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조사를 통해 본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

-한국여성의전화 2016 데이트폭력 실태조사 결과분석


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한국여성의전화는 2001년부터 데이트 상대로 인한 폭력, 즉 ‘데이트폭력’에 주목하여 피해 상담, 인권지원활동, 대중강좌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데이트 공작단’ 모임 운영, 데이트폭력예방 애플리케이션 ‘데이트UP데이트’ 개발, 소책자 및 잡지 발간 등 성평등한 데이트 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이번 9월, 본회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의 실태를 파악하여 데이트폭력 근절과 예방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온라인을 통해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설문조사는 데이트 관계 경험이 있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었다. 다음은 설문에 참여한 총 1,082명 중 성별을 여성이라고 응답한 1,017개를 바탕으로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요약·정리하였다.


 

데이트상대 성별

합계

성별

여성

남성

그 외

여성

8% (81)

91.9% (935)

0.1% (1)

100% (1017)

남성

87.7% (50)

12.3% (7)

0

100% (57)

그 외

12.5% (1)

62.5% (5)

25% (2)

100% (8)


본 실태조사의 분석에 포함된 성인 여성 1,017명 중 61.6%가 최근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여 상당히 많은 여성이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유형의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11.5%에 이르렀다.  


통제

언어적/정서적/경제적

신체적

성적

62.6%

45.9%

18.5%

48.8%

637

467

188

496


<유형별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



1. 폭력으로 시작하고 형성되는 관계 


데이트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상당수의 언론은 ‘이별범죄’에 집중한다. 이는 피해자의 이별 요구, ‘일방적인’ 이별 통보, 연락 두절 등으로 범행 동기를 구성하고 ‘안전이별’이라는 말을 인용해 이별을 ‘잘’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피해자 유발론을 확산시킨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은 이별 때문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며 친밀한 데이트 관계 안에서 지속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본 실태조사에서도 사귄 후 6개월 미만에 언어적・정서적・경제적・신체적・성적 폭력이 발생한 비율이 평균 59.9%로, 데이트폭력을 피해를 입은 응답자의 과반수가 관계 초기에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적폭력은 사귀기 전부터 사귄 후 3개월 미만에 발생한 비율이 52.1%로 다른 유형의 폭력에 비해 발생 시기가 빠른 특징을 보였다. 성에 대한 이중규범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성 경험은 여성을 데이트 관계 형성 및 유지에 종속시키는 힘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적 행위의 상당 부분이 관계 초기에, 원치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실은 적지 않은 데이트 관계가 성폭력에서 시작하게 됨을 드러낸다.



2. 통제, 폭력의 근원이자 목표 


데이트 관계에서 통제를 경험한 비율은 62.6%로, 이는 상대방의 인간관계나 생활, 옷차림 등 일상 전반에 대한 통제가 일종의 데이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폭력의 목표가 상대에 대한 통제권 획득임을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의 데이트 관계는 이미 구성되는 시점부터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 및 구조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과하지 않다.


본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모든 형태의 폭력 피해를 겪었다고 대답한 응답자의 90.1%가 데이트 상대에 의한 통제를 경험했다.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폭력 피해 여성의 79.2%, 신체적 폭력 피해 여성의 87.8%, 성적폭력 피해 여성의 77%가 통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해 통제와 폭력의 높은 상호연관성을 알 수 있다.


통제

언어적/정서적/경제적

신체적

성적

62.6%

45.9%

18.5%

48.8%

637

467

188

496



폭력 여부를 물리적 폭력 위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통제에 대한 문제는 비가시화 되기 쉽다. 특히 친밀성은 통제의 심각성을 등한시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제이다. 데이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통제는 ‘애정과 관심’, ‘걱정’ 등으로 정당화된다. 통제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38.9%), “아무렇지 않았다”(35.8%),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32.1%)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고, 반응 역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47.6%), “상대의 기분에 맞추어 주었다”(42.3%)는 응답이 주요하게 나타난 것이 이를 뒷받침 한다.


데이트 관계에서 통제는 사랑하고 사귀는 사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행동규율로 규범화되며, 이 규율을 어겼을 때 비난과 처벌로 순응을 끌어내 통제를 더 강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더군다나 여성에 대한 통제는 이분법적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여성성’의 수행이라는 사회문화적 압력과 연결되면서 더욱 비가시화 된다. 


응답자의 61.5%는 사귄 후 3개월 이내에 통제를 처음 경험하였다. 폭력과 통제의 긴밀한 연관성은 잘 보이지 않는 일상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폭력을 인식하고 드러나게 한다. 통제를 폭력으로 의미화·가시화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 초기에 데이트 폭력을 인지하고 중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관계 중단의 어려움


데이트폭력 피해를 경험한 과반수가 관계 초기에 폭력이 발생했음에도 전체 응답자의 68.5%가 6개월 이상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폭력 발생 이후에도 관계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계를 유지한 이유에 대해 “(폭력의 정도가) 헤어질 만큼 심하지 않아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주요함을 볼 때, 상대에 대한 감정과 폭력 이후 용서를 구하는 가해자의 태도 등이 관계중단의 의지와 행동을 무력화시킴을 알 수 있다. 폭력 피해 직후 상대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는 응답이 공통적으로 높게 나타나지만, 분노는 희석되며 “사랑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이는 단지 피해자의 폭력에 대한 허용 정도나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너를 많이 사랑해서 그래”, “다 너를 위해서야!”, “사랑한다면서 이것도 못 해줘?”,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등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이 폭력과 함께 행사하는 언설처럼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은 ‘사랑’을 명목으로 은폐되고, 이해받고, 정당화된다. 또한 ‘사랑’이란 감정과 행위, 관계를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봉합된 ‘폭력’은 ‘되도록’ 당사자 간에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방치된다. 



