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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여성도 남성도 아닌, 오직 ‘나와 당신’

by kwhotline 2017. 4. 6.

3.31 실용연애특강 2강 ‘이성애주의에서 비껴나기’

부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오직 ‘나와 당신’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이린


한국여성의전화와 창비학당이 함께 준비한 실용연애특강은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연애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 강의마다 주제가 다르지만, 크게 관통하는 공통점은 우리 사회의 ‘연애 각본’을 들여다보며 ‘좋은 연애’란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해 본다는 것이다.


전체 강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링크(https://goo.gl/KNd1v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용연애특강’이라는 강의의 대주제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이 날 강의는 오랜 시간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활동해온 한채윤 인권활동가의 강의였다. 강사의 약력과, ‘이성애주의에서 벗어나기’라는 강의의 제목만 보면 ‘이 강의는 성소수자의 연애를 주로 다루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강의가 시작되자, 굳이 성소수자의 연애, 이성애자의 연애를 나눌 필요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서의 연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활동가는 연애를 하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태도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연인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더라도 스스로와 하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함으로서 연인과의 관계를 지속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만약 연인이 변한다면,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연인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계속되었다. 구체적으로 ‘행복한 연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성 역할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기

“연인이 ‘나 요즘 주름이 늘어난 것 같아’라는 말을 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한채윤 활동가는 ‘연애를 하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각종 ‘연애학’ 서적 등과 실제 연애 과정에서도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이 질문에 수강생들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활동가는 가장 흔히 내놓을 수 있는 답인 ‘주름 하나도 없는데?’나, ‘그래, 그런 것 같아’ 같은 말은 자칫하면 연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연인이 이 질문을 하게 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제가 상담한 사례에서 연인 분은 30대 여성이셨고, 레즈비언 커플이었습니다. 30대 여성이면 주변에서 한창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을 나이에요. 그런데 ‘주름이 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는 건, ‘계속 이렇게 성소수자로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늙으면 이젠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생겼다는 거지요. 결국 이 질문에는 ‘내 눈에는 주름이 는 것 같지 않지만, 네가 불안하다면 주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답이 필요합니다.”


즉, 연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되, 연인이 사회 속에서 성 역할로 인해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연인을 상대방 그 자체로가 아닌, ‘남성’ 또는 ‘여성’ 둘 중 하나로만 받아들이면, 상대와 나 사이에는 항상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와 나는 가까워질 수 없고, 연애를 지속하려면 ‘사랑의 힘’으로 그 차이를 이겨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성 역할을 수행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를 연인 관계에까지 끌고 들어오는 것으로, 두 사람이 행복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연애를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의 결합’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성애주의라고 한 활동가는 말했다.


사진 : 2015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中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기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칭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날 강의에서 한 활동가는 ‘감탄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칭찬은 상대의 ‘칭찬할 구석’을 찾아야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내내 계속 하기가 쉽지 않지만, 감탄은 순간순간 상대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했더라도 감탄을 통해 분위기를 가볍게 풀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분명히 쓰레기를 버려 달라고 했는데 상대가 버리지 않았을 때, ‘또 쓰레기 안 버렸지? 맨날 잊어버리네, 진짜 귀엽네.’하는 식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생활 전체가 감탄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 연인에게 자주 감탄을 해야 할까? 한 활동가는 ‘연애는 상대방이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흔한 사람’이지만, 연애를 할 때만큼은 상대방에게 ‘세상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이 날 한 활동가는 ‘연애를 행복하게 오래 하는 법’을 계속 설명했지만, 사실 연애는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특히 연인이 나를 몰아세우는 말을 하면 굳이 상대를 ‘고쳐 쓰려’ 하지 말고 얼른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난하거나, 가족을 욕하거나, 너는 왜 이정도 밖에 안 되냐고 나무라는 등이 ‘몰아세우는 말’의 예시에 해당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한번 연애를 하면 오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 연애를 끝낼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인의 잘못을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보다’며 합리화하느니,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활동가는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주변에서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 사례를 보면, ‘그러게 사람을 잘 만나야 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해요. 하지만 그게 그런 말로만 끝낼 수 있는 걸까요? 우리 모두가 살다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해요.”


이 날 강의를 듣고 내가 연애를 하면서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이 떠올랐다. 연인이 변해버리면 어떡할지, 변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강의를 듣고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감정이었다. 내가 연인을 계속 사랑하고, 내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실용연애특강’이라는 이름 그대로, 정말 연애의 매 순간순간에 실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 강의였다. 연애가 ‘연인이 원하는 남성상’ 또는 ‘연인이 원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꽤 답답한 관계가 되어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연애 역시도 상대 그 자체를 사랑하고, 그 상대와 함께 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알게 해 준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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