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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우리는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by kwhotline 2017. 4. 11.

우리는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메리


2030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2030 실용연애 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2009년을 시작으로 데이트폭력을 예방하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데이트 관계를 만들어 감은 물론, 여성주의 관점에서 '연애문화'를 성찰하기 위한 데이트 대중강좌이다. 한국여성의전화의 기획 강좌이며, 올해는 5강의 강의를 창비학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전신청은 창비학당 홈페이지(http://www.changbischool.com/main.do)를 통해 가능하다.


강좌 

1회 ‘정상성’의 종말을 꿈꾸며: 삶, 관계,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 만들기.

2회 이성애를 고민하다: 이성애주의에서 비껴나 다양한 관계를 탐색해 봅니다.

3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멜로드라마 속 데이트폭력과 대안적 연애.

4회 “언니, 그 오빠랑 만나지 마요”: 데이트폭력 대응 내공 쌓기.

5회 우리에겐 피임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는 피임 그리고 성적자기결정권.



‘정상성’의 종말을 꿈꾸며: 삶, 관계,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감각 만들기

2017년 3월 24일, 김순남 성공회대 젠더센터 연구교수의 강의를 시작으로 <2030실용연애특강,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가 열렸다. 일상 중 서점을 돌아다니면 자기계발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애에서도 계발서가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형화된 연애의 규칙을 따르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는 강박마저 느낀다. 이러한 심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순남 교수는 근대 사회가 동질성, 유사성, 획일성을 강조하고 규범 외는 미숙한 것으로 규정하면서 사람들이 경험을 교류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배제해버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강의는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연애 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정상성의 종말을 꿈꾼다.


사진 : 2015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김순남 교수 강의



이성애 ‘정상성’

흔히 사람들은 이성 간 연애 혹은 결혼을 함으로써 ‘내 인생의 반쪽을 찾는다’고 한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이성 간의 교류가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연인이 소풍을 갈 때는 여자가 도시락을 싸 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연인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전에 여성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랑의 기술을 표피적으로 습득하길 강요하고 이를 수행해야만 자아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낭만적 신화’를 생산한다.


문제는 성을 근거로 형성된 역할 수행이 젠더 권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 행정자치부는 저출산의 이해력을 높이고 지자체 간 출산 지원 혜택 자율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출산지도를 통해 여성을 ‘출산 도구’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결국 결혼제도는 재생산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결혼제도의 혜택을 이성애에게만 부여하고 있음을 체감하였다. 결국 이성애 정상성에 근거하여 설정된 성 역할을 여성의 책임으로 설정하고, 성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허용하는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자존감, 완전한 존재로서 나

그렇다면, ‘정상적인 규범’을 수행하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유튜브 채널 ‘프란-PRAN’에서 ‘비혼 할머니가 편견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삶을 솔직하게 소개한 김애순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정상 가족’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김애순 할머니는 76년간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에 대해 “남자 없어도 얼마든지 떳떳하고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거 한다”라며 “남자를 의지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애순 할머니는 늙어서 혼자면 외롭다는 편견에 “결혼을 해도 외롭고 하지 않아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라며 “나이 들면 결혼을 했던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똑같이 혼자가 된다”라고 답했다.


김애순 할머니의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라는 미성숙한 인간이 결혼을 통해 영원히 완성된 상태가 될 것이라는 낭만적 신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또한, 최근 비혼이라는 단어가 이슈화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에 다수의 사람이 기존의 이성애적 가족관계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김애순 할머니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관계

김애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성애적인 가정이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밸런타인데이에 커플들이 사탕을 주고받도록 시장이 자극하는 것처럼 사회는 알게 모르게 이성애주의와 커플주의를 강요한다. 하지만 김애순 할머니의 비혼주의 삶 속에서 이성애 커플 중심의 낭만주의 신화는 더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까. 김순남 교수는 ‘관계를 퀴어링(queering)하라’고 제시한다. 퀴어는 단순히 성적 지향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성애 규범성뿐만 아니라 ‘규범성’ 자체에 대한 균열과 변화를 퀴어라고 일컫는다. 가령, 커플 혹은 부부라는 정형화된 관계는 이성애를 근거로 규범화된 행동을 수행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한다. 김애순 할머니와 같은 비규범적인 존재로서의 퀴어는 이러한 이성애 커플 중심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물어본다, 규범 속에서 정말로 안정감을 느끼냐고.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관계적 시민권’에 초점을 맞춰 볼 필요성이 있다. 관계적 시민권이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권리를 뜻한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혈연 혹은 부부가 아니어도 사적인 영역의 관계를 공적인 관계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다. 미국에서는 9.11 참사 당시에 죽은 희생자의 국가 배상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다각적으로 진행 된 바 있으며, 법적인 배우자나 혈연관계 외에 ‘친밀성’을 근거로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생활동반자법’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 의원의 ‘동반자등록제’가 제시되면서 관계적 시민권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미혼모 가정, 동성 가정, 다문화가정, 한 부모 가정, 1인 가구 등 법적으로 인정된 정상가족의 범위를 벗어난 다양한 가족형태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강의를 듣고 어렸을 때 친구들이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결혼으로 단순화되어버린 삶 속에서 나의 주관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현재에서도 남들의 눈에 비정상으로 비추어지는 관계는 낭비로 치부해 버리며 살아왔다. 규범화된 관계 외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 주저하던 본인에게 있어서 “시간을 들여 삶, 관계, 사랑을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새로운 아비투스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김순남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더는 정상성이라는 기준으로 나의 감정을 옥죄이지 않는 해방감을 얻을 수 있었던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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