‘놀이문화’로 전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온라인 중심으로 시작된 여성인권운동의 新 조류는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기점으로 여성들이 오프라인에서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지금,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러한 신흥 운동의 효과로 소비, 여가 생활, 삶의 태도 전반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본 글은 아주 가까운 일상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도발적인 변혁의 몇 가지 사례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작성되었다.

 


사랑한다, 공부해라


‘빠순이’라는 용어로 비하되곤 하는 연예인 팬 문화는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감정과 시간과 경제력을 ‘헌신’하는 문화로 여겨진다. 이 문화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러한 헌신을 바탕으로 마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쉴드’를 치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객관적 판단력이 부족한 여성적 문화’로 취급되기 일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팬으로 전제되는) 여성은 스타의 콘텐츠에 반응할 뿐인 수동적인 개체로 여겨진다.

 

스스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신흥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어가는 주체들은 자신의 취미인 ‘연예인 덕질’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이들은 스타의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즐긴’다.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저지른 스타에게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거나, 노래 가사 등 반여성인권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에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이제 특별하지도 않다. 주목할 점은 연예인 팬 문화 중 가장 ‘비이성적’으로 여겨지던, 스타의 기쁨을 기대하며 선물을 보내는 ‘조공’ 문화의 변신이다. 이들은 더 한 발짝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에게 페미니즘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타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을 직접 선택·기획하고 이를 위한 ‘즐거운’ 소비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희롱 발언 이후 팬들의 요구에 따라 사과문을 작성하고, 

선물 받은 페미니즘 책을 인증한 배우 김윤석. 



아이돌 ‘오마이걸’ 팬의 페미니즘 서적 서포트 모금 프로젝트



 

내가 입는 패션이 여성의 패션이다


 


‘로리타 패션’은 서양 동화 주인공의 옷처럼 프릴과 레이스, 리본 등의 장식품이 달린 드레스를 입는 패션을 뜻한다. 언뜻 여성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패션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로리타 여성주의자모임 <로리타 펀치>는 “로리타 패션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소비하며, 여성 주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로리타 펀치>는 “로리타 패션은 세상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패션이 아니”며 당사자인 여성의 말에 주목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선으로 문화를 해석하는 것을 비판했다. <로리타 펀치>는 활동의 모토를 “로리타를 입고 뭐든지 한다 정도”라고 밝히며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자신이 세운 기준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렇기에 “그런 것들을 더 지지하고, 더 재밌고, 더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로리타’를 위해 여성공동행동 집회에 참여하거나 정기 소모임을 열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로리타 옷을 입는 의미에 대해,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 로리타를 입고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해 정기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2060년 페미니스트 나가신다!

 

전국디바협회 로고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송하나들과 미래의 송하나가 마음 놓고 게임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행동"합니다.[각주:3]

 

2016년 11월 26일, 박근혜 (前)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에서 유쾌한 패러디로 화제에 올랐던 깃발들 중 <전국디바협회>의 깃발이 있었다. 2060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중 하나인 디바(송하나)는 천재 프로게이머이자 거대한 로봇을 조종하는 여성 영웅이다. <오버워치>를 이용하는 여성 게이머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국디바협회(이하 전디협)>는 “한국이 지금과 같이 성차별적인 국가라면 오버워치의 배경이 되는 2060년에는 디바와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일은 불가능 할 것”이라며, 성평등한 2060년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게임_내_성폭력’ 이슈를 공론화하는 발화점이 되었으며, 게임을 제작한 디렉터 제프리 캐플런이 게임 콘텐츠에 대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재해석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다.

 


전국디바협회에서 제작한 Feminism For Future Female 포스터

 


전디협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집회와 행진에 참여하거나, <페미니즘 도서 가이드북> 제작을 위한 독서모임을 격주로 진행하고 있다. 또 이들은 페미니즘 굿즈 스토어와 같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본 원고 작성자의 마음에 불을 지른 전디협배 오버워치 여성게이머대회 <여자 나가신다!>이다. 게이머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를 여성으로 기획하고 있으며, 2017년 4~5월 중 예선이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대회 참여 인원파악을 위한 가신청을 받고 있으며, 신청은 forfuturefemale@gmail.com 으로 <팀명>, 팀원의 <닉네임#배틀태그>, <티어(게임 내 등급)>를 간단하게 적어서 보내면 된다.



  1. 여성가족부 「2016년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본문으로]
  2. 2015년 5월 말 메르스 사태가 심각해진 어느 날 홍콩에 여행을 간 두 여성이 메르스 의심환자로 진단받았음에도 당국의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인터넷 게시판은 두 여성을 비난하는 게시글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것이 의사소통의 오해에서 비롯된 와전된 소식이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그 동안 여성혐오적 악성댓글에 시달려왔던 여론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인 ‘메르스 갤러리’에 그 동안의 여성혐오 발언을 남성 대상으로 미러링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남자도 신사처럼, 조신하게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동정을 지켜야 한다.” 같은 과거의 여성혐오발언에 대한 패러디 말이다. [본문으로]
  3. 출처 전국디바협회 트위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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