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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일상

겟 잇 페미니스트 5탄 우당탕탕 독박골 출산기

by kwhotline 2017. 5. 11.


겟 잇 페미니스트 5탄

우당탕탕 독박골 출산기



정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국

 



일찍이 희한한 여성들이 모여 살았던 그 곳, 독박골[각주:1]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해드리는 겟 잇 페미니스트2017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번 호에는 한동안 다시 없을지도 모를, 독박골 내 출산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2016년 독박골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독박골의 합계 출생률은 단 0.35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2015년 합계 출생률은 1.24명으로, ‘초저출산 국가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97년에 시민사회단체로는 처음으로 산전산후 휴가제를 도입한 바 있는데, 그 사용 빈도 또한 매우 드물었다. 이 제도의 최초의 수혜자가 출산한 아이가 벌써 20대 중반이 되었고, 2008년을 마지막으로 본 제도를 활용한 이가 없었다. 이쯤 되면 독박골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멸종(?)의 길로 접어드는가 싶었지만, 근 십여 년 만에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여름, 무려 두 명의 활동가, 희진과 혜경이 후대를 잉태했고 20173월에 무사히 출산한 것이다.


첫 잉태 소식이 전해졌던 순간부터, 임신 중인 이들의 모성 보호를 위한 갖가지 소동, 그리고 출산까지. 지면의 한계로 그 웃픈순간들을 모두 전해드릴 수 없어 아쉽지만, 고생 끝에 무사히 순산했던 그 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부터 이 낯설지만 기쁜 사건을 보고하고자 한다.



2017.02.10. 베이비샤워


베이비샤워 이렇게 해보려고 했으나... (출처 : 섹스앤더시티)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출산예정일이 한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산전산후 휴가 돌입 또한 다가왔기에 독박골 사람들은 함께 베이비샤워를 하기로 했다. 210일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하고, 인근 식당에 모인 그들. 식사가 끝나고 나니 찾아온 머쓱한 순간. 왠지 두 사람을 떠나 보내기엔 섭섭했던 이들은 돌연 구호를 외쳤다.



“다 함께 구호 외쳐보겠습니다. 최희진은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김혜경은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라!”

“순산하고 원샷해라!” “원샷해라! 원샷해라! 원샷해라!”



두 활동가의 건강을 염려한 이들의 외침은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평소 음주가무를 즐기던 이들이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특히 예전부터 집회를 좋아했던 임신부, 희진은 수줍게 웃으며 응원 감사하다는 답사를 했다. 그리고 이날의 구호는 영험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는데


 

두 사람이 잘 낳고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송별 짤 ⓒ나눔 활동가



2017.03.04. 첫 번째 출산일


이날은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여, ‘2017 페미니스트 광장이 열린 날이었다. 두 임신부는 이미 휴가에 돌입해 갖가지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신각에서의 행사를 마친 후, 헌법재판소를 들러 광화문까지 행진 대열이 도착했을 즈음. 310분이 조금 지난 시각, 메신저에 희진의 순산 소식이 전해졌다.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이른 출산이었지만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출산 경험 여부에 따라 사뭇 다른 축하법


길거리에서 행사를 치르느라 정신없던 독박골 주민들 모두 아낌없는 축하를 보냈다. 행사 내내 외쳤던 구호가 복중의 태아를 불러낸 게 아니겠냐는 추측과 함께, 세계여성의날 행사 중에 아기가 태어나다니 큰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며 모두 기뻐했다.



2017.03.05. 희진과 출산 축하 사절단


순산 소식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독박골 주민들은 이튿날 희진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경기도 모처까지 달려간 이들은 주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다. 특히 R나라면 아이 낳느라 열 냈으니 반드시 시원한 게 먹고 싶을 것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희진은 찬 것을 자제해야 한다며 마음만 받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결국 가져간 커피를 자기들끼리 나눠마시게 된 축하 사절들은, 돌아오는 동안 우리가 모자랐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 안에 담긴 축하의 마음만은 진심이었을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축하 사절들


아무튼 희진은 이들의 축하에 화답하며, 출산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희진은 아이를 한 달 일찍 낳았을 뿐 아니라, 진통이 시작되고도 매우 빨리 낳았다고 한다. 출산 전날, 캠핑을 즐기던 중 징조를 느껴 서둘러 돌아왔고, 당일 오전에 병원으로 서둘러 향했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담당의가 오기도 전부터 아기가 나올 뻔하여, 흡사 아기를 길바닥에서 낳을 뻔한 경우라고 평했다고 한다.

