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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

by kwhotline 2017. 4. 12.

4월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 후기

이세연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느끼는지, 언제 기쁘고 슬픈지, 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왜 그 일을 그만두고 이 일을 하기로 선택했는지, 무슨 계절을 좋아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냄새와 색깔은 무엇인지, 언제 가장 아팠는지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일과 개인 작업을 병행해오며 사회적(거시적) 언어/경험과 개인적(미시적) 언어/경험 사이의 충돌을 경험해왔던 내게 앞서의 질문은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사회적 의제에 조금 더 무게중심이 실리는 사회적 기업이나 재단에서 일하는 동안, 4포 세대도 부족해 8포 세대라는 말이 나오는 사회에서 ‘일하는 청년’으로 애써 살아가는 동안, 내가 고민하는 언어와 태도는 늘 1순위의 의제에게 자리를 내주기 일쑤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예술이라니. 해일이 닥쳐오고 있는데 조개를 주우러 간다니. 주변을 둘러보면 또래의 동료들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개인의 의견을 ‘닥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팽배했다. 나는 그럴수록 ‘한 사람’이 스스로의 언어로 자기를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다른 ‘한 사람’이 찾아와 함께 이야기하고, 다투고, 논의하고, 공존의 가능성과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4월 7일에 진행된 20대 여성인권활동가 아카데미를 찾은 최현숙 선생님은 그러한 사회적 언어와 미시적 언어의 부딪힘과 가능성, 애초부터 분리될 수 없는 두 언어의 합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우테 에어하르트의 말을 저자 소개 첫머리에 적어둔 선생님은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의제 중심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여성주의 관점 기반의 생애구술사 활동과 정당 활동, 노인돌봄노동을 하는 동안 느꼈던 이야기와 사회 구조의 문제 등 자신의 생을 구성해온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서도 20대 활동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가 대개 지배자와 정복자, 다수의 언어에 ‘역사’라는 이름을 내주면서 그 속의 수많은 주체였던 ‘개인’의 이야기와 언어는 기록되지 못했고, 자신은 그 속에서 누락되었던 여성으로서 기록되지 않은 언어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아무도 써주지 않으니 내가 쓰겠다.’라고 마음먹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왔고, 덕택에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다고도 하셨다. 나 혹은 당신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모두 가치가 있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다투고, 논의하고, 의심하고, 드러내고, 동감하면서 서로에게 ‘공명’하고, 그러면서 조금 더 나은 사회와 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이야기에 대개의 활동가들도 동의했다.




 더불어 ‘해야 한다’는 지극히 ‘생산적인’ 삶 중심의 사고와 폭력적인 자기계발의 논리가 팽배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관점을 억누르기보다 ‘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나는 왜 그만두는가? 내 삶에서 이 사건은 어떤 의의가 있는가?” 지속적으로 물으면서 갈등하고 나아가는 동안 성숙해갈 자유가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다수의 관점이 옹호 받는 사회에서 ‘이질적’인 서로를 인정하고, 왜 서로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지만 그러는 동안의 적극성이 결국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삶은 원래 이렇게 불공평했으니까, 말한다고 바뀌지 않으니까 입을 닫기보다 더욱이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대화하며 변화해나가는 과정을 모두 목도하는 경험이 중요하리라는 생각과 그 과정의 일들을 기록하고 말해나가는 노력이 ‘바로 지금’과 다음 세대의 삶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되리라는 은근한 기대도 품게 되었다.


 최현숙 선생님은 강의를 정리하며 앞서 말했던 각자의 언어와 해석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하면서 “아버지에게 맞았다.”와 “아버지와 싸웠다.”는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 내가 그 사건을 어떻게 재해석하는가가 삶의 방향과 관점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며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여겨지는 ‘불편한 사실’을 다시 들추어내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당신과 우리 모두에게 다른 가능성과 몰랐던 시작을 가능케 하리라는 이야기도 나눴다.




 강의 이후에 7월에 진행할 10대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과 함께하는 캠프 프로그램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앞선 강의에서 느낀 이야기들이 함께 다루어졌다. 아이들이 그동안 억눌러왔던 스스로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공명하고, 다투고, 다시 대화하면서 스스로의 언어와 표현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이 10대뿐만 아니라 20대 활동가들의 언어와 관점을 재발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모두들 동의하게 되었다. 결국 ‘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는 일이 나뿐만 아니라 당신을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슴 철렁한 인식이 모두에게 시작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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