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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토론회]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 지원정책, 이대로 좋은가

by kwhotline 2016. 11. 15.

[토론회]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 지원정책, 이대로 좋은가





한국여성의전화는 2016년 9월 12일부터 9월 21일까지 10일 동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실태를 파악하여 데이트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데이트 관계 경험이 있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10월 5일 수요일 오후 2시, <데이트폭력 피해 당사자 지원정책,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회는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의 실태조사 결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 발제를 시작으로 이은의 변호사, 경찰청 형사과 장재혁 경정, 연세대 성평등센터 연구의원 최지나,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 최혜민 등 피해 당사자 지원정책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의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는 발제를 통해 데이트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며, 성평등·인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과 데이트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사법처리 시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의 특성과 맥락을 반영할 것,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 스토킹 범죄를 분명히 처벌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 제정을 강조했습니다.

 

뉴스레터사진_토론회4.jpg

 

[후기]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를 듣고 와서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회원 계영

 

   “근데 두 분은 무슨 관계예요? 그냥 진짜 OO(이)기만 한 거 맞아요?”

무력과 성적 굴욕감을 겪은 폭행 사건들의 피해를 호소한 뒤 남성 경찰들에게 오히려 취조당하듯 여러 번 들은 질문이다.

연인 등 데이트 관계인지를―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듯, 재미있다는 듯 훔쳐보는 듯한 얼굴로, 가십거리 쫓듯, 재차 의심하듯―묻는 저마다의 뉘앙스마다 굳이 내 심정과 그 복잡한 관계의 역동을 어디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할지, 말지, 아예 다 접고 집에 가버릴지, 혼란스러워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에서 그 외로운 고민의 바탕을 만났다. “피해자에게는 ‘폭력 상황에서 왜 도망가거나 도움 요청하지 않았는지’ ‘가해자와 왜 다시 연락하고 만났는지’ 등 ‘완벽한 타인’에 의한 폭력상황에서의 맥락을 적용하며 피해를 의심하는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와 친밀한, 사랑하는 관계를 강조하며 폭력사실을 부인하거나 피해자의 방어적 행동, 정당한 요구 등의 본질을 왜곡하며 피해자를 쌍방폭행,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고소한다.” 그러니까 관계의 친밀성 정도가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각각 정반대로 작용하는 이중잣대인 상태, 피해자에겐 자신이 당한 위험/피해를 상세히 드러내는 일이 사건 구성과 조치에 (도움이 되긴커녕) 어떻게 쓰일지 아무 신뢰가 없고 가해자에겐 그것이 (범죄의 증거와 책임이 아니라) 되레 긴요한 무기로 쓰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인적 신뢰관계에 있는 자에 의한 폭력이므로 폭력과 피해가 중함에도 가중요소로 고려되지 않는” 현실에서 “당사자 간 관계가 무엇이든 범죄는 범죄”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게 실감난다.

 

   설문조사에 응했을 때 항목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기억까지 건져올릴 수 있을 만큼 세세하고 촘촘함에 놀랍고 기대됐지만, 그중에도 특히 피해 당시 느낌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상대가 불쌍했다”는 그 갑갑한 이중 구속으로 부당한 책임(감)에 놓인 일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뒤늦게 마음 아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대응 못한 상황이 많은 걸 보면 가해 예방과 함께 피해 대응 교육도 있었으면 싶고, 신체적 폭력조차 신고율이 14%뿐이라 가정폭력처럼 암수(暗數)율 높은 범죄라는 유사함에서는 충분한 고려 없는 “헤어지라”는 주문처럼 가정폭력에서의 ‘이혼’ 고려나 운운도 자칫 “피해자의 자책감을 가중시키며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다 싶은 실감이 났다.

 

   경찰청 관계자 토론에서 데이트폭력을 “일반 인식은 데이트 폭력의 범위를 (현행법보다) 넓게 보는 경향”이라 짚은 현실은 ‘현행법이 데이트 폭력을 실제(가해)보다 좁게, 축소 인정’하는 문제를 드러내니, “데이트폭력은 ‘폭력’의 문제이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범죄임을 잊지 말”고 각기 외롭지 않게 짐 나눠 질 수 있길 꿈꿔본다. “데이트 폭력” “원치 않는 애무” 같은 형용모순이 내가 발 딛고 선 현실이니, 데이트, 연애, 로맨스, 사랑 같은 말에 씌워진 ‘각본’부터 무엇인지 이리저리 뒤집어 고민해보기 시작한다.

 

 

 

[후기] 토론회에 다녀와서

닷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발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통제 피해와 관련된 설문 문항이었다. 통제 피해 직후 느낌을 묻는 설문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라는 응답이 1위부터 3위까지 차지한 것은 가해자의 논리가 이 사회를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조차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은 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폭력피해 경험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일 것이다.

 

   연세대학교 성평등센터의 최지나 씨는 토론에서 ‘처음 관계 설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데이트-연애관계가 폭력관계로 규정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데이트-연애관계의 첫 시작부터 폭력이 스며드는 것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폭력을 ‘연애의 일환’, 혹은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사법현장에서 데이트폭력이 가해자의 논리로 구성되는 방식과 일치한다.

한편, ‘(대학도 갔는데) 연애 못 하면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메시지 아래에서는 자신의 성장, 이익, 선호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연애’가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할 여유 없이 데이트-연애관계를 맺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애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저런 사람이라도 만나야하나’라는 생각으로 폭력관계로 끌려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을 통해,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새로운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은의 변호사는 새로운 법과 체계를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주장하며, 상담현장과 사법현장에서 데이트폭력을 감지하는 온도차를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로, “가만있어”라는 네 글자에 대한 이해차이를 꼽았는데, 몇 겹의 권력 관계 속에 있는 피해자에게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위협과 협박의 맥락이 어떻게 사법현장에서는 모두 사라지게 되는지 단순명료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온도차를 줄이려는 교육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충분히 고민해볼만한 것이었다.

 

   경찰청 형사과에서 오신 토론자를 통해 경찰이 데이트폭력 대응 및 재발방지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알게 되었지만, 이것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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