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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2017년 '뜨거운 시선 '페미니스트 ‘정치’특강 2강 후기

by kwhotline 2017. 2. 15.


‘여성’대통령 박근혜를 넘어, 미래의 정치를 위하여



경은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2월 9일 늦은 7시,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한 여성주의집중아카데미 <뜨거운 시선>에서 “‘여성’대통령 그 후, 젠더 정치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열렸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보인 한국의 젠더 정치 담론과 그 미래의 방향에 대해 열띤 강의를 들려주었다.



‘여성’대통령 박근혜?


박근혜는 여러모로 최초의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름이다. 박근혜가 사용한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당선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은 여성 리더는 선진화의 지표이며, “섬세함과 감성을 갖춘” 여성적 리더십이 대한민국에 필요하다며 당선의 정당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략에 불과했다. 박근혜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여성’ 정치인 이라고 말할 때의 여성은 단순히 성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정치인들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언제나 모순적이었다. 여성은 항상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 이라고 이름 붙여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여성’ 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그 대상은 특별한 기대와 역할을 갖게 된다. 정치라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정치인들은 모성 혹은 평화의 상징이 되거나 능력주의 신화와 함께 남성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와, 여성 인권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박근혜가 “몸만 여성이다”라는 비판은, 오히려 여성이라는 맥락을 삭제한 채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에는 기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든 여성을 단일한 집단으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낳았고, 여성 정책의 퇴보로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통령’ 박근혜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 붙여진 박근혜와 여성의 권리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여성 대통령으로 사람들에게 존재한다. 박근혜는 여성으로서 수많은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없고 당선되었다. 유권자들 중 대부분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인 것보다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여성이 권력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젠더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박근혜에게 표를 던졌던 것이다. “여자가 나온다니까 좋아요”, “여자가 대통령으로 나온다는 게 자랑스럽다”라는 지지자들의 말들은 박근혜의 당선이 여성 유권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고 여성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여성 정치인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여성들은 국가 정책의 시행을 위해 끊임없이 도구화되었다. 가족계획도, 산업발전도 가족과 직장 속의 여성들이 없었더라면 그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근대화 속 여성들에 대한 박근혜의 감사와 인정은 유신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은 2012년 대선 당시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의 빛을 넘겨받은 덕분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페미니스트 정치를 실현하지도, 여성 대통령으로서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박근혜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박근혜가 남겨둔 ‘여성’ 정치인과 여성주의 리더십에 대한 수수께끼를 우리는 치열하게 겪고 싸워가야 한다.


페미니스트 정치와 페미니스트 리더, 남녀동수로부터!


이전의 젠더 담론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이야기하기 바빴다. 여성이 가진 특질을 담론적으로 만들어내고, 차이를 주입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덫에 걸려 여성은 젠더적 차이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정치라는 영역에서도 여성은 과도한 기대를 짊어지고 스스로 모순적 존재라고 칭해야 했지만 남성들은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면책되었다. 하지만 여성은 모든 곳에 있고, 모든 것은 여성적일 수 있다. 여성이 대표가 되었을 때 도출되는 특수한 결과에 주목하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시민됨”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페미니스트 정치에 한발 다가서기 위해서 여성 대표자의 숫자가 중요하다고 이진옥 대표는 말했다. 박근혜 같은 여성 정치인이 여러 명인 것이 여성 인권의 증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물론 정치인의 숫자가 정책결정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구하는 사람이 많은 정책의 실현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박근혜를 넘어 새로운 페미니스트 정치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표성을 갖고 정책결정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남성중심적인 제도 정치를 흔들어 놓기 위해서, 바로 그 제도 정치에 조직된 힘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지형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다양성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이기 위해서 항상 균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정치라는 땅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 그리고 현재 국회와의 간극은 커졌고,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균열에서 피어나는 다양성의 정치를 위해서는, 팔로우십에 반하더라도 여성주의 담론을 안고갈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또한 남녀동수를 전제로 조직된 힘을 갖추고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야 한다. 흔들리고 부딪치는 그 속에서, 여성주의 정치의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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