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사는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하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_문정

 

 

최근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 더불어 헌법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여전히 헌법은 일반 시민들에게 멀고도 어려운 존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헌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운 적도, 조문을 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헌법을 알기 위해서는 헌법 책을 읽고 외워야만 하는 것일까?

2월 14일,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 주최한 <2017 여성주의 집중 아카데미 : 뜨거운 시선>에서는 ‘헌법 읽는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으로 오정진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강의가 열렸다. 강의는 ‘저도 헌법 조문이 몇 개인 지 모릅니다. 조문을 안다는 게 중요한가요?’라는 오정진 교수의 ‘고백’으로 시작되었다.



헌법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헌법은 사회의 지향점을 담고 있다. 그래서 헌법은 지켜야 할 구체적인 절차나 규칙보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주로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헌법을 아는 것보다 헌법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오정진 교수는 ‘헌법을 읽는 것 역시 새로 쓰는 행위입니다. 모든 순간 모든 때에 헌법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돼요.’라고 말하며 법의 정치성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법은 사회의 흐름에 따라, 그것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법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이 그러하듯 헌법은 ‘아는 것’을 넘어 ‘사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헌법이 살아있어야, 그리고 우리가 헌법을 살고 있어야 헌법의 본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신비화 속에 죽어있던 헌법

그러나 오정진 교수는 ‘현재 헌법은 살아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법이 신비화의 장막을 가지고 있으므로 헌법이 대중에게서 멀어졌다고 말한다. 아직도 존재하는 판사 복은 신비화된 법과 판사의 절대적인 힘을 상징한다. 또한, 오정진 교수는 판사들은 옷뿐만 아니라 드나드는 문이나 먹는 밥까지도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권위로 포장된 법정에서 평등이라는 헌법 정신을 제대로 수호할 수 있을까? 반면 법정은 일반 대중에게는 지나치게 엄숙할 것을 요구한다. 법정에서는 마스크와 모자를 쓸 수가 없다. 그것을 써야만 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더라도 참작이 되지 않는다. 또한 법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명목으로, 판사가 입장하는 경우 모두가 일어서야만 한다. 일어서지 않는 사람은 법정에서 퇴출당한다. 법정은 법에 신비주의를 씌우고 이를 집행하는 판사들에게는 신비화된 권력을 부여하며 일반 시민에게는 온순한 몸이 되기를 강제한다. 헌법에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운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헌법과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다.

  



‘인간들의 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낙담하기는 이르다. ‘헌법을 사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지만, 동시에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을 사는 것 역시 멋진 ‘이상’으로써 신비화할 필요는 없다. 오정진 교수는 헌법을 산다는 것은 헌법을 세속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헌법의 세속화는 헌법을 ‘인간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법을 따라야 한다는 준법정신의 틀을 깨고, 법이 자신을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신비화된 법의 장막을 벗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만지지 못할 절대선처럼 작용했던 기존 질서를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력자들이 말하고 남성들이 말했던 이전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헌법을 이야기해야 한다. 오정진 교수는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상이라도 많이 해야지 현실이 조금이라도 커진다. 할 수 있는 최대치를 꿈꾸고 맹렬하게 욕망하자.’고 말하였다. 그리고 꿈꾸는 것을 배우지 못한, 그래서 욕망하는 것을 머뭇거리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이제까지 못해왔다고 앞으로도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삶은 지속돼요”


법에 의존하지 말고, 법을 살자 

강의 끝 무렵, 성 평등을 위한 헌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정진 교수는 이렇게 답하였다. ‘성 평등은 지금 있는 헌법으로도 가능합니다. 이건 조문을 하나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법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함께 논의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은 사람들의 관심과 논의이지 법이 아니다. 법조문에 쓰여있지 않은 많은 공백은, 우리가 법을 살아감으로써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법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평등’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헌법을 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보는 것을 어떨까.


2528754D58917F1B01D60A2405D04D58917F1B04061F2458754D58917F1B3874BD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블로그 이미지

한국여성의전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