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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 여성주의

by kwhotline 2017. 3. 30.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 여성주의


                                                         박세원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3월 21일 화요일 10시, 한국여성의전화가 실시하는 20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이 시작됐다. 3월 21일부터 5월 23일까지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진행되는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은, 여성폭력문제와 상담에 관심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여성과 인권, 여성주의상담, 유형별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진행된다. 여성혐오, 성폭력, 성매매, 성소수자 등 다양한 주제로 강의가 진행되며 숙박교육과 수요집회 참여 등의 활동도 예정되어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이 날 교육장에는 54명의 교육생들이 교육장을 가득 메웠다. 강의 시작 전,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와 신상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의 축사에 이어 한국여성의전화 상근활동가들과 전화상담회원들의 환영인사로 교육생들을 반겼다. 환영 인사 후 활동가들이 교육생들에게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여 한국여성의전화가 제작한 장미를 나누어 줌으로써 두 달간 진행될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의 시작을 알렸다.




이 날 강의자인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페미니즘은 공정하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통념에 대해 언급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남성이 보편으로 여겨졌으며 보편으로 여겨지는 남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경험이 구성되어 왔다. 그렇기에 기존의 지식 역시 객관적이지 않았으며, 객관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덜 편파적’이고 ‘덜 왜곡된’, 여성 스스로의 경험을 말하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허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서구,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주의는 단지 여성에게 집중하겠다는 것이 아닌, 비서구, 유색인종, 가난한 사람, 비이성애자, 장애인, 여성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겠다는 것이며 기존의 편향적인 시각에 의한 차별을 없애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어서 허교수는 ‘여성우선주차구역이 있다. 이렇듯 여성이 살기 편한 세상인데 페미니즘은 역차별이다’는 식의 ‘역차별’ 담론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여남 임금격차는 OECD 1위이고 여성노인빈곤율도 OECD 1위다. 이러한 수치들이 보여주는 실질적인 여성의 불평등은 외면한 채, ‘여성우선주차구역’과 같은 정책들을 근거로 ‘여성상위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




성폭력과 성매매,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보기

허교수는 ‘SBS 스페셜’의 ‘잔혹동화, 불안한 나라의 앨리스’편의 일부분을 보여줬다. 영상은 여성들이 성범죄를 겪은 이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일상생활에서 공포를 느끼게 됐음을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를 경험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여성들의 고백에 크게 공감한 듯, 교육생들은 이 영상을 보며 울기도 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허교수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처벌이 외국과 같이 강력해져야함을 말하며, 성범죄자에게 1000년이 넘는 징역을 선고한 외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허교수는 한국사회를 ‘가해자를 걱정하느라 잠 못 드는 사회’라고 칭하며 사법부의 기존 관점을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법부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 성범죄 가해자에게 ‘앞날이 창창해서’, ‘공무원인데 처벌을 받으면 직업을 잃게 돼서’, ‘의사라서’와 같은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턱없이 짧은 징역을 선고한다. 또한 공권력은 성범죄를 사적인 일로 치부하며,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결국, 성범죄에 대한 국가의 소극적 태도는 성범죄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성범죄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사는 것은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된다. 허교수는 이러한 현실들이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기존의 남성중심적 관점이 아닌,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고 접근해야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허교수는 성매매에 대한 기존의 관점 역시 비판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원정 성매매를 많이 하는 국가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성구매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남성은 성매매를 통해 성욕을 풀어줘야’한다는 식의 생각들이 만연해 있고, 남성의 성구매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남성중심적 관점들은 성구매 남성의 이해만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허교수는 성판매 여성을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통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러한 주장은 성매매를 통해 많은 수익을 얻는 것이 개별 성판매 여성보다는 거대한 조직임을 망각한 주장이다. 또한 여성이 성판매를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대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데도, 성구매자보다 성판매 여성을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관점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허교수는 성매매 역시 기존의 관점을 탈피하여 여성주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고정관념을 넘어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사회를 향해  

잠깐의 휴식시간 이후에 허교수는 우리 사회가 성별 이분법에 따른 고정관념이 공고하다는 것을 언급하며 강의를 다시 진행했다. 한국 사회는 ‘여자는 날씬하다’, ‘여자는 꽃이다’, ‘여자는 약하다’와 같은 고정관념이 만연하다. 허교수는 앵커를 예로 들어 직업에 있어서 성별 고정관념에 대해서 설명했다. 직업에 있어서 여성은 전문성보다는 외모로 평가받기 때문에, 대부분 뉴스에서 앵커는 ‘나이 든 남성’과 ‘젊고 예쁜 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렇듯, ‘여자는 꽃’이라는 고정관념이 공고한 사회에서 일정 나이를 넘긴 여성이 공적영역에서 경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허교수는 이러한 고정관념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관념으로, 누구나 옳다고 믿지만 사실은 면밀히 검토되지 않는 관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로부터 벗어나야함을 강조했다.


이어서 허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을 예로 들며 기계적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기계적 평등을 고려한다면, 여성과 남성의 화장실 칸 수는 똑같아야한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을 위해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해야하고, 그렇기에 여성의 화장실 칸이 남성의 화장실 칸보다 많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이들을 고려하여 결과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해야한다. 


이어 허교수는 부모 모두 청각장애인이고 본인도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 헤더에 대한 영화 ‘sound and fury'에 대해 소개했다. 헤더가 수술을 받을 경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지만, 부모가 극심하게 반대했다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본인이 장애가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정상규범에 얽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우리 사회는 청각장애인과 같이 정상규범에 벗어나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함에도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거나 비정상으로 치부한다. 허교수는 정상규범을 벗어나 있거나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가 되어야함을 강조했다.


영화에 대한 소개를 끝으로 강의는 마무리 되었다. 허민숙 교수는 “성평등이 맞고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것이 우리 사회가 이루어 내야 할 결과라고 생각하자”며 “인종 간 결혼이 범죄이던 때가 있었듯, 분명 현실은 변화하기에 확신을 가지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평등을 향해 가는 길에 한국여성의전화와 본인이 함께 하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훈훈하게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날 강의는 성폭력, 성매매, 성별 고정관념, 성평등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뤘고, 그만큼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눈빛을 빛내며 수업에 집중하는 교육생들에게서, 성평등을 향한 열망과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설명하려는 허민숙 교수와 열정적인 교육생들을 통해서 성평등을 이루어내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연대의 힘을 얻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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