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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내 삶에 ‘킥!’을 외치다”

by kwhotline 2016. 11. 1.

“내 삶에 ‘킥!’을 외치다”

한국여성의전화 <페스티벌 킥> 참여후기


황나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언제든지 ‘킥!’을 외쳐주세요.” 


일상의 대부분에서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기” 어렵다. 나를 막아서는 폭력들에 무뎌질 때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주최한 <페스티벌 킥>에 가게 됐다. 7월 16일 토요일에 열린 이 행사는, <연애>라는 주제로 토크쇼와 콘서트 등 자유로운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이 생각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연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를 시작하면서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행사 중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킥’을 외쳐달라고. 이 시간은 자유롭게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잊고 있던 나를 만나게 됐다.



부스들 다니느라 샤샤샤




“우와! 대박!” 환호성에 돌아보니 “최강킥녀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망치를 내리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때마다 함께 환호를 지르는 소리였다. 신나는 망치게임을 시작으로 부스를 둘러봤다. 첫 번째 부스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회원가입과 서명운동을 받고 있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가해자의 엄중 처벌 촉구에 대한 내용과 스토킹 방지법 제정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데이트공작소>에서는 ‘데이트up데이트’ 어플과 데이트폭력 사례에 포스트잇으로 상담과 답을 내리는 ‘답정킥’이 진행되었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여러 사례를 보면서, 데이트폭력이 연애라는 관계에서 굉장히 일상적으로 파고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반짝하고 예쁜 색들에 끌려 들어간 곳은 <은하선 토이즈>였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섹스토이가 판매되고 있었다. 섹스가 즐거운 것이라는 것과 그것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주는 해방감이 있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부스에서는,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내용에 충실하게, “빻은 소리”하는 답답한 말을 물리치는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음을 그리는 낙서> 부스에서는 그림작가가 직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려주었다. 찬찬히 한 사람씩 진행된 이 부스는 예약제로 진행되었다. 



물고기는 자전거가 필요 없다 

토크쇼1 전희경: <여전히 우리에게 “오빠는 필요 없다”>

첫 번째 토크쇼는 여성학자 전희경의 <여전히 우리에게 “오빠는 필요 없다”>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이혼고백서’를 시작으로 축첩제 폐지운동, 가족법 개정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등 과거 여성들의 투쟁 역사는 현재의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들의 과거이자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나 또한 과거의 그녀들처럼 현재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맞설 것이라 다짐했다.


“남자 없는 여자는 자전거 없는 물고기와 같다”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Marie Steinem)이 한 이 말은 어떤 뜻일까? 전희경 강사는 “자전거가 물고기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듯, 여성에게 남성이 없다는 것은 여성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들만이 있는 공간이 결핍되어있다는 편견, 여성과 남성이 필연적으로 함께여야 한다는 이성애 중심적 강박,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재한다. 

또,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띠그(Monique Wittig)의 “여성을 만드는 것은 남성과의 특정한 사회관계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범위가 아닌 정치적 범주이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범주임을 설명한다. 처음 행사장에 입장했을 땐 같은 성을 가진 단일한 여성들이 모여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강연을 들으면서 각자 자기만의 색을 가진 “다양한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다양한 여성들을 오직 남성과의 관계라는 허약한 끈을 통해 ‘여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 한 보따리 풀고 가세요 

토크쇼2 란희, 김순남, 홍승은: <킥녀들의 집단지성 토크쇼>




2부 <킥녀들의 집단지성 토크쇼>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송란희의 진행을 중심으로, 인문학 카페 36.5도의 홍승은과 여성학자 김순남이 패널로 함께 했다. <페스티벌 킥>을 신청할 때 여성들의 사연을 함께 받았는데, 이 코너에서는 그 중 몇 가지 사연을 골라 함께 패널들과 관객이 함께 고민을 나눠보는 시간이었다. 


기억 속의 그 사람과 싸우고 있다


데이트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여성의 사연이 있었다. 김순남 패널은, 피해자가 쉽게 가해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함께 공유했던 친밀감과 좋은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폭력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사회에서 표현하는 폭력의 피해자 이미지가 수동적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관객석에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들에 대해 함께 기록하기”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외에도 패널들과 관객석에서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에 대해 함께 공감하였다. 


내 인생은 내 꺼야 


이런 질문이 많이 있었다. 여성혐오가 심한 이 세상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느냐고. 김순남 패널은 이 질문에 “어떤 남자를 만나서 내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그 의미를 꼬집는다. “상대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권력을 많이 주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남자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다시 일어나 괜찮아”

<옥상콘서트> 정민아, 소울트레인



<옥상콘서트>는 토크쇼와 행사를 통해 느꼈던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모던가야그머 정민아는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주면서 노래에 담긴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했는데, 그 중 <서른세 살 엄마에게>라는 노래에 대한 한 소절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울 어머니 지금 내 나이 때 나를 낳았지. 그리고 9년 뒤 아홉 살 나를 데리고 수리산 한증막에 갔어(…) 9년 뒤 내가 다시 여길 온다면 그때 엄마의 세월을 이해할까”. 두 번째 공연은 소울트레인의 무대였다. 공연이 이어졌고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련>, <A> 등 많은 곡을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다시 일어나 괜찮아. 내일은 다른 사랑이 다른 하루 올 거야”라는 소울트레인의 노래<A>에서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누구도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없다는 위로

행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마음 한 켠에 맴도는 말이 있다. “내 인생이 누구를 만나서 이렇게 됐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김순남 패널의 이야기였다. 이 말이 내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이번 <페스티벌 킥>에서 ‘킥’을 외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은, 어떠한 억압이 있어도 누구도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용기뿐 아니라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를 느끼게 했다. 이 날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일상에 ‘킥’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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