 

아프지 않았냐는 물음에 희진은 별로 아프지 않았다고 대답해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았다. 과연 그녀의 출산 과정은 술이 식기도 전에 적장의 목을 베는, 흡사 관우의 모습과도 같았다. 늘 선봉으로 나섰던 희진의 강인한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났다고도 하겠다. 이에 축하 사절들은 안 아파도 아픈 시늉을 하고, 가만히 누워서 몸을 잘 보신해야 한다는 당부를 전했다.


용건이 끝나고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던 축하 사절들은 산모의 식사가 들어왔을 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면회에는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희진은 굳이 안 와도 좋을 것 같다는 답을 주었다고 한다.

 

 

2017.03.07. 두 번째 출산일

 

첫 순산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출산 소식이 날아들었다. 37, 젠더폭력 근절 정책토론회 후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던 120분경, 역시나 여성폭력을 근절하자는 구호를 한창 외치고 있던 시간이었다. 활동가들은 저마다 축하 인사와 함께 “38둥이들이다!”, “역시 베이비샤워가 효과적이었다란 메시지를 전했다. 혜경은 이에 나는 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기가 나왔다는 위트 있는 멘트로 응했다.

 

 

복중의 태아를 호출하는 마법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남다른 산모의 남다른 출산 소감

 



2017.03.08. 혜경에게 배달의 장미를!

 

역시나 독박골 주민들은 출산 다음 날에 산모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 이번 축하 사절들은 앞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혜경이 먹고 싶다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사서 방문하였다. 비록 케이크를 방바닥에 흘리고, 종일 야외 캠페인을 해서 발 냄새가 나는 등 여러모로 불결한 방문객들이기는 했으나밝은 얼굴의 혜경은 모두를 따뜻하게 맞아 주어 더욱 진한 감동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혜경과 그녀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조금 불결한 방문객들


아무튼 3.8 세계여성의날이었던 당일의 의미를 더한 축하에 화답하며, 혜경은 파란만장했던 출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혜경은 전날 새벽부터 진통을 시작했는데, 얼마나 아프던지 비명을 멈출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남편의 팔을 꺾고, 택시 기사를 패닉에 빠뜨리며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뿐이 아니었단다. 너무 고통이 커서 매 순간 위기를 느꼈던 혜경은 비상벨을 난타했고, 간호사가 이러시면 안된다며 그녀를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아기를 낳았다는 혜경은 이제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고통을 참을 수는 없다”, “남은 인내심을 모두 다 쓴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자연 분만을 하기 위해 부러 제왕절개율이 낮은 병원을 찾았던 혜경은, 먼저 의사를 붙들고 당장 제왕절개를 해달라”, “무통 주사를 놔달라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25년 전 출산을 경험한 바 있는 E는 이에 크게 웃으며, “보통 산모들이 아이 생각하느라고 아파도 진통제도 안 맞겠다고 하는데 정말 남다르다는 말을 보탰다.

 

 

4월 현재 두 활동가는 육아에 바쁜 나날을 보내며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해왔다용감하게 첫발을 뗀 혜경과 희진이 앞으로도 건강히 잘 해내길 바라며자매애를 담아 응원을 보낸다이상 두 여성을 지지하는 마음만큼은 진정성 넘치는 독박골 내 출산기를 마친다.

 




  1. 이제야 설명을 하자면, 독박골은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이 위치한 마을로,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을 이르는 말이다. 서울지명사전에 따르면 독바윗굴, 독박굴, 독바윗골이라고도 하나 사무실 인근 버스정류장의 표기를 따라 통상 독박골이라 칭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 여성인권회관을 완공하여 장충동에서 현 위치로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모 활동가는 이사 후, 단체의 비운(?)을 암시하는 듯한 본 지명을 듣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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