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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일상

한국여성의전화에 첫발을 내디디며

by kwhotline 2016. 11. 1.

한국여성의전화에 첫발을 내디디며

닷 성폭력상담소


올해 3월, 한국여성의전화 19기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듣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6호선의 끝자락, 거기서 다시 한 정거장 버스를 타고, 약간의 등산(?) 후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사와 함께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담원 교육을 들으며 목격한,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이 가진 자부심과 당당함은 저에게 여성의전화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침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을 통해 청년젠더활동가로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인턴 경험을 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성의전화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유는 우선,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먼지 차별’ 캠페인을 통해 여성의전화가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시키려는 현실이 제가 목소리 내고 싶었던 부분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여성의전화가 걸어온 길에 동참하고, 여성의전화 활동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도 컸기 때문입니다.


여성단체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성폭력 관련 사례와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폭력 사례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출근 첫 주의 가장 큰 바람은, ‘내가 앉은 책상으로는 전화가 걸려오지 말았으면 좋겠다’였습니다.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이고, 상황별로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누구에게 전화를 연결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입 활동가 오리엔테이션에서 전화 응대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정말 유용했습니다. 


인턴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한국여성의전화의 신입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나의 언어와 경험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말하는 것이 좋았고, 그 과정에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신입 활동가로 출근하는 첫날 아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실감한 차이는 ‘30분 앞당겨진 출근 시간’과 ‘고정된 내 자리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2주간의 교육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신입 활동가로 이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익히는 데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무실 근처 지형을 익히고, 사무실로 밥을 먹으러 오는 고양이와 인사도 나누고,  ‘그때가 아니면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격려와 함께 과제 도서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 중 <여성인권운동사>를 통해 짧은 줄거리로 요약되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화 두 대로 시작한 여성의전화에 모여든 가정폭력 사례들, ‘두 아이와 함께 집을 나온 여성을 위해 쉼터를 마련했다’, ‘성폭력/가정폭력 특별법을 제정했다’는 문장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책에도 모든 사연과 목소리가 다 담길 수는 없었겠지만 여성 폭력의 현실에 다시 눈뜨고, 여성운동의 고민과 힘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의 방법으로 상담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앞으로 상담소에서 일할 저에게는 중요한 지침으로 삼을 원칙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스토킹 살인사건 재판에 참석해서 활동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도 있었습니다. 검사가 사형을 구형한 후 피해자 가족들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피해자를 지원하는 분들이 모여서 얘기 나누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활동가로서 어떤 시선과 마음가짐으로 피해자를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여성인권운동 활동가로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고민했다면, 지난 일주일을 통해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각 부서의 업무에 대해 조금씩 설명을 들으며, 여성의전화가 그 동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대단하기도 하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하며 꿈을 그리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 멋있었습니다. “상담원 교육 때만 해도 선생님과 함께 일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출근 첫날 동료 활동가에게 들은 말처럼, 여성인권운동 활동가로 앞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제10회 여성인권영화제를 무사히, 즐겁게 마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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