4. 혼자서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 


폭력 피해에 따른 반응 및 조치에 대한 응답에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등 개인적으로 대응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별다를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과 상의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경우(31.5%)도 대부분 상대가 동료나 선후배에 국한되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상위 3개 이유는 “심한 폭력이 아니고”, “창피하고”, “말해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었으며, 도움을 요청한 상대가 오히려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책임 전가, 폭력에 대한 과소평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도움 요청을 차단하거나 시도를 좌절시키는 등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으로 인한 2차 피해를 일으키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 등 공적 지원체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현저히 낮은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폭력 피해 이후 조치에서 전문상담기관에 알린 경우는 2.0~3.2%,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1.2~8.5%에 그쳤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오랜 기간 폭력이 지속되고 심화된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고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한 후 상담을 요청한다. 경찰신고는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행위가 발생했을 때 가능하고, 있다 해도 대부분 증거가 없어 피해자들은 차라리 심각하게 맞아서 폭행으로 고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신체적 폭력조차 신고율이 14%에 그쳐 데이트폭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암수율이 높은 범죄임을 알 수 있다. 


  




데이트폭력 피해 현실을 통해 본 과제


  응답자들은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으로 ‘접근금지 등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 ‘가해자처벌 등 법적 조치’, ‘피해자 치유·회복을 지원’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실태조사 결과와 응답자들의 정책제안을 토대로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과 데이트 문화의 변화가 요구된다. 



데이트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나 대응은 데이트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쉽게 좌절되곤 한다. 우리 사회는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쯤으로 사소하게 취급하며,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린 ‘사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알기 때문에 피해당사자는 폭력을 인지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대응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친구가 데이트폭력을 겪고 있을 때 자신은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은 “친구의 말에 경청한다.”였다.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은 “헤어지라”였다.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해당사자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관계중단에 대한 피해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별 주문은 오히려 자책감을 가중해 피해자를 고립시킬 수 있다. 폭력이나 폭력적인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선택을 넘어서는 문제다. 데이트폭력은 ‘폭력’의 문제이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범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데이트폭력 피해를 드러내고 대응하면 중단될 수 있다는 믿음과 그 실현이 가능한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재는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피해를 악화하는 주요 원인이다. 데이트폭력은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연애각본, 집착과 통제를 ‘정상적’으로 만드는 데이트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랑’, ‘몸/성’, ‘연애/관계’에 대한 성찰과 점검을 통해 차별과 폭력으로 형성·유지되는 관계에 균열을 내고 다른 방식의 관계 맺기에 대한 상상할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성평등·인권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 및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2. 사법처리 시 데이트폭력 피해경험의 특성과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을 개인의 의지와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사법처리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데이트 관계’였다는 것은 피해자에게는 전혀 고려되지 않거나 피해를 희석하는 근거가, 가해자에게는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은폐하는 근거가 된다. 피해자는 ‘왜 도망가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가해자와 왜 다시 연락하거나 만났는지.’ 등 ‘완벽한 타인’에 의한 폭력 상황의 맥락에서 피해를 의심받는다.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와 친밀한, 사랑하는 관계를 강조하며 폭력 사실을 부인하거나 피해자의 방어적 행동, 폭력을 막기 위한 압력행사나 피해회복을 위한 정당한 요구의 본질을 왜곡해 피해자를 쌍방폭행, 명예훼손, 무고 등으로 고소한다. 양형 판단 시에도 “다른 남자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등 가해자가 주장하는 범행동기가 감경사유로 반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적 신뢰관계에 있는 자에 의한 폭력이기에 폭력과 피해가 중해도 가중요소로 고려되지 않는다.


 피해 여성들은 정책과 실제 집행의 간극에서, 친밀한 관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피해자의 구조요청으로 경찰이 출동해도 가해자가 데이트 관계임을 밝히면 “둘이서 잘 해결하라”는 식으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는 오히려 가해자로부터의 보복 위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데이트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밀폐된 공간에 있는 상황에서 발생할 때가 많으므로 경찰신고는 피해자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경찰은 출동했을 때 현장 상황뿐만 아니라 이전의 폭력피해 등을 고려해 잠재적 위험성을 자세히 파악하여 개입해야 하며,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하고 피해자 신변안전조치 등을 통해 피해자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3.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은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와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에 의한 젠더폭력이며, 언어적·정서적·신체적·성적·경제적 폭력 등을 동반하여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삶을 파괴시키는 사회적 범죄이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은 성폭력·가정폭력 등을 중심으로 한 현행 여성폭력 피해자 상담과 의료적, 법적 지원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복합적인 폭력 중에 ‘성적 폭력’에 한해서만, 이도 성폭력으로 고소했거나 입증 가능한 경우에만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인권과 안전 보장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데이트폭력 피해자 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전문성 확보를 위한 노력과 정부 차원에서 데이트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이 가능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4. 스토킹범죄를 분명히 처벌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위협과 폭력으로부터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 현행법상 경범죄처벌법으로 스토킹을 처벌할 수 있으나 범칙금 8만 원이라는 미약한 수준의 제지에 그쳐 재발 방지에 실효성이 없다. 덧붙여 스토킹을 ‘경범죄’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스토킹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토킹은 여전히 “구애 행위”나 “마음 정리의 과정” 정도로 미화되며, 개인들 간에 해결해야 할 사적인, 감정적 영역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은 스토킹을 폭력이자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을 확대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1999년부터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온 스토킹 처벌법 제정,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생활형성을 침해’하는 반인권 범죄행위인 스토킹 범죄에 대해 ‘형사 처벌 원칙’을 분명히 하고, 성별화된 폭력이자 친밀한 관계에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스토킹범죄의 특성을 반영하고 피해자의 신변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한 내용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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