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맥락으로 뜯어보기 

- 남성성과 젠더 -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석박지혜


어쩌면 바로 곁의 이야기


 날씨가 좋았다. 미세먼지도 낮은 데에다 강의 장소가 북한산 근처라 나무가 많아 한결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경사진 골목길로 들어가 잠시 걷다 보니 한국여성의전화 본부가 보인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서로 인사하고 음식을 나누는 등 활기찬 분위기였다.


3월 30일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진행된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 - 남성성과 젠더 5회차 강의가 시작되었다.


 권김현영 강사는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남성성이란 무엇인가요?’ 답변이 줄을 이었다. “힘이 세고. 씩씩하고. 책임감 있고. 술 잘 마시고. 리드하고...” 사회와 개인이 생각하는 남성성은 힘이 강하고 이끌어가는 존재,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한국 남성 고유의 특성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것임을 설명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주변의 남성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렸다. 그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한국 남성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특성은 씩씩함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특성이에요.” 권김현영 강사는 이야기한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한 번씩은 남자들에게 툭툭 떨어져 내리는 씩씩하게 자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었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씩씩하기만 하라 하던 목소리들은 아주 익숙하게 일상에 자리 잡았다.


 왜 그렇게 ‘씩씩함’에 집중하게 된 걸까. 이해를 위해서는 역사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위로는 중국과 러시아, 아래로는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 상대적으로 약한 국력은 힘에 대한 집착과 열등감을 가지게 하였다. 씩씩함은 결국 신체성과 힘에 대한 강조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역사는 남성의 유실과 아시아 남성 중심 혈통주의에서 비롯된 여성의 유기까지 불러오게 된다. 가정과 아내, 자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씨를 지닌 남성들을 지키는 것에만 열중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남성 유실의 시대는 끝나지만, 여성 유기의 맥락은 여전히 이어져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었음에도 고개 숙인 아버지상을 만들어내 기 살리기 운동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확장되어 남자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으며 남지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만들어 받아들이는 여성은 숭배, 수용하지 않고 남자를 선택하는 여성은 매도와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소년


 “현대 남성은 성인이 되지 않고 동시에 될 수 없는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은 ‘되는 게’ 아니라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자연히 남성은 역할이나 책임이 관련된 부분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이미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니 당연히 성장도 없다. 곳곳에서 수강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성숙한’ 존재들에게는 돌봄이 필요하다. 사회에서는 돌봄을 여성에게 책임지운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의 희생을 통해 존재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근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남녀관계를 연애/성적인 의미가 있다고만 여기며 성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한다. 끊임없이 남근 중심적 사고의 남성과 사회가 상호작용하여 남성의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사회가 일종의 거대한 남성 양육 인큐베이터를 구축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이런 구조와 구조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남성이 타자와 동등한 관계 맺기 방법을 배울 기회를 상실하게 함과 동시에 남근 중심적 사고를 거부하는 남성들을 매도하고 배척하기에 이른다. 더욱 심각하게도 남근 중심적 사회에서 배척당한 남성들은 극단적인 경우 자기 파괴적 성격마저 띠게 되는데 이럴 때도 분노의 화살은 여성에게 날아들어 깊은 상처를 낸다.


 20년간 한국 사회는 왜곡된 소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남성들이 소년에서 벗어나 성장하기 위해선 기생적 관계를 버리고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을지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야 함을 이야기하며 권김현영 강사는 강의를 마무리했다.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의를 듣는 순간순간 주변의 남성들이 떠올랐다. 힘도 없이 늙는 건 죄라며 힘을 유지하지 못한 채 노인이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본인은 퇴직 후 바로 아무도 없는 오지로 가서 혼자 살다가 죽을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 다정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지만, 남자가 씩씩하지 못하다며 혼이나 거칠어지고 말수가 줄어든 사촌 동생.


 그들과 오랜 시간 알아왔는데도 왜 남자는 씩씩함을 강요받는지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지는 게 그렇게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 개인의 생각이며 집안의 과도한 강요라고만 여겼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넘어가도 되었을 문제였을까.


 한국 남성성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알게 된 후 그들을 돌아보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남근주의 질서의 중심에 있었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그 흐름에서 떨어져 나가 받게 될 비난을 봐오면서 아무와도 만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니 오지로 홀로 떠나자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된 아버지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특성들은 무시당한 채 씩씩함만을 폭력적으로 강요받고 적응하지 못하니 점차 배척당해 성격도 변하고 말수까지 줄어들게 된 남동생도 결국은 한국 남성성의 왜곡된 모습에서 비롯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진행하는 49기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은 2017년 3월 23일 ∼ 5월 26일까지 총 100시간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내용은 여성학, 여성주의 상담, 가정폭력상담의 특성 및 사례연구 등이며 자세한 내용은 여성의전화 홈페이지(https://hotlin